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0년 12월 15일 장소: 카페 벨로주 (시즌1) 질문: 최민우, 차우진 사진: 차우진 | 정리: 이수연, 김정윤 날짜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인터뷰는 [MANA WIND] 발매 당시의, 2010년 겨울의 인터뷰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 동안 미뤄져 있다가 뒤늦게 올린다. 무엇보다 인터뷰에 성실히 응답해준 아티스트에게 죄송하다는 말씀 올린다. 그럼에도 이 인터뷰가 지금 오르는 것이 아주 많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곧 황보령의 신작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직관적이면서도 완벽주의적인 뮤지션이 자신의 작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곧 나올 신보는 어떤 변화를 드러내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엿볼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변명 삼아 덧붙인다. | 최민우 daftsounds@gmail.com 웨이브: 음반이 생각보다 빨리나왔습니다. 작업이 빨리 진행된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계획이 있던 건지? 황보령: 예전에 말씀 드렸었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3집 때부터 음악을 열심히 하겠다고 했어요. 말이 좀 거창하지만 목숨 걸고 해야 될 때인 것 같아서. 예전에는 아무생각 없었는데 (이제는) 음악 하는 게 좋고, 그래서 좀 더 집중적으로 작업했어요. 곡은 늘 있어요. 추슬러서 앨범을 내는 시간이 빨라진 것이지 저는 별로 변함이 없어요. 웨이브: 그럼 특별히 작업의 속도가 변하진 않았나요? 황보령: 정신을 차려서 진행을 할 뿐이지 변한 것은 없어요. 웨이브: 작업 기간은? 쌓아놓은 곡이 있어도 다른 작업에 걸린 시간은 있으니까요. 황보령: 녹음 시작했을 때부터 치면 반년정도에요. 웨이브: 지난 음반([Shines In The Dark])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 뒤 달라진 게 있나요? 황보령: 당시는 학생의 마인드를 가지고 미국에서 왔었어요. 지금은 한국에 온 지 4년이 다 돼 가고 있거든요. 사회와 현실이 더 느껴져요. 전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새삼스럽게 ‘어 맞아, 이랬었지.’ 이렇게 돼요. 그런 면은 변화라고 할 수 있죠. 근데 또 큰 변화는 없었어요. 웨이브: 처음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는 전작에 비해 ‘즉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보령: 제가 그림을 그릴 때도, 음악 작업을 할 때도, 예를 들면 여기를 정확히 90도로 잘라야 되는데 90도가 아니면 제가 미쳐요. 이번에는 그걸 좀 없애려고 노력했어요. 의식적으로. 좀 더 더럽고 강하게. 좀 더 그런 것을 해보고 싶어요. 90도라고 생각 했을 적에 이걸 딱 90도 말고 70도 정도까지도 놔주고 싶었어요. 웨이브: 그게 전작과 [MANA WIND] 사이의 차이 같습니다. 황보령: 의식적으로 많이 풀려고 노력했어요. 웨이브: 그렇게 작업 스타일을 바꾸면서 걱정되는 지점은 없었나요? 황보령: 없었어요. 기타 소리를 좀 더 ‘더럽게’ 잡을 걸, 같은 생각은 했지만. 웨이브: “Solid Bubbles” 같은 곡도 그렇고 음반 전체에 좀 ‘불투명한’ 점들이 있습니다. 가사도 그렇고요. 무엇보다 말이 줄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황보령: 제가 가사가 많은 음악을 점점 안 듣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가사가 많은 음악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많아야 될 것은 많아야 되는데 없어도 될 곡은 없어도 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제가 트위터에 올린 적도 있는데,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도 상황이나 대상에 따라 느낌이 다르잖아요. 그 말의 의미 자체는 분명 존재하지만 맥락에 따라서 손발이 오그라들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어요. 그래서 말을 좀 줄였어요. 웨이브: 그래서인지 오히려 ‘전자음악’에 가깝다는 생각도 좀 있습니다. 긴 앰비언트 트랙도 있고요. 어쩌면 황보령씨의 경력 때문에 드는 인지는 모르겠지만, “Laconic Phrase”나 “Passig”같은 곡들은 설치미술작품에 쓰는 음악 같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황보령: 이번에 변화가 있다면 제가 드디어 미디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이에요. 엔지니어가 제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깔아줘서 키보드랑 연결했거든요. 그래서 나온 곡이 “Passig”하고 “Laconic Phrase”에요. 제가 기타를 쳐서 소리를 만들고, “Horizon”은 집에서 작업하고. 앞으로 그런 느낌이 점점 더 많아질 거예요. 웨이브: 차우진 에디터가 황보령의 전작이 갖고 있는 ‘한국적인 느낌’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흥미롭게 보고 싶다는 의견이었는데, 이번 음악은 그런 지점보다는 일렉트로닉 성향이 강화된 점이 있습니다. 