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큰 이벤트긴 큰 이벤트인가보다. 작년부터 공연업계가 들썩거리더니 올해에는 ‘거물급’ 뮤지션들의 내한 공연이 잇따를 것 같다.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이 이미 지난주에 공연을 했고 다음달에는 로저 워터스(Roger Waters)가 한국을 찾는다. ‘지난 시대’의 스타들이기는 하지만, 나이든 록 음악 팬들의 가슴은 벌써부터 설렌다. 6월에는 비지스(BeeGees)의 공연이, 또 1999년에 성사되지 못했던 ‘록 페스티벌’도 계획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자, 여기서 젊은 음악 팬의 질문 하나. “왜 내가 좋아하는 요즘 뮤지션들은 안오고 ‘한물간 할아버지들’만 오는 거냐?” 일단 ‘돈이 문제’라고 예상을 할 것이다. 그렇다. 요즘 뮤지션들보다는 아무래도 전성기가 지난 밴드를 부르기가 돈이 덜 든다. 특히 인기가 있었던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 월말에 내한하는 스모키(Smokey), 한국에서 ‘회춘’을 맞은 딥 퍼플(Deep Purple), 한국 공연에서 신바람을 올리는 스콜피언스(Scorpions) 등이 그 예다. 그렇지만 ‘흘러간 레파토리’라고 해도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처럼 현재도 최고 주가를 올리는 밴드는 예외다. 몇 번 소문이 흘러나왔던 오아시스(Oasis), 요즘 록 팬들의 꿈인 라디오헤드(Radiohead), 현재 최고의 라이브 밴드 U2 등의 모습을 한국에서 보지 못하는 것은 돈과 직접 관련된다. 문제는 돈이다.

그렇다면 돈이 문제긴 문젠데 어떻게 문제라는 건가? ’30대 이상을 타겟으로 하지 않은 팝 공연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게 공연업계에 통용되는 상식이다.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과 음반을 사는 사람들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레이지 어겐스트 머신(Rage Against Machine),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 내한 공연이 성공하지 못한 사실도 이런 ‘통념’을 강화시켰다. 틴 아이돌 공연이 아닌 한, 대형 공연에서 확실히 10~20대가 공연장을 덜 찾는 것은 사실이다. “틴 아이돌 팬들을 비아냥거리지만 말고 공연장도 열심히 찾아가라”고 말한다면, 당장 입을 삐죽거리면서 “돈이 어디 있냐”라고 반문할 것이다. 그래, 문제는 또 돈이다.

요즘 웬만한 공연은 국내 가수의 공연도 티켓 가격이 5만원을 넘나든다. 큰 맘먹고 데이트라도 할라치면 10만원이다. 해외 뮤지션 공연은 10만원까지도 간다. 돈버는 사람들한테도 적은 돈이 아닌데, 용돈받아 쓰는 처지에 엄두가 안난다. “아무리 비싸도 좋으면 보러갈 사람은 다 보러간다”라고 얘기한다면 할 말 없지만, “집에서 떼쓴다고 그런 정도의 돈을 줄 수 있을 만큼 사정이 좋은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면 복받은 줄 알라”는 뒷얘기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건 마치 ‘닭과 달걀’ 같은 문제다. 비싸서 공연을 못가고 잘 오지 못하니까 공연을 유치하기 힘들고… 공연이 잘 열리지 않으니 공연 유치가 더 힘들어지고… 한국이라는 공연시장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데다가 몇 번의 대형 내한 공연마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망그러져 버리니(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 리키 마틴(Ricky Martin) 공연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 유료 관객 1만명을 넘은 해외 공연은 전무하다고 봐도 될 정도로 시장이 한정적이다), 해외의 공연업자가 한국이라는 시장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일본 왔다가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까지 거쳐가도 한국은 들리지 않은 예가 허다하다.

몇 년 사이 사정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해외 뮤지션의 공연에 있어서는 척박한 땅이다. 물론 여기에는 대중음악 공연 자체와 관련된 근본적인 사정이 있다. 제대로 된 대중음악 공연장도 없고, 각종 ‘준조세’ 때문에 공연업자는 수지를 맞추기 급급하다.

어쨌거나 다음 달 초에는 로저 워터스의 내한 공연이 벌어진다. 한국을 찾은 해외 뮤지션 중 가장 거물이다. 티켓 가격은 15만원에서 5만원. 미국에서 비슷한 공연이 열린다고 했을 때 최고가의 티켓이 110달러 정도이니 비슷하거나 더 비싼 편이다(미국과 한국의 물가, 간단히 CD 가격을 비교해보더라도 결코 싼 가격은 아니다. 참고로 시민회관 같은 공공 공연장에서 벌어지는 로컬/인디급 뮤지션의 공연은 15달러 정도인 경우도 흔하다. 물론 무료 공연도 많이 있다). 한때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에 심취하지 않았던 30대가 있으련만, 과연 이 ‘아저씨들’이 지갑을 열고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일 것인지 관심거리다. 올해 열리는 몇 건의 대형 공연이 앞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해외 뮤지션 공연의 한 지표를 이룰 것임은 분명하다.

이제 마지막 질문을 던져보자. 메이저 아티스트의 사정은 그렇다고 치고, 마이너/인디/로컬 밴드의 공연을 볼 기회는 과연 있을까? 1999년 밴드 씸(Seam)의 공연은 아마추어적으로 기획된 공연이었고, 올해 초에 살짝 한국을 다녀간 스티븐 맬크머스(Stephen Malkmus)의 공연은 프로모션 공연 성격이 강한 ‘약식 공연’이었다. 역시 적절한 공연장/클럽, 프로페셔널하며 의욕적인 공연 기획사 같은 인프라, 그리고 ‘돈’이 문제다.

