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1. 09. 01
장소: 합정동 카페 Le Four
질문: 호미(신현준)
정리: 정구원

 

 호미: 이번 앨범의 작업 과정을 말해주시겠어요? 먼저 곡을 만든 순서라든가….
효선: 1집 나오고 나서, 1집 활동을 하면서 2집 곡들을 쓰기 시작했고, 공연장에서 풀기 시작했어요.
나은: “Little Animal”, “D.B.R.”, “History Of Love”가 앞에 있었고, “Be My Mom’s Lover”랑 “Anthropology”가 비슷했어요.
효선: “You Are My Sunshine”은 5, 6년 전에 써놨던 곡이에요. 원래는 “You Are My Sunshine”을 커버하려고 했는데, 나중에 저작권 관련해서 돈도 줘야 하고 복잡해져서 최근에 가사를 바꿨어요.

호미: 본격적인 레코딩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나은: 데모가 10월 말에 완성되었어요.
효선: 3년 전부터 비트를 조금씩 만들어 보기 시작하고 라이브 때 연주했었어요. 그걸 파스텔에 ‘이렇게 갈 거다’라고 보낸 거죠. 본격적 녹음은 작년 11월~12월부터 파스텔 스튜디오에서 2-3개월에 걸쳐 작업했어요. 믹싱은 러프하게 프로듀서랑 1~2월부터 작업을 하다가, 5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완전히 붙어서 작업해 완성시킨 거죠. 한 2개월 내지 3개월에 걸쳐서 타이트하게

호미: 앨범 구성을 보면 1, 2, 3번이 ‘신스 팝’스러운 곡이고, 4, 5, 6번은 굳이 신스 팝이 아니라도 해도 될 만한 곡들이네요(“History Of Love”는 어쿠스틱 기타까지 들어가네요). “You Are My Sunshine”은 IDM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인 스타일이고, “Be My Mom’s Lover”는 이상 모든 게 다 들어가 있는 것 같고….
효선: 잘 보신 거네요(웃음). 제가 좋아하는 방식은 아침에서 밤으로 가는 것이에요. 그리고 리듬의 플로우도 생각을 했어요. 경쾌한 곡이라든가 업템포의 리듬처럼 뭔가 낮을 환기시키는 정서가 있는 곡으로 문을 열어주었고, [중반부에 있는] “D.B.R.”이라든가 “Falling Falling”은 나은이의 기타 프레이즈를 생각하면서 만든 곡이죠. 그러니까 신스 팝으로만 갈 수 없는 곡이라서 고생을 많이 한 작업들이기도 해요. ‘이 프레이즈를 안 죽이고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마음에 걸리고, 시간도 많이 걸렸고. 사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버전을 만들었어요. “Bike”나 “Anthropology”같은 곡에도 리듬 기타가 들어가지만 그건 비교적 쉽게 갔는데, 나은이의 강점은 멜로디라든지 프레이징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에 그런 점을 많이 생각했던 곡들이 4번과 5번이었어요.

호미: 기타 밴드와는 작업 방식이 많이 다른가요?
효선: 제가 이것저것 다 조금씩 하거든요. 하나를 잘하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곡마다 다른데… 전체적으로 본다면 그냥 제가 곡을 만들고서 기타 자리를 비워 놓고 나은이한테 주는 형식이지만, 무엇을 먼저 했는가는 곡마다 달라요. “Anthropology”는 리듬이 먼저였고 ‘루프가 마음에 드는데 이걸 써서 해보자’로 시작해서 가사든지 뭐든지 뒤에 따라 넣은 경우예요. “Little Animal”은 머리속에 올드 스쿨 같은 간단한 비트와 코드[쓰리 코드]가 있었는데, 가사는 이미 써놓은 게 있었어요. “Bike”는 멜로디가 먼저 있었고, “Love Me Like Nothing’s Happened Before”는 기타 코드와 가사가 먼저였어요.

