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그 어느 때보다 인디 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음악가 자체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메이저의 음악가들이 미디어를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간다면 인디 씬의 음악가들은 공연을 통해 이미지와 정체성이 형성된다고 해도 좋을 것인데, 이 ‘캐릭터’는 연주나 보컬의 인상, 특정 장르와 기술적 완성도/테크닉 등 음악적 요소를 기반으로 여러 층위의 맥락을 구성하기도 한다. 요컨대 ‘홍대 여신’ 같은 레토릭이야말로 그에 대한 상징일 텐데, 그렇다면 인디 팬덤도 아이돌과 마찬가지로 이성애적 관점 안에서 작동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이들을 ‘인디 파탈(indie fatale)’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미안하다, 진지한 얘기는 아니다). 취향과 편견에 입각해 꼽아본, 2012년 인디 씬에 등장한 12명의 ‘인디 파탈’ 리스트. | 글 한명륜, 정리 차우진 / 사진 제공: 한명륜, 에스데로 블로그, 네이버 온스테이지, 밴드 공식 페이스북

 

 

이인경 | 베이스 from 몽니
2012-indie-1

Play: 몽니는 의외로 “Band Music” 같은 업 비트 곡에서 훨씬 더 매력적이다. 여기엔 밴드의 전반적인 음색이 하이 톤이라는 게 어느 정도 기여하는데, 베이스도 마찬가지다. 메이플 지판인지라 기본 톤도 밝고, 플랫 피크를 쓰기도 하지만 손끝이 얇아서 현을 튕길 때 어택음 자체가 서늘하고 또렷하다. 반면 상대적으로 간결한 노트를 선택해서 무게감을 부여하는 노련함도 있다. 계산하고 연주하는 타입이라기보다는 ‘감’이 좋은 연주자라는 인상.
Stage: 몽니의 리더 김신의는 이인경을 한국의 다아시 렛스키(스매싱 펌킨스의 베이시스트)를 생각하며 영입했다고 한다. 요컨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무대 매너. 베이스의 스트랩이 허리 아래쪽에 위치하는데, 덕분에 특히 곧게 세운 허리가 돋보여 가녀린 몸매임에도 일종의 ‘위엄’을 발산한다. 게다가 그녀는 록을 하는 여자의 관습적인 패션과는 차별된 감각을 선보이는데, 라운지에서 턱을 괴고 불빛의 범람을 구경하기에 딱 맞을 우아한 의상이나 레드카펫에 더 잘 어울릴 만한 드레스타입의 원피스도 잘 소화한다. 한편 코맹맹이 소리와 웅얼거림으로 뜬금없는 멘트를 하는 것, 혼자 공포영화를 본다는 취미도 이 반전에 한몫한다.

 

율리아(김서현) | 베이스 from 다운 헬 + 오 흐부아 미쉘
2012-indie-2

Play: 율리아의 연주는 1986년에 세상을 떠난 메탈리카의 베이시스트 클리프 버튼(Clifford Lee Burton)을 떠올리게 한다. 다운 헬의 음악처럼 난타하는 리듬을, 더구나 핑거링으로  능란하게 구사하는 여성 베이시스트는 많지 않다. 성별과 무관하게 그녀는 이미 훌륭한 메탈 베이시스트인데, 핑거링의 속도감이나 지구력이 압도적인 수준이다. 손끝은 날카로운 편인데, 연주 사진을 자세히 보면 손가락 관절이 두텁게 보인다. 그만큼 악력이 좋다는 뜻. 물론 이렇게 쎈 장르에서는 베이스에도 디스토션을 걸어놓지만, 이미 핑거링 단계에서 일정 이상의 출력이 확보된다고 봐야 한다.
Stage: 율리아는 무대에 따라 분위기가 확 바뀐다. 특히 화장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분위기를 내는데 화장을 지운 얼굴이 순진한 아기 같다면, 화장을 하고 무대에 서면 그룹 키스(Kiss)의 진 시몬즈처럼 혀를 낼름거리는 등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행동한다. 이렇게 과장된 액션은 확실히 일본에서는 매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다운 헬의 팬들은 율리아를 전 베이시스트인 (심)지효와 비교하곤 하는데 음, 내 입장에선 그러니까 에반게리온의 실사 판을 찍을 때, 플러그 수트를 입은 아스카 역을 사사키 노조미가 맡느냐, 아야세 하루카가 맡느냐의 문제와 비슷하게 들린다. 뭐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란 얘기.

