동아시아(이하 ‘아시아’)의 록 밴드가 아시아 여러 곳을 다니며 천명이 넘는 청중 앞에서 연주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올 여름 일본의 후지 록 페스티벌과 록 인 저팬(Rock in Japan) 페스티벌은 물론 중국의 시후 록 페스티벌(Xihu Rock Festival), 한국의 펜터포트 록 페스티벌에 초대되어 ‘진심이 통하는 반응’을 받은 밴드가 있다. 작년 타이페이, 올해 상하이에서는 단독공연도 가졌다. 주인공은 한국어로 ‘양문학’이라고 부르는 일본 3인조 밴드다.

 

© 인천광역시

 

2019년 인디 밴드 시절 내한공연을 가진 이래 팬데믹 기간 동안 성장하여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무대를 위해 한국을 찾기 전 그들과 서면 인터뷰를 가졌다. 첫 내한 무렵 이런저런 인연으로 밴드 멤버 한 명과 개인적 연락을 가끔 해 왔지만, 메이저 레이블인 소니(SONY)와 계약한 뒤로는 연락이 쉽지 않았다. 7월 9일 중국 원저우(溫州)에서 열린 시후 록 페스티벌의 백스테이지에서 매니저 한 명을 통해 서면 인터뷰를 허락받았고 7월 중순에 질문지를 영문과 일문 두 버전으로 보냈다. 질문지를 작성하기 전에 일본어로 했던 인터뷰들 여섯 개를 읽어 보았고 내 귀에 꽂혔던 노래 가사들 몇 개도 독해했다.

질문은 열 가지 ‘거창한’ 주제를 걸고 그걸 자세히 부연하는 방식을 취해서 영어본과 일어본으로 만들었다. 그렇지만 거의 매주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는 그들의 바쁜 일정 때문인지 답변은 빨리 오지 않았다. 다행히 그들이 한국에 오기 이틀 전 밤에 답변이 왔다. 멤버들이 전화로 말해준 것을 매니저가 녹음한 뒤 일본어로 녹취를 푼 것을 내게 보내줬고 일본어의 한국어 번역은 신현준이 했다. 구어체를 번역하는 일은 힘들었고, 이런저런 복잡한 과정을 거쳤으니 오역도 있을 것이다. 가독성을 위해 다소의 윤문을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도 일정한 왜곡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밝혀 둔다. 인터뷰 제목에 대해서는 말미에 설명이 나온다는 점, 『한겨레』『인디포스트』에도 본 인터뷰가 실렸다는 점도 밝힌다.

멤버 이름의 약자는 일본어 인터뷰에서 관례를 따라 성(姓)을 사용한다. 시오쓰카 모에카(塩塚モエカ: 기타, 보컬)는 ‘시오쓰카’, 가사이 유리카(河西ゆりか: 베이스, 배킹 보컬)는 ‘가사이’, 후쿠다 히로아(フクダヒロア)는 ‘후쿠다’로 쓴다. 일본어 발음의 한글 표기는 한글라이즈를 따랐다. | 질문, 정리: 신현준 hyunjoon.shin@gmail.com

 

 

1. 성과/노력

 

© 인천광역시

 

신현준 약 한 달 반 사이에 중국의 시후 록 페스티벌, 일본의 후지 록 페스티벌, 한국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라는아시아의 유명한 록 페스티벌 무대에 모두 섰네요. 보통 일은 아니라서 축하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온 건지부터 물어볼게요? 어떤 플랜을 세우고 어떻게 수행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요?

시오쓰카 계획을 세운 것은 저희가 아니라 스태프 팀입니다만, 지금 생각하면 (대만의) 루시(LÜCY)와 협업을 한 게 시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들은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인 것 같네요.

해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어요. (일본에서) 록 음악을 하는 선배들이 미국 SXSW의 일본 부스에 간다든지 유럽이나 아메리카로 가는 경우는 많이 봤고 우리도 캐나다에 가본 적은 있는데 아시아로 가는 선배들은 주변에는 없었어요. 물론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많이 있겠지만 저희들 주변의 라이브하우스 규모(에서 연주하는 밴드들) 가운데서는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시아로 나가는 것은 루시와 콜라보가 있었던 일이 컸다고 생각해요.

