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4871273634022에피톤 프로젝트 | 유실물 보관소 | 파스텔 뮤직, 2010

 

우리는 어쩌면 고아들처럼

에피톤 프로젝트는 90년대 가요의 특정 스타일이던 ‘고급가요(클래시컬한 대중가요?)’의 맥락에 존재한다. 80년대에 이문세와 이영훈이 제시하고 90년대 동아기획이 발전시킨 이런 스타일의 ‘가요’는 특히 90년대 중반 이후 전람회와 유희열(토이), 윤종신과 이적, 성시경, 루시드 폴로 이어지는 계보 위에 기반을 다졌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일종의 ‘중간 벨트’를 형성하는 이 음악가들은 언더그라운드와 메이저, 인디와 메이저의 틈을 메우며 산업과 취향, 시장과 소비에 있어 의미심장한 역할을 수행한다.

음악적 양식과 정서적 유사성에서 에피톤 프로젝트와 이 ‘중간계’ 음악가들과의 거리는 파스텔 뮤직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대중성으로 수렴된다. 그들은 상징적으로 KBS 2FM [유희열의 라디오천국]과 재주소년이 지목하는 시장을 공유하며 가요의 경계에서, 인디 록/팝과 메이저 가요를 동시에 소비하는 계층을 주 고객으로 삼는다. 다소 무리하게 일반화하자면, 이 소비자들은 홍대 앞(not 인디 씬)을 거점으로 특정한 문화취향을 향유하는 계층이자 동시대의 속도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요컨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감수성을 두루 취합하는 계층이다. 여기서 추출되는 키워드는 대도시, 20대, 그리고 감상주의다.

이 맥락에서 에피톤 프로젝트의 앨범 제목이 ‘유실물 보관소’인 건 쉽게 수긍된다. 주로 상실감과 후회, 그리움과 연민과 같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을 다루는 가사의 내러티브도,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나일론 기타와 현악기가 주도하는 가운데 가벼운 노이즈가 끼어들거나 미성의 남녀 보컬이 잔향 속에서 공간을 가득 채우는 사운드 구축도 마찬가지다. 그때 이 음악은 온 힘을 다해 대도시의 낭만적 우울을 겨냥한다. 우울마저 낭만으로 치환되는 까닭은 노래의 화자와 수용자 모두 경험적 기반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미숙한 경험은 감정의 클리셰로 대체되고 슬픔은 막연하게 떠돈다. 그런데 이런 답습은 역설적으로 어떤 사실: 우리는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지만 정작 아무하고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노래의 주인공들은 오로지 혼자서 무언가(이를테면 무서움 같은 것)를 견디거나 한없이 그리워하다가 막연하게, 실패한 채로, 골목을 배회하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와 선인장을 돌본다. 요컨대 우리는 모두 이 도시에서 고아고, 또 고아인 채로 태어나 살고 사랑하다 죽는다. 이 덧없는 감상주의는 때로는 거추장스러우면서도 때때로 사무치는데, 그 정서의 모순이야말로 에피톤 프로젝트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시장의 동력일 것이다. | 차우진

rating: 6/10

 

수록곡
1. 유실물보관소
2. 반짝반짝 빛나는 (vocal 조예진 from 루싸이트 토끼)
3. 한숨이 늘었어 (feat. 이진우)
4. 선인장 (vocal 심규선)
5. 좁은 문
6. 이화동 (feat. 한희정)
7. 해열제 (vocal Sammi)
8. 시간
9. 손 편지
10. 서랍을 열다
11. 오늘 (vocal 심규선)
12. 봄의 멜로디
13. 유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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