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의 뉴스란이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관련 정보로 넘쳐난다. ‘보컬의 힘 임재범, 25년 음악인생 집중 분석’부터 ‘나가수 감동의 미션곡’, ‘김연우 최종 탈락’ 소식에 이르기까지, 굳이 본방 사수를 하지 않아도 이번주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속속들이 알 수 있다. 나가수가 독점하게 된 건 뉴스뿐만이 아니다. 음악 차트의 상위 10곡 중 대다수를 나가수 관련 음원이 차지한지는 이미 여러 주째다. 아예 차트에서 제외하거나 별도의 차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도 나온다. ‘재도전’ 사건으로 평지풍파를 겪고 약 한 달간의 방송 중단 끝에 다시 시작된 나가수는 일단 이 방송의 ‘룰’을 가수들에게나 시청자에게나 익숙하게 만든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제작진은 음악과 가수를 좀 더 ‘존중’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논란을 완화시키는 한편, ‘경쟁’이 가수들에게 잠재되어 있던 마지막 힘까지도 끌어내는 기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설득시켰다. 그렇게 ‘최선을 다 한’ 무대는 확실히 몇몇 기억할만한 순간을 만들어냈고, 이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을 호의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음악을 담는 예능의 포맷을 완성했다”든가, “음악적인 완성도와 리얼리티 쇼에 최적화된 사운드의 접점을 발견했다” 하는 평들은 현재 나가수가 도달하게 된 지점의 면면을 짚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가수를 보는 관점은 몰입에 성공한 시청자와 실패한 시청자의 두 가지 시선으로 갈리는 것 같다. 먼저 이 프로그램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 많은 시청자를 대변하는 건 노래 중간 중간 등장하는 관람객의 클로즈업 컷이다. 노래의 순간순간에 따라 표정이 변화하는 걸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몰입과 굉장한 집중이다. 입을 막고 울거나, 감탄사를 내뱉으며 탄복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열광하고,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모습 등이 차례로 비춰진다. 이런 관객의 모습을 어디서 보았나 싶다. 이건 리더의 지휘에 맞춰 프로다운 리액션을 일사불란하게 선보이는 전문 방청객들도 다다르지 못했던 경지다. 흥미로운 건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도 이런 몰입 상태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공연장의 관객과 TV 앞의 시청자, 노래하는 가수들까지 이런 감정의 거대한 과잉상태에 놓이게 하는 비밀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계속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답은 이 열광이 음악, 혹은 노래를 향한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가수들이 적어도 몇십 년 간 이미 노래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왜 하필 지금 나가수의 등장에 이르러서야 이런 열광이 형성된 걸까라는 질문이 또다시 남는다. 황금 시간대에 이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인가? 아니면 경쟁을 통해서 새로운 면모와 능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인가? 그러나 주말 프라임 시간대에 음악 프로그램이 편성된 것은, 기획의도 말마따나 음악의 다양성을 새삼스레 중요하게 보았기 때문이라기보다 ‘서바이벌’이라는 포맷을 가수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가수들의 능력을 극한까지 이끌어낼 수 있었던 역시 서바이벌이라는 혹독한 환경이 전제된 탓이다. 노래를 마치고 대기실로 들어온 김범수에게 BMK는 “너 어디 가서 이렇게 노래도 하니?”라고 물었고 김범수는 “미친 거지.”라고 대답했다. 나가수는 김범수가 라이브에서는 한 번도 내 본 적이 없는 F# 음역대에 도전하도록 만드는 환경을 제공한다. 하지만 서바이벌 쇼라는 맥락을 걷어버린다면 이 노래들이 과연 어떻게 들리는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거리나 카페 혹은 집 앞 슈퍼마켓에서 일상적으로 흘러나오는 노래 속에 나가수의 음원이 섞일 때, 나는 그 과잉된 감정과 기교에 항상 흠칫 놀라게 된다.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결과물이 아니라 라이브 실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너무 크고, 너무 높고, 너무 처절하고, 너무 위태롭게 들린다. 가수뿐만 아니라 스타일리스트 등의 스탭들까지 울음을 터뜨리게 되고, 노래를 끝낸 가수의 발에 쥐가 나도록 만드는 것은 경쟁에서 오는 긴장이다. 결국 이런 긴장감과 스릴이야말로 나가수가 제공하는 재미와 감동의 요체다. 그리고 그걸 더 공고하게 만드는 건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경쟁을 통해서 더 나은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다는 일상적인 믿음이다. 사실 예능에서 이런 경쟁 시스템이 재미의 요소가 된 건 꽤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무한도전’은 ‘예능감’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통해서 출연자들이 가진 능력을 수치적으로 표면화했다. 거기서 각자는 일인자, 2인자, 혹은 ‘쩜오’ 등으로 불리는 위치에 놓인다. 누구든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평가의 대상이 된다. 이는 연기자뿐만 아니라 PD 역시 마찬가지다. 거기엔 환호하고 내심 부러워하고 커리어의 목표점으로 삼고 심지어 신으로 추앙하거나, 혹은 능력 없음을 비웃고 폄하하는 두 갈래의 질서가 있다. 그리고 이제는 예능이 아예 서바이벌 쇼의 포맷으로 재편되고 있는 시기다.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나는 가수다, 신입사원에 이어 오페라스타, 키스앤크라이, 탑밴드, 기적의 오디션 등이 뒤를 잇고 있다. 경쟁 그 자체가 예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펙터클’이 “자본이 되는 지점까지 축적된 이미지”라면, ‘서바이벌 쇼’는 ‘그 자체로서 예능이 될 수 있는 지점까지 축적된 경쟁 논리’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가수가 묻고 있는 건 ‘경쟁, 어디까지 해봤니?’라는 물음인 것이다. | 글 이수연 wei_jouir@gmail.com 20110524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