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Mayer | Born and Raised | Columbia | 2012

 

회귀 아닌 순례 / 국내 팝 소비심리의 시험지

존 메이어가 기타를 연주함에 있어서, 그 울림만을 보컬의 배경으로 취하는 기타팝 싱어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01년 [Room For Squares]로 데뷔한 존 메이어는 기타 매니아들에게 연주력 면에서 상당히 알려진 실력자다. 체계적으로 닦인 화성학적 기반을 큰 손이 확실히 받쳐주는데다, 순발력과 민첩함도 타고난 면이 있다. 게다가 사운드 메이킹까지 나무랄 데 없는 기타리스트다. 그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소리를 틀림없이 표현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일례로 한 공연에서는 이벤트성이긴 하지만 밴 헤일런의 “Panama”를 거의 원곡의 톤과 똑같이 구현하고 연주 자체도 밴 헤일런의 트리키함을 십분 살렸다. 말 그대로 밴 헤일런의 빙의였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누구누구 카피를 그렇데 잘 한다더라’는 마인드로 존 메이어를 보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한 사람 뮤지션에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와 기법에 대해 얼마나 편하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라면 존 메이어는 자신이 표현하려는 것을 너무 정확히 안다. 이를 바탕으로 존 메이어는 데뷔 앨범때부터 앨범마다 지독하리만치 일관성을 구현하려 노력해왔다. 그렇다면 이번 앨범이야말로 한국의 비매니아 팝음악팬들에게 가장 환영받을만한 일관성, 즉 어쿠스틱에 대한 견고한 지향을 보여준다 말할 수 있겠다. 지난 앨범 [Battle Studies]가 묽은 오버드라이브가 걸린 일렉트릭 기타 톤이 넘실대는 리프로 구현된 올드락의 감성이었다면, 이번 음반은 컨트리 음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소박하고 일그러짐 없는 사운드를 구현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형성에는 사운드보다도 연주의 방법 자체가 근본적인 기여를 한다. 전작 [Battle Studies]에서 들을 수 있었던, 빈티지 펜더의 퍼즈 느낌 가득한 솔로나 곡 자체의 흔들림이 이번 앨범에서는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어느 한 악기라도 치고나왔다가는 ‘쟤 왜저래’ 소리 듣기 딱 좋을만큼 연주 자체가 정리돼 있다. 첫 곡 “Queen of California”이나 차트에서 좋은 반응―이제 음악적으로 ‘나고 자란’ 터를 찾아가는 경지에 이른 그에게 ‘좋은 반응’이라는 수사가 그다지 큰 의미가 있진 않겠지만―“Something Like Olivia”도 차트에서의 기세가 어색할만큼 명상적이다. 이 곡은 중간에 기타 솔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나름 기타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수시로 표현해오던 그의 이전 연주와는 달리 한 풀이 가라앉아 있다. 그 자신이 ‘5년 전이라면 쓰려고도 하지 않았을 곡’이라고까지 했으니까.

그렇다고 존 메이어의 절대 연륜이 원숙미로 수렴할 만큼은 노장은 아니다. 싱어송라이터로서 만 35세는 성숙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는 있을지언정, 달관이 나올 시기는 아니다. 즉 자기도 모르게 나온 감성이라기보다는 정돈된 분위기의 구현을 위해 스스로를 강하게 통제한 데서 나온 결과물이 이 앨범이라 볼 수 있다. 물론 그 전에도 이러한 올드한 감성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 왔던 음악인이므로, 작위적인 느낌은 없지만 지향하는 주제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일종의 긴장감은 엿보인다. 중간중간 삽입되는 일렉트릭 기타 부분의 음색에서 진원을 사운드의 뒤쪽으로 밀어놓은 녹음 시 조정의 흔적은, 편안하게 들리는 음악을 위해 프로듀서로서의 존 메이어가 얼마나 긴장된 상태에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디테일적 측면을 볼 때 미국 국적의, 넓게는 미국 팝의 영향권 안에 있는 작곡가로서 자신의 ‘나고 자란 자리’(Born and Raised)라는 성지에 대한 회귀라기보다는 순례로 읽어야 한다. 또한 이는 미국 음악대중의 정서적 근원에 대한 순례다. 사실 컨트리적 정서를 기반으로 한 ‘소품’에 가까운 형식미를 가진 곡들이 미국 시장에서 사랑받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만은 아니다. 최근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8주간 1위를 차지했던 유럽 출신 뮤지션 고티에(Gotye)의 “Somebody that I used to know”, 그리고 상반기 가장 뜨거운 화제를 모은 컴백 뮤지션인 잭 화이트(Jack White)의 인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한국 시장에서 팝 팬들의 반응이다. 제이슨 므라즈와 함께 존 메이어에 대한 선호도는 높지만, 고티에와 잭 화이트는 매니아 취향으로 인식되고 있다. 참고로 고티에도 존 메이어와 데뷔 연도가 비슷한고 데뷔 당시에 결코 주목받지 못한 뮤지션도 아니었다. 그런가 하면 국내 뮤지션들 중에도 이런 미국 시장의 어쿠스틱한 분위기를 참고하려는 경향이 있고, 또 그들이 나름의 팬을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존 메이어의 [Born and Raised]는 국내에서도 꾸준한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 제이슨 므라즈의 앨범 [Love is a four letter word]와는 6월 한 달을 곁고 틀었다. 디테일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분명 다른 스타일의 음악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두 작품이지만 쇼핑몰에서 연관구매 검색창에는 서로 사이좋게 뜬다. 이를 두고 그냥 개개대중의 취향차이라고 쉽게 말하기에는 한국 대중음악의 소비자들의 그 ‘취향’이라는 것이 상당히 복잡한 형태, 혹은 여러 겹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 뮤지션의 총체적 작업 결과물로서의 음반이 아니라 쇼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주인공의 취향을 따른 편집음반에 대한 소비가 주를 이루는 데 따른 취향의 ‘무논리화’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존 메이어의 앨범은 음악 내적인 측면 외에도 현재 한국의 음악소비 대중의 취향이 어떤 성분으로 이뤄져 있는지, 어떤 번짐을 보이는지를 알 수 있는 시험지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큰 앨범이다. 물론 그가 작곡할 때 ‘한국 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화두를 품었을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하겠지만.

여담.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제이슨 므라즈의 앨범 제목은 ‘사랑은 네글자’라고 말하고 있다. 존 메이어는 수록곡에서 ‘사랑은 동사’라고 말하고 있다. 음악적으로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연관구매검색어로 엮이는 건, 의학드라마건, 수사드라마건 연애담으로 가는 한국 대중의 취향에, 두 곡이 어떤 심리적 끈으로 기능한 것일까? 말 그대로 여담이었다. | 한명륜 trashfairy@naver.com

rating: 8/10

 

수록곡

01. Queen of California
02. The Age of Worry
03. Shadow Days
04. Speak for Me
05. Something Like Olivia
06. Born and Raised
07. If I Ever Get Around To Living
08. Love is A Verb
09. Walt Grace’s Submarine Test, January 1967
10. Whiskey, Whiskey, Whiskey
11. A Face To Call Home
12. Born and Raised(Rep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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