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이유가 필요했다. 슬프지만, 그런 나이였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영어는 해야 하니까, 꽉 채운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했으니까. 뜬금없는 미국행을 그럴싸하게 포장해준 이 이유들은, 이제야 속 시원히 말하지만 사실 전부 남 보기 좋으라고 댄 핑계에 불과했다. 그렇다. 그저 떠나고 싶었다. 8년 전, 인생의 마지막 졸업식을 마치고 막막한 마음으로 무작정 일본으로 향했던 그 마음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철이 없다 해도, 현실감각이 없다 해도, 중2병이라 해도 할 말 없다. 다른 거리를 걷고 싶었고, 다른 언어를 쓰고 싶었고, 다른 풍경 속의 한 부분을 당당히 차지하고 싶었다. 8년 전과는 달리 누구에게도 손을 벌릴 필요가 없었다. 통장에 몇 년간 내 영혼과 맞바꾼 얼마간의 돈이 모아져 있었던 때문이다. 다행이었다. 통장 안의 이 숫자들이면, 나는 누구의 동의도 없이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었다. 떠나기 위해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정신과 체력의 소모는 이제 남 일이었다.

그래서 반쯤은 충동적이었다. 2011년의 마지막 날, 오랜만에 만나는 선배와 점심을 나누고 나니 한참이나 시간이 남았다. 별달리 하고 싶은 일도 없던 나는, 명동에서 저녁 약속 장소인 인사동까지 걷기로 했다. 짧은 거리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걷기엔 너무 추운 날씨였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일을 그만둔 지 한 달 즈음이 되어가던 나에게 남는 거라곤 남아도는 시간뿐이었다. 그리고 청계천을 막 건너려는 찰나, 빌딩 창가마다 알알이 박힌 각종 유학 상담 학원들의 간판이 보였다. 들어갈까, 말까. 아무리 못해도 삼십 분은 건물 앞을 서성였던 것 같다. 거절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에 무심코 들어갔다가는 덤터기나 쓰고 나올 거라는 걱정도 걱정이었지만, 가장 크게 나를 가로막았던 건 아무 목적 없이 ‘떠난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얼어가는 발가락과 손가락을 호호 불다 나는 결국 구국의 결사라도 한 듯 결연한 얼굴로 제일 첫 번째 보이는 유학원에 들어갔다. 나오는 길, 내 손에는 각종 홍보 팸플릿과 선금 십만 원을 걸고 받은 시애틀 소재의 한 어학원 등록 영수증이 들려 있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만,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 개강일은 이듬해 3월 19일이었다.

후회는 없다. 비록 통장 잔고는 새털보다 가벼워졌고, 나이는 두 해만큼 더 무거워졌고, 모국어, 일본어, 영어 삼 개 국어 모두가 개판이 되었다는 최악의 결과에 대한 경험치를 쌓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어쩜 단 하루도 에누리 없이 비만 내리던 끝내주는 날씨와 강도 높은 수업의 압박에 하루가 멀게 멘붕의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기억에서, 아무튼지 간에 동네에서 알아주는 가장 시끄러운 외국인 무리로 명성을 드높이며 시애틀 구석구석을 누비던 얄개 돋던 시절까지, 짧았지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지나 나의 머리와 마음 그리고 렌즈를 통해 남아 있는 사진과 음악, 기억들을 감히 이곳에서 함께 나누고 싶다. 때로는 노래밖에 남는 게 없을지도, 때로는 해외, 특히 미국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금은 유익할지도, 그리고 대부분은 인간 노릇 하려면 반세기는 족히 지나야 할 것 같은 철없는 30대의 일기장 같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시간들의 에필로그이자 프롤로그가 될 이 글을 시작으로, 내 안의 소중한 기억들이 좀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기억들을 만나 그들만의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되기를 바라본다. 안 되면 뭐, 우리의 마지막 보루, “안 팔리면 제가 입을게요!”가 있으니 걱정할 일이 뭐 있을까. | 김윤하 soup_mori@naver.com / @romanflare

note.  [김윤하의 사운드스케이프]는 음악 칼럼리스트이자 라디오PD인 김윤하가 2012년, 시애틀에서 보낸 일상을 사진 한 장과 음악 한 곡으로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Wild Nothing – Parad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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