 

김나연 | 베이스 from 전기뱀장어
2012-indie-4

Play: 2012년의 신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기뱀장어는 자신들의 특기를 잘 정돈해내는 밴드다. 메인 리프가 등장하기 전 단선율로 주제를 상기시키는 기타가 인상적인데, 그 뒤에서 티 나지 않게 화성과 리듬의 공간을 슬쩍슬쩍 건드려주는 베이스 연주가 은근히 자극적이기도 하다. 완성도가 높은 연주는 아니지만 기본기도 좋고, 가끔 등장하는 슬랩도 명료한데 아마추어의 티를 굳이 부인하지 않으려는 프로 같기도 하고, 전기뱀장어라는 밴드의 정체성에 충실하려는 모습으로도 읽힌다.
Stage: 김나연의 무대 매너 역시 과함이 없다. 앨범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태도에서는 일종의 기품마저 느껴진다. 물론 조금 심심하기까지 한 점은 살짝 아쉽지만, 김나연이 율리아처럼 움직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스턴 사이드킥의 단독공연에 게스트로 나왔을 때 연출했던 꽁지머리 같은, 그 정도의 도발을 좀 더 찾아내면 좋겠단 생각도 든다. 더도 덜도 말고 기타의 빈 공간을 더듬는 그 정도의 도발.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조금만, 조금만 더 나가 봅시다?

 

향기 | 기타 from 브로콜리 너마저
2012-indie-3

Play: 브로콜리 너마저의 음악은 단순하다. 그게 매력이지만, 한편 단출한 형식상 구현할 수 있는 스타일이 제한되다 보니 가장 곤경에 처한 파트는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보컬과 기타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점에서 기타리스트 향기가 선보이는 솔로는 하나의 가능성이 아닐까. 똑딱대는 단음 리프에서 아르페지오로 넘어가는 능란한 흐름이 인상적이다.
Stage: 향기가 들고 나오는 그레치(Gretsch)사의 할로우 바디 기타는 상당히 무겁다. 아트 오브 파티스의 김바다가 시나위에 있을 때 사용하던 레드 색상의 모델이 떠오르는데, 체격 차이 때문인지 향기가 메고 있으면 그 몸의 절반을 차지하는 듯하다. 이 묵직한 기타는 브릿지의 특성으로 인해 줄의 장력도 강한 편으로, 시원시원한 리듬 스트로크에 특히 잘 어울린다. 큰 액션 없이 사운드만으로도 존재감을 낼 수 있다. 한편 무대에서 향기는 종종 ‘대학 동아리의 기타리스트’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게 뭐냐고? 공연에서 확인해보시길. 특히 공연 중에 웃을 때는 왠지 ‘아차, 실수했다!’라는 느낌적인 느낌도 있고.

 

만수 | 기타 from 무키무키만만수
2012-indie-6

Play: 샤우팅을 넘어서는 괴성과 부조리한 가사는 무키무키만만수의 음악을 흡사 세기말의 그것처럼 음악을 넘어서게 만든다. 요컨대 만수의 품에 안긴 기타는, 기타가 아니다. 기존 질서의 문법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생물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퍼포먼스 안에서 기타는 그렇게 변해간다. 그 점에서 만수는 범상한 기타리스트도 아니다. 복잡한 전개는 아니지만, 순간적으로 예정된 멜로디를 확 이탈하는 보컬과 능청스럽게 전개되는 코드워크에는 상상력이 충만하다. 괴성의 보컬이 리듬감을 잃고 달려 나갈 때에도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 제 타이밍을 지키는 만수의 오른팔은 마치, 그러니까, ‘기생수’처럼 독립된 생명체.
Stage: 넌버벌(non-verbal)의 개념이 의사소통의 보편적인 시그널을 거부하고 그로부터 벗어난 경우까지를 포함한다고 할 때, 무키무키만만수의 푸닥거리 보컬과 차라리 몸부림이라 할 수 있는 연주는 말 그대로 넌버벌 퍼포먼스다. 곡의 시작 부분에서 종종 벌어지는 실수도 퍼포먼스로 끌어들이는 까닭은, 사실 두 멤버 모두 ‘귀엽기’ 때문이다. 만수라는 예명은 자신을 닮았다는 학보사 국장의 친구 이름이라는데, 이 ‘순딩이’ 같은 예명과 느릿느릿한 말투는 분명 메리트. 그래서 “아 이것이 육백년의 기운인가(찌릿찌릿찌릿찌릿), 아 좋다! 먹고 장수 해야겠다(찌릿찌릿찌릿찌릿)” 외치는 절규도 폭발력이 배가된다. 실제로 이 부분을 현장에서 들으면, 아니, 정말, 하아, 진짜…. 귀엽다.

