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he. October 5, 2012. Green Lake, Seattle 우리 인생은 결코 길지 않다. 하물며 그 길지 않은 시간 가운데 순전히 ‘멍청하게만’ 보낼 수 있는 건 순간이라 해도 좋을 찰나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멍청함의 정의란 무엇인가. 누군가는 바로 눈 앞에서 놓쳐버린 생의 기회들을, 누군가는 잭애스(Jackass)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돌+아이들을 떠올릴 테다. 그렇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각자의 멍청함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것은 마치 타고난 기질이나 운명, 혹은 EQ나 IQ와 닮았다. 각자 가지고 태어난 멍청함의 총량과 질량은 다르지만, 어찌되었든 한 번 태어난 이상 소비해내야만 하는 인생의 책임할당량은 있다는 얘기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는 내 삶이 배당해 준 멍청함을 시애틀에서 모두 소진해버렸다. 단 한번에. 어떻게 아느냐고? 그야 그 곳에 가기 전까지의 나는 누구에게도 얕보이지 않으려 혼신의 힘을 다하는, 밥맛 떨어지는 애늙은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 기질은 10대 때부터 이어온 것이었으니 시애틀 도착 직전까지 내 멍청함의 총량은 순수 100%, 10점 만점에 10점 상태임에 틀림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한 뒤의 나는, 그야말로 뭐에 홀린 것만 같았다. 나의 시애틀 친구들, 아니 이 우주 최고 멍청이들은 그때까지 꽉 조여만 있던 내 체면의 고삐를 사정없이 풀어버렸다. 돌이켜 보면 ‘안 돼요,안 돼요,안… 돼요, 돼요!!!’의 상태로 ‘법적인 선에서 문제되지 않는’ 갖은 유치하고 멍청한 짓이란 짓은 다 하고 다녔던 것 같다. 새끼 돼지들처럼 소리를 지르며 복도를 뛰어다니고, 가짜 수염을 붙이고 교실에 앉아있고, 등만 붙일 수 있으면 어느 집 마룻바닥이건 상관없이 밤을 보내고, 주말이면 파티가 열리는 아무 집에나 들어가 아무렇게나 놀고, 집으로 가는 길엔 늘 차고지로 향하는 마지막 버스만 잘못 골라 타고, 홈스테이 마더의 노트북과 친구 휴대폰의 액정을 깼다(맙소사). 지갑을 잃어버리거나 열쇠를 방에 둔 채 밖에서 잠그는 정도의 일은 가벼운 돌림병처럼 돌아가며 저질렀다. 걸어도 되는 곳에서 굳이 뛰었고, 조금이라도 웃을 일이 생기면 온 몸의 근육을 통째로 이용해 웃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선생님과 스태프, 친구들 모두 우릴 묶어 ‘Stupid’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페이스 북에 ‘오늘의 멍청이(Today’s Stupid)’ 폴더를 만들었다. 그 멍청했던 하루하루들은 분명 우리의 자랑거리이자 주위 사람들의 즐거움이었다. 하얀 바닥을 내보인 내 멍청함 게이지는 이젠 더 이상 내 인생에 그런 시간은 돌아오지 않을 거라 선언하고 있지만, 대신 난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징표를 얻었다. 멍청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 것, 그리고 그 순간이 당신 인생의 가장 빛 나는 순간으로 남을 거란 걸 절대 의심하지 말 것. | 김윤하 soup_mori@naver.com / @romanflare note. [김윤하의 사운드스케이프]는 음악 칼럼리스트이자 라디오PD인 김윤하가 2012년, 시애틀에서 보낸 일상을 사진 한 장과 음악 한 곡으로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Girls – Lust for life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