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사용자가 50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수치를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아직 전국민의 1/10밖에 안되지만, 신문에서는 국민 PC가 보급되기만 하면 대번에 ‘전국민의 인터넷 생활화’가 이루어질 것같은 청사진을 내놓는다. 하긴 예전같으면 “2000년 3월 3일, 회사원인 소판돈 씨는 인공 지능 로봇이 정각 6시에 가져온 모닝 커피로 하루를 시작한다”라는 식의 판에 박은 서두로 시작하는 신년 특집 기사에 단골로 나오던 ‘꿈같은 미래의 사회상’의 얘기가 매일매일 신문에 나온다. 여전히 고물 486 노트북으로 낑낑대고 있는 내가 저 500만 명 속에 속하는지 아닌지 알쏭달쏭하다. 하지만 학교 전산실 같은 공공 시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아쉬울 때면 그리 쾌적하지는 않지만 동네 PC 방을 종종 찾아, 거의 매일 어딕티드 투 노이즈(www.addictedtonoise.com)와 뉴욕 타임스 (www.nytimes.com)에 들러 새로 나온 신보와 음악 관련 기사를 체크하고, 이에스피엔(www.espn.go.com/mlb)과 시엔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www.cnnsi.com/baseball)에 들러 그날의 메이저 리그 전적을 확인하는 나는 네티즌의 일원임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같다. 비록 종종 아무런 상념없이 몇 시간이고 웹을 둥둥 떠 다니는 ‘인터넷 정키’가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물론 체력이 딸릴 뿐 아니라 ‘인프라’도 안되는 주제에 ‘스타크’에 빠져볼 생각은 금방 거두고 만다. 어쨌든 500만 명 중에 속하는 나는 ‘선택받은 자’인 셈이다. 네티즌이 된 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셈인데 내가 이제 웹진이란 걸 만들고 있다. 4년쯤 전에 인터넷을 처음 접했지만, 그때는 내가 인터넷 상의 음악 잡지를 만들게 될지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선배들과 함께 준비했던 영미 대중음악에 관한 책(적어도 내가 책임졌던 부분)이 과연 인터넷이 없었더라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나는 인터넷에서 나한테 필요한 것만 쏙쏙 빼먹는 이용자이기는 했지만 스스로 ‘정보 제공자’가 되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처음 접한 인터넷은 한 마디로 감동과 경이 그 자체였다. 웹이 아니라 웹을 텍스트로 전환시켜주는 링크스(lynx)를 통해 접속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그래픽이나 리얼 오디오는 그저 상상할 수밖에 없긴 했지만 말이다(솔직히 말하면 인프라가 안되는 집에서 인터넷을 급하게 써야 할 때는 지금도 종종 링크스를 사용한다). 러프 가이드 투 록(www.roughguides.com/rock)이나 올뮤직 가이드(www.allmusic.com) 같은 데이터 베이스에서 일단 급한 궁금함을 풀었고, 롤링 스톤(www.rollingstone.com)이나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www.nme.com) 같은 ‘메이저’ 음악 잡지 사이트의 검색 기능을 유용하게 이용했지만, 정말로 감동받았던 것은 얼티밋 밴드 리스트(www.ubl.com)의 링크를 통해 접할 수 있었던 정성스럽게 꾸며놓은 팬 사이트들이었다. 이 팬 사이트들에는 15년 전에 작은 잡지에 실린 U2의 기사와 인터뷰가 직접 타이핑되어 올라와 있었고, 앨범에는 나와있지 않은 REM의 모든 곡의 가사가 ‘받아쓰기’되어 있었고, 팬이 직접 딴 너바나의 기타 악보와 펄 잼의 온갖 부틀렉 디스코그래피도 구할 수 있었다. 인터넷 ‘또라이’가 어디 음악 팬뿐이랴 마는, 극성 팬(혹은 좋게 말하면 열혈 음악 애호가)의 열정(혹은 편집증적 광기)을 확인하고서는 소박한 ‘인터넷 가상 공동체’에 대한 어렴풋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반면 냉철하고 날카로운 분석으로 채워진 인터넷 최초의 음악 웹진 어딕티드 투 노이즈(Addicted to Noise; www.addictedtonoise.com)는 팬 사이트와는 또다른 느낌을 주었다. ATN에서는 데이브 마쉬, 그레일 마커스 등 ‘미국 록 평론의 아버지들’의 문체 유려한 칼럼을 접할 수 있었고, 신뢰할 만한 최신 앨범의 리뷰와 매일 업데이트되는 최신 음악 뉴스(Music News of the World 섹션)는 이 웹진에 자주 들르게 만들었다. 인터넷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때는 ‘ATN이 팬 사이트도 아닌데 이런 ‘고급’ 정보들이 어떻게 무료로 서비스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어쨌든 온갖 화려한 음악 정보가 넘쳐 흐르는 요즘에도 ATN을 자주 찾게 된다. 몇 년동안 인터넷에 참 많은 빚을 졌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찌어찌 시작하게 된 웹진 [weiv]를 통해, 이제 드디어 그 많은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는 때가 된 것같다. 그런데 정말? 이 투박한 사이트가? 사운드도 그래픽도 별거 없는 [weiv]같은 사이트가 정말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빨강 파랑 원색을 마구 뒤섞어서 정신없이 반짝거리는, 스티커 사진을 모니터에 옮긴 것 같은 한국의 (음악) 웹 사이트를 돌아댕겨본다. 이런 사이트 정도 되어야 (돈 버는 건 둘째 치더라도) 웹 서퍼들이 많이 찾는다고, 텍스트는 석 줄 이하여야 하고 동영상이 반짝거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같다. 이런 사이트에 좀체로 적응하지 못하는 건 내가 문자 세대의 끄트머리쯤에 해당하기 때문인가 생각해보다가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알찬 정보에 도움을 많이 받았던 사이트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음반 회사의 ‘공식’ 웹 사이트보다 디자인이 투박하기는 하지만 열정적으로 꾸며진 ‘비공식’ 팬 사이트, 해상도 높은 그래픽과 동영상과 최신 연예 정보는 없지만 몇 년이 지나더라도 다시 뒤져서 찾아볼 수 있는 음악 정보 사이트. 대가를 바라지 않은 열정이 담겨있는 그런 사이트. [weiv]가 이런 사이트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얼굴도 이름도 알 수는 없지만 그 누군가가 들러서 내가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그래서 그이도 언젠가는 그 빚을 갚으리라고 마음먹게 되는 그런 사이트. | 글 이정엽(이볼)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