 

혜미 | 기타 from 24아워즈
2012-indie-5

Play: 4인조의 간소한 구성이지만 24아워즈는 각 파트 사이의 공간을 다차원적으로 쓸 줄 아는 팀이다. 그때 혜미의 기타는 필연적으로 이승진(보컬 겸 기타)의 기타와 연관해 읽어야 한다. 두 기타의 사운드 조합은 어지간한 신인 밴드라고 할 수 없는 감각을 보인다. 물량에서도 인상적인데, 2012년 한 해 공연에 들고 나온 기타가 각각 최소한 3대 이상이다! 리드 멜로디를 연주하는 혜미는 출력이 높은 험버커 위주의 기타, 깁슨 레스폴과 SG를 사용하며 승진의 기타와 사운드 질감이 중복되는 낭비를 피한다. 한 곡 안에서 섹스 피스톨즈와 이기 팝의 분위기를 다 포착하는 공간 활용이 인상적이다. 테크니션은 아니지만 한 음 한 음 새기는 데 손실이 없다. 왼손의 악력도 강하고 피킹도 안정적인, 영락없는 포식자다. 하지만 퓨마보다는 고양이에 가깝다. 물론 칭찬이다.
Stage: 기타리스트로서의 액션은 프론트맨 승준에게 양보한 듯 얌전하다. 마치 ‘제이드’ 시절의 토미 키타처럼 스트랩을 짧게 멘 채, 몸을 비틀며 노래하는 승준을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며 가볍게 리듬을 타는 정도가 액션이라면 액션. 기타 마니아라면 그녀의 기타 콜렉션을 살피는 재미도 있을 법하다. 물론 기타보다는 스포티하고 건강한 ‘도시녀자’의 매력 넘치는 핫팬츠와… 아……..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조이엄(Joyumn, 염승식) | 기타 from 게이트 플라워즈
2012-indie-7

Play: 왼손잡이인 그는 ‘헨드릭스 톤’을 21세기의 언어로 완벽히 구현하는 데 몰두하는 것처럼 보인다. 프로라면 어떤 조건에서든 생각한 톤을 뽑아내야 하지만, 헨드릭스로 수렴되는 구식의 퍼즈 타입 사운드는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다. 프리앰프(EQ)보다 파워앰프의 영향이 더 큰 ‘그 시대의 소리’는, 지금처럼 저항을 높여 일그러뜨리는 게인(Gain)보다는 마스터 볼륨을 밀어붙여 진공관을 (말 그대로) ‘꼭지 돌게’ 만드는 개념의 산물이었다. 좋은 앰프와 넓은 공연장에선 쉽게 구현되지만, 게이트 플라워즈의 주 무대인 라이브 클럽이나 방송국에선 이펙터의 조합으로 구현해야 하는 톤이다. 이펙터 사이의 간섭이나 전원 분할 문제가 틈틈이 에러를 만들기 쉬운 환경이라는 걸 감안할 때, 조이엄의 플레이는 차라리 [방망이 깎는 노인]의 기타리스트 버전처럼 ‘만질 만큼 만져야 겨우 톤이 되는’ 소리를 탐구하는 장인에 가깝다.
Stage: 그의 연주는 충분한 ‘울림’에 집착한다. 솔로 파트에서도 잡다한 노트(note)를 나열하지 않는데, 특히 “Ghost”의 아르페지오에서 느껴지는 공간감과 자글자글한 질감은 ‘이게 어떤 톤인데!’라고 항변하는 것 같다. 기타만 파는 프로 혹은 ‘범생’ 같은 인상이라 캐릭터는 부족한데(KBS [탑 밴드]에 나갔을 땐 심사위원들마저 그를 어려워했다), 아주 드물게 환히 웃을 때엔 나름 호감형이다. 그걸 오직 열혈 팬들만 안다는 게 함정이지만.