가사이 일본 이외 나라에서 청취자가 많은 나라는 아시아권이라는 것을 이전부터 데이터를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해외에 간다면 아시아부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타이베이에서 단독공연을 시작으로 단기간에 라이브 공연을 많이 하는 것이 청취자를 늘리기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후쿠다 음악성에서도 해외 활동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비주얼 면에서도 언어는 달라도 시각적으로 음악을 느낄 수 있는 요소를 도입하는 것을 의식했어요.

 

루시와의 협업으로 2022년 발표한 “Oh, Hey” 뮤직비디오

 

위 포스터는 2022년 11월 대만 신북(新北)의 라이브하우스 Zepp에서 신선조합(神仙組合)이라는 타이틀로 히쓰지분가쿠, 루시, 그리고 태국의 눔차(Numcha)가 수행한 합동 공연이며, 무대에서 “Oh, Hey”와 “1999”를 함께 불렀다. 눔차는 이번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히쓰지분가쿠와 같은 날 무대에 섰다.

 

 

2. 성장/전환

 

시오쓰카 모에카 © 인천광역시

 

신현준 편의상 정규 앨범만 놓고 본다면 히쓰지분가쿠의 경력을 1) 2016-18년 1집 [若者たちへ] (젊은이들에게) 시기, 2) 2019-2021년 2집 [Powers] 시기, 3) 2022년 이후 3집 [Our Hopes] 시기라고 구분해 보겠습니다. 뮤지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나 같은 사람한테는 마치 10대 청소년이 키가 쭉쭉 클 때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아티스트 자신은 그 성장 과정을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느꼈을까요? 그래도 결정적 터닝포인트라고 느낀 순간도 있었을까요? 2집 발표 이전에 메이저 레이블인 소니와 계약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게 이유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시오쓰카 [若者たちへ] 이전 (고등학생 때인) 2013년 경에 작곡을 시작했고 밴드도 그때 결성했어요. 거기부터 갑자기 성장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역시나 곡을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때보다는 지금 퀄리티가 높아진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3개 기간으로 보이는 건 앨범들이 나온 시점 때문에 그런 것 같네요. 그런데 저희가 3개로 나눈다면, 지금 있는 사무소1가 아닌 다른 사무소에서 육성 기간을 거쳐 몇 년 동안 있었던 기간, 그곳을 그만 두고 멤버 3명과 1명의 스태프가 있던 2년의 기간, 소니에 들어가서 일을 많이 하게 된 최근 3년의 기간이에요. 누구와 함께 일하는지, 내가 학생인지 아닌지 등(의 조건이) 점점, 점점 달라져 왔고, 보이는 것이나 성격 같은 것도 성인이 되어 감에 따라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큰 계기, 예를 들어 타이업2 같은 건 아무래도 곡의 퀄리티가 연마되는 계기가 되긴 하지만, 그런 계기들 이전에 10년 넘게 음악을 하다 보니까 곡도 달라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가사이 역시 20대가 되면 인간적으로도 많이 바뀌는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악곡을 만드는 것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아이는 아니지만 성숙하다고 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은 시기죠. 또한 소니와 계약했을 때는 ‘일로 음악을 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등에 대해 인생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후쿠다 10대 무렵 인디 시절인 2010년대(가 중요했습니다). 예전에 히쓰지분가쿠를 찾아와 준 A&R 매니저와의 만남의 영향이 깊습니다. 제 자신은 밴드에 가입한 지 8년 정도 경과했고, 다양한 뮤지션들을 만나 매우 귀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3. 장르/소리

 

“光るとき”

 

신현준 예전처럼 장르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충분히 이해하고 저도 이제는 지나치게 장르를 세분하는 것을 피곤해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장르를 키워드로 이야기하는 게 불가피할 때가 있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1집은 슈게이저의 느낌이 있고, 3집은 팝 혹은 J-Pop의 느낌도 있습니다. 사후적으로 하는 게으른 평이지만 2집은 그 중간 정도입니다. 이런 음악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티스트의 일관성과 자율성은 어떻게 유지하고 확보해 왔는지 궁금합니다. 방금 시오쓰카 님이 타이업에 대해 말했지만, 2년 전만 해도 히쓰지분가쿠가 애니메이션 주제가이기도 한 “光るとき”(빛날 때)나 “マヨイガ” (마요이가) 같은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만들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그런데 너무 솜씨 좋게 잘 만들어서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네요. (웃음)

