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방학, 김재훈 | 실내악 외출 | 루오바팩토리, 2012

 

협업이란 무엇인가

줄리아 하트, 가을방학, 바비빌(Bobbyville)로 이어지는 정바비의 행보가 이채롭다. 심약한 소년의 얼굴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이내 천진난만한 소녀의 모습으로 가면을 고쳐 쓰고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더니, 어느새 술잔을 벗 삼아 여자와 정치 현실에 대해 얘기하는 ‘상 남자’가 되어 있다. 화법도 다양하다. 청량한 기타 팝 사운드서부터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류의 멜로딕한 인디 팝 그리고 컨트리까지, 팝의 X축과 Y축을 경쾌하게 가로지른다. 마치 팝이라는 성경을 굳건히 손에 쥔 채 다양한 방식의 설교를 부지런히 준비하는 목사 같다.

갈팡질팡한 걸음은 대개 실패로 귀결되는 법인데, 평단과 대중의 지지를 고르게 받으며 다품종 대량생산 체제를 이어가는 그의 솜씨는 칭찬할 만하다. 가내수공업 방식의 1인 밴드나 프로젝트, 싱어송라이터가 트렌드인 시대에, 그의 협업과 분업 방식은 분명 주목할 만하다. 특히 [실내악 외출]은 공동창작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실내악 외출]에서 가을방학과 김재훈은 동등하게 포지셔닝 되어 있다. 커버 이미지, 앨범 크레딧, 그리고 소개글까지 김재훈은 가을방학과 동일한 위치에 자리매김한다. 정바비가 드로잉한 멜로디에 김재훈이 화음과 사운드를 입혀 채색을 완성하고, 계피의 목소리로 질감과 색조를 마무리 하는 식이다. 단순하게 김재훈이 실내악 세션으로, 계피가 피처링으로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며, 기타와 베이스가 현악기로, 드럼의 리듬이 피아노와 퍼커션으로 대체되는 구성이 아니다.

예컨대 “동거”의 경우, 가을방학의 노래에서 제목과 뼈대 멜로디만 남고 가사, 곡의 길이, 박자까지 모든 것이 뒤바뀐 형태로 편곡되었다. 느린 템포로 진행되던 가을방학의 노래에 비해 [실내악 외출]의 전반부는 빠른 템포의 스타카토 창법이 두드러진다. 계피의 음색만 제외한다면 재창작에 가까울 정도로 원곡은 변형되어 있다. 정바비는 비어드 기타(beard guitar), 페달 스틸(pedal steel) 등 컨트리 음악의 주요 악기 사운드를 본토 연주자에 일임했던 바비빌 작업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작곡과 프로듀싱 편곡의 전권을 김재훈에게 부여한다. 다소 느슨한 작업방식처럼 보이지만 치밀하게 계산된 초식이다. 노래의 이미지, 정서에 대한 구상을 바탕으로 기획 단계에서부터 적합한 협업자를 선택하고, 이후에는 간섭 및 월권을 하지 않는 절차를 따른다.

합리적인 과정은 좋은 결과를 담보한다. 적정한 협업의 비율을 찾은 까닭에 챔버 팝(chamber pop)으로 부를 만한 가요로 탈바꿈했다. 디바인 코미디(Devine Comedy), 틴더스틱스(Tindersticks)보다는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의 무드에 가까우며, 국내의 감성적이며 어쿠스틱한 인디 팝 음악과도 궤를 같이한다. 협업자의 성향과 보컬의 장점 그리고 자신의 멜로디를 면밀히 고려하여 음반을 구상한 정바비의 세심함이 곳곳에 묻어난다. ‘남이 할 일을 자기가 하려 하지 마라’는 모 선배의 충고가 더 살갑게 다가온다. | 최성욱 prefree99@naver.com

rating: 8/10

 

수록곡
01. 동거
02. 여배우
03. 한낮의 천문학
04. 첫날밤
05.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06. Long Story Short
07. 이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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