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weiv]의 ‘에디터스 노트’를 썼던 건 정확히 2002년 5월 16일이었다. 맙소사, 2002년이었다. 그때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얻은 첫 직장의 월급이 왜 자꾸 밀리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카드사의 독촉에 시달렸지만 솔직히 그땐 먹고 사는 문제야 뭐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겨우 스물 몇 살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갓 삼십대 중반이다. 살면서 먹고 사는 게 뭐 어떻게 되는 법은 결코 없다는 걸 알 정도의 나이다. 어른 비슷한 게 되긴 했다. 하지만 매번 먹고 사는 문제가 삶의 모든 걸 압도하도록 내버려두면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어린애이기도 하다. 그건 일종의 ‘텐션’이다. 또한 모순된 욕망이다. 돈도 많이 벌고, 좋아하는 일도 마음껏 하고, 그렇게 여유 있는 삶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걸 다 얻으려면 우리는 항상 뭔가를 팔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팔아야 한다. 그래서 악마에게 헐값에 영혼을 팔아치우거나 혐오스런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그러니까 어느 정도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하려면 차라리 뭔가를 포기해버리는 게 낫다. 이론상으로 그건 간단하지만, 현실적으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얘기를 왜 하냐면 이번 ‘에디터스 노트’를 쓰기로 마음먹었던 며칠 전, 마침 게시판에서 ‘웨이브 운영진은 대체 뭐해 먹고 사느냐’는 질문을, 덧붙여 ‘내년엔 사이트에 치킨집 광고라도 좀 해라’는 요지의 글을 봤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이 말에 깊이 감명받았다. 나는 오늘(2008년 12월 31일)로 회사를 그만 둔지 5개월이 된다(그리고 아직까지 다른 직장을 구하진 못했다). 내가 [weiv]에 처음 글을 올렸던 건 2001년 7월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weiv]를 걱정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weiv]는 구성원들의 취업을 장려한다, 여기서 뭔가 하려면 거의 반드시 직장을 가져야한다’고 말해왔다.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우리-필진들-는 원고료를 받을 때도 있었지만 회비를 낼 때가 더 많았고, ‘웹 매거진’이란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커뮤니티의 성향이 더 강했다. 조직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구성원들의 관계는 느슨했지만, 나름의 원칙과 규칙이 합의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8년 동안 내가 이해한 [weiv]란 그런 곳이다. [weiv]는 1999년 8월에 처음 문을 열었다. 동네 PC방에 가득한 담배 연기 속에서 마우스를 클릭하며 보던 [weiv]의 첫 화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2009년이다. 2009년은 [weiv]의 10주년이다. 아무도 모르는 [weiv]의 모토대로 ‘가늘고 길게’ 버텨왔다. 그 동안 얘기하지 못할 어려움도 있었고 갈등도 있었고 고뇌도 있었다.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여러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weiv]와 함께 한 시절을 보냈을 거고, 누군가는 [weiv]에 실망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러니까 일단 개인적인 감회를 말하자면, 나로서는 어쨌든 기쁘다. 이 작고 단순하고 촌스러운 웹 사이트는 10년 동안 어쨌든 살아남았다.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떤 결과물을 내놓기도 했다. 그걸 감추거나 왜곡할 마음은 없다. 굳이 겸손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weiv]는 한국에서 의미 있는 웹 사이트 중 하나고, 그것이 지난 10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지금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 좋겠다. 그게 욕심일지라도, [weiv]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우선은 격려와 축하를 받고 싶다. 물론 중요한 건 언제나 그 다음이다. 연애에 있어서도 시작되는 순간보다 관계의 유지가 중요하듯이 말이다. 기념일이 중요한 것은 그게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이기 때문이다. 잠깐 서서 돌아보고 아차, 그건 좀 아니었는데 후회도 하고 신발의 진흙도 털고, 뭣하면 그냥 멍 때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앞으로 가게 된다. 맞다. 앞으로 가는 것, 언제나 핵심은 그것이다. 지금 내가 하려는 말도 그것이다. [weiv]는 2009년에 다다라 10주년을 맞이했다. 10년. 나는 이 숫자가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어떤 것을 지목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몇 년 간 [weiv]는 위기를 겪었다. 내부적인 문제이기도 했고, 외부적인 요인이기도 했다. 환경의 문제이기도 했고, 의지의 문제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컸다. 그렇게 매년 해가 바뀌는 동안 나는 민망함과 걱정이 교차했다. 사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몇 명 안 되는 에디터들이 그 걱정을 다 짊어지고 고생을 했다. 그 와중에 이제 [weiv]는 게시판 말고는 볼 게 없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좀 달라질 것이다. 사람들에게 [weiv] 게시판이 아니라 다른 것들을 ‘다시’ 제대로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2009년에 [weiv]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할 것이다. 뭐 엄청난 변화는 아니다. 그저 ‘치킨집 광고’라도 붙일 방법을 찾겠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어쨌든 2009년은 좀 달라질 것이다. 일단은 이 정도다. 중요한 건 [weiv]가 앞으로도 ‘가늘고 길게’ 지속되리라는 사실이다. 구체적인 건 역시 직접 보여줄 수밖에 없다. 지켜봐주길 바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일단은 격려다. 생각해보면 나는 해가 바뀔 때마다 겁에 질렸던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올해는 겁에 질리지 않은 게 분명하다. [weiv]가 권장하던 대로 직장을 구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최근 내게는 어떤 사소한 변화들이 있었다. 더 이상 해가 바뀌고 나이를 먹고 삶의 가운데로 밀려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겁먹지 않게 된 것도 그 중 하나다. 나는 이게 긍정적인 암시였으면 좋겠다. 경제는 전에 없이 불황이고, 인심은 더없이 각박해지며 국회와 청와대에서는 매일같이 헛소리와 헛발질이 계속되지만, 그렇다고 세계가 아작난 건 아니다. [weiv]도 망하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 여기에 있겠다. 여기에서 하던 걸 계속 하겠다. 그러니 여러분, 그러니까 이곳에 나름의 애정과 관심을 가진 당신들도 거기서 하던 걸 계속 해나가길 바란다. 가늘고 길게, 지속적으로 해나가길 바란다. 그러다가 가끔 내킬 때면 우리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조언과 질책을, 그리고 무엇보다 농담(들)을 던져주길 부탁한다. 그것 또한 일종의 ‘텐션’이다.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그런 긴장감이 필요하다. 그 과정의 반복이 마침내 모순된 욕망을 수긍하게 만들 것이다. 그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은 쪽에 가깝다. 마침내 우리는 모두 괴물보다 인간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러니까 바라는 건 오직 하나다. 2009년에도 사소하게, 이를 악물고, 행복하자. | 글 차우진 20081231 ps. 2008년, 성심성의로 [weiv]를 지켜온 최민우 편집장과 에디터 장육, 김태서에게. 또한 프시초 (겸 정찬영), 고두익, 김영진 컨트리뷰터에게 특별한 감사를.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