시오즈카 스스로는 처음부터 둘 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첫 번째 EP인 [トンネルを抜けたら](터널을 벗어나면)을 발표할 때는 시모키타자와 같은 곳의 작은 라이브 하우스에서 연주를 하고 있을 때인데 전반적으로 슈게이즈가 유행하고 있었고 주변에도 슈게이즈를 연주하는 밴드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딱히 슈게이즈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일본의 슈게이즈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그렇다고 해서 해외 슈게이즈의 느낌도 내 음악의 느낌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있고요. 슈게이즈란 노래가 두드러지지 않고 (사운드에) 녹아 있을 때 멋있는 음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저는 ‘내 마음이 소리가 나면 이렇게 되겠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요? 아무튼 슈게이즈가 유행인 적이 있어서 그렇게 불린 적도 있지만 저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웃음)

저는 더 팝적인 노래도 할 수 있는데, 데뷔 EP에 6곡밖에 들어있지 않고 그 안에 팝적인 곡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러저러하다고 간주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눈에 잘 띄는 부분이 픽업이 되는 것이었겠죠? 그래서 [若者たちへ] 다음에는 여러 곡을 만들어서 [きらめき](반짝임)와 [ざわめき](웅성거림)이라는 EP를 냈는데, 이건 히쓰지분가쿠의 팝적인 부분과 다크(dark)한 부분을 각각의 주제로 2장 세트를 만든 거죠. 그러니까 팝적인 것이 갑자기 생기게 되었다기보다는 스스로는 예전부터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웃음)

장르 분류는 역시나 그다지 공감이 되지 않지만, (제게 중요한 것은) 펑크 혹은 포스트펑크라는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지입니다.

가사이 [若者たちへ]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당시의 초기 충동3을 그대로 직설적으로 소리 내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들어도 망설임 없이 강하고 개성적인 소리를 내고 있다고 느낍니다.

[Powers]는 메이저에 들어가고 난 뒤의 복잡한 마음과 망설임의 느낌도, 미래에 대한 기대 같은 반짝반짝한 느낌도 있는 등 여러 가지 소리가 들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Our Hope]에서는 메이저 2년차로서 (우리의 음악을) 아직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들을 수 있을지, 자신들의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얼마나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를 생각했습니다.

후쿠다 1집 앨범은 초기 충동 요소가 있는 얼터너티브 록이라는 느낌, 2집은 미국 인디 록을 도입한 인상이 듭니다. 3집은 얼터너티브 록과 J-Pop의 양립을 목표로 한 작품입니다. 매 앨범마다 (상이한) 주제가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로부터의 영향을 독자적으로 소화하고 갱신했으니 폭넓은 층의 분들이 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4. 청춘/생활

 

가사이 유리카 © 인천광역시

 

신현준 [若者たちへ]는 반항기의 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Powers]의 히로인은 좋은 아이처럼 행동하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는 대학생처럼 보이고 [Our Hope]는 자립한 뒤 도심에서 살고 있는 딸이 보내온 편지 같습니다. 자립하기 위해 고투하는 모습이 보인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若者たちへ]의 절망감으로부터 [Powers]에서 (가사이 님이 다른 인터뷰에서 말한) 원기와 활기를 거쳐 [Our Hope]에서 ‘우리’의 희망을 말하게 되는 흐름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네요.

시오쓰카 [若者たちへ]가 나왔을 때는 그저 대학생이었고, 대단한 인기도 없었고, ‘왜 잘 안 되는 거야’ 같은 짜증도 나고, 남들과 다른 걸 하고 싶은 마음도 지금보다 훨씬 강했죠. 그러다 [Powers]랑 [Our Hope]부터는 사회인이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나고, ‘혼자 스스로 생활을 꾸려 가야 한다’는 마음도 생겨서 그런 거지 특별히 지금 물어본 전개를 의식해서 만든 것은 아니었어요.