 

이성수 | 기타 from 해리 빅 버튼
2012-indie-11

Play: 이성수의 굵은 보컬은 사실 그리 높은 키(key)는 아니다. 슬레이어(Slayer)의 톰 아라야(Tom Araya)를 살짝 블루지하게 바꾼 듯한 보컬 퍼포먼스는, 거칠고 성난 인상과는 달리 상당히 정제돼 있다. 잘 만들어졌지만 점잖아서 재미가 덜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성수가 택한 건 기타로 나머지의 질감을 채우는 쪽으로 보인다. 앰프의 힘, 특히 저항 값 조절보다 볼륨의 파워에서 뽑혀 나오는 소리 같은 연주의 압도적인 부피감은 순전히 ‘손힘’으로 만들어진다. 긴박하면서도 끈적하게 반복되는 프레이즈, 저음 현에서의 트릴(trill: 헤머링과 풀링을 반복하며 내는 소리)이 그렇다. 역시 기타란, 지판을 찍는 힘과 피킹의 각도에 따라서 다양한 얼굴을 갖는 악기다.
Stage: 크래쉬에서는 윤두병의 강한 이미지에 밀렸다. 실력에선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지만, 그 당시의 이성수는 조금 여리여리한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혹을 넘긴 그는 어쩐지 ‘젊은 남자에게 애인을 뺏겨도 억울해하지 않을 것 같은'(응?) 인상의 ‘훈중년’이 됐다. 특히 헤어스타일, 현재 극히 드문 장발은 ‘팬시’한 20대 록커와는 다른 인상을 남긴다. 그런데, 음, 아무튼, 솔직히 해리 빅 버튼의 공연장에 왜 그렇게 젊은 여성 팬이 많은지 모르겠다. (아저씨는 싫다더니!?)

 

장민우 | 보컬 from 블랙백
2012-indie-8

Play: 해리 빅 버튼 이성수의 경우와 정반대의 맥락에서, 장민우는 기타리스트가 아닌 보컬리스트다. 감출 수 없는 에너지가 터지는 방향이 거기로 향하기 때문이다. 물론 싸이키델릭의 감각에 블루스와 하드록의 문법을 잘 살려내는 기타 연주는, 아슬아슬하지만 어느 선을 넘지 않는다. 가령 “Free”의 후반부 솔로는 긴박하고 거칠지만 의외의 아찔함을 제공하진 않는 것이다. 요컨대 단단한 기본기 위에서 철저히 계산되고 잘 짜인 연주다. 이때 통제되고 갇혀 있던 에너지가 질주하는 탈출구는 순간순간 쥐어짜듯 내지르는 보컬에 있다. 무대 위에서 구르거나 방방 뛰는 ‘방정맞은’ 무대 매너 역시 그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Stage: ‘중도’라는 수사는 정치판에서만 유효한 게 아니다. 무대에서도 ‘중도’ 캐릭터는 유효하다. 근사하고 멋있는 캐릭터가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하면 감흥이 없다(김희선과 장동건을 생각해보자). 어딘가 불완전하거나 삐뚤어진 게 있어야 비로소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름이든 외모든 순정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많이들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장민우는 그 균형을 감각적으로 아는 음악가다. 그의 방방 뛰는 무대 매너 얘기다. 계산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때 장민우는 ‘만만해’ 보인다. SBS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의 박시후 같은 뭐 그런.

 

강준우 | 보컬 from 장미여관

2012-indie-12

Play: 장미여관은 세션의 깔끔함과 밴드 플레이어로서의 오리지널리티가 가장 이상적으로 융합된 밴드다. 토토(TOTO)의 코믹버전 같기도 한 이 밴드에서 기타(일렉트릭)와 보컬을 맡고 있는 강준우는 순간순간 터지는 사설조와 청아한 톤의 보컬을 선보인다. 보컬로만 보자면 육중완과 함께 더블 프론트맨 체제에 있는데, 아무래도 리드 멜로디를 부르는 쪽이 강준우라서 더 부각된다. 육중완의 그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외모가 어쿠스틱 기타와 한 몸을 이룬 중음역대를 맡는다면, 강준우는 그 위에 목소리를 포개 화성을 만든다. 건반이 없는 대신 음색과 역할이 다른 세 대의 기타로 다양한 감각을 만드는데, 강준우는 보컬 라인과 조화되는 절묘한 리듬워크부터 솔로 플레이까지 못 하는 게 없다. 물론 거북할 만큼 해맑은(응?) 음색도.
Stage: KBS [탑밴드 2]에서 패러디한 “밴드스타일”은 “봉숙이”의 열 배쯤 되는 임팩트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진 연주, 편곡, 말 춤이었다. 무엇보다 밴드의 ‘프론트’에 대한 편견(덩치가 크면 ‘어둠의 제왕’, 호리호리한 미남은 ‘순정만화 주인공’ 따위)을 과감히 혁파했다는 점에서 ‘배 나온 30대 남자의 미학’을 보여준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새로운 희망’을 환기하는 밴드이자 인물.

