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의 대중음악은 가장 환상적인 혼돈, 각종 장르의 합종연횡과 더 이상 국지성에 함몰되지 않는 다채로운 전개를 보여주는 시기였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알제리의 가수들을 픽업해 음반을 제작했으며, 데이빗 번과 피터 가브리엘은 경쟁이라도 하듯 다양한 나라의 뮤지션들을 소개했다. 또한 ‘세컨드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 불리던 1980년대 브리티시 팝의 선구적인 시도들은 1960년대 브리티시 팝과 비슷한 양상으로 세계를 휩쓸었고 거기에 NME가 의욕적으로 기획한 ‘C-86믹스 테이프’는 당대 영세 제작자들의 백가쟁명을 이끌며 새로운 자극을 찾는 리스너들의 요구에 적확한 대답이자 1990년대 초의 브리티시 팝의 리비전에도 큰 영향을 준 결과물이었다.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던 1980년대지만 C-86을 통해 소개되던 뮤지션 들 가운데서도 파워 팝과 네오 어쿠스틱 노선의 음악들은 좀 전형적인 ‘브리티시 팝’의 공식을 충실히 이행했던 이유로, 즐겨 듣기에 허들이 낮았다. 나로서는 이를 통해 파워 팝이라던가 네오 어쿠스틱이란 장르를 알게 됐고, 특히 빅 스타(Big Star)와 드와잇 트와일리(Dwight Twilley)가 파워 팝에 관한 탐구에 불을 붙였다면 네오 어쿠스틱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라일락 타임(Lilac Time)과 바로 지금 소개할 판타스틱 섬씽(Fantastic Something)이었다. (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요?) 네오 어쿠스틱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이 용어자체가 구미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영어가 아니라 일본식 영어기 때문이다. 대체적인 인상은 포스트 펑크 시대에 버즈(Byrds)의 재해석(파워 팝 창세기에도 버즈가 있다. 이 형들 진짜…)을 꿈꾸던 이들을 두고 이런 장르명을 붙이고는 한다. 구미의 평론가들은 ‘Twee’혹은 ‘Jangle’이란 수식어를 자주 쓰는데, 쟁글거리면서 윤기가 흐르는 기타에 단정한 하모니, 소울도 재즈도 조금씩은 가져와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멋지게 더해놓고 깨끗한 투명감이 곡 전반에 녹아있는 경우를 지칭한다. 체리 레드(Cherry Red), 사라(Sarah), 블랑코 이 니그로(Blanco Y Negro), 머큐리 UK(Mercury UK)같은 레이블에서 나왔고 90년대 오야마다 케이고(小山田 圭吾, 흔히 코넬리우스라 부르는 그 사나이)가 음악 매체에 소개하던 1980년대 유러피언 팝들을 이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다. 이 분야의 절대적인 고전을 만들어낸 판타스틱 섬씽은 사실 그리스 출신의 알렉산더와 콘스탄틴 베이(Alexander Veis, Constantine Veis) 형제가 결성한 듀오다. 첫 싱글, 그리고 오리지널 바이닐도 잉글랜드에서 발매되었지만 그 인기는 독일과 에스파냐 그리고 일본에서 폭넓게 얻었다. 이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무려 17년을 쉬다 2001년 에스파냐의 시에스타(Siesta)에서 다시 EP 한 장을 발표하고선, 다시 쉬고 있다. 이러다 5년 더 쉬고 한국의 모 레이블에서 신보를 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각설하고. 이들의 정보를 다시 모으기 위해 웹을 뒤지다보니 일본어 위키에서 이 음악에 대한 짧고 오글거리는, 그럼에도 납득이 가는 감상을 찾을 수 있었다. 인용해본다. “1980년대에 등장했던 베이스 형제의 유닛, 그리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다. 그들이 쏟아내는 음의 분위기에서 일부는 [그리스의 사이몬 앤 가펑클]이라 부르고 있다. 음의 요소에 포스트 펑크의 테이스트는 전무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라인과 코러스 웤으로 영원히 시들지 않을 것 같은 푸르른 음을 발표했다.” 판타스틱 섬씽은 1983년 체리 레드(근래는 다소 노선을 수정하여 재발매 계열 레이블의 시금석이 되었다)에서 발표한 싱글을 필두로, 1985년 에브리씽 벗 더 걸(Everything But The Girl)과 지저스 앤 메리 체인(Jesus & Mary Chain)을 픽업했던 레이블, 블랑코 이 니그로의 간택을 받아 한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여기에 담긴 음악은 전술했던 일본어 위키의 수식이 어울리는, 깊어가는 1980년대와는 상이한 사운드를 제시한다. 오히려 이들과 유사성이 가장 높은 그룹은 어떤 날이나 시인과 촌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포크와 스탠더드 팝에 철저하게 기반한 정서는 한국의 1980년대 인디 팝과 공통 분모가 더 크다. 물론 이 쪽이 더 발랄하고 기타 솔로가 적은(사견이지만 이 둘의 기타실력을 다 합쳐도 이병우나 함춘호의 반에도 못 미친다) 경향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이 앨범을 듣고 나면 어떤 날과 시인과 촌장의 앨범도 연달아 듣게 된다. 적어도 1980년대의 동아기획이라던가 하나뮤직에 관심이 있다면 꼭 챙겨들어 볼만한 작품이다. 상쾌한 기타와 은은한 신시사이저의 패드음 그리고 형제 간의 브로맨스라도 터진 것처럼 달콤한 하모니와 깨끗한 멜로디. 모든 것이 새로웠던 시대에 가장 고전적인 형태의 낭만으로 만든 고혹적인 음반이다. 사이버펑크와 미래주의, 컴퓨터가 유행하던 당시를 생각하면 아주 독특한 음악이지만 오히려 첨단의 시대에 구차할 정도로 낭만을 호소해 보편에 닿았다는 점이 오히려 이 앨범을 기억해야할 이유일 것이다. 체리 레드에서 나왔던 싱글은 오리지널 외에도 일본반이 있고 어디에 따로 수록된 적이 거의 없는 이유로 콜렉터블 아이템이다. 오리지널의 카탈로그 넘버는 Cherry 61이고 B면의 [The Thousand Guitars Of St. Dominiques]도 유명하다. 이어서 블랑코 이 니그로에서 1985년에 발표한 그들의 유일한 풀렝쓰 앨범은 BYN-4라는 카탈로그 넘버로 릴리즈됐고 Made in UK가 오리지널이다. 당시 에스파냐와 독일, 그리고 일본에서도 릴리즈됐던 걸로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1990년대 중반에 일본에서 CD로 발매된 후 작년에야 페이퍼 슬리브 재킷으로 재발매됐다. | 박주혁 bandierarec@naver.com / 반디에라 뮤직(Bandiera Music) A&R Fantastic Something – The Night We Flew Out Of The Window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