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싸조 | 뱅쿠오:오늘밤 비가 내릴 모양이구나/첫번째 암살자:운명을 받아들여라 | 파스텔, 2011

이 글은 세 번에 걸쳐 쓰여졌다

이미 2012년이 된 마당에 굳이 말하기도 새삼스럽지만, 이 앨범은 오직 카세트 테이프로만 발매되었다(이것을 듣기 위해 나는 할 수 없이 차 키를 들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기 이전에,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좀처럼 해답을 찾기 어려운 몇 가지 질문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왜 카세트인가? CD는 커녕 디지털 음원조차 발매되지 않은 이 앨범을 통해 어떤 형태로든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가능한가? 수익을 운운하기 이전에 앨범 제작비는 회수할 수 있었는가? 이것은 온라인쇼핑몰 사용자 리뷰란이 “그토록 기다린 음반인데 ㅠㅠ”라거나 “CD 발매는 예정에 없나요?”같은 의견들로 채워지리라는 것을 상정한 것인가?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질 수 있는가? 그러니까, 하다못해 LP도 아니고 하필 왜 카세트인가?

나의 친구는 이 앨범을 놓고 “거만해서 듣기 싫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CD 프레싱조차도 사양산업으로 분류되고 있는 2011년에 오직 카세트 포맷으로만 발매되는 앨범이라는 것은 그 포맷을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일종의 선언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프론트맨 한상철이 직접 쓴 설명문을 빌어오자면, 이 앨범은 “카세트 데크를 가지신 분들만 알아서 즐겨”주시면 되는 앨범이다. 이것이 테이프로 발매되게 된 이유인즉 우선 “한 두명만이 들어도 상관없”는 앨범을 CD로 찍었다간 “어느 ‘음악평론가’님”에게 “혼이 날 것 같아서 일단은 이렇게” 낸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차에 CD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어차피 우리 돈 주고 우리가 찍은 거라 책임감에서 자유롭”고, 결과적으로 이 앨범을 몇 명이나 듣든 “상관없”기 때문이다. 거만하다는 첫인상은 정당하다. 청자에 대한 배려 따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나오면 되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되기 마련이다. 이 앨범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기도 하다.

물론 전혀 의미가 없다면 이 글은 애당초 쓰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뱅쿠오 : 오늘밤 비가 내릴 모양이구나 / 첫번째 암살자 : 운명을 받아들여라]는 쓸데없이 장황한 앨범 제목과 곡명에서부터 사운드에 이르기까지 분명 이들의 두 번째 앨범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잠언 1:26)](2006)의 흔적을 따르고 있다. 전작에서 정립된 포스트 록과 슈게이징의 결합은 이 앨범에서도 주된 작법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역시 썩 좋은 결과물로 귀결된다. 사운드의 전면에 여전히 한상철의 기타 멜로디와 (자칭 ‘DJ 평양감사’의) 종잡을 수 없는 샘플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부분은 이전까지 사용되지 않았던 파트, 즉 퍼커션이다. 퍼커셔니스트 정상권의 합류로 인해 더욱 탄탄해진 리듬 파트는 일종의 성공적인 ‘그루브’를 제공하고, 이는 결국 포스트 록/슈게이징과 오래된 훵크/소울 그루브의 기묘한 동거로 나타난다. A면 첫 곡 “Teenage Love”를 지나 이어지는 두 곡 “연변잭슨”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 (전도서 6: 22)”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두 가지 방향성이 마구 뒤섞인 채 어디론가를 향해 달려나가는 “임금님의 분노”쯤 다다르면 대체 이들이 뭘 하고 있는 건지 아리송해지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성공적인 혼돈이다. (한편 “지옥에서 온 농부”와 같은 기존 라이브 레퍼토리가 포함된 B면은 비교적 기존 스타일과 흡사한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사도세자의 편지”에서 천연덕스레 끼어드는 스트링 섹션을 제외한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뱅쿠오…]는 (언제는 그렇지 않았느냐만) 전적으로 불싸조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불싸조로 하여금 한국에서 가장 독창적인 사운드를 구사하는 밴드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부클릿에 난삽하게 그려진 스티븐 시걸과 태권도복의 파이터들과 기타 등등,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따온 앨범 제목 따위는 일종의 맥거핀에 가깝다. 어쩌면 자신들이 밝히는 앨범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도 그러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한 가지의 의문은 남는다. 왜 카세트인가? 아무튼 한상철의 변을 조금 더 인용하자면, “내 경우엔 2천년대에 나왔지만 스팽크 록(Spank Rock)의 <YoYoYoYoYoYo> 앨범을 닌자 튠(Ninja Tune)에서 테이프로 받았는데, 이것은 씨디로도 레코드로도 안 들었고, 오직 테이프를 통해서만 들었다. 때문에 이 앨범이 ‘좋다’, ‘죽인다’ 뭐 이런 것보다는 좀 각별하게 다가오는 구석이 있었는데 아무튼 이것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그렇게 느껴졌으면 내 할 일은 다 한 것 같다.”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향 음악사의 2011년 판매순위에서 자우림과 타블로보다도 높은 34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니, 테이프데크를 가졌든 그렇지 못하든 청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다. 이것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는 음악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하며 또한 가장 새로운 것이다. 운명을, 받아들여라. | 글 임승균 obstackle1@gmail.com

rating: 9/10

 

수록곡

A면
1. Teenage Love
2. 연변잭슨
3.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 (전도서 6: 22)
4. 임금님의 분노

B면
5. 사도세자의 편지
6. 80‘s Love Groove (Flow Of Century)
7. 18 (이 곡은 두 번에 걸쳐 만들어졌다)
8. 지옥에서 온 농부
9. 송가(마르티니크 섬 민요)

관련 링크
이 음악을 듣기 위해선 약간의 추가비용이 필요할 지 모른다: 네이버 지식쇼핑
커버 아트 컨셉트에 대한 작가 본인의 코멘트: http://www.joysf.com/423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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