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누가 뭐래도 대자본이 투입되는 메인스트림부터 골수 콜렉터용 시장까지 발굴의 중심은 미국이다. 괜히 세계 1위가 아니다. 하지만 흰 쌀밥에 고기국도 매일 먹다보면 좀 물리는 것도 사실. 그래서 조금씩 시야를 넓히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며 그 시야를 넓히는 와중에 맞이하게 되는, ‘을사오적이나 썼을 법한 표현으로 뭉뚱그려지는 월드뮤직’이라는 음악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해 동원했을 뿐, 저 말은 나쁜 말이니 쓰지 않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그래서 탐구영역을 조금 넓히며 알게 된 북유럽의 대중음악들에는 기대보다 더 좋은 것들이 많았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대중음악의 융성기였던 1960년대 초부터 이미 높은 사회적 안정성을 바탕으로 작/편곡의 기반이 되는 고전음악교육이 일상화된 데다가 당시 북유럽 사회 전반에 퍼져있던 재즈 뮤지션에 대한 높은 존경(괜히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말년에 터전을 코펜하겐이나 스톡홀름으로 옮긴 게 아니다)으로 양질의 연주를 접하기 쉬웠고 이 영향을 받은 뮤지션들이 가까운 영국에서 뛰어난 스튜디오 테크닉과 고가의 녹음 기자재들을 함께 수입해 고품위의 녹음이 가능한 스튜디오 환경도 형성되었다. 또 정서적으로 북유럽 특유의 서정성이 노트에 녹아 있었으며 북게르만계 언어 특유의 플로우를 아름다운 서구적 외모의 스테레오 타입에 꼭 들어맞는 가수들이 부른다. 게다가 우수한 LP 생산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와 영국, 독일이 가까웠던 만큼 최상급의 프레싱이 가능한 장인들의 기술 교류와 기기수입 역시 수월한 환경이었다. 아마 신이 인간에게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때 설계도를 펼쳐놓고 하나하나 정성스레 만들었다면 스칸디나비아반도가 될 것이다. 물론 공임을 생각해서인지 살인적인 물가라는 군더더기도 하나 더 달았겠지만.

그래서 이번에는 스웨덴제의 좋은 앨범을 하나 소개하려 한다. 1960년대 당시 유럽 대중음악의 중심은 영국이었고 남유럽의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최상의 환경을 유지했었다면,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역시 스웨덴과 덴마크일 것이다. 특히 스웨덴은 전통의 유로비전 강국이었고 1970년대 아바(ABBA)의 등장과 더불어 잠시나마 세계의 메이저가 되었다. 하지만 아바의 영광 이전에 이미 탄탄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오늘 소개할 가수는 스웨덴의 하춘화 여사라고 할 수 있는 ‘수퍼 디바’ 릴 린드포르슈(Lill Lindfors)다.

요새도 디너쇼의 강자로 최고의 활약중인 릴 여사는 요정같은 외모와 사근사근하게 속삭이는 보컬, 재즈에서 강한 영향이 느껴지는 편곡을 보사노바의 방법론에 적용하여 1960년대를 관통했으며 1970년대에는 일렉트릭 피아노와 적당한 점성의 그루브가 느껴지는 성인 무드의 팝스로 넘어서며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의 네오-어쿠스틱에 영향을 끼쳤다. 그 점에서 토니 리 퓨마 라인의 디바들의 업적과 일치하는데 거기에 북유럽계의 미모가 더해져 여러모로 수집의 가치를 더한다.

그녀가 1960년대에 스웨덴 폴리도어(Polydor)를 통해 발표한 세 장의 앨범은 밥 아잠(Bob Azzam), 헵 스타즈(Hep Stars), 실비아 브레싸마(Sylvia Vrethammar)의 앨범과 더불어 1960년대 스웨디시 팝의 중요한 수집 대상 중 하나다. 저 세 장의 앨범 중에서 가장 히트한 앨범은 이 작품 1967년작 [Du är den ende]다. ‘오직 하나뿐인 그대’, ‘그대 만이’정도로 해석되는 이 앨범은(우연이긴 하지만 저 제목의 가요들 역시 전부 명곡 아닌가!) 풍윤한 오케스트라가 감싸는 스탠더드와 당시 유럽 전반을 강타한 보사노바의 영향이 가득 담긴 앨범이다. 게다가 1960년대면 이미 스웨덴 에로이카의 열풍이 생길 무렵인지라 앨범 전반에 묘한 색기가 담긴 그루브가 시원하면서도 싱숭생숭하게 한다.

어느 한 곡을 굳이 지명할 필요없는 앨범이긴 하지만 당시 스웨덴의 주요 작곡가중 하나인 보 세터린트(Bo Settelind)가 만든 타이틀 트랙 “Du är den ende”는 서정적인 발라드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이후의 흐름들은 전반적으로 스트링과 보싸노바 캄보라는 세르지오 멘데스 등장 이후의 보싸노바의 경향을 담는다. 특히 바뎅 빠웨(Baden Powell)의 “Canto De Ossanha”를 커버한 “Fri Som En Vind(바람처럼)”이라던가 조르쥬 벤(Jorge Ben)의 “Mas Que Nada”를 커버한 “Hör Min Samba(나만의 삼바)”는 1960년대의 특급 브라질리언 캄보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생동감이 담겨있다. 늦췄다 달렸다 청초했다 요염했다 다채로운 무드를 최상급의 연주와 편곡을 기반을 기반으로 펼친다. 거기에 아름다운 재킷 아트는 덤이다. 필청의 단서를 붙여본다.

LP의 경우는 스웨덴에서만 발매된 걸로 알려져 있고 워낙 대히트 앨범인지라 구하기도 별로 어렵지 않다. 글쓰는 이는 회현상가에서 구입했다. 스웨덴에서는 150크로나 전후의 시세가 형성되어 있고 상태에 따라 조금 더 비싸지기도 한다. 달러로는 15~30$ 전후, 엔으로는 2500엔 전후다. 레이블은 폴리도어(Polydor)이며 LPHM 46-258이 카탈로그 넘버다. CD의 경우 1980년대 말에 스웨덴 폴리도어를 통해 발매된 이후 유니버설 저팬을 통해 몇 차례 다시 발매했다.


Lill Lindfors – Fri Som En Vind | 1967

 

One Response

  1. sapereaude134

    글 잘 읽었습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목에 오타가 있네요. Lill Lindfros→Lill Lindf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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