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드디어 개편. 내부에서 본격적으로 얘기가 나온 게 3년 전이었고, 그 동안 몇 번 엎어졌다가 작년 여름, 올해는 꼭 성사시키자고(내부 커뮤니티에 개설된 개편 게시판 제목은 “못참겠다 바꿔보자!” 였다) 결의하고 진행한 게 몇 개월. 1999년에 창간하고 2002년인가에 1차로 개편한 걸 그대로 유지했으니 거의 10여 년 만의 개편인 셈이다. 물론 예전 데이터를 다 옮기지도 못했고(사정상 수작업으로 해야하는데 올 상반기에 완료하는 게 목표다), 여전히 촌스럽고 심심한 사이트지만 그래도 나름 뿌듯하다. 그래서 한 동안은 이 ‘자뻑’에 취할 생각이다.

개편에 앞서 여러 논의가 있었다. 주로 앨범 리뷰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CD의 소비가 줄어들고 음원 시장이 커지면서 앨범의 가치가 달라지고 있다는 게 골자였다. 그래서 앨범 리뷰를 포기하자는 얘기도 있었고, 싱글을 어떻게 다뤄야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기존 대중문화 분야의 웹진(혹은 저널리즘)과 블로그의 경계도 흐릿해지고 있으니 웹진 형식을 포기하고 팀 블로그로 전환하자는 얘기도 나왔다. 종합해보면 이런 고민들은 모두 ‘저널리즘의 위기’에서 온 것이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씨네21]의 에디토리얼에서 ‘어느 평론가의 실직’이란 글도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물론 [weiv]의 기반이 이런 주류 저널리즘과 비교될 정도는 못되지만 직간접적으로 저널리즘 생태계와 관계 맺고 있는 내 입장에선 온전히 남의 얘기도 아니긴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위기’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특히 비평가의 권위가 사라지고 있다는, 나아가 저널리즘의 권위가 사라지고 있다는 공포로부터의 위기의식. 그래서 많은 관계자들이 독자들의 변화를 지적한다. 10년 전과는 달리 지금의 독자들은 쉽고 친절한 글을 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사람들이 쉽고 가벼운 글과 엔터테인먼트를 원한다면 어째서 [무한도전]에 대한 사회학적, 정치학적 분석이 인기를 얻는 것일까? 어째서 10대 팬덤이 아이돌과 소속사의 불평등한 계약 관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어째서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일까. 왜 [뿌리깊은 나무]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나꼼수]와 진중권을 둘러싼 갑론을박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일까. 사실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독자가 실제로 어떤 사람들인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현실에 실재하는 독자들을 편집자나 필자나 비평가들은 상상 속으로 치워놓은 다음 저널리즘이 잘 안되는 게 가벼움에 물든 독자의 탓이라고 푸념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역사적으로, 위기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었던가.

음악의 분야로 눈을 돌리면, 최근 몇 년동안 이렇게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적도, 음악 비평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적도 없는 것 같다. 나는 그게 [슈퍼스타 K]와 [나는 가수다], [K-pop 스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들 덕분이라고 본다. 이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이 블로그나 트위터에 쏟아내는 글들과 그 주변의 반응을 살피면 두 가지 생각이 드는데, 하나는 어째서 사람들은 ‘비평’에 대해 비아냥대거나 적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와 다음으로는 그런데 왜 이것은 비평이 아닌가, 라는 것이다. 그들이 쓰는 글도 비평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미 어느 정도는 비평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존 비평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는 건 이제까지의 비평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이슈는 ‘제대로’이다.

2.
[weiv]의 개편은 이 ‘제대로’에 대한 고민의 연장이다. 우리는 앨범이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한편, 경험적이긴 하지만 싱글의 시대가 왔다고 해도 어떤 사람들, 특정 집단에서는 여전히 앨범의 가치가 중요하게 작동한다. 사실 주류 가요를 제외한 음악들이 대부분 그렇다. 인디 록과 힙합, 크로스오버나 일렉트로니카 분야에서 앨범의 위치는 여전히 강력하다. 그래서 앨범 리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런 고민을 거듭하면서 깨달은 것은, 비평의 위기를 말하고 저널리즘의 위기를 거론할 때 우리는 보통 ‘대중성’이라는 실체없는 유령에 홀린다는 점이다. 사안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대중성이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 관심없던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에 가깝다. 그래야 만약 실패했을 때, 요컨대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했을 때 적어도 남 탓을 하면서 비겁해지는 것보다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가벼운 정보를 원한다고 지레 짐작하는 것보다, 가벼운 것을 원하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옳다고 믿거나 하고 싶은 얘기를 꾸준히 하리라 밀어붙이는 게 좀 더 근사해 보인다.