단지 [Our Hope]는 타이업이 있었으니까 ‘이게 찬스인가’라고 생각해서 조금 이상한 거라도 일단 이걸 해 버리자는 기분이 들었었고,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들어 줄 만한 걸 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심정으로 시도했다고 할까요? 제목은 ‘Our’와 ‘My’ 사이에서 헤맨 건 없었어요. 일단 어감이라는 게 있는 거고 감각에는 딱히 이유가 없잖아요.

가사이 우리는 같은 인간이며 한 삶을 살고 있어요. 지금까지의 작품을 되돌아보면 교수님 말씀대로 한 인간의 성장을 볼 수 있습니다.

가사에서는 시오쓰카가 그의 삶에서 갈등이나 기쁨을 표현하고, 우리(가사이와 후쿠다)는 그것을 감지하고 소리로 표현합니다. 평소 생활 속에서 보이는 작은 빛이라고나 할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말하는 작은 빛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후쿠다 1집 [若者たちへ]는 초기충동, 반골정신, 초조감, 절망감, 자문자답, 감각, 감성 등을 중시한 작품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메이저 1집 [Powers]는 상식을 의심하는 철학적 요소, 기원(祈り), 부적(お守り) 같은 곡을 다룬 주제를 가진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메이저 2집 [Our Hope]는 매우 도회적이고 실제적(actual)인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5. 젠더/1990년대

 

“FOOL”

 

신현준 다른 기사들에서는 ‘1990년대의 영향’을 많이 언급합니다. 1990년대생들은 일렉트로닉 뮤직에 경도되는 경우가 많은데 ‘기타 밴드를 만들고 노래하는 것’을 선택한 동기와 조건은 무엇일까요? 특히 아시아에서는 모든 멤버가 여성이거나 프론트우먼이 있는 밴드가 많이 탄생하고 있고 산발적 사례라기보다는 집단적 흐름으로 보입니다. 호주 멜버른의 티바(Tiva)나 미국 시카고의 호스걸(Horse Girl)도 접근법이 비슷해 보입니다. 왜 아시아 혹은 아시아계 여성들이 일렉트릭 기타로 거칠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섬세하지만 절박한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부를까요? 그때 하필이면 왜’1990년대’의 음악 문화라는 자원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시오쓰카 일렉트로닉 음악을 하고 싶고 지금도 가끔 만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타를 가지고 시작해 버렸고 그걸 멈출 수 없게 되어 버려서. (웃음) 그렇지만 일렉트로닉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기타를 치고 있기 때문에 조금 이상한 밴드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의 영향’은 아마 드럼을 치는 후쿠다 군에게 가장 강할 것 같네요. 아시아의 다른 음악인들에 대해서 제가 잘은 모르지만 (웃음) 그들이 1990년대를 참고하고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근데 저는 밴드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카피 밴드로 시작했는데, 남자애들이랑 밴드를 짰어요. 범프 오브 치킨(Bump of Chicken)을 커버하려고 했는데, ‘내가 불러 볼게’하면서 시작하려니까 ‘역시 여자라서 무리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자 목소리로는 무리겠지’라는 뜻으로 별로 깊은 뜻 없이 한 말 같은데 저는 그게 되게 열 받았거든요. 대중문화를 지금 찾아보면 강한 여자들도 굉장히 많았는데 초등학생과 중학생 때는 밴드에 귀여운 여자들 밖에 들어오지 않아서 그게 너무 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여자라고 얕보지 마’라는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아마추어와 인디 시절에는 ‘걸 밴드 페스티벌’ 같은 곳에도 많이 불려 나갔는데 그때도 짜증이 꽤 나서 연주했어요.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런 데는 결국 남자 관객이든 여자 관객이든 귀여운 여자애들을 보러 온 사람들이 있다고 느꼈거든요, 당시 소속사에서 시켜서 그런 데 나간 적도 있는데, 계속 새하얀 옷을 입고 다니다 갑자기 새까만 의상으로 나타난 적도 있어요. (웃음) 강한 여자의 힘 같은 것을 매우 좋아해요.

가사이 1990년대의 일본은 도전적이었고, 무엇이든 시도해 보겠다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이든 실험적으로 하는 가운데 생겨나는 음악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소리도 너무 세련된 것도 아니고 감정이 먼저 나오는 부분에서 우리들이 공감(sympathy)를 느꼈을 수 있습니다.

