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리는 날의 라디오 | 오늘 날씨가 참 좋지? | 유쾌한 사람들, 2005

 

또 다른 감성의 힙합

비내리는 날의 라디오(이하 ‘비라오’)는 계왕신과 정권이라는 두 남성으로 이루어진 그룹이다. 비라오는 그들의 첫 EP [오늘 날씨가 참 좋지?](2005)를 통해 스무 살의 센티멘털리즘을 미니멀한 글쓰기의 방식으로 재현해내고 있다. 스무 살과 비가 만났을 때 발생하는 정서를, 두 젊은이는 두서없이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비 내리는 거리, 한여름 밤, 미래에 대한 고민, 타인과 외로움, 사랑 등등. 이러한 주절거림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요소는 이들이 내뱉는 래핑의 톤(tone)과 랩 스킬이다. 내용에 걸맞은 형식, 이들은 이 공식에 비교적 충실하다. 때론 단어들의 의미 단위를 지나치게 뭉개버린다 싶을 정도로 굴곡 없는 플로우(flow)를 들려주기도 하지만, 각각은 자신만의 독자적이고도 산뜻한 스타일을 가진다. 가령 타이틀곡 “오늘 날씨가 참 좋지?”에서 나타나는 두 MC의 정갈한 노래는, 라임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특히 메인 MC 정권은, 다분히 밀도 높은 랩 메이킹에도 불구하고 안정되고 차분한 느낌의 조음을 선보인다.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앨범 전체를 34분 25초(리믹스 트랙들 제외)라는 길이의 한 트랙으로 느끼도록 하는 프로듀서 계왕신의 감각적인 프로듀싱이다. 편하게 말하자면, 국내 로파이(lo-fi) 힙합 사운드의 큰 획을 긋는 모습이라고 할까. 재즈의 다양한 비트와 악기 구성, 연주 기법 등을 힙합 리듬과 탁월하게 조합한 사운드는, 설혹 그것이 아마추어리즘의 냄새를 품고 있다 하더라도 견고함을 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감수성으로 가득 찬 어쿠스틱 피아노 소리가 각종 아날로그 악기들의 음향과 어울려 만들어내는 파장은 샘플링의 탁월함까지 지니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는 “힘들어하지 말아요”나 “비가 그쳐” 같은 연주곡에서 어렵잖게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힙합이라는 ‘아버지의 이름’이 은근히 강요하는 강박으로부터 한 발짝 벗어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벗어난 지점은 안정적(?)이게도 ‘스무살 청춘의 감상주의’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들의 센치한 스타일에 새삼스레 비판적 잣대를 들이대고 싶진 않다. 오히려 이들은 자유로움이라는 힙합의 성격을 음악 내부서부터 넓혀가며 ‘나 자신에게 솔직한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는 듯 보인다. 내세울 만한 크루나 레이블 없이 섬처럼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EP 앨범이다. | 김영진 younggean@gmail.com

rating: 7/10

 
수록곡
01. 비가내려
02. 오늘 날씨가 참 좋지?
03. 이 밤의 기억
04. 음악이 되고 싶어
05. 이곳에 들어선 너.(interude)
06. 혹시 지금 내 앞에 너니?
07. 힘들어하지 말아요
08. 길을 걸었지
09. 아직까지도 난 잊지 못하고 있다.
10. 비가그쳐
11. 길을걸었지 remix
12. 오늘날씨가 참좋지 remix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