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진 랩 |  Maybe Our Story | YMEA Records, 2012

 

섹슈얼하고 따뜻한 로맨티즘

버진 랩(Virgin Lab)은 황박사와 오세륜의 듀오로, 파티 기획과 디제잉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YMEA(Young Men Electronic Association)에서 출발한 그룹이다. 그 첫 음반인 [Maybe Our Story](2012)는 트로트 등과는 차별되는 성인의 감성을 대변하는 칠웨이브 계열의 일렉트로닉 음반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첫 곡 “Midnight Journey”는 푸근함과 먹먹함의 경계에 있는 두터운 패드 사운드로 시작하여 점멸하는 듯한 고음 위주의 신스와 탄탄한 비트가 함께 균형을 이룬다. 이 조합이 주는 안정감은 곡 전체에 걸쳐 유지되다가, 후반부의 과감한 화성 변화에 이르러 갑작스러운 청량감으로 뻗어간다.

반면 “Skins Talk (feat. Romanjoo)”의 변화는 훨씬 호흡이 느리고 점층적이다. 8 마디 단위의 노래 구조를 느슨하게 흘리며 진행되는 이 곡은, 보컬리스트가 마음 가는 대로 노래한 위에 꽉 짜인 반주를 얹은 듯하다. 할 말을 충분히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쉬어가는 인상을 주는데, 듣는 이의 조급증을 자극하면서도 아슬아슬함을 유지하다가 서서히 환희를 선사하는 식이다.

모텔 입구에서의 뻣뻣한 대화로 시작하는 “Let’s Take A Break”는 두 마디 내에서 박자가 밀리는 듯한 신스 모티프로 연결된다. 4박자의 그리드를 조금씩 흔드는 듯한 이 모티프의 엇박 리듬은 이후에 등장하는 드럼과 베이스, 신스 등에서도 재현되면서 능숙하지 못한 연인의 서툰 열정을 연상케 한다. 한편, “Three Legged”는 탄력적인 톤의 신스들이 다양하게 등장하면서 수록곡 중 가장 희망적인 로맨티시즘을 담고 편안하게 흐른다.

트랙 리스트에는 4번 트랙의 리믹스가 5번에 배치되고 1번 트랙의 리믹스가 6번과 7번에 연이어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런 배치가 음반 전체에 더 큰 내러티브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침착하면서도 역동적으로 찌르고 들어오는 소년(Sonyeon)의 리믹스를 거치면, 화사하게 출렁거리는 히든 플라스틱(Hidden Plastic) 리믹스가 시원하게 치며 날아가 새로운 절정을 이룬 뒤 지현 킴(JeeHyun Kim)의 피아노 버전이 차분하게 내려앉는다.

커버와 제목(단, 영기획 인터뷰에 의하면 4번 트랙의 제목은 남자가 여자를 부축해 걷는 모습에서 비롯됐다고 한다.)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지만, 이 음반의 주제는 섹스다. 각각의 트랙은 열정의 순간처럼 뜨겁게 공간을 채운 채 농밀하게 유지되다가, 때로는 갑작스럽게, 때로는 느리게 절정의 순간으로 뒤바뀐다. 이 구조는 음반 전체에도 확장돼 적용된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흘려보내며 칠아웃(chill out)하기 좋다고 느낄 것이고, 누군가는 같은 이유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에게도 이 음반이 재생되는 시간만큼은 따스한 시선에 비친 성적인 로맨티시즘의 시간일 것이다. | 미묘 tres.mimyo@gmail.com

rating: 8/10

 

수록곡
01. Midnight Journey
02. Skins Talk (feat. Romanjoo)
03. Let’s Take A Break
04. Three Legged
05. Three Legged (Sonyeon Remix)
06. Midnight Journey (Hidden Plastic Remix)
07. Midnight Journey (JeeHyun Kim Piano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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