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pe Fiasco | Lasers | 1st And 15th/Atlantic (2011)

사장님의 방침 

단언컨대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는 21세기 힙합의 희망이었다.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The Late Registration](2005)에서 단 하나의 짤막한 버스(verse)만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후 발매된 본인의 앨범 [Food & Liquor](2006)와 [The Cool](2007)은 그간 메인스트림에서 한동안 자취를 감추고 있던 ‘의식 있는 리릭시스트’의 부활을 알렸다. 물론 그의 음악이 대중적으로도 어필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싱글 “Superstar”는 플래티넘을 기록하였다). 루페 피아스코는 “힙합은 죽었다”고 외치는 자와 “힙합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말하는 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슈퍼스타’로 보였다.

하지만 그 후 ‘나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던 세 번째 앨범 [LupEND]는 팬들의 걱정 섞인 기대감과 달리 발매가 차일피일 연기되었고, 2007년 이후 그의 활동은 단 한 장의 믹스테이프 [Enemy Of The State: A Love Story](2009)와 몇 번의 피처링 참여에 그쳤다. 그렇게 루페가 대중의 레이더망에서 자취를 감춘 사이 그의 은퇴 선언은 조용히 번복되었다. 결국 [LupEND]는 [Lasers]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지만, 여전히 앨범이 발매되진 않았다. 그리고 4년간 침묵을 지키던 루페는 2010년 후반기에 들어서야 앨범 연기에 대한 책임을 소속 레이블 애틀랜틱 레코드(Atlantic Records)에 돌렸고, 팬들이 항의시위를 벌이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서야 비로소 [Lasers](2011)가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Lasers]에 대한 첫 느낌은 당혹감이다. 앞서 언급한 “Superstar”는 물론, 지난 두 장의 앨범에서 “Kick, Push”, “Hip-Hop Saved My Life”, “Dumb It Down”을 비롯한 많은 곡들을 담당하며 사운드 상으로 지대한 공헌을 했던 프로듀서 사운드트랙(Soundtrakk)의 이름은 라이너노트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 빈자리를 꿰찬 이들은 알렉스 다 키드(Alex Da Kid), 케인 비츠(Kane Beatz) 등 현재 메인스트림 랩 씬의 최전선에 서 있는 프로듀서진과 스카일라 그레이(Skylar Grey), 트레이 송즈(Trey Songz)처럼 차트에서 강세를 보이는 R&B 싱어들이다. 당연하게도 참여진의 변화는 그대로 사운드 면에서의 전환으로 이어졌다.

[Lasers]에는 여러 가지 스타일이 공존한다. 우선 기존의 루페와 비교적 유사한 “Letting Go”, “Beautiful Lasers (2 Ways)”와 “All Black Everything”등의 트랙이 있고, 그와는 반대로 전형적인 랩-록 트랙 “State Run Radio”가 있다. 알렉스 다 키드의 곡인 “Words I Never Said”는 지금껏 그가 만든 싱글들(“Love The Way You Lie”, “I Need A Doctor”)의 스타일을 훅 담당이 스카일라 그레이인 점까지 포함하여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I Don’t Wanna Care Right Now”, “Break The Chain”은 완연한 일렉트로-합의 형태를 띤다. 물론 이러한 곡들은 모두 루페가 꾸준히 추구해 온 탈-힙합적인 사운드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그가 여태껏 구사하던 사운드, 즉 장르의 경계선을 넘나들면서도 확실한 구심점을 힙합에 두고 있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앨범의 경향은 그 반대를 향한다. [Lasers]에서 루페의 탈장르성은 크로스오버를 통한 팝 성향으로 변모하여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루페와 비슷한 탈장르적 지향성을 지니면서도 훨씬 대중적인 노선을 선택한 바비 레이(B.o.B.)의 앨범을 연상시킨다. [Lasers]가 판매고를 걱정한 레이블 측에 의해 발매가 고사되어 온 앨범이라는 점과, 바비 레이가 다름 아닌 애틀랜틱 레코드 소속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갑작스러운 노선 수정에 레이블의 의도가 개입했음을 유추하기란 어렵지 않다. 모디스트 마우스(Modest Mouse)의 히트곡 “Float On”을 샘플링하여 ‘대중적인 훅’을 만들고 구조적으로도 “Superstar”를 재생산하는, 다시 말해 노골적으로 차트에서의 성공을 노리는 듯 보이는 첫 싱글 “The Show Goes On”의 가사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레이블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이라는(“그들은 널 노예처럼 대접하지, 네 영혼에 쇠사슬을 채우고 등에다 채찍을 휘둘러”) 사실은 창작의 방향성을 둘러싼 아티스트(루페)와 레이블(애틀랜틱) 사이의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루페는 남성 라이프스타일 잡지 〈Complex〉와의 인터뷰에서 “The Show Goes On”이 ‘앨범이 발매될 수 있도록 첫 싱글용으로 제작된 트랙’이며, [Lasers]가 레이블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해 만들어진 작품일 뿐 아니라 자신이 이 앨범의 작업과정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사실 레이블의 간섭과 루페 자신의 불만족, 비교적 전면에 드러난 팝 성향 등과는 별개로 [Lasers]는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과 이에 대한 미국의 묵인, 그리고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동시에 드러내는 “Words I Never Said”나 일종의 대체역사물이라 할 “All Black Everything”이 보여주듯, 그의 가장 큰 장점인 리릭시스트로서의 측면 역시 건재하다. 만약 이것이 바비 레이 같은 신인 래퍼의 데뷔작이라면 이 앨범에 기꺼이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우리가 아는 루페 피아스코의 앨범이라는 점이다. 레이블의 압력 없이도 루페는 상업적 성공과 음악적 진보를 어느 정도 조화시킬 줄 아는 아티스트였다. 그런 면에서 [Lasers]의 전반에 걸쳐 느껴지는 작위적 대중지향성과 “Out Of My Head”, “State Run Radio”를 비롯한 몇몇 안이한 크로스오버 트랙들은 매우 아쉽다. 어쨌든 [Lasers]는 발매 첫 주 20만 장을 판매하며 빌보드 앨범차트 1위로 데뷔했고, 이번 실험은 상업적 성공으로 마무리된 듯 보인다. 그러나 이 성공에 마냥 호의적인 시선을 보낼 수 없는 것은, [Lasers]의 주체가 어디까지나 루페가 아닌 레코드 레이블이기 때문이다. | 글 임승균 obstackle1@gmail.com

ratings : 3/5

수록곡
1. Letting Go (feat. Sarah Green)
2. Words I Never Said (feat. Skylar Grey)
3. Till I Get There
4. I Don’t Wanna Care Right Now (feat. MDMA)
5. Out Of My Head (feat. Trey Songz)
6. The Show Goes On
7. Beautiful Lasers (2 Ways) (feat. MDMA)
8. Coming Up (feat. MDMA)
9. State Run Radio (feat. Matt Mahaffey)
10. Break The Chain (feat. Eric Turner & Sway)
11. All Black Everything
12. Never Forget You (feat. John Leg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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