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알토(Paloalto) | Resoundin’ | 신의의지/Tyle Music, 2005

 

어느 스타일리스트의 독백

팔로알토(Paloalto)의 엠씽(MCing)에 관한 스타일은 그만의 독자적 창법이 가지는 존재감을 확고히 부각시킨다. 낭랑한 음색의 읊조림과 오밀조밀한 라임이 깊게 배인 래핑은 그러한 스타일리스트로서의 면모에 방점을 찍는다. 그렇게 그는 대한민국 언더그라운드 힙합계에서 나름의 위치를 점한다. 그의 악센트, 억양, 톤(tone) 3박자 또한 매우 선명하다. 그의 라임이 플로우를 펼쳐내면, 그만이 가진 특유의 악센트는 독창적 스타일이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강약의 편차가 뚜렷한 음절들의 연쇄 작용은 이내 팔로알토식 억양이 드러나고, 울림 좋은 성우의 목소리와 같은 톤은 듣는 이에게 래핑 자체에 좀 더 집중하도록 하는 측면이 있다.

팔로알토는 자신의 EP 앨범 [발자국](2004)에서 이미 펼쳐놓은 바 있는 그 나름의 스타일을, 정규 앨범 [Resoundin’](2005)을 통해 더욱 깊은 공명으로 들려준다. 저마다 대중에게 쉽게 어필할 만한 훅과 브릿지를 갖고 있고, 기복 없는 라이밍이 각각의 곡에서 빛을 발한다. 신약 성서의 마태복음 중 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하는 첫 곡 “한발짝 더”는 자신의 음악에 관한 자신감과 종교적 신념, 굳은 의지 등을 빈틈없이 짜인 버스(verse)의 래핑과 그루비한 훅의 리듬 위에 실어놓는다. 그러나 상당 부분 정형화된 그의 랩 스타일은 때로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느끼게 만든다.

앨범을 지배하는 사운드는 좋은 편이다. 크리티컬 피(Critical P), 더 콰이엇(The Quiett), 프라이머리(Primary) 등의 프로듀싱 참여도 눈에 띄지만, 비트 메이커로서의 팔로알토를 다시 보게 할 만한 몇몇 곡들 역시 평균 이상의 수준이다. 그의 비트로 이루어진 곡 중 가장 돋보이는 “서울의 밤”은, 자신이 속한 ‘개화산’ 크루 멤버들과 함께한 트랙으로, 피처링 진의 섬세한 가사와 개성적 창법이 조화롭게 버무려진 곡이다. 온더그루브(OntheGroove)의 9815와 듀엣으로 부른 “천국은 결코 멀지 않아요”, 프라이머리의 심플한 기타 연주와 팔로알토의 차분한 랩이 절묘하게 맞물리는 “못다한 고백” 등은 ‘속삭이는 랩과 달콤한 훅’이라는 소프트 넘버의 모토를 잘 구현해 낸 소품들이다.

한편 “Glory Song”과 “Same Shit Different Days” 등의 업템포 트랙들은 흥겨운 파티 음악으로 불릴 수 있을 만한 탄탄한 내공과 모양새를 모두 갖추고 있다. 그리고 앨범 수록곡 중 가장 먼저 뮤직비디오로 제작된 “I Feel Love”는 더 콰이엇의 비트와 소울 원(Soul One)의 보컬, 그리고 팔로알토의 랩이 각각의 독창성과 함께 통일감을 무리 없이 재현해내고 있는 타이틀곡이다.

허나 팔로알토를 향한 호의적 평가와 더불어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리릭시스트(lyricist)로서의 자신감과 그에 따르는 결과물 간의 부조화라 할 수 있겠다. 그는 보너스 트랙 “Verbal Definition”에서 이렇게 설파한다. “삶에 귀를 기울이자. 그것이 비로소 내가 현명해진 이유니까.” 그런데 아쉽게도 그의 어떠한 노랫말에서도 ‘현명한 삶’에 대한 페이소스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팔로알토의 이번 앨범을 관통하는 고민이나 감정의 문학적 표현 양식은 스테레오 타입에 갇혀 있다. 곳곳에 산재한 수사학의 품새는 공허한 단어들의 나열로 대부분의 곡을 장식하는 측면이 있다.

그의 가사 쓰기에 대한 회의감을 가장 크게 느낀 곡은 역시나 청자들 사이에서 이미 논란거리가 된 바 있는 “순간의 실수”다. MC가 스스로 ‘주님의 전도사’ 역할을 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자신의 철학과 믿음이 신앙적 교리에 바탕을 둔 이야기꾼으로서 자신의 사상적 기반을 철저히 드러낼 자유가 뮤지션에겐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팔로알토가 자신의 앨범 속에 종교적 심성을 투사한 다른 곡이 아닌, 지나치게 보수적 기독교 중심의 도덕관과 결벽주의를 넣은 곡의 부당함에 대해선 문제를 제기할 만하다. 이 곡은 십계명의 계율 중 두 가지 잘못에 해당하는 젊은이의 경우를 가상으로 상정한다. 그러고는 그러한 죄에 대해 “큰 죄이건 작은 죄이건 똑같은 죄”(‘조용한 대화’ vol. 21 중에서)라며 “뉘우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죄는 정화될 수 있다”(같은 인터뷰)라고 회개를 제안한다.

여기서 불쾌하게 여겨지는 지점은, 임신한 청소년 커플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을 정당화하고 있는 팔로알토의 관점이다. “그놈의 크나큰 사랑 때문에 주체 못한 감정을 표현한 게 문제. (중략) 단지 애를 뱄다는 사실에 다들 비난하고 손가락질 해. 그래 앞으로 둘에겐 두 배 이상의 책임이 따르겠지. 어쩌면 불행해.” 청소년 보호법상으로도 13세 이상의 청소년들 간에 섹스를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설혹 ‘순산의 실수’로 임신을 했다 치더라도 그것은 성인과 똑같은 기준으로, 그들 스스로의 의사와 부모의 보호에 의해 판단되고 결정돼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팔로알토는 이 곡을 통해 ‘청소년의 섹스 금지’라는 종교적 보수주의의 전령을 외치고 있다. 신선한 사운드에 어울리는 메시지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김영진 younggean@gmail.com

rating: 6/10

 

수록곡
01. 한 발짝 더
02. Glory Song
03. I Feel Love(feat. Soul One) [뮤직비디오] 04. Same Shit Different Days
05. FAMILY (feat. Soul One)
06. People(feat. 각나그네, 넋업사니)
07. 못다한 고백 (feat. Soul One, 영도)
08. 축배
09. 서울의 밤 (feat. 개화산)
10. 순간의 실수(feat. Soul One)
11. 천국은 결코 멀지 않아요(feat. 9815)
12. 배움의 삶
Bonus Tracks
13. Verbal Definition
14. It Ain’t No Easy Pt.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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