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11, 2012。 @ Pike Place Market 사진을 본다. 그 곳에 살면서 족히 열 번은, 아니 과장 조금 보태서 백 번은 본 풍경이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s Place Market). 혹시나 궁금해할 이들을 위해 이 곳에 대한 주석을 좀 달자면, 아마 한 번이라도 시애틀을 소개하는 관광책자나 웹사이트를 찾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면식이 있을 그런 유명 관광지다. 마치 모두 짠 것처럼 이 곳을 ‘시애틀’ 을 소개하는 첫 페이지에 언급하는 이상하고 신비로운 재래시장. 하지만 현실은, 여느 ‘관광명소’가 그렇듯, 그렇게까지 자신 있게 일등으로 소개하기엔 좀 머쓱해지는 곳이다. 생선을 던지는 퍼포먼스로 유명한 입구의 생선가게부터 각종 과일과 야채, 향신료 등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긴 하지만 실제 영업보다는 전시용 기능에 치중한 느낌이고, ‘재래시장’이라는 소개와는 달리 지하 대부분은 한 해 내내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타깃으로 한 상품들을 진열해 놓은 ‘마트’같기 때문이다. 물론 오래된 시장 특유의 아기자기함과 스타벅스 1호 점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할 사람들도 적지 않겠지만. 아무튼 그곳을 담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던 날, 난 처음으로 용기를 내 이 곳에 온 상태였다. 그렇다, 고작 다운타운으로 나오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한 나날이었다. 그 즈음의 난 시애틀에 자리를 잡은 지 한 달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집-학교-대학캠퍼스-학교-집의 사이클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원래 그런 사람인 건 아니냐고 묻겠지만, 물론 난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정말 무슨 흑마술에라도 걸린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즐기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즐기지 않았다. 그렇게 ‘찐따’ 같은 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선생님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한마디가 나온 것이다. “간만에 날도 개었으니 다 함께 다운타운에서 참여수업을 해보는 건 어떨까?” 장난하냐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금 난 꼬리 대신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의 고통스텝 같은 심정으로 매일을 버티고 있는데! 잔뜩 가라앉은 비구름 아래 고요히 숨어 지내고만 싶은데! 하지만 싫다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버거웠던 나는 결국 그들을 따라 나섰고, 마침내 이런 사진까지 남기고 말았다. 물론 셔터를 누르는 그 짧은 순간에도, 낯선 이국의 풍경에 감탄하며 기념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반 아이들을 절대 프레임에 넣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었고 츤데레도 이런 츤데레가 없는, 엉망진창 비뚤어진 상태. 그 때 가장 멍청했던 건 누구도 아닌 나였는데, 싱겁게 웃으며 다음 사진으로 눈을 돌렸다. 또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이다. 촌스럽다면서 많이도 찍었네, 무심코 넘기려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똑같은 장소다. 각도도, 광량도, 심지어 스쳐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몸짓조차도 짜고 친 것처럼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장의 사진은 너무나 달랐다. 다른 건 단 하나, ‘우리’였다. 우리가 있었다. 나이만 많지 뭐 하나 똑 부러지지 못한 나를 언제나 큰언니, 아니 엄마처럼 챙겨주던 모니카, 다른 건 몰라도 전세계 모든 언어로 된 욕을 완벽한 발음과 억양으로 익히는 능력 하나만은 기네스북 감이던 마야, 먹는 거라면 말 그대로 자다가도 일어나지만 그렇게 먹는 건 죄다 어디로 가는 지 도무지 팔다리 구분이 안되던 맨디, 제일 어린 녀석이 제일 어른인 척 까다롭기로는 지구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고집쟁이 카밀로,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 웃어보기라도 하듯 부담스럽게 얼굴의 모든 근육을 움직여 활짝 웃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런 우리가, 비단 몇 달 전만해도 서로의 존재조차, 아니 서로가 태어난 나라의 존재조차 모르던 우리가 시애틀 넘버원 관광명소를 배경으로 뒤엉켜 웃고 있었다. 만남이란, 인연이란 삶을 얼마나 벅찬 색으로 채워 가는가. 한참, 정말 한참을 바라보았다. 울지는 않았다. | 김윤하 soup_mori@naver.com / @romanflare note. [김윤하의 사운드스케이프]는 음악 칼럼리스트이자 라디오PD인 김윤하가 2012년, 시애틀에서 보낸 일상을 사진 한 장과 음악 한 곡으로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조월 – 밤밤 | 깨끗하게, 맑게 (2013) * 처음엔 앨범의 히든 트랙을 골랐지만, 해당 곡은 앨범을 구매하는 분들을 위한 선물로 남겨놓고 싶다는 조월씨의 의견에 따라 “밤밤”으로 교체합니다. 히든 트랙이 어떤 곡인지 궁금하신 분들은 부디 앨범을 찾아주시길!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