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한 유력한 주간지에서 “비평의 파산?”이란 제목으로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관심이 가는 건 영화 쪽 얘기였는데, 대략의 요지는 거칠게 말하자면 ‘요즘 한국 영화가 잘 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른바 평론가들이 주는 ‘별점'(여기서도 별점이 문제다^^)이랑 영화 흥행이랑 정반대다. 옛날에는 평론가들의 힘이 있었는데 이젠 영~ 아닌거 같다. 그래서 지금이 비평의 위기다’라는 것이다. 아카데미와 저널의 든든한 바탕 위에서 지도력과 설득력을 발휘하던 영화 비평이 가지고 있던 담론적 실질적 ‘권위’라는 구심력이 영화 관람객의 범위가 급팽창함에 따라 생겨난 원심력을 이겨내지 못한 현상에 대한 진단이다.

대중음악 동네에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애시당초 ‘비평’이라는 게 존재했는지, 존재하는지조차 회의가 든다(위 기사에서 음악 동네 얘기가 거론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동네와는 달리 깊고 넓은 이론적 논의를 가능케 해주는 아카데미아의 기반도 없다. 깊이와 대중적 기반을 두루 갖춘 저널도 없다. 따라서 비평이 존재하기 위한 훈련의 장도 안정적인 수요와 공급의 공간도 없다.

무엇보다도 이른바 비평에 대한 음악 팬들의 정서적인 반감과 저항이 만만치 않다. 음악의 정서(affect)가 갖는 독특한 문화적 특성과도 관련되겠지만, 특정 음악과 뮤지션에 대한 옹호와 배제는 종종 자기 정체성과 관련되기 때문에 논리의 차원을 넘어서기 일쑤다. 음악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끌어대는 경우에는 ‘어렵다’, ‘잘난 체한다’, ‘음악을 가슴으로 듣지 않고 머리로 듣으려 한다’는 등의 비난과 비아냥을 면하기가 쉽지 않다([weiv]가 종종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이렇게 보면 지금까지 음악판(대중음악판)에서 비평이란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다는 판단이 더 맞을 것 같다. 여러 지면에서 ‘대중음악 평론가’라는 직함을 종종 볼 수 있지만, ‘비평가’라기보다는 ‘저널리스트’라는 표현이 더 맞지 않나 싶다. 예전에 존재하던 ‘팝 칼럼니스트’라는 이름처럼 말이다. 꽤 영향력 있는 어떤 ‘음악 글쟁이’가 ‘자기는 평론가가 아니라 기자’라고 스스로 정체성을 규정했던 게 어쩌면 ‘자기비하’라기보다는 정확한 상황 진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음악 저널리스트들은 뚜렷한 이론과 관점보다는 폭넓은 음악 계보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한 정보의 매개자로서 역할을 해왔다. 영화계처럼 ‘광범위한 대중에 대한 권위’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한정된 범위 내에서’ 음악 팬에 대한 이들의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영향력’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지만, [weiv] 역시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일종의 음악 저널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이전과는 달리 누구나 인터넷을 접하게 되면서부터 대중음악(특히 외국의 대중음악)에 관한 ‘정보’를 접하는 데 있어서 저널리스트가 가장 빠르지도 않고 양이 가장 많지도 않다. 보도자료나 음반이 아니더라도 음악에 대한 정보나 음원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영화계와는 다른 의미에서, 어쩌면 지금이 바로 대중음악판에서 비평의 위상과 역할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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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테마 리뷰로는 믹 재거(Mick Jagger)의 새 앨범이 나온 걸 빌미로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의 주요작들을 다루어보았다. 스물 넉 장의 전작 앨범 중 절반이 리뷰되었다. 영국이나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대만에서도 무지막지한 인기를 끌어온 롤링 스톤즈는 유독 한국에서만은 관심 밖이었다. 지금도 롤링 스톤즈하면 “Angie”, “As Tears Go By”, “Ruby Tuesday”를 부른 가수로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이 대다수일 것이다. “Paint It Black”은 [머나먼 정글]이라는 TV 외화 시리즈의 주제가로 사용된 덕분에 알려진 정도다. 혹시 과거의 정보의 ‘독점’ 전달자들이 ‘한국인의 정서’, ‘한국적 취향’을 강요하며 스톤즈를 라디오 음악방송에서 체계적으로 배제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새로운 세대의 무관심을 저어하면서도 스톤즈의 테마 리뷰를 감행한 뒤켠에는 ‘대중음악 저널’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weiv]의 고민이 자리잡고 있음을 읽어주기 바란다.