후쿠다 1990년대의 서브컬처, 슈게이즈, 포스트록, 드림 팝, 얼터너티브, 사이키델릭에는 영향을 매우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문학에서도 영향을 받고 있어요. 니힐리즘을 느낍니다.

신디사이저나 동기연주(打ち込み: 同期演奏)4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물리적 연주를 선택함으로써 감정, 섬세한 감각, 분위기가 선명하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6. 씬/서브컬처

 

후쿠다 히로아 © 인천광역시

 

신현준 다른 인터뷰에서 시오쓰카 님은 도쿄 서부에서 자랐고 시모키타자와의 라이브하우스를 자주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후쿠다 히로아 님은 리갈 릴리(リーガル・リリ)의 서포트 멤버로 신주쿠의 잼(JAM) 스튜디오에 출연했고 시오쓰카 님이 그걸 비디오로 보고 연락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시모키타자와의 가드 아일랜드 스튜디오에서 가사이 님과 만났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에피소드를 엮어서 그동안 각자가 특정 음악 씬이라든가, 하위문화에 속한 적이 있는지 말해주면 좋겠네요.

시오쓰카 시모키타자에서 연주했던 때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정도였는데, 해외 밴드를 동경했던 인디 록, ‘칠(chill)’한 느낌의 밴드들이 많았어요. 그 뒤에 2018-2019년이 되면 보다 센 느낌의 Y2K 계열도 유행했고, 2000년대 같은 패션, 펑크 느낌의 밴드, 홈 레코딩(宅録) 느낌의 여성 아티스트, 자기 레이블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신주쿠는 더 언더그라운드한 느낌으로 잼이라든가(도중에 없어졌어요) 레드 클로쓰(Red Cloth) 같은 곳이 있었죠. 잼에선 정말로 어덜트계 이벤트를 한다든가 상당히 언더그라운드한 것이 나왔고, 레드 클로쓰는 사이키델릭한 느낌이었죠. 기치조지 같은 곳은 보다 포근한 음악을 밴드들이 많다는 등 각 곳마다 여러가지 특징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다지 엮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시모키타자와의 라이브하우스에 자주 나왔던 건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한테 정말 잘 대해 줬기 때문이에요. 일본 라이브하우스에선 보통 티켓 판매 할당량이라는 걸 정하고 밴드마다 그걸 채워야 하는데 그게 되게 비싸요. 그런데 그걸 진짜 싸게, 거의 없을 정도로 해 줘서 (무대에) 나올 수 있었던 거죠. 거기 사람들이랑 너무 친하게 지내고 서로 좋아했어요.

가사이 제가 자란 곳이 요코타 기지(横田基地)라는 미 공군 기지 근처였기 때문에 그곳의 라디오를 듣거나 라이브를 하거나 미국의 음악 문화를 접하고 있었습니다.

후쿠다 슈게이즈, 드림 팝, 매쓰록, 포스트록, 격정계 이모(激情エモ), 미국 인디, 얼터너티브, 프로그레시브 등에 영향을 받은 제 주변의 밴드를 서포트하면서 라이브 활동을 하던 기간이 있었습니다.

 

2019년 2월 23일 시모키타자와의 라이브하우스 쓰리(Three)에서 ‘자주기획’ 세 밴드가 치른 합동공연의 포스터.

 

 

7. 산업/교섭

© 인천광역시

 

신현준 [Our Hope]의 레코딩을 할 때 합숙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한편으로 메이저와 계약한 것의 큰 장점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합숙’을 마련해 준 것은 회사가 밴드에 상당한 투자를 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혹시 ‘회사를 위해서 뭔가 해야 한다’라는 압박을 느끼는 점도 있었을까요? 물론 압력이란 것도 관리할 수 있고 창작을 촉진할 수 있다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오즈카 회사에 대한 압박은 없습니다. 내 자신이 성공하고 싶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부담감은 항상 느끼고 있습니다.

