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된소리의 거센 발음, 단조로운 멜로디, 흥겨운 트럼펫 그리고 여유롭거나 혹은 긴박한 리듬의 노래들. ‘라틴 음악’ 하면 왠지 즐거운 축제 분위기의 곡들을 떠올리게 된다. 또한 제니퍼 로페즈, 샤키라 등 이미 미국 음악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라틴 국가 출신의 여성 댄스 가수들도 쉽게 떠오른다. 하지만 일부 성공한 슈퍼스타들의 음악이 모든 라틴 음악의 이미지를 대변하지는 못한다.

언어만 다를 뿐 라틴 음악에도 록, 댄스, 일렉트로닉, 드림팝, 힙합, 재즈 등 다양한 장르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라틴 음악에 대한 조명도는 낮다. 유럽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을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한 국가만 해도 약 20여 개에 이르니, 라틴 음악의 파급성을 쉽게 지나치기에는 무언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고 늘 생각해 왔다. ‘대형 자본이 결합된 영미권 음악’에 대한 소심한 반항으로 시작된 이 코너는 스페니쉬를 주 언어로 사용하는 ‘라틴계 인디 밴드’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멕시칸 일렉트로닉 밴드, 킨키(Kinky)

킨키(Kinky)는 멕시코의 몬테레이(Monterrey)와 누에보 레온(Nuevo Leon) 출신의 5인조 밴드다. 힐베르토 세레소(Gilberto Cerezo), 울리세스 로사노(Ulises Lozano), 카를로스 차이레스(Carlos Chairez), 오마르 곤고라(Omar Gongora), 세사르 플레이고(Cesar Pliego)로 구성된 이 밴드는 일렉트로닉과 얼터너티브 록을 기반으로 경쾌하고 강렬한 사운드를 선보인다. 자국 언어인 스페인어를 대부분 트랙의 가사로 쓰고 있다. (몇몇 트랙은 영어로 쓰이기도 했다.) 2002년에 첫 스튜디오 음반 [Kinky]를 발표했으며, 그중 수록곡 “Mas”가 멕시코는 물론 미국 전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Little Pig Planet”은 플레이스테이션 3용 게임 삽입곡으로도 유명한데, [CSI: Miami], [NCIS] 등 미국 드라마의 에피소드 오프닝 곡으로도 사용되었다). 이를 계기로 킨키는 데뷔하자마자 바로 이름을 알린, 멕시코에서 몇 안 되는 성공한 인디 밴드이자 자국의 후배 뮤지션들에게 롤 모델로 자리잡았다. 특히 1990년대 중반, 멕시코 인디 음악 부흥을 이끈 아반사다 레히아(Avanzada Regia)와 밀접한 관계의 밴드이기도 하다.

* 멕시코 인디 음악의 부흥 시대, 아반사다 레히아

‘발전된 지역’이라는 뜻을 가진 아반사다 레히아는 1990년대 중반, 멕시코 시티에서 일어난 일종의 ‘음악 부흥 운동’이다. 당시 멕시코 시티에서 개최됐던 로코티틀란 뮤직 페스티벌(Rockotitlan Music Festival)에서 수르독 모비미엔토(Zurdok Movimiento)라는 타 지역 출신 밴드가 해당 페스티벌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멕시코 인디 음악에 대한 새로운 판도를 제시했다.  수도인 멕시코 시티를 넘어서 국가 내 전 지역 씬에 대한 음악적 기대가 올라가게 된 것이다. 이 시기를 기준으로 20세 미만의 젊은 뮤지션들이 결성한 밴드가 쏟아져 나왔으며, 그중 재능 있는 밴드들은 멕시코 시티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의 라인업으로 등장했다. 킨키도 그중 하나였다.  more:  http://en.wikipedia.org/wiki/Avanzada_Regia