 

오주환 | 보컬 from 이스턴 사이드킥
2012-indie-9

Play: 이스턴 사이드킥의 리더는 기타리스트 고한결이지만, 밴드의 얼굴을 맡고 있는 건 보컬 오주환이다. 고한결은 의지가 강한 리더로 알려졌는데, 일종의 설계자란 느낌도 준다. 요컨대 고한결이 이스턴 사이드킥이란 밴드의 이미지를 디자인한다고 했을 때, 프론트 맨인  오주환은 그의 의도에 부합하는 인상을 준다. 그만큼 표현력이 다양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의 보컬은 막 부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타고난 목소리가 중저음이지만 흉성을 잘 활용하고 발성 지점을 최대한 뒤로 밀어 넣는 방법을 자주 쓴다. 한 무대에서 10곡 이상을 같은 성량과 톤으로 소화한다는 것,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란 얘기다.
Stage: 멤버 다섯 명이 모두 ‘훈훈한 외모’를 가졌지만 거기엔 ‘팬시’하게 소비되지 않겠다는 ‘깡’이 느껴진다. 특히 오주환이 그렇다. 알려진 대로 그는 패션잡지를 비롯해 런 웨이를 걸었던 프로페셔널 모델 출신이다. 무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나오는데, 20세기에 흔했던 ‘외국 애들 같다’는 칭찬이 새삼 떠오른다. 그럼에도 현재 음악 시장에서 크게 환영받지 못할 스타일의 음악을 선택한 걸 보면 흠 좀 멋있… 아무튼, 오래 활동하기만 한다면 나름 독보적인 자리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심수창이 더도 덜도 말고 10승만 찍었다면 서울의 야구 판이 달라졌을 거라는 뭐 그런 망상 같은 기대.

 

윤영완 | 드럼 from 앵클어택
2012-indie-10

Play: 앵클어택의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겅중대는 이정훈의 기타 플레이도, 김준래의 날카로운 보컬도 아닌, 윤영완의 파워풀한 드러밍이다. 온 힘을 다해 두들겨대는 파워 드럼의 박력이 공간을 휘어잡을 때의 쾌감이 앵클어택의 인상을 좌우하는데, 이 단단한 드럼 위에서 기타와 베이스가 그야말로 제멋대로 날뛴다. 특히 몇 개의 곡을 하나로 합쳐서 만든 것 같은 앵클어택의 음악에서, 예상을 비껴가는 구성과 그때마다 다층적으로 변하는 속도감이야말로 윤영완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빠른 비트에 노이즈를 결합하고 주요 테마를 반복하다가 갑자기 우회하고 돌아서기를 거듭하는 “Boss”라든가, 음악의 밑단을 단단하게 다지는 드럼 위로 축조되는 베이스와 그를 가로지르는 기타 리프가 치고 들어오는 “Demerit”에서, 그의 드럼은 헤비 사운드의 그루브라고 해도 좋을 감각을 구현해내는 것이다.
Stage: 무대에 설 때마다 윤영완은, 일단 벗는다(겨울엔 어쩔…). 근육질로 다져진 역삼각의 상체, 리듬에 따라 불끈대는 삼각근, 스틱을 내려칠 때마다 수축되는 상지근이 마치 드럼에 영혼을 바친 것 같은 그의 플레이를 지탱한다. 드럼을 치다보니 근육이 단련된 것인지, 아니면 드럼을 치기 위해 근육을 따로 단련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무슨 상관인가. 가뜩이나 ‘쎈’ 음악을 하는 앵클어택의 ‘더 쎈’ 이미지는 바로 그의 ‘웃짱까기’에서 온 것인데(하지만 이 남자는 미술을 전공한 섬세한 남자). 그렇게 다 때려 부술 듯 분노의 드러밍을 구사하는 바람에 앵클어택의 공연은 짧지만 굉장히 강렬하고, 매우 강렬하고 좋지만 역시나 짧을 수밖에 없다. 50분짜리 단독 공연을 보고 싶다면 윤영완에게 1등급 한우와 레드불로 날개라도 달아줘야… (정규 앨범이 늦어지는 것도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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