가사이 회사를 위해서라는 마음보다는 이제 겨우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집중해서 제작할 수 있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마침 코로나 때문에 스태프들도 현장에 자주 못 와서 정말 멤버들과 엔지니어들끼리만 음악을 만들고 있었어요. 그 때문에 우리 스스로 쉽고 편안하게 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후쿠다 ‘합숙’을 도입한 것은 녹음에 더 집중하고 멤버들 사이에도 가까운 감각을 공유하며 제작에 임할 수 있게 하려는 동기가 매우 큽니다. 두번째 메이저 앨범이었기 때문에 노래의 느낌(歌物感)이 있는 메인스트림의 음악성과 (밴드가 본래 가지고 있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성의 양립을 의식했고, 그 결과를 더 많은 분들이 들어 주기 바라는 마음이 굉장히 컸습니다.

 

 

8. 라이브/레코딩

 

2022년 일본 투어 중 도쿄 공연 라이브

 

신현준 라이브와 레코딩이 똑같지는 않게 들려서 세 가지로 나누어 물어볼게요. 1) 레코딩에 드럼, 베이스, 기타 세 악기음 이외의 소리가 들어 있는 곡들을 세 명만 연주하는 무대에서 어떻게 연주하는지, 2) 페스티벌처럼 큰 무대에서도 어떻게 굵고 타이트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지, 3) 다른 시기에 만들고 다른 스타일을 가진 곡들을 세트리스트에 어떻게 배치하는지. 이상 세 가지입니다.

시오쓰카 세 명으로 가능하게 편곡을 바꿔 연주합니다. 음향은 스태프 모두를 모아서 사전에 리허설을 행하고 솜씨 좋은 PA님에게 부탁을 드립니다. 세트리스트는 다양한 악곡이 있기 때문에 완급을 조절하면서 시간을 여행하는 듯한 이미지로 짜 나갑니다.

가사이 라이브에서는 라이브용 소리 만들기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음원보다 강하고 굵은 사운드를 만들어 세 악기 소리만으로도 얇아지지 않도록 의식하고 있습니다. 사운드 메이킹에서는 서로의 음역이 중첩되지 않고 각각의 음이 선명하게 들릴 수 있도록 항상 PA팀과 항상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맞춰 봅니다. 곡들을 색의 이미지로 나누고 있어요. 오래된 곡이든, 새로운 곡이든 그 색이 같으면 계속해도 자연스러워지고 소리도 라이브 오리지널로 위화감이 없도록 어레인지하기도 합니다.

후쿠다 라이브는 피지컬 연주를 의식하여 레코딩과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光るとき” 원곡 레코딩의 드럼 탬버린은 라이브에서는 스네어의 게이트 리버브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OOPARTS”의 신시사이저 파트도 라이브에서는 드럼 3점(킥, 스네어, 하이햇)이 들어가는 편곡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타이트한 음향은 PA님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マヨイガ”와 “OOPARTS” 등의 곡에 대해서는 드럼 3점을 타이트하게 들려주고 싶다는 요망을 PA님과 사전에 공유해서 라이브에서 재현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악곡이 있기 때문에 균형 있게 곡의 순서를 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초기 악곡의 편곡도 업데이트 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2023년 6월 21일 대만 타이페이 레거시(Legacy)에서 공연 포스터. 히쓰지분가쿠 최초의 해외 단독공연이다.

 

 

9. 아시아/음악

 

© 인천광역시

 

신현준 일본 이외의 아시아(중국 본토, 한국, 대만, 태국 등)에 투어를 하면서 느낀 점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아시아의 나라, 도시, 사람들은 각각 다르지만 그래도 공통점이 있다고 느낀 면도 있나요? 예를 들어, ‘역시 아시아가 유럽이나 아메리카보다 친밀하다’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새로운 음악이든, 오래된 음악이든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의 팝이나 록 가운데 좋아하거나 재미있게 들은 음악이 있나요?

시오쓰카 지금까지 갔던 아시아 지역(타이베이, 홍콩, 상하이, 원저우)은 일본과는 달리 우리의 퍼포먼스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파워풀한 반응을 준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요. 단, 아직 가본 적이 있는 곳은 정말 일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적습니다. 아, 타이페이의 교통 IC카드인 유유카드(悠遊卡)가 다양한 형태의 열쇠고리로 팔리고 있는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아시아 음악으로는 싱가포르의 율(Yeule)이나 한국의 이랑을 좋아합니다.