호미: 엉뚱한 질문이지만, 기타 밴드로도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인데, 신스 팝으로 연주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효선: 우선은 제가 그 장르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처음에 음악을 시작한 방식과 관련이 있어요. 혼자서 음악을 시작한 경우니까, 컴퓨터로 하면 혼자서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처음에는 포크 같은 노래도 있었지만 그게 완성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제가 어떤 한 악기를 굉장히 잘 다루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한 악기로만 뭔가 표현하는 데 무리가 있었는데, 제가 하고 싶은 건, 제가 모든 걸 다 만드는 음악이었어요. 드러머를 굳이 쓰고 싶진 않았고, 드러머 없이도 가능한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한 명이 더 같이 일하는 것 자체가 부담되는 것이니까. 결국은 그냥 개인적인 음악을 하고 싶었던 것이죠.

호미: 이건 질문이라기보다는… 인터뷰 준비하면서 앨범 곡들의 조성을 살펴보니 ‘B-C#-A-G-D-E-E♭-D’인데 맞나요?
효선: 그건 외우지 못하겠는데요(웃음). 우리 “Anthropology”도 코드 몰라가지고 핀잔먹은 적 있는데(웃음). 규칙성은 없어요. 차라리 보컬 노래를 들으면 음역대에 규칙성이 있을 거예요. 제 음역대가 다양하지 않아서 항상 비슷할 걸요? 노래 쪽에 들어가면.

호미: 멜로디가 밝고 경쾌한 편인데, 훅이 인위적으로 강하진 않은데요. 버스(verse)가 오히려 더 캐치할 때도 있고, 관습적 팝송처럼 브릿지가 선명하지도 않고 형식이 단순한 편이네요. 제 질문은, 코러스(후렴)를 강조하는 걸 자제하는 편인가요?
효선: 맞아요. 일렉트로니카에도 파워풀한 것이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음악을 듣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제 목소리와 맞지 않는 거예요. 보컬의 토널리티(tonality)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제가 보컬리스트로서 파워풀하지 않고 성량이라든지 지른다든지 이런 걸 표현하는 데 문제가 있죠. 드라마틱하거나 소울풀한 걸 싫어하는 게 아니지만, 어쨌든 노래가 먼저니까요. 예를 들어 리듬이 훵키하더라도 제 목소리가 들어가면 소프트해지거든요. 뭔가 인위적으로 꾸민다고 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심플하게 작업하는 걸 좋아하고, 그냥 흘러가는 걸 좋아하고, 그렇게 해야 편해요. 이게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때는 어떤 강력함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제가 힘이 없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저희 힘은 좀 다른 것 같아요.

호미: 요즘은 인디 일부에도 이른바 ‘뽕끼’ 있는 훅이 강한 경우가 많던데.
효선: 제 목소리가 약점이겠죠. 어떤 시선에서 볼 때는 이게 가창력이 있거나 파워풀한 게 아니니까 힘이 없어 보이겠죠. 제가 보컬 트레이닝도 2개월 받았어요! 선생님이 가수였는데, ‘배에 힘 좀 주라고!’하는데 저는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고요. “You Light Up My Life” 같은 곡을 시키는데 힘주면 배에 쥐가 나는데 어떡해요? (웃음) 저한테 맞지 않는 옷을 자꾸 입으라고 하는 거니까 나중에는 자기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하더라고요. 저도 힘들었죠. 그러니까 결국 송 라이팅도 선명하고 파워풀하고 것과 제 목소리의 톤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죠.

호미: 아, 제 질문은 조금 다른 건데, 어떤 곡들을 들으면 보컬의 후렴(코러스)이 기억나지 않고 버스나 리듬이 기억나더라고요. 듣고 나서 ‘어, 이상하다’라고 생각했어요. 음악이 흘러지나간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효선: 제가 원래 굉장히 산만하고, 무질서하고 케이오틱(chaotic)해요. 그래서 곡마다 방향성이 같질 않아요. 곡 작업을 할 때도 어떤 곡은 기타로 했다가 다른 곡은 리듬으로 했다가 이렇듯이…
나은: 생각해 보니까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은 흘러가는 것들이 많아요. 거기에 미학이 있잖아요. 사실은 많은 노래들이 훅이 없어도 마음의 정서를 감화시키는 좋은 음악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호미: 다른 각도에서 질문한다면, 리듬이 강한 음악인 것은 맞는데 그렇다고 정박의 리듬도 아니라서 ‘실전용’ 댄스 음악은 아닌 것 같네요. 이 음악을 들으면서 어떤 ‘춤’을 추는 게 이상적인 걸까요?
효선: 추상적이죠. (웃음) 그러니까 약간 ‘사각 댄스’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덩실덩실’일 수도 있는 거고, 공연장 와서 자연스럽게 흔들 수 있는 바디 무브(body move)랄까….