떠들썩한 와중에 이번 주말 추이 잰(崔健)의 공연이 열린다. 몇 년 전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공개 방송 형태로 했던 공연을 제외하면 첫 공연이다. 추이 잰의 음악, 그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작지 않은 이벤트다. 어쩌면 이 공연은 앞으로의 해외 마이너/인디/로컬 뮤지션의 한국 공연에 있어 하나의 지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weiv]에서는 이번 호에 ‘급작스럽게’ 커버 스토리로서 추이 잰을 기획했다. 이미 발표가 된 글이기는 하지만 추이 지앤과의 인터뷰와 함께, 바이오그래피와 주요작 리뷰는 그의 놀라운 음악 세계로 들어가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으로 믿는다.

예고했던 대로 여성 R&B/소울 뮤지션에 대한 기사들을 준비했다. 하다보니 일이 커져서 ’21세기 여자 소울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2회로 나뉘어 시리즈로 실리게 되었다. 고백컨대, R&B나 힙합 등 흑인 음악은 [weiv]의 아킬레스건이다(물론 한 명의 뛰어난 필자를 제외하고는). 이런 사정은 [weiv]를 즐겨 찾는 (인디 록 팬인) 독자들 대다수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R&B/소울 프로젝트’를 어떻게 확대 발전시킬 것인지 고민 중이다. 많은 제언 부탁드린다. 한편 예고되었던 ‘아르헨티나 시리즈’와 ‘아시안 아메리칸 인디 록 특집’이 연기됨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대신 미국에 체류 중인 필자들의 글을 실었던 US Line이 영국에 체류 중인 필자가 가세하여 확대되었음을 알린다. 여기 ‘변방’에서 느낄 수 없는 현지의 생생한 소식을 전해줄 필자는 ‘영국의 음악 언론’에 관한 글을 보내주어, 미국 필자가 보내준 ‘부틀렉 시리즈’ 첫 번째 글과 나란히 실었다.

또한 새 앨범 리뷰도 풍성하다. 특히 루시드 폴, 마이 로 어레이, 곤충소년윤키, 갱톨릭, 김현식, 원더버드 등 한국 대중음악 앨범이 다채롭다. 다루어야 할 한국 음반의 많다는 사실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한마디 전한다. [weiv]의 게시판이 우여곡절 끝에 ‘정리’되면서 건강한 활력마저 잃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여 편집진은 내심 섭섭해하고 있다. 아무쪼록 적극적인 의견과 참여를 바란다. | 글 이정엽(이볼)  200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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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의 기사

[Cover Story] 추이 잰: 베이징의 후레자식들의 맏형 – 신현준
추이 잰과의 인터뷰: “나는 다음 세대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을 뿐입니다.” – 신현준
崔健(Cui Jian) | 一無所有(Nothing To My Name)
중국 록의 새로운 대장정의 시작 – 신현준
崔健(Cui Jian) | 解決 (Solution)
칼을 든 록 영웅의 설원 위에서의 고독 – 신현준
崔健(Cui Jian) | 紅旗下的蛋(Balls Under The Red Flag)
록의 중국적 변종을 넘어선 록의 새로운 형식의 탄생 – 신현준
崔健(Cui Jian) | 無能的力量(The Power Of The Powerless)
‘무력’해진 중국 록의 대부의 새로운 로큰롤 – 최세희

[Album Review]
루시드 폴 | 버스, 정류장 OST
보다 확장된 선율들, 하지만 여전히 아련한 – 정건진
마이 로 어레이(My Low Array) | LO-FIGHT 
‘무국적’ 로파이 사운드의 정수 – 오공훈
곤충소년윤키 | Mexican Vacation 
당신의 생사를 보장해 줄 수 없소 – 김성균
갱톨릭 | Windproof(防風)
한국 힙합에 대한 기대와 불만 – 양재영
김현식 | The Sicked Live
누가 음악을 망가뜨리는가 – 차우진
원더버드(Wonder Bird) | Cold Moon
밴드, 떠남과 안착에 대한 은유 – 차우진
Clinic | Walking With Thee 
수술실에서 되살아난 인디 록 – 이기웅
Cooper Temple Clause | See This Through And Leave
프로그레시브 록 드디어 재림하다 – 이기웅
Cosmic Rough Riders | Enjoy The Melodic Sunshine
발톱을 드러낸 복고의 열풍 – 신주희
Grandaddy | Concrete Dunes 
조용하지만 야심찬, 수줍지만 당당한 – 김태서
American Analog Set | Know By Heart
‘쿨(cool)’이 무엇인지 들려주마 – 오공훈
Creed | Weathered
진부함에 갇혀버린 과장된 성실함 – 김태서
Various Artists | El Che Vive!: 1967-1997
체 게바라에 대한 범라틴 헌정 – 신현준

[Series]
21세기 여자 소울 프로젝트 (1) – 이정엽(이볼)
Me’Shell Ndegeocello | Peace Beyond Passion
정체성과 하이브리드의 함수 – 장호연
Erykah Badu | Baduizm
복고의 차용의 모범을 제시한 앨범- 장호연
Jill Scott | Who is Jill Scott: Words and Sounds Vol. 1
말의 힘, 음악의 힘, 여자의 힘- 이정엽(이볼)
Jill Scott | Experience: Jill Scott 826+
감동의 라이브를 딛고 새로운 음악 세계로 – 박정용
Angie Stone | Black Diamond 
늦깎이 신인의 retro/neo soul story – 박정용
Angie Stone | Mahogany Soul
네오 소울의 기대와 한계 – 이정엽(이볼)

[Essay]
영국 음악 저널의 판도 – 이기웅

[US Line]
Bootleg Galore 1: 전설의 탄생, 밥 말리 – 김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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