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스데이 – 기대해 | 기대 (2013) 걸스데이는 “반짝반짝”, “한번만 안아줘”, “너 한눈 팔지마!”(2011), “Oh! My God”(2012)를 통해 까불까불한 매력을 선보이다가, 가장 최근의 곡인 “나를 잊지마요”에서는 보다 세련미 있는 사운드의 서정적인 테마로 성숙미를 보였다. 어떠한 전략에 의한 것이었든 아니든, 이번 앨범의 과제는 두 가지 매력을 봉합하는 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대해”는 묵직하고 베이스가 화려하게 날뛰며 강렬하게 그루브를 몰고 간다. 단단하게 다져진 비트와 신스의 속도감이 완급을 조절하며 힘 있는 곡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비교적 과감한 보컬 딜레이의 모듈레이션과 보컬 편곡이 클라이맥스를 터뜨린다. 흠 잡을 곳 없는 편곡과 믹스에서 음악적 승부수의 기운이 느껴진다. 메인보컬의 고음 또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편곡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세련미를 보인다. 그런데 변조된 보컬과 함께 등장하는 ‘문자가 신경 쓰여’, ‘바보 같은 나는 뭐니’ 하는 전환부가 흥미롭다. 클라이맥스의 ‘네 입꼬리에’와 함께 상당히 취향을 탈 수 있는 연출이라 할 수 있다. 걸스데이의 프로덕션은 커리어의 초반부터 퍼퓸(Perfume)의 영향이 느껴지는 ‘진보적인 아이돌팝’에 대한 욕심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전략적 필요성에 의해) 늘 그것을 완충시키는 요소들을 함께 제시하곤 했다. 그것은 때로는 2000년대 초반 댄스가요의 향취로, 때로는 간지러운 애교로 표현되기도 했는데, 이 곡에서는 전환부들이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기존에 비해 성숙한 스타일의 곡에 까불까불하고 별난 매력을 유지하려는 시도로 보이는데, 그것이 오히려 곡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만든다. 그럼에도 이 부분들은 곡의 구조 속에서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존 싱글들이 대부분 그랬지만, 걸스데이의 곡들은 퍼포먼스와 그에 따른 관객의 예상 반응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인상이 유독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반짝반짝”의 브리지와 간주는 후렴구와 사뭇 이질적이고, “한번만 안아줘”는 1절 뒤의 후렴구와 마지막 후렴구가 갖는 기능이 판이하게 다르다. 이런 구성은 때로는 어색한 접합으로 약점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기대해”의 만듦새는 그런 점에서 인상적이다. 시시때때로 한 마디씩 추가해 호흡을 끌어주는 방식은 여전하지만, 코드와 반주의 변화에 의한 통상적인 버스-브리지-코러스 구조와 거의 직관적일 정도의 멜로디는 사뭇 담백한 뼈대를 이루는 것이다. 대신, 브리지 뒤에 두 마디를 끌어주는 ‘문자가 신경 쓰여’, ‘바보 같은 나는 뭐니’ 부분이 호기심을 자극하며 신선미를 (혹은 사람에 따라서는 뜨악함을) 더해준다. 또한 후렴구에 삽입된 변주(‘널 내게, 널 내게 빠져들게 만들래’)와 후렴 이후(‘너 땜에, 너 땜에 미쳐 다’)는, 단순한 멜로디를 그대로 반복함에도 편곡에 의해 사뭇 다른 느낌을 주고, 마지막 후렴구에서는 가사를 바꿔주거나, 감탄사(‘우우우’)와 가사(‘귀엽게’, ‘널 내게, 널 내게 다가오게’)의 위치를 뒤바꾸는 등의 작은 조작으로 큰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마지막 후렴으로 돌입하는 브리지는 네 마디의 랩, 한 마디의 휴지, 여섯 마디의 멜로디 파트와 일곱 마디의 모듈레이션(‘너의 웃는 네 입꼬리에…’)으로 구성됐는데, 8의 배수 단위를 벗어나는 불안정한 느낌 끝에 모듈레이션 파트에서 리듬섹션이 사라짐으로써 곡의 시간을 멈추는 듯한 효과를 낸다. 보컬의 성부를 얹으며 상승감을 일으키다 곡 전체를 반음 올려준 뒤 다시 리듬을 폭발시키는 것 또한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한국의 아이돌팝은 갈라파고스처럼 폐쇄된 시장 속에서 그 독특한 변천을 거듭했다고 할 수 있다. 일렉트로닉을 기반으로 한 강하고 세련된 사운드, 클럽 음악과는 달리 무대 퍼포먼스를 위해 만들어지는 곡의 구조, 팀의 캐릭터성을 강조할 수 있는 송라이팅과 편곡 등이 모두 그 산물이다. 팀의 기존 캐릭터와 새로운 전략을 봉합하고 퍼포먼스를 위한 복합적 구조를 펼쳐내는 “기대해”의 방식은 그래서 현재 우리 아이돌팝 시장의 매우 흥미로운 단면이다. ‘문자가 신경 쓰여’가 신경 쓰여서 들어줄 수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있고, 지금까지의 걸스데이가 전혀 섹시하지 않았다며 신곡의 콘셉트를 용납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대해”는 2013년 아이돌팝의 이정표 중 하나가 될 만하고, 또한 그에 부응할 만한 퀄리티도 갖추고 있다. 이 입꼬리가, 신경 쓰인다. | 미묘 tres.mimyo@gmail.com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