호미: 다음 질문은, 사운드가 일부러 조금 비워서 공간감을 만든 것 같은데, 맞나요?
효선: 저희는 너무 찼다고 생각하는데요. (웃음) [호미: 제가 틀렸군요. (웃음)] 공연을 하는 와중에도 피드백을 듣잖아요. ‘너무 많이 차 있지 않느냐’는 소리를 듣는 곡들이 있어서 빼고 빼는 식으로 했어요. “Little Animal”은 조금 비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Anthropology”도 좀 비어 있는 곡에 속하기는 하죠.

호미: 부끄럽게도 제가 요즘 외국 음악을 많이 들을 시간이 없는데, 혹자는 스웨디시 팝이나 프렌치 팝 같은 느낌, 어쨌든 ‘유럽’의 느낌이 있다고 하더군요. 혹시 레퍼런스 같은 게 있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한데요.
효선: 그런데 저는 레퍼런스가 복잡하네요. 좋아하는 팀들은 있어요. 히쿠바(Hecuba)나 글래스 캔디(Glass Candy) 등. 그런데 저는 영향 받으려고 해도 절대로 따라하지를 못해요. 제가 하는 식으로 하는 게 훨씬 편해요. 좋아하는 음악이 있고 그걸 듣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걸 해 보고 싶다’고 해서 노력할수록 풀리지가 않아요. 사람들이 ‘유럽 음악에 가깝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건 동의해요. 왜냐하면 유럽이 멜로디 전통이 더 강하고 미국은 뭐랄까 되게 해체적이고 하고 싶은 거 막 하는 분위기잖아요. 비트 자체도 되게 다르고. 유럽은 백인 쪽 성격이 강하고, 미국은 블루스라든지 여러 가지 루츠(roots)가 있기도 하고요. 저희 음악은 사실 멜로디적인 것이니까, 미국의 파워, 무질서함, 다 해보는 것보다는 유럽의 정돈되고 소프트한 느낌이 들 것 같아요.

호미: 영어로 가사를 쓰고 있는데, 한국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정서나 느낌이 있을 것 같아요. 그게 뭔지 말로 표현하긴 힘들겠지만 설명해볼 수 있겠어요?
효선: 당연히 한국어로 표현할 수 있는 정서가 있고,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 정서가 있는 거겠죠. 그런데 ‘이런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서 이렇게 썼다’라기보다는 트램폴린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렇게 하고 싶은 초이스(choice)였다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영어 가사의 경우 많이들 물어 보는데 [호미: 불행히도 물어볼 수밖에 없어요. (웃음)] 예, 물어볼 수밖에 없겠죠! 저는 교포도 아니니까요. 쉽게 말하면 ‘이게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이니까’이에요. 제가 어려운 가사를 쓰는 것도 아니고, 제가 갖고 있는 한도 내에서 제가 하려고 하는 장르에 잘 어울리고 쉽게 갈 수 있는 방향이었어요. 제가 뭔가 말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그게 영어로 표현하면 쉬워진다는 것이죠. 달리 말하면 ‘트램폴린의 음악이 한국 대중음악의 전통과는 거리가 있으니까 영어 가사가 더 어울리니까’이겠죠. 아마도. 그러니까 저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한 건데 ‘굳이 왜 영어 가사냐?’고 물어보신다면, 그건 제 선택인 것 같고, 이걸 이렇게 가겠다는 것은 사실 가사 뿐만 아니라 곡 쓰는 스타일이나 모든 게 다 선택의 문제일 수 있는 것이죠.

