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에 있어서 한국이 지닌 과거와 현재의 미싱링크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이정선같은 싱어송라이터가 자신의 음악이 아닌 기타 교습으로 더 유명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그에 반해 이웃 일본이나 홍콩,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에는 요새도 그 당시 음악의 재조명이 괜찮은 편이고, 음반도 적절히 발매되며 당시의 역사를 배우고 그를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다. 그 중 압권은 일본인데 1990년대 초반부터 1970~80년대 일본의 뉴 뮤직/시티 팝을 재조명하기 시작했고, 무시무시할 정도로 많은 양의의 질 좋은 앨범들을 CD와 LP로 재발매했다. 이런 노력은 물론 여전하다.

덕택에 일본의 197~80년대 음악들에 있어서는, 잊을 만하면 한두장씩 수집하는 바람에, 많지는 않아도 그냥저냥 재미있는 아카이브를 구축하게 됐다. 그렇게 판을 뒤적거리던 중 이 모든 것의 시작이 야마시타 타츠로(山下達郞)의 음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아라이 유미(荒井由実, 결혼 후에는 마츠토야 유미(松任谷由実))라던가 오오누키 타에코(大貫妙子),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MO) 등의 음악도 아주 좋아한다. 그래도 역시 처음이 중요하다. 그게 바로 야마시타 타츠로였는데, 야마시타 타츠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 바로 이 앨범 [Circus Town]이다.

山下達郞 – Circus Town

그는 1980년대부터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줄기차게 흐르는 “Christmas Eve”라는 걸출한 싱글을 가진 아티스트기도 하지만 음악적으로도 뉴 뮤직과 시티 팝의 비조로 두기에 모자라지 않는 뮤지션이다. 그 시작은 슈거 베이브(밴드의 일원이 오오누키 타에코였다)이며 나이아가라(오오타키 에이이치가 좌장으로 있던 꼬뮨이자 레이블)의 활동 역시 영광스러운 역사지만, 이 [Circus Town] 앨범이야말로 진정한 타츠로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뉴욕과 L.A.에서 진행된 앨범의 녹음에는 랜디 브렉커(Randy Brecker), 윌 리(Will Lee), 조지 영(George Young), 존 트로페(John Tropea)같은 거물급 세션을 동원되었고, 뉴욕 세션의 프로듀서로는 챨스 칼레로(Charles Calello, 프랭크 발리, 호베르투 까를로스, 무엇보다도 로라 나이로의 음반에서 프로듀서와 편곡가로 참여했음)를 기용했으며 L.A.세션에선 지미와 존 사이터(Jimmy & John Seiter, 스팽키 앤 아워 갱즈, 터틀즈같은 그룹에서 활동하던 뮤지션)를 기용해 완성도를 높였다.

1960년대 두왑 풍의 흐드러지는 코러스와 필리 소울의 쓸어내리는 듯한 스트링 섹션에 찌르는 듯이 극적인 혼 섹션을 독특하게 모사하여 ‘타츠로 화’시켜 음표로 새긴다. 퍼커션 섹션을 다양하게 기용하는 폴리 리듬이 자아내는 감탄스러운 그루브도 훌륭하고, 여름과 인생, 도회지의 감성을 전달하는 가사와 멜로디는 상쾌하면서도 분방한 코드 덕분에 쉬워도 질리는 법이 없다. 유전 형질상 훵크, 그 중에서도 콰이엇 스톰 계열의 ‘에센스’를 우성으로 뿌리에 박고 진행한다는 사실이 멋지다. 동북아시아의 훵크 앨범 가운데 단연 최고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앨범 내에서 타츠로의 가창은 가수가 일생에 한 번 내는 목소리처럼 유감없이 발휘된다. 워낙 좋아하는 앨범인지라 한 곡을 꼽기가 수월하지 않을 정도인데, 솔직히 말해 굳이 서술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겠다. 앨범의 정수는 타이틀 트랙인 “Circus Town”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그 차이는 너무 미세해서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 앨범은 싱글이 커트되지도 않았다. 그만큼 앨범 단위로서의 자신감이 충만한 작품이다. 세계 2위의 대중음악 시장을 가진 일본이란 나라에서조차도 단연 독보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눅눅한 장마철이건 불볕같은 해가 내리쬐는 한여름이건, 정좌를 하건 말건 이것은 두 말 할 나위없이 여름의 축복이다. 7월의 시작은 이 앨범으로부터. 어쩔 수 없다.

LP의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뉴욕↔LA 최고의 음이 여기에 있다!! 솔로 데뷔 앨범”. LP의 경우 1976년 일본 RCA/AIR를 통해 발매됐으며 카탈로그 넘버는 RVL-8004이고 Jasrac등록번호는 JPL1-0943이다. 예전보다는 가격대가 많이 상향조정되었다. 대략 10여 년 전에 구입했을 때에는 1500엔 전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상태가 좋을 경우 5000엔까지 받는 가게를 봤다. CD는 1985년의 퍼스트 에디션을 기점으로 수차례 재발매됐고, 가장 최신의 리마스터 에디션은 2002년 BMG Funhouse의 CD다. 이 때 RCA/AIR의 모든 앨범을 리마스터한 LP박스도 발매됐다. 지금은 상당히 희귀한 축에 속하는 ‘콜렉터블 아이템’이다. 그리고 1999년에는 페이퍼 슬리브로 발매됐는데 이 앨범들 역시 수집 가치가 상당히 높은 아이템이다. | 박주혁 bandierarec@naver.com / Bandiera Music A&R

ps. 이 글을 쓰면서 라이너 노트를 찾아보니 “Circus Town”의 인트로에 인용된 곡을 미국 민요 “Oklahoma Mixer”(일본이름은 藁の中の七面鳥(지푸라기 안의 칠면조)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이 설명은 틀렸다. 인트로에 쓰인 곡은 율리우스 푸치크(Julius Arnošt Vilém Fučík)의 “Vjezd gladiátorů(검투사의 입장)”이다. “Circus Town” 이후 이 곡이 사용된 최상의 용례는 최근 개봉한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 3]다. 그러니 놓치지 말고 꼭 챙겨보시길.

2 Responses

  1. 이석호

    좋네요. ㅋ 근데 개인적으로 영어가사로 발매했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무래도 좀 힘들겠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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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inger green

    일본 오프라인 시장의 위력을 간접 설명하기 위해 엄하게 홍콩,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끌어 들여 이정선을 기타 교습자로 전락 시키면서 한국 대중을 끌어 내리는 저 비열한 논리는 대체 뭔지..
    “당시의 역사를 배우고 그를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다. ” 이런 말은 진짜 토 쏠린다. 댁이 안 들어도 이미 들을 사람들은 다 듣고 있다는 생각을 좀 가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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