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마지막으로 찾아뵙는 editor’s note입니다. 게다가 무려 넉 달만에 쓰는 ‘편집후기’이기도 하군요. 식상한 얘기이긴 합니다만 어느덧 2003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항상 연말이 되면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게 됩니다. 되돌아보건데 올 한 해는 [weiv]로서나 저 개인으로서나 참 여러 일들이 있었던 듯하군요. 우선 저는 contributor에서 editor로 진급(?)했습니다. 진급했다고 달리 좋아진 건 없고 오히려 매월 회비를 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만(아직 낸 적은 없습니다. 항상 도망 다니고 있죠^^)… 어쨌든 뭔가 신분상승을 이루었다는 뿌듯함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겠죠. 또 직장도 새로 구했고, 여자는 생기지 않았지만 속옷은 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짱컨셉 차우진, 그만 앵글에 잡혀버린 장육, 뒷모습의 신현준

[weiv]에선 저의 따분한 인생보다는 훨씬 드라마틱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게시판에서 몇 번의 분란이 있었고, free board와 music board가 폐쇄까지 되는 사건이 있었죠. “위기는 찬스다”란 격언에 걸맞게 혼란한 틈을 타 몇 분의 게시판 스타가 탄생했고, 몇몇 분은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몇몇 분은 금새 시들해지는 인기에 환멸을 느끼며 게시판을 떠나거나 예명(?)을 바꿔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기도 합니다(갑자기 베이비복스의 원년 멤버였던 30대의 모여인이 생각나는군요). 저희로서는 사실 득보다는 실이 많았다는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욱하는 감정도 많이 수그러들었지만(그리고 저희의 미숙했던 대응 방식도 반성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다음 한 해에는 조금은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게시판 문화가 자리잡기를 바래보기도 합니다.

또 하나 [weiv]의 2003년은 의욕적으로 기획한 특집들이 많은 해로 기억됩니다. 과연 의욕만큼의 성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나 블러(Blur), 픽시스(Pixies), 라디오헤드(Radiohead) 같은 거물급 밴드들의 전작 리뷰에서부터 일렉트로니카, 데프 적스(Def Jux), 네오 거라지, UK 거라지 랩 같은 현 트렌드에서 중요한 비중을 갖는 흐름들을 살펴 본 특집들이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고 자평(혹은 자뻑)하고 있습니다. 저로서도 [weiv] 가입 이후 처음 특집을 기획하고 참여해본 한 해였는데, 그만 재미가 들려서 이거저거 무리하게 건드렸다 파토가 난 것들도 많았고, [weiv] 내에서 ‘특집마왕’이란 별명까지 얻기도 했습니다. 올 한 해 저로 인하여 ‘나가리’가 된 특집들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나 뉴메틀, (대망의)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등– 은 차후에라도 어떤 식으로든 부활시킬 수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먼저 게으름 병을 고쳐야 하겠지요). 

[weiv]의 2003년 마지막을 장식할 0524호에는 대대적으로 신보, 혹은 미처 다루지 못한 기발매 음반들의 리뷰가 올라왔습니다. 주목받는 국내 인디 앰비언트 밴드, 우리는 속옷도 생기고 여자도 늘었다네의 [사랑의 유람선]과 미국 인디팝의 다크호스 신즈(The Shins)의 [Chutes Too Narrow], 아일랜드 판 ‘올해의 신인’ 쓰릴스(The Thrills)의 [So Much For The City]와 미국 판 ‘올해의 신인’ 킹스 오브 리언(Kings Of Leon)의 [Youth & Young Manhood], 인고의 세월을 견뎌내고 화려하게 부활한 렌스(Wrens)의 [The Meadowlands]와 작년에 놓친 것이 억울했던지 기어이 2003년 재발매를 핑계로 당당히(뻔뻔하게) 신보 난에 얼굴을 올린 ‘베스 기븐스와 녹슨 남자(Beth Gibbons & Rustin Man)’의 [Out Of Season], 그리고 리이슈 카탈로그에는 웨딩 프레젠트(Wedding Present)의 [Bizarro]가 1차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곧 추가 음반리뷰가 올라올 예정이오니 조금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껌엑스(GumX), 주석, 매니토바(Manitoba), 디어후프(Deerhoof), 스팅(Sting), 익스플로젼스 인 더 스카이(Explosions In The Sky) 등).

사진만은 안된다! (최민우) vs 그러지 말고! (김태서)

또한 국내 인디씬에 번지고 있는 ‘EP음반 발매 붐’을 조명하는 특집이 있었습니다. 우선 프리키(Freaky)의 [b1]과 이스페셜리 웬(Especially When)의 [The Evening Air], 노이즈캣(Noise Cat)의 [Noise Cat]과 눈뜨고코베인의 [파는 물건], 위스키리버(Whisky River)의 [Oldness Style Confusing], 그리고 엘(El)의 [Soft Breeze]가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weiv]로서는 간만에 국내 인디씬에 시선을 맞춰본 특집입니다. 성에 차지 않으시더라도 저희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인디씬 조명에 첫 발을 떼었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특집에서 다루어진 밴드들에게도). 그리고 EP 특집 은 두 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오니 0601호를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역시 무산될 가능성이 크지만) 0601, 혹은 2004년 초반에 진행될지 모르는 ‘회심의 프로젝트’가 있으니 이 역시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필자들과 웨이버 여러분이 뽑은 2003 Best 음반 리스트가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이러한 리스트가 ‘재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다른 사람들은 올 한 해 어떤 음반을 좋게 들었을까’하는 호기심으로 봐 주시기 바랍니다.

간략하게 [weiv]의 한 해를 되짚어 봤습니다. 어떤 기간의 마지막 장에 이르면 대개의 경우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나빴던 순간일지라도 정겨웠던 순간으로 미화시키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다면 끊임없이 ‘어제’를 만들어 나가는 우리의 ‘내일’을 결코 웃는 얼굴로 마주할 수 없겠죠. 결국 사람은 다 똑같을 수밖에 없는 걸까요? 제 경우를 되돌아보면 대답은 ‘그렇다’가 되는 것 같습니다. 연말이 되니 감상적인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군요. 한 해 동안 저희 [weiv]를 지켜봐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너무 진부한가요?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 딱 맞는 글이 있습니다(이미 준비하고 있었답니다). 제 청소년기의 10년, 온 마음을 다 바쳐 사랑했던 스매싱 펌킨스의 1994년 작 [Pisces Iscariot]의 라이너 노트에 적혀있는 한 구절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거기 있어줘서 고맙고 들어줘서 고맙다. 그리고 화내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그 모든 것을 동시에 해줘서 고맙다. 인생은 전부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다(내가 이 둘을 합쳐 딱 절반으로 나눌 수만 있다면). 우리를 지지해준 모든 이들에게 특별한 감사를. 그리고 사랑, 평화, 공감, 욕망, 익살, 즐거움을 절대 이해 못할 이들에게는 fuck을.” 

2004년, 풍족한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 글 김태서 200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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