호미: 그러면 혹시 ‘이런 장르나 스타일의 음악에 가사의 언어는 영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건가요? 아니면 ‘영어일 수밖에 없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최상의 언어는 영어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베르디 오페라의 아리아는 이탈리아어로 불러야 하고, 슈베르트 가곡은 독일어로 불러야 하듯이.
효선: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왜냐하면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1집 음악을 들어보면 루프가 나오지만, 한국어 가사로 되게 멋진 곡을 써내죠. 이렇게도 할 수 있는 거고 저렇게도 할 수 있는 거죠. ‘어디에는 딱 이거다’는 식의 답은 없는 것 같아요. ‘신스 팝에는 영어 가사’인 것은 아니라는 거죠.

호미: 하나의 예인데, 독일 그룹 랄리 푸나(Lali Puna)의 경우 영어 가사로 노래를 부르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독일 사람들은 내 음악 별로 안 듣는다’였어요. 이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각국의 국제적인 팬들이라는 것이죠. 트램폴린의 경우 영어로 노래 부르는 것이 한국을 넘어서 원대한 계획이 구체적으로 있는 것인가요?
효선: 그러고 싶습니다, 당연히. 왜 그러고 싶지 않겠어요? 공연도 외국에서 하고 싶고, 외국에 알려지고 싶고. 지금은 ‘이렇게 할 거야’라는 게 있는 건 아니지만, 파스텔과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에요.

호미: 영어 가사를 쓸 때 라임을 의식하고 쓰는 것 같네요.
효선: 왜냐하면 리듬이 있으니까요. 곡 자체의 리듬이 있으니까. 어쿠스틱을 하면 약간 다른 식의, 이런 식으로 딱딱 떨어지는 거 말고 다른 게 되겠지만, 강한 리듬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같이 가야죠.

호미: 그러고 보니까 공항에서 경험을 노래한 “D.B.R.”에서 드러나듯 가사의 메시지도 무언가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한 경험을 담고 싶은 욕망이 보이네요. 땅에 발붙이고 있는 느낌보다는 어디론가 이동하고 흘러 다니는 느낌이랄까. 살고 있는 것은 한국이지만 상상은 유럽에 가 있다고 볼 수 있나요?
효선: 예. 그런 게 제 정서에 분명히 있어요. 어릴 때부터 저는 제 안에 그런 게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저는 특별히 영어 학원 같은 곳에 다니지 않았는데 중학교 1학년 때 혼자 도서관 가서 [잭과 콩나무] 같은 걸 영어로 읽고 있었거든요. 여기 말고 다른 곳에 대한 지향성이 있었던 것 같네요.

호미: 음악을 어떻게 접해서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랑 같이 홍대까지 오게 되었는가.
효선: 저는 울산 출신이고, 대학교 올라올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어요. 나은이 경우는 음악 집안 출신이잖아요. 저는 그런 영향은 전혀 없었고 부모님들이 듣던 음악은 앤디 윌리엄스(Andy Williams)나 클래식 음악이었어요. 저는 오히려 초등학교 때 쇼 프로그램을 꼭 챙겨봤어요. ‘가요 톱텐’. 제가 처음에 가요 코드집이랑 가사집을 샀던 것은 도시와 아이들과 이치현과 벗님들 때문이었거든요. 그 때 “달빛 창가에서”와 “집시 여인”을 너무 좋아했어요. [호미: 실례지만 연세가? (웃음)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조웅도 이치현을 좋아했다고 하던데요? (웃음)] 그거 너무 이해 가죠. “집시 여인”같은 경우, 여기 있지만 이국이기도 한 정서나 감각이 있잖아요.

호미: 그러면 홍대앞 음악과 접촉한 경험은 언제부터죠?
효선: 고등학교 때까지는 PC통신 같은 것도 안 했어요. 처음에 대학 올라오자마자 친구가 저를 붙잡고 드럭에 데려갔는데 그때가 마침 드럭 첫 공연이었어요. 크라잉 넛이랑 옐로우 키친이랑. 그걸 보고 울산 촌애가 충격을 먹은 거죠. 그전까지는 “건스 앤 로지스의 액슬 로즈랑 결혼할래” 이러고 있었는데. (폭소) 딱히 음악을 찾아 들은 것도 아니고, ‘아, 나도 하고 싶다’고 생각은 하고 실제로 친구들이랑 합주실 몇 번 들락날락하면서 팀(밴드)을 해 보자고 해서 뭉치기도 했는데, 항상 곡을 만들기 전에 끝났어요.