그게 좀 이질적이어서인지 음반 자체가 다소 과도기적인 작업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있었는데요. 황보령: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제가 어떤 지점을 정해서 작업을 하고 그런 건 아니에요. 이러다 갑자기 전자음은 하나도 안 들어간 앨범이 나올 수도 있고. 웨이브: 음반이 전체적으로 ‘자유로운’ 흐름을 보입니다. 포스트록 스타일에서 앰비언트를 거쳐 아이리시 스타일까지 가지요. 황보령: 산만하다고 느끼셨어요? 웨이브: 산만까진 아닌데 뜻밖인 지점들이 있었어요. 황보령: 그게 묘미죠. 지겨운 게 싫으니까. 웨이브: 다른 말로 하면, 적절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음반을 들으면서 여기 ‘황보령’이라는 ‘작품’이 하나 있고, 음반은 그 ‘작품’에 대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밴드’ 음악처럼 들리지는 않았거든요. [Shines In The Dark]는 황보령과 스맥소프트(SmackSoft)가 만들어낸 음악이라는 게 있었는데, 이번 작업은 황보령이라는 예술가의 사운드트랙이라는 인상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황보령: 오히려 [Shines In The Dark] 같은 경우는 멤버가 드럼을 연주한 곡이 한 곡밖에 없었어요. 세션 두 분이 드럼을 치셨고, 나머지는 드럼을 다 찍은 거예요. 하지만 [MANA WIND]는 멤버가 모두 연주한 음반이지요. 그 때는 기타도 없어서 이사람 기타 저사람 기타 빌어쓰고, 건반도 그랬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 이 음반이 더 밴드 음악 같아요. 3집 같은 경우는 밴드음악 소린 아니에요. 실제로 드럼을 다 찍었는데요 뭐. “하루를 백년같이”나 “파란구슬”, “한숨” 같은 경우는 저희가 늘 공연 때 했던 소리들이에요. “Wind”도 그렇고. 전작에서 밴드음악 같은 소리는 두세 곡이었는데, 이 앨범에서는 거의 여섯 곡이 넘어가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느끼셨다면 그건 황보령이라는 사람에 대한 색이 더 진하게 나와서 그렇게 느끼신 것 같아요. 밴드적인 소리는 4집이 더 많죠. 웨이브: 저도 소리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성이 드러나는 방식에서 더 그런 감이 오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황보령: 5집은 더 그렇게 되지 않을 까요. 왜냐면 이제 우리만의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인데, 어떤 사람이 그걸 정해서 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이 음반에서는 스맥소프트의 색이 좀 더 드러났다고 봐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웨이브: 좀 애매한 질문이긴 합니다만, 이 음반은 전작들과 달리 황보령이라는 뮤지션이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나온 음반입니다. 본인은 ‘죽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셨고요. 그래서 뮤지션 본인이 혹시 예상하고 있는 한국 시장에서의 청중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황보령: 우주에 가고 싶어 하는 청중? (웃음) 저는 그런 것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궁금하지도 않아요. 사실 “Passing”이나 “Laconic Phrase”같은 곡은 제가 밤에 잠을 잘 자려고 만든 노래에요. 들으면 졸리게. 믹싱할 때 졸려서 저도 되게 고생했어요. 약을 먹는 것도 안 좋다고 하다 보니 명상이나 다운된 상태로 갈 수 있는 잠이 잘 오도록 하는 음악을 만들었어요. 예상 청중 같은 건…… 모르겠어요. 그런 건 막연하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죠. 웨이브: 다시 개성 얘기로 돌아갑니다만, 신작은 혼자 있는 사람이 허허벌판에서 노래하는 느낌도 듭니다. ‘이 관계 하나 있는 게 너무 지루해서 나는 언제나 너의 곁에 있을 게’라는 점을 계속 이야기하시고 있고. 저번 앨범은 되게 촉촉하다는 느낌이 있는데 이번 앨범은 다소 각박한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그런 곳에서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황보령: 바로 그거에요. 저는 스맥소프트가 앰비언트적인 “Laconic Phrase”를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할 때가 있어요. 청중들이 이 음악을 들을 때, 혹시라도 중학생이 듣게 된다면, 어떤 경우가 있을까. 한참 듣다가 ‘뭐야 이거. 노래 언제 불러! (모두 웃음) 노래 안 나와!!!’ 이러는 장면. 그게 상상이 되면서 웃고 그래요. 웨이브: 그게 예상 청중 아닐까요. (웃음) 황보령: 그렇겠죠? 뭐야 이러면서.(웃음) 저는 그걸 보면서 오히려 이런 게 더 하고 싶은 거죠. ‘뭐야, 아직도 안 끝났어?’ 이러면서. 웨이브: 마무리 질문입니다. 지금 잡혀있는 계획이나 활동의 영역 같은 것들요. 황보령: 내년에 5집을 낼까 해요. 춥지 않을 때… 언젠가 한번 쯤은 완전히 어쿠스틱하게 앨범을 내고 싶어요. 너무 많은 소리 안 들어가고 노래만 간단히 쫙. 그런 거. (뺨을 슥 가리키며) 한번 얼굴 나간 것처럼. (웃음) 한번 꼭 해보고 싶어요.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