가사이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나 역시 같은 세대의 감각은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상점이나 명소는 모두 매력적이어서, 일본에 있더라도 위화감은 전혀 없을 것 같습니다.

아시아 음악에서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은 민족의 요소를 도입하고 있는 음악입니다. 특히 중국은 역사가 깊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만큼 민족의 악기나 민족의 노래가 많고, 그것을 지금 음악에 도입하고 있는 것이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후쿠다 아시아의 인디 록이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일본 밴드 넘버 걸(ナンバーガール)에 영향받은 듯한 대만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투명잡지(透明雜誌)를 좋아합니다.

 

 

10. 한국/해외

 

“1999”

 

신현준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 외에 한국의 팬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다면 홍보 차원에서 알려주세요. 무대에서 무슨 의상을 입을지, 어떤 곡을 연주할지, 곡과 곡 사이에 한국말로 멘트를 할지, 페스티벌 뒤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등도. 저는 큰 관심이 없지만 팬들은 관심이 많잖아요? (웃음)

내친 김에 대만 찍고, 중국 찍고, 한국까지 찍었으니 유럽이나 아메리카를 찍을 계획이 있는지도 짧게 말해주면 감사해요. 2019년 “1999”의 영어 싱글을 낸 일은 있는데 영어 앨범을 낼 계획이 있는지도.

시오쓰카 스테이지에서는 후지 록 페스티벌에서 입은 것과 같은 검은색 의상을 입을 겁니다. 아홉 곡을 연주하는데 후지 록 때와는 조금 달라집니다. (멘트할 때) 한국어로 조금 말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한국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미술관에 가거나, 밥을 먹거나, 쇼핑을 하거나, 저녁에 놀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이번에는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음악은 담담하게 하나씩 정성스럽게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영어 앨범 계획은 아직 없지만 유럽이나 아메리카에는 가 보고 싶습니다.

가사이 한국에서도 ‘우리다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특별한 것을 준비하기보다는 얼마나 평소의 사운드로 우리들의 세계관을 라이브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한국의 매운 음식을 먹고 싶습니다.

영어 앨범을 만들 계획은 없지만 영어 곡은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계획은 아직 없지만 유럽이나 아메리카에도 가고 싶어요.

후쿠다 의상은 슈게이즈의 상징, 혹은 그를 방불케 하는 스테디셀러인 검정 셔츠를 착용합니다. 세트 리스트에 관해서는 한국 팬들에게 궁합이 잘 맞는 곡을 고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어 앨범 발매 예정은 미정입니다. 유럽이나 아메리카에서의 투어는 기회가 된다면 꼭 하고 싶습니다.

 

 

11. 마무리

© 인천광역시

 

신현준 몇몇 곡에 대해 팬질하듯 느슨하게 물어봐도 될까요? 사실은 훨씬 많은데 다섯 개만 물어볼게요.

 

1) “若者たち”에서 ‘정치, 사상, 개념 같은 애매한 언어에 지친다’고 노래한 적이 있죠? 그렇지만 “人間だった”(인간이었다)의 가사는 어떤 에콜로지 사상보다도 깊고 심지어 반자본주의적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각자가 감명을 받은 책이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시오쓰카 『어린왕자』를 좋아합니다.

가사이 데즈카 오사무의 『불새』입니다.

후쿠다 데라야마 슈지의 『소녀 시집』, 나카지마 라모의 『아마니타 판셀리나』,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하기와라 사쿠타로 시집』입니다.

 

2) “春”(봄)이나 “絵日記”(그림일기)를 듣는 중간에 시오즈카 시오쓰카 님이 와일드 걸처럼 랩핑이랄까 옐링이랄까 빠른 속도로 소리지르는 부분이 들어서 깜짝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격한 감정이었을까요?

시오쓰카 여러 가지로 나 자신을 묶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습니다.

 

3) “予感”(예감)이라는 최근의 곡은 세 박자 리듬의 곡이라서 노이지한 기타가 작렬할 때까지는 1970년대 동아시아 포크송을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현대의 팝이나 록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리듬을 사용한 (무)의식은 무엇일까요?

시오쓰카 세 박자 리듬은 라이브 하우스 주변에서 연주할 때는 자주 사용했어요. 그 아쉬움이 남아 있었을까요?