호미: 학교 캠퍼스에서 음악활동을 한 것도 있었나요?
효선: 노래패 ‘한소리’에 조금 있었어요. 거기밖에 없었으니까 악기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들어갔던 것이죠. 오래 있지는 않았고, 1년 조금 넘게 하다가… 특별히 그 안에서 뭔가를 한 게 아니라 공연하면 노래패 공연 한 번 정도 했던 것 같고. 잠시 발 담고 있다가 흐지부지하게 나온 케이스에요. 한소리는 작곡을 하는 데가 아니라 그냥 노래패였죠. 세 명이서 코러스를 할 때 ‘몸 좀 제대로 움직여라. 혼자서 이상하게 춘다’고 선배 언니들한테 혼난 기억이 있네요. (웃음)

호미: 그러다가 영국 등 외국에 체류했던 경험이 있다고 들었네요.
효선: 학교 다니던 중인 1999년에 가서 1년 있었어요. 처음에는 뭔가 의도하고 간 게 아니라 배낭여행하러 간 건데 영국에 있으니까 이것저것 듣기 시작하면서 굉장히 좋았어요. 다문화사회에 처음 들어가 보는 것이었고, 이전에 보던 것보다 되게 다른 걸 많이 봐서 문화충격 같은 것도 있었어요. 그래서 여행을 더 안 가고 남은 돈 모아서 ‘1년 있겠다’고 생각하고 15일 만에 일을 구해서 바로 시작했어요. 그때 메이시 그레이(Macy Gray), 모스 뎁(Mos Def) 등이 인기가 많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거기서는 TV 토크쇼에도 나오고 그것들을 보다 반해서 앨범도 사고 그랬어요. (웃음) 그래서 밴드 음악 말고 다른 것도 많이 듣게 되고 언더월드(Underworld) 같은 거 듣고 클럽에서 춤추고 놀고 그랬어요. 그 뒤에 돌아와서 학교를 마치고 일을 2년 반 하다가 그만두고 여행하고, 다시 다른 곳에서 1년 반 일하다가 다시 한 두 달 여행하면서 살았어요.

호미: 그렇게 잘 놀다가 (웃음) 음악을 진지하게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누구를 만나서 용기나 도움을 얻었다거나….
효선: 그런 생활을 계속하다가 ‘이제 말만 하지 말고 진짜로 음악을 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생각해서 2005~6년쯤 독립을 했어요. 어쨌든 제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일하면서 돈 모아서 독립했고, 그 뒤에는 일하면서 악기를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나은이의 경우는 공연을 하면서 뮤지션 사회의 일부가 됐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혼자서 해보겠다고 한 케이스라서 뭘 해도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 무렵 친구로는 네눈박이 나무밑 쑤시기와 오르겔 탄츠에서 기타 치던 김미영이에요. 1집 데모가 쌓였을 때 (김)남윤이와 함께 일하게 된 것이었고요. 그리고 충한이라는 친구가 ‘쿠사리’를 주면서 기계치인 저에게 미디를 가르쳐 주었죠.

호미: 이제 나은 씨도 얘기해 주세요. (웃음)
나은: 저희 집이 창원에서 악기점을 한 이야기는 예전에 한 적이 있죠? 브로콜리 너마저의 (윤)덕원 오빠가 고등학교 2년 선배예요. 처음 밴드를 만든 건 중학교 때였어요. 본격적으로 홍대앞에서 밴드를 한 건 대학교 새내기 때 선배를 만나가지고 하게 되었죠. 저희 과(신방과)에 선배들이 만든 RCM이라는 밴드 동아리가 있었어요. 사회과학대 단과대 동아리였는데 거기에 기인과 귀인이 다 섞여 있는 곳이었어요. 그때 학교 단과대 안에 소리패도 있고, 가요 카피하는 밴드도 있었는데, RCM은 주로 팝을 카피하는 동아리였어요.