새 앨범으로는 베테랑 인디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신작을 리뷰했다. [weiv]가 종종 앨범 리뷰 글을 빼앗아오다시피 하고 있는 성기완과의 인터뷰 기사와 함께 이땅에서 록 음악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요즘 빌보드 팝 차트에서 그녀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샤키라(Shakira)의 새 앨범 리뷰는 다음 호부터 연재될 아르헨티나의 음악 시리즈에 대한 전주곡이다.

US Line의 힙합 코너가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인해 근 넉달만에 업데이트되어, 브릿 합(Brit Hop)의 신예를 소개해주고 있다. 뉴욕에서 베이 에리어로 거처를 옮긴 필자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다음 호에는 ‘아시안 아메리칸 인디’와 ‘여성 R&B/소울 디바’에 대한 특집을 준비 중이다. 지금까지 소홀했던 Editor’s Note는 [weiv] 업데이트 소개와 함께 좀더 자주 독자 여러분을 찾을 것을 약속드린다. | 글 이정엽(이볼)  200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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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의 기사

[Album Review]
삼호선 버터플라이 | Oh! Silence
베테랑 인디 밴드의 ‘짠한’ 정처없는 발길 – 신현준
Chemical Brothers | Come With Us
한계효용 체감의 ‘마들렌’ – 김성균
Aphex Twin | Drukqs 
‘무의미’의 진화과정 – 김성균
They Might Be Giants | Mink Car
심심한 향수(鄕愁) – 배찬재
No Doubt | Rock Steady
다시 펑크에서 뉴 웨이브로 – 이정남
Buff Medways | This Is This
아마추어리즘 전사가 보내는 지미 헨드릭스 헌사 – 이기웅
Mick Jagger | Goddess In The Doorway
늙지 않는 악동 로커의 행장- 최세희
Shakira | Laundry Service
라틴 슈퍼스타의 영어권 정복 프로젝트- 신현준
OST | I Am Sam
응급처방 버전의 비틀스 – 최세희
OST | Ali
알리, 그리고 아메리카 – 박정용

[Theme Review] The Rolling Stones
Rolling Stones | Aftermath
백인 악동 로커들의 첫 선전포고 – 최세희
Rolling Stones | Between The Buttons
거장이 되기 전 마지막 행보 – 장호연
Rolling Stones |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
외전 비틀스 혹은 미완의 약물 여행 – 김성균
Rolling Stones | Beggars Banquet
돌아온 탕자의 감동적인 자기 발견 – 이기웅
Rolling Stones | Let It Bleed
로큰롤의 어두운 면을 승화시킨 역작 – 장호연
Rolling Stones | Get Yer Ya-Ya’s Out!
스톤즈를 ‘위대하다’ 부를 수 있는 증거 – 오공훈
Rolling Stones | Sticky Fingers
스톤즈 식 장르 탐구의 최우수 사례 – 오공훈
Rolling Stones | Exile On Main Street
영국 밴드의 손으로 만든 아메리칸 록의 금자탑 – 이기웅
Rolling Stones | Hot Rocks 1964-1971
어떤 시대, 그리고 그 시대의 아이콘의 성장의 파노라마 – 신현준
Rolling Stones | Some Girls
‘영원’토록 이어지는 스톤즈 라인업의 완성 – 오공훈
Rolling Stones | Tattoo You
위대한 로큰롤 밴드의 마지막 불꽃 – 장호연
Rolling Stones | Voodoo Lounge
팬들과 함께, 노장 밴드로 우아하게 늙어가기 – 이정엽

[Interview]
‘식민지 록 음악인’의 정처없음의 자의식: 3호선 버터플라이의 성기완과의 인터뷰 – 신현준

[US Line]
브릿 합(Brit-Hop), 미국을 구하러 오다?: 루츠 마뉴바(Roots Manuva)의 미국 상륙에 즈음하여 – 양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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