후쿠다 포스트록에 영향을 받은 사운드를 의식했습니다.

 

4) “Mother”의 가사는 실제 경험을 묘사한 것인가요? 그렇다면 엄마와의 관계가 살짝 좋지 않았을 때도 있었던 건지요? 곡을 듣고 있으면 묘하게 해방감과 공허감이 동시에 밀려 옵니다.

시오쓰카 “Mother”는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곡이 아니라 엄마처럼 큰 바다를 느낀다는 뜻으로 지었습니다. 코로나 때 타인이 없는 가운데 내 존재의 모호함을 깨닫고 쓴 것이에요.

 

5) 네, 궁금한 게 더 많지만 이만 줄여야겠어요. 수고하셨어요. 인터뷰 기사 제목은 ‘화병의 꽃을 소중하게 여기는 록 스타’로 생각하고 있는데 좋은가요? 더 좋은 제목이 있으면 제안해 줘요.

시오쓰카 좋다고 생각해요! 고맙습니다.

후쿠다 메이저 1집 앨범 [Powers] 수록곡 “ロックスター”(록 스타) 가사에서 인용해 줘서 감사합니다. 좋을 것 같아요.

 

 

인터뷰를 읽고 나서 다른 질문이 많이 생겨났지만 여기까지에서 멈추기로 했다. 일단 이들의 올 여름 투어 일정이 너무 버거워 보여서 더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펜타포트 페스티벌 백스테이지에서 잠시 만났을 때 이들은 나의 질문이 “어려웠다”고 하소연했다. 인터뷰를 읽어 보고 이들이 정성스럽게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는 점에 의심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더 이상의 정보나 지식이 필요할까 싶기도 했다.

인터뷰를 멈추는 또 하나의 실천적 이유도 있다. 간단히 말하면 ‘번역 노동의 힘겨움’이다. 나도 힘들었지만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있었다. 나와 밴드 멤버 사이에서 수고로운 역할을 해준 매니저는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인 여성’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중국어는 물론 일본어와 영어에도 유창해서 나는 그와 영어로 소통했다. 나는 그와 위챗(Wechat)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고, 다른 매니저와 연락을 취할 때는 라인(Line)을 사용했다.

‘이게 지금의 동아시아구나’라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연결은 되는데 수고롭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동아시아는 네트워크라기보다는 패치워크다. 잘 짜여진 그물망으로 뭘 건져올리는 게 아니라 헝겊조각을 기워서 이어붙인다는 뜻이다. 속된 표현으로 ‘노가다’가 많다. 그렇지만 재미있다. 유럽이나 아메리카보다 아시아가 훨씬 재미있다. 아니 재미있어졌다. 앞으로 더 재미있어질 거다.

 

 

  1. 한국의 ‘기획사’로 발음은 ‘지무쇼’.
  2. 음반사가 곡 및 아티스트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광고, 영화, TV 프로그램 등에 곡을 제공하는 행위로, 일본 음악계에서 흔히 이루어지고 있다. 영상 제작 단계에서 함께 만들어지는 OST나 CM송과 달리, 아티스트의 기존 곡을 활용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3. 일본 록 음악계에서 종종 쓰이는 단어로, 음악을 막 시작할 당시의 끓어오르는 느낌과 설렘, 아마추어리즘 등을 포괄한 감각을 표현한 말이다.
  4. ‘打ち込み’는 라이브에서의 반주 트랙을 가리키는 말로, 한국에선 보통 MR이라고 표현한다. 이를 활용한 라이브를 동기연주라 한다.

About The Author

[weiv] 창립 멤버.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조교수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지구화 시대의 한국 음악산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연구 주제는 대중음악과 음악산업이고 최근에는 이를 도시 공간연구와 국제이주 연구로 확장하고 접속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 팝의 고고학 1960](한길아트, 2005), [빽판 키드의 추억](웅진닷컴, 2006), [레논 평전](리더스 하우스, 2010), [글로벌 로컬 한국의 음악 산업](한나래, 2002) 등이 있다. 2006-7년 싱가포르국립대학 아시아연구소의 방문연구원을, 2008년 레이든대학교의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국제 저널 [Inter-Asia Cultural Studies]의 편집위원, [Popular Music]의 국제고문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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