호미: 아이 러브 JH(I Love JH)가 음반을 제작하게 된 계기나 과정은?
나은: RCM에서 떨어져 나온 게 아이 러브 JH이죠. 다 학교 선배들이었어요. 앨범을 제작해 주기로 했던 분은 김경모 씨인데, 줄리아 하트 원년 멤버이고 이스페셜리 웬(Especially When)이라는 밴드 했던 분이죠. 그러는 바람에 석기시대 팀들하고 친하게 되었죠. 그 전에는 13스텝스 같은 GMC의 하드코어 밴드들하고 많이 놀았어요.

호미: 이번에는 비즈니스 얘긴데요. 첫 번째 질문은 1집은 엔티움이라는 곳에서 배급을 했네요. 그 뒤 파스텔로 오게 된 과정은?
효선: 엔티움은 유통사(배급사)이고 포모는 델리 스파이스의 (윤)준호 씨가 만든 레이블이었어요. 그때 데모가 (김)남윤이한테 있었고 남윤이가 포모에 들어오라고 해서 갔는데, 앨범이 공장에서 프레스 되려는 시점에서 레이블이 문을 닫았어요. 준호 씨가 미안하다고 하면서 프레스 된 물건을 주면서 ‘엔티움이라는 유통사와 개인 사업자로 계약을 해라’고 해서 그렇게 된 거죠. 그래서 그 뒤로는 레이블 없이 1집 앨범으로 활동하다가 2년 전 파스텔에 2집을 계약하면서 들어가게 된 거죠. 그때 빵에서 공연을 하는데 불싸조의 (한)상철이 파스텔에 들어오고 싶으면 연락하라고 명함을 줬어요. 그때 저는 혼자만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점을 지나 힘이 약간 딸려서 ‘어디에 들어가야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었죠. 파스텔은 대중적인 팀도 있지만 마이너한 팀도 같이 있잖아요. 그 둘 다가 마음에 들었어요. 지금 레이블에서는 잘해주고 있어요. 제가 약간 게으르고 혼자서 뛸 수 있는 자립형 뮤지션은 아니라서, 저한테는 소속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이 리믹스 앨범과 나온 것은 저와 프로듀서 은천 씨가 함께 제안해서 진행을 했지만, 앨범 발매 전부터 웹상에서 릴리스를 하라는 것은 파스텔의 아이디어였던 거죠.

호미: 일종의 사전 프로모션이네요.
효선: 네. 저는 그런 생각은 안 하고 있었거든요. 원래 곡들보다 리믹스가 먼저 알려지면 안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단 파스텔 쪽에서 그렇게 밀어붙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좋았던 것 같아요. “Anthropology” 커버 영상 같은 것들도 파스텔 쪽에서 전야제를 좀 만들어 보세요. (웃음) 그러니까 레이블의 아이디어들이 있죠. 이런저런. 이쪽에서 자기들이 경험 때문에 갖고 있는…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레이블의 아이디어랑 같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은 확실히 들고요.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호미: 파스텔에서 음악을 만드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네요.
효선: 저희 음악은 마이너하고 뾰족한데, 파스텔은 기본적으로 대중적이고 여성적인 레이블이잖아요? 여성적인 환경에서 일하는 건 좋아요. 어떤 포인트를 잡을 때는 조금 희석되는 면이 있기는 하죠. 트램폴린이 파스텔에서 나오니까 조금 더 ‘팝’해진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고….