사실 사람들이 저널리즘에 요구하는 건 성실함이다. 그건 [조선일보]나 [한겨레신문]이나, 하다못해 [민중의 소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연예인에게조차 도덕적이고 검소한 삶을 요구하는 시대에 기자나 작가, 칼럼리스트와 비평가에게 성실함을 요구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정치 혐오증은 불성실함에 기인한다. 회사의 팀장이 날 열받게 하는 건 그가 단지 나이 많은 꼰대라서가 아니라 일도 못하는 주제에 받을 건 다 받아처먹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널리즘, 특히 비평에 대한 가혹한 비판과 무관심은 바로 그런 맥락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평과 저널은 가벼움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히는 대신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을 더 확실히 해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weiv] 뿐만 아니라 소규모의 자본을 토대로 삼은 창작, 비평 그룹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민을 확장하고 나누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개편과 함께 그에 대한 몇 가지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은 소규모 출판잡지 [인큐베이터]와 인터뷰를 공유하는 것. 앞으로 [인큐베이터]의 지면과 [weiv]의 사이트에서 같은 음악가의 다른 버전의 인터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홍대 앞 무가 소식지인 [스트리트H]와도 부정기적으로 인터뷰와 기사를 공유할 예정이다. 이에 들어가는 사진들은 주로 케이블 드라마와 영화 포스터, 잡지 사진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스튜디오103]의 이승희 실장이 맡아줄 것이다. [weiv] 개편은 새벽 5시에 전화를 걸어도 꼬박꼬박 받아주며 사이트 개편의 실무와 기획 아이디어를 공유한 소규모출판물 서점 [유어마인드]의 운영자 이로가 맡았다. 이 외에도 [weiv]는 기획 공연이나 소규모 출판, 웹 사이트 기획 등으로 음악 시장에 미약하게나마 기여할 아이디어를 실험할 예정이다. 물론 속도는 더디겠지만 약간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면 더 큰 실험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대안은 네트워크와 소통에 있다고 믿는다. 게시판 대신 모든 기사에 소셜댓글을 적용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보다 많은 논의가 일어나길 기대하고 있으며, 물론 상당 부분 공허한 울림에 그칠지라도 지속적으로 말을 걸 것이고, 어떤 대답에도 성실하게 대응할 생각이다. 내부 필자들의 직업적 정체성, 혹은 개인적 관심사와 관련한 연재를 새로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 코너는 앞으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외부 필자들과도 함께 구성할 수도 있다. 모바일과 웹 브라우징의 대응력도 높아졌다. [weiv]는 크롬과 파이어폭스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익스플로러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수정작업을 통해 최적화할 예정이다.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에서도 웹브라우저 형식으로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외에 독자들과 함께 구성하고 싶은 모종의 프로젝트 또한 준비 중에 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우리 자신이다. 비평가로서, 비평 저널리즘으로서의 자각이 없다면, 또한 자기 위치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이런 변화와 아이디어는 무의미할 것이다. 그래서 개편 후 첫 번째 기획으로 ‘음악 비평’을 준비했다. 음악 비평에 대한 내부적인 고민과 외부적인 시선, 그리고 여러 관계자들의 코멘터리를 묶었다. 이런 고민의 층과 깊이, 비평을 둘러싼 비판과 격려는 앞으로 [weiv]가 ‘생산적으로’ 유지되는데 채찍이 될 것이다. 이 기획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지키겠다. 여러분도 각자 그렇게 믿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또한 지켜나가길 바란다. 그렇게 대화하고 부딪치고 싸우고 격려를 나누면서 우리도 모르게 뭔가를 만들어낼 것이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글 차우진  nar75@naver.com

10 Responses

  1. Zebra

    개편 축하드립니다. 언제 다시 열리나 기다리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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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Redsox8210

    축하드려요! 제 음악적 양식의 9할은 웨이브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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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Kihwso

    축하드립니다! 십수년 만에 처음다는 댓글이군요. 조금 과장해서 웨이브와 함께 한 젊음…  이젠 마흔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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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iv

      사실 개편보다는 업데이트가 더 중요할 겁니다. 분발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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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박선한

    weiv는 지속되어야 합니다. 
    음악이 소비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셔야 합니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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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iv

      응원 고맙습니다. 업데이트 열심히 하겠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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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Redrum

    에디터스 노트가 마지막으로 업데이트된 게 벌써 5년 전이군요. 언젠가는 새 노트가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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