* 신자유주의 국가 인디 밴드의 선택, 미국형 라틴 밴드

첫 스튜디오 음반 [Kinky](2002)가 미국 내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게 되자, 킨키는 그 다음 해인 2003년에 두 번째 정규 음반 [Atlas]를 발표하는 등 쉼 없이 활동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2006년에 발매된 세 번째 음반 [Reina]가 발매되면서 과거 음반들과는 많은 차이점을 보였다. 우선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스페인어 대신 영어 가사와 트랙명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해당 음반의 메이저 트랙인 “Sister Twisted”조차도 영어다.)  늘 스페인어 가사만 고수하던 이들에게서 영어 가사를 듣게 된 점은 꽤 놀라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 호주 록 밴드 멘 앳 워크(Men at Work)의 보컬리스트 콜린 하이(Colin Hay)에게 두 곡의 트랙 피쳐링을 맡긴 사실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두 번째는 이 음반을 기점으로 이들은 ‘라틴음악 + 전자음악’에 집중한다. 기존의 평범한 얼터너티브 라틴 록이 아닌 일렉트로닉 록 기타, 신시사이저에 라틴 퍼커션과 멕시칸 아코디언 사운드가 결합된 매우 트렌디한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인 것이다. 이 모두가 따지고 보면, 킨키가 자국인 멕시코와 영미권의 대중문화를 섞어보려는 시도를 아끼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라틴 음악을 고수했던 그룹이 갑자기 영미권의 음악, 특히 클럽에 최적화된 스타일의 일렉트로니카를 흡수한 것은 매우 낯설다. 하지만 미국 팝 음악계의 흐름과 맞물려 돌아가는 킨키의 달라진 음악 스타일은 국내 작곡 환경과 비슷하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 어느 라틴 국가보다도 미국과 밀집해 있는 나라이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미권 음악의 요소들이 적극적으로 스며들게 된 것도 그리 이상한 모습은 아니다. 재밌는 점은 본인들 조차도 이런 장르의 표방과 관련해 많은 갈등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한 예로 “Sister Twisted” 뮤직비디오를 보면, 직업이 멕시칸 카우보이인 주인공이 헬리콥터와 유에프오가 마구 날아다니는 배경에서 열심히 팝핑 댄스를 추고 있다. 이들은 영미권 대중 음악이 갈수록 지구화, 더 나아가서는 우주화되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2년 후 발표된 네 번째 정규 음반 [Barracuda](2008), 가장 최근에 발매된 [Sueno de la Maquina](2011)도 마찬가지로, [Reina]에서 시도했던 대부분의 요소들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트랙 제목들이 다시 스페인어로 많이 적히긴 했지만, 음악에 특정 언어만 영어로 쓰인다면 아마 서구권 음악이라 해도 믿을 만한 느낌이다. 킨키의 음악이 ‘일반 영미권 일렉트로닉 록 음악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던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Kinky – Sister Twisted | Reina (2006)

* 단순한 장르 변경 vs 세계화에 맞춘 트렌드 지향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말에 대해 ‘어떤 것이 한국적’이며 ‘어떤 것이 세계적’이냐고 되물을 수 있는 것처럼, 킨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페인어를 쓰는 많은 국가들의 음악가 중에서 단지 멕시칸 퍼커션, 멜로디언, 트럼펫 사운드를 사용한다고 곧 멕시코적인 음악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과연 ‘멕시코적인 것’이 무엇이며, 그것은 또 무엇으로 특성화되는가과 같은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하나 하나 되짚거나 검토하는 건 상당히 복잡한 맥락을 요구한다. 결국 킨키는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넘어 다소 현실적인 전략을 택했는데, 멕시코적인 것의 세계화가 아니라 세계적인 보편성을 자신의 음악에 포함시키고 재현해 특화한 것이다.  이들의 음악이 영미권 메인스트림 전자음악과 유사하면서도 스페인어로 불린다는 점에서 지역적인 음악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킨키는 단순한 장르 변경이 아니라 일렉트로닉 음악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으며 소화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또 완전히 다른 장르를 습득하고 체화할 순 있겠지만, 중요한 건 킨키가 어떠한 장르나 스타일을 접하든 상당한 습득력과 완성도를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 김민영 cutthecord@nate.com


Kinky – Intoxicame | Sueno de la Maquina (2011)


킨키(Kinky) 공식 홈페이지
http://kinkymus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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