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루피타(Bye Lupita) | Voyage | 미러볼 재즈 월드, 2012 그래도 나와줘서 고마워 別淚年年添綠波(이별의 눈물이 해마다 파도에 더해지네) ―정지상, 「송인(送人)」 중에서 MBC 콘서트 [난장]에서 바이 루피타(Bye Lupita)를 접했을 때 떠올랐던 구절이다. 곡의 음악적 요소가 주는 감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기실 실연한 사람들이 동해 추암 촛대바위에서 눈물을 뿌려대도, 바다의 염분농도, 수온, 부피 등에 큰 영향을 줄 리 없다. 하물며 한 사람이 똑똑 떨어뜨리는 이별의 눈물이 대동강 파도에 매년 더해진다고 해서 강물이 베네딕트 용액처럼 순식간에 색 변화를 일으킬 리 있을까. 2000년대 이후 팝적인 느낌의 재즈 팀들은 나와도 너무 많이 나왔다. 실력과 학교 이름값 면에서 뒤질 게 없는 실용음악과 졸업생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들은 마치 명함 뿌리듯 음반을 냈다. 어쩌면 실용음악과 졸업생들 대다수가 되고자 하는 건 안정적인 세션 연주자일지도 모른다. 험하고 외로운 자신만의 음악적 항로를 유지하기 위해서만 살라고 누가 강요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음악의 질은 생각지 않고 깡그리 같은 값을 쳐서 받으라는 세상에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런 이들의 음악이 다 규격에 맞춘 듯 비슷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수긍이 간다. 비슷비슷한 지점에서 코드의 전이가 일어나고, 솔로는 적절하고 대동소이한 타이밍에서 전개된다. 프랭크 시나트라나 하다못해 로비 윌리엄스라도 흉내 낼 법한 남자 보컬을 만나기란 어려웠다. 어느 밴드든 여자 보컬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록 밴드들이 김윤아나 조유진(체리필터)의 또 다른 분신을 찾으려 했다면 재즈 밴드들은 꾸준히 나윤선이나 웅산의 클론을 찾으려 했다. 이는 하나의 유행을 만들었고, 세션 맨으로 발탁되기 위한 경력이 아니라 정말 자신의 음악을 하고 싶은 음악인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만한 것이었다. 이렇게 나온 결과물은 기술적인 면, 즉 연주력의 측면에서 뭐라 나무랄 만한 데가 딱히 없다. 대부분 앨범이라도 낼 정도의 재즈 밴드 멤버라면 기본기가 탄탄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들이 어떤 맥락이나 응집력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명함용으로 만들어낸 앨범이라면 각자 자신의 파트에 대한 애정만큼 전체의 곡 조직력이나 구성력에 대한 관심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일 테니. 물론 연주력을 극대화하면서도 전체적인 맥락을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럴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그게 되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느냐’는. 이 지점에서 절충의 세련미 구현, 혹은 세련된 절충이라는 다소 고전적인 과제가 떠오른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바이 루피타의 첫 정규앨범 [Voyage](2012)는 이 과제를 완성도 있게 수행한 작품이다. 물론 10초 듣다가 벌떡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 음반은 아니다. 앞서도 말했듯 이런 스타일의 재즈 음반들이 넘쳐나는 건 다음과 같은 원리다. 서울 경기를 비롯해 주로 대도시에 존재하는 재즈클럽들을 하나의 화분으로 보고 밴드들을 꽃으로 봤을 때, 그 화분에 담긴 토양이 대부분 비슷한 곳으로부터 온 탓(혹은 덕분)이기도 하다는 것. 고만고만한 밴드들이 비슷한 스타일로 공연하다 보니, 그들이 음반을 내도 크게 독창성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무거운 중저음이 고음역으로 올라갈 때 농도를 더하는 보컬은 이 팀의 가장 큰 특색이다. 그만큼 다른 악기들은 절제하고 있다. 물론 재즈 클럽 씬에서 갈고 닦은 연주력들이 상당하겠지만 전체적인 연주의 부피는 가능한 한 깎고 깎아서 부담 없는 사이즈가 됐다. 연주곡인 “바람의 여행”은 그들의 음악에서 전체적인 밴드의 연주가 어떻게 기능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타이틀곡 개념인 3번 트랙 “일랑일랑”의 팝적 감각에 대한 예시라 할 수도 있고, 역으로 이 곡이 “바람의 여행”과 대구를 이룬다고도 할 수 있다. 재즈 안에 팝이 있다는 흔한 전제를 잘 구현한 두 곡인 셈이다. 그렇다면 아쉬운 두 트랙이 바로 2번 “Vagabond Blues”와 5번 트랙의 “탱고”다. 팝적인 편안함을 구현했다면 앨범 전체에서 그에 대비되는 긴장감을 구현할 만한 역할이 바로 이 두 곡일 텐데, 이 곡들에서조차 나타나는 주된 정서는 안정성이다. 연주에서의 다운사이징이야 전체적인 앨범의 지향성이라고 보아도, 보컬이 그 능력치를 좀 더 과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Vagabond Blues”의 코러스 멜로디가 가진 굴곡이 근래 한국 음악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요소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아쉬움은 “탱고”에서 더 진하다. 연주에서의 긴박감이 앨범을 통틀어 가장 강한 편인 이 곡은, 특히 가사의 음운과 멜로디, 리듬의 반향이 생동감을 띤다. 문제는 이 생동감을 충분한 도움닫기로 이용하지 않는 보컬의 운용이다. 보컬리스트 윤선영은 대중에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을지 몰라도 재즈 씬을 찾는 이들과 뮤지션들에게는 낯선 인물이 아닐 뿐 아니라 존재감이 크다고까지 할 수 있다. 바이 루피타에서의 활동은 2010년에 발매된 첫 EP [Bye, Lupita] 때부터였고 충분히 한 팀으로서의 융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이제는 뭔가 ‘한 칼’ 보여줘도 과하지 않은 시점이다. ‘불안한 정적 끝’이라는 가사에서 ‘정적’보다는 ‘끝’의 느낌을 목소리에 담아냈다면 어땠을까. 그럼에도 바이 루피타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소위 ‘EP 앨범 밴드’로 끝나지 않고 주목할 만한 정규 앨범까지 발표했다는 점은, 요즘 시기에 심적, 물적으로 많은 희생이 따르는 일임은 분명하다. 앞서도 이야기했듯 음악에 들어간 가치를 모두 같은 값으로 치겠다는 작금의 세태를 감안한다면 말이다. 결국 피 많이 흘린 자가 바보인 게 음악판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물론 바이 루피타는 그것을 희생이 아닌 선택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 한명륜 trashfairy@naver.com rating: 6/10 수록곡 01. 바람의 여행 02. Vagabond Blues 03. 일랑일랑 04. 산책 05. 탱고 06. 시리다 07. 밤이 좋아 08. 너에게 달려가 09. 마지막 노래 10. 멋진 내일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