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저물어 갑니다. 올 여름은 작년에 비해 무덥지 않아서인지 금새 지나가버리는 듯한 느낌입니다. 피서철을 놓치긴 했지만 일상의 분주함을 뒤로한 채 복잡한 머리속이나 식히려 늦은 여름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계획도 준비할 것도 없습니다. 고물 자동차에 여벌의 옷가지와 CD 플레이어, 즐겨듣는 음반 대여섯 장 던져놓고 한적하고 이름 없는 산길 위에 잠시 머물다 올 생각이니까요. 연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답답한 소식들, 시원스레 망각하고 말이죠.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은 어딘가에 잠시 붙박혀 중단(pause)되는 기억만을 남길 조금은 허황한 정박 같은 것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만, [weiv]에 참여한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간 짧은 귀와 부족한 필력 때문에 고생도 좀 하고 독자분들의 질타도 받고 그런 와중에 저도 편집진의 일원이 되어 editor’s note란 걸 처음 쓰고 있습니다. 그저 이번 호에 실릴 내용들만 간략하게 소개하는 차원에서 사무적으로 쓸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만, 그간 독자분들과 너무나 교감이 없었고 필자의 개인적인 부분을 최대한 숨겨야하는 음반 리뷰의 건조한 형식을 탈피해 볼 수 있는 지면은 여기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저런 얘기를 두서없이 꺼내게 되는군요. 먼저, 여름의 끝자락에 선을 보이게 되는 0516호에서는 여름 내내 저를 포함해 필진들의 귀를 혹사시켰던 어느 잊혀진 밴드에 대해 회고해 보았습니다. 정규 앨범들이 재발매 되었고 재결성에 대한 기대가 부풀어오르고 있는 픽시스(The Pixies)가 그 주인공입니다. 처음 특집 기획안을 꺼내놓았을 때 한 필자분은 ‘추억은 방울방울’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추억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생생한 느낌입니다만, 록 음악이 대안적 정신과 진홍빛 열정으로 타오르던 시절을 그저 냉정하게만 되돌아보기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다만, 이번 특집이 좋았던 시절에 대한 맥빠진 뒷걸음이 아니라 현재 록 씬의 어려운 상황과 연결되어 통시적인 의미를 조금이나마 갖게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픽시스라면 특집에 참여한 필자들보다 한 수 위이신 독자들로부터 이런 요상한 밴드는 처음 듣는다 하시는 분들까지 폭 넓은 관심과 의견을 바랍니다. 올해에는 여름 특집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러 특집 준비에 경황이 없기도 했습니다만, 무엇보다 저희 필진들의 게으름 탓이 클 것입니다. 작년과 같은 여름 특집을 기대하긴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카리브해의 이국적인 정취와 대양(외계)을 향한 도착적인 동경을 기괴하게 변형된 로큰롤에 담아냈던 픽시스 특집으로 여름 특집을 대신할까 합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의 변명일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특별한 피서거리는 아닐런지요. 어쨌든 거의 매일을 픽시스와 더불어 살았던 올해 여름은 쉬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특집은 보다 최근의 트렌드와 맞닿아 있는 내용입니다. 바로 본토인 미국에 비해 힙합의 변방인 영국에서 새로운 조류로 형성되고 있는 거라지 랩(UK Garage Rap)에 대한 조망이 그것입니다. [영국 거라지 랩에 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에세이를 비롯해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핵심 앨범들을 리뷰하고 있으니 역시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정보에 민감하신 독자분들의 기대와 요구에 발빠르게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아쉽습니다. 리뷰를 요청해주신 상당수의 국내외 신보들을 아직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물론이고 이번 호의 다음 업데이트부터 그 동안 다루지 못한 화제작들을 최대한 리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0516호의 첫 번째 업데이트에서는 국내 신보로 장사익의 [꿈꾸는 세상]과 윤도현 밴드의 6집 앨범 [YB Stream]를 리뷰해 보았으며, 해외 신보로는 0515호에 실리지 못한 퍼니스 브러더스(The Pernice Brothers)의 [Yours, Mine & Ours] 리뷰를 추가했습니다. 이 밖에도 오랜만에 리이슈 카탈로그(reissue catalogue)란에 좀비스(The Zombies)의 [The Decca Stereo Anthology] 리뷰가 실렸으며, 얼마 전 열린 이적의 [경2적 콘서트]에 대한 긱 리뷰(gig review)도 내놓습니다. 요즘 세계 최고 선진국이라는 미국이 정전 사태로 인해 큰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미국이라도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정전 사태 때문인지 올해에는 멤피스에 운집한 추모객들 이야기가 안 나오고 있습니다만, 8월 16일 오늘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스물 여섯 번째 기일이기도 합니다. 좀 엉뚱한 얘기이긴 하지만 불꺼진 거실에 촛불을 켜두고 엘비스를 추억하는 뉴요커 아주머니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턴테이블은 돌아가지 않겠지만 음악은 떠올릴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남루하고 불안한 현실을 위로하는 아름다운 역설의 장면들에 음악은 늘 함께 할 것입니다. 여름 휴가를 집에서 보내신 분들, 방학 내내 여행 한 번 못 해보신 분들 얼마 남지 않은 여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weiv]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욱 좋겠구요. | 글 장육 20030816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