호미: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 두 사람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고 있나요? 예를 들어 회사원으로 사는 것과 비교한다든가….
효선: 트램폴린 2집 활동을 나은과 같이 하기로 해서 어떤 규율이나 모양새를 갖고 있기는 해요. 그렇지만 실제로는 매일 둘이 같이 할 수 있는 팀은 아니에요. 단순히 예를 들어 악기 파트의 경우 신디사이저로 제가 네 파트를 하고 나은이가 하나를 하는데, ‘매일 나와’라고 할 수는 없죠. 그래서 트램폴린이란 집을 짓고 나은이를 불러서 ‘기타를 쳐다오’라고 초대하는 모양새인 거죠. 그런데 제게는 2집이 분기점이에요. 삶의 한쪽이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고, 다른 한쪽이 음악가로서의 삶이라면, 이 분기점에서 저는 후자(음악가)를 택하고 거기에 가까운 삶을 살려면 필요한 게 있어요. 어느 것이든지 그렇잖아요? 직장에 나가서 내가 일정 정도의 수입을 받으려면 8시간~10시간을 일하고, 어떨 때는 주말을 희생해야 뭔가를 이루잖아요? 여기도 하나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결국은 어떤 습관을 가져야 하고 시간 관리도 해야 하죠. 그런 것들을 하지 않는 이상은 그냥 자존감을 위해서 하는 단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데, 저는 그러지는 않으려고 해요.

호미: 실례가 안 되면, 간단히 말해서 ‘음악만 해서 생활이 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효선: 일종의 테스트를 하고 있고, 8개월 동안 그래 왔어요. 지금 저한테는 주말도 없고 8시간 넘게 매일 일했거든요. 생활이랑 병행을 했죠. 지금도 저는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나은: 저는 하자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사실 지금 쉬어야 하는데 사실…. (웃음) 현실을 알고는 있죠. 제가 되게 마이너한 뭔가를 하고 있고, 여기 시장이라는 게 아직 좁으니까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 뭔가 다른 것들을 찾아야 되고… 내가 그냥 열심히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지금도 공연장 가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호미: 마지막에서 두 번째 질문인데, 음악을 통해서 ‘여성 정체성’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나 의도가 있는 건가요? 식상한 질문이죠? (웃음)
나은: “여성으로서 자의식을 갖고” (웃음)
효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음악을 만들지는 않았는데, 그런데 당연히 여성적이겠죠. 그거는 내가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그런데 신현준 씨는 음악을 들으면서 ‘아, 이건 여성적 사운드인가?’라고 듣나요? [호미: 아뇨. (웃음)] 물론 ‘남자가 일렉트로니카를 하면 이렇게 안 나오겠다’라는 생각은 하죠. 여자가 일렉트로니카를 하기 때문에 ‘이런 게 좀 흥미롭다’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걸 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 없으니까. 그냥 그런 거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어떤 공간에 있으면 인생 경험, 사회적 계층, 성별, 인종에서 나올 수 있는 게 다 있겠죠. 그걸 꼭 여성으로 국한시키는 건 조금 그래요.

호미: 음악에서 여성성이라는 게 아무래도 어쿠스틱한 악기와 연관되어 왔고, 최근 들어 어쿠스틱 기타를 치는 여성이 하나의 관습을 형성한 것 같아서 해본 질문이었어요.
나은: 그렇게 생각 안 해봤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웃음) 아니, 그러니까 혼자서 다 할 수 있잖아요.
효선: 그런데 어느 장르든 안 관습적일 수는 있는데 일렉트로니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어요. 뻔한 일렉트로니카도 너무 많고 어쿠스틱 악기로도 충분히 비관습적인 음악을 할 수 있어요. 장르와 혁신은 상관이 없어요.

호미: 인터뷰 말미에 제가 ‘관습적으로’ 하는 질문인데, 제일 좋아했던 책이나 영화나 음악 가운데 아무거나 말씀해주세요.
효선: 어렵다. (웃음) [현준: 다들 어려워하더군요. (웃음)] 왜냐하면 잘 대답해야 하잖아요. (웃음) 책은 헤밍웨이나 체홉처럼 간결한 언어로 쓰는 사람들을 좋아하고요. “History of Love” 같은 경우에는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시를 처음 보고 뭔가 떠올렸던 게 있어서 쓴 것이에요. 영화는 이것저것 많이 보았는데 ‘그랑 블루’ 너무 좋아하고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물이라서. 음악은 너무 많은데 세르주 겡스부르도 좋아하고 시인과 촌장도 좋아해요.

호미: 김나은이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는?
나은: 넬스 클라인(Nels Cline). 솔로 앨범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웃음), 밴드에 있을 때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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