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없이 살지 못한다

건물 옥상에 젊은 여자가 서 있다. 장기하의 [별 일 없이 산다]의 표지와 비슷한 광경이다. 그렇지만 여자의 고개의 각도도, 그녀의 시선에 담기는 동네 모습도 비스듬하다. 그런데 여자는 추락할 것 같지 않고 거기 계속 그렇게 서 있을 것만 같다. 단, 그녀는 자기가 별 일없이 살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요새 젊은 것들]이라는 책의 저자들이 누구인지 검색하다 보면 발견할 수 있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잘 들을 수 없다. 그렇지만 또렷한 메시지가 있을 것만 같다. 사운드는 어둡고 시끄럽고 무겁고 때로는 나른하고 졸리다. 그렇지만 그저 혼돈스럽지만은 않다. 그 메시지의 내용이 무엇인지, 사운드의 나름의 질서가 무엇인지를 명료한 말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보다는 우리가 푸른새벽 이후 오랜만에 서울의 어떤 곳에서 만들어진 드림팝을 만나게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낫다. 옐로우 키친, 3호선 버터플라이, 잠, 속옷밴드, 비둘기우유, 로로스, 프렌지 등으로 이어지는 ‘로컬 슈게이징’(이런 게 있다면)의 계보를 언급할 수 있겠지만, 그리고 이보다 더 많은 국제적 아티스트들의 리스트를 나열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런 음악을 자주 듣지는 않는다’고 속으로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자유롭게 유동하는 것 같지만 은밀한 훅(hook)이 숨어 있는 멜로디에 유혹될 기회를 자주 찾을 수 있다. 어쿠스틱 기타의 영롱한 소리도 전기 기타 노이즈의 세척이 지나버린 순간에 약간의 해독제로 작용할 것이다. 녹음상태에 대한 아쉬움은 ‘합주실에서 녹음한 데모 트랙들’이라는 정보로 상쇄된다.

슈게이저들이 신발을 바라보면서 우주를 상상하는 시대는 이제 거(去)했다. 이 청춘들은 ‘지상에서 찾아보고 기록할 게 조금 더 있다’면서 카메라를 둘러매고 서울의 여러 동네들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돌아 다니는 청춘들이다. 이들이 찾아다니는 476번지 20호는 어디에도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오직 한 곳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루가 저물어 가려고 하는 오후 세시 어떤 골목길 모퉁이에서 그들을 마주치면 “이젠 어디로 가야하죠? 비상구가 어디죠?”라는 질문이 에코우처럼 울려퍼질 것이다. 2011년, 누구도 그 문을 알지도 열지도 못하고 있는 그 임계 공간의 사운드트랙으로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간지나는 술집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다가 밖에 나와서 오전 세 시의 찬 공기를 맞을 때도. | 글 신호미 homey81@gmail.com

* 이 음반의 음원은 일반적 경로로는 구입할 수 없고 밴드가 직접 올린 http://soundcloud.com/kumca 에서 들을 수 있다.

rating: 3.5

 

수록곡
1. 비상구
2. 오후 세시
3. 476-20
4. 테러
5. 소실 (hidden track)
6. 냄새 (hidden track)

관련 사이트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싸이월드 클럽 http://club.cyworld.com/kumka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소실] 웹사이트 http://sosil.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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