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z Khalifa | Rolling Papers | Rostrum/Atlantic, 2011 두 마리 토끼를 찾아서 여기, 지금껏 한 번도 유명 힙합 아티스트를 배출해 본 적 없는 미국 중서부의 쇠락한 철강도시 피츠버그(Pittsburgh) 출신의 래퍼가 있다. 바로 위즈 칼리파(Wiz Khalifa)다. 여느 래퍼들처럼 자기 동네 사랑이 남달랐던 그는, 자신의 차를 피츠버그의 상징색이자 피츠버그 연고의 모든 프로 스포츠 팀들이 공유하는 팀 컬러(검정/노랑)로 도색하고 그 차를 테마로 아예 제목까지 ‘검정/노랑’으로 붙인 싱글(“Black And Yellow”)을 만들었다. 이 싱글이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던 차에 우연히도 미식축구 팀 피츠버그 스틸러스(Pittsburgh Steelers)가 전미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라 해도 과언이 아닐 슈퍼볼에 진출하게 되었고, 졸지에 스틸러스의 비공식 응원가 대접을 받게 된 (동시에 상대팀 그린베이 패커즈(Green Bay Packers)의 팬인 릴 웨인(Lil Wayne)의 프리스타일 “Green And Yellow”를 통해 패커즈의 응원가 대접까지 받게 된) “Black And Yellow”는 자연스레 차트 정상까지 오르게 되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흥미로운 성공담 아닌가? 비록 스틸러스는 패커즈에게 패배하고 말았지만. 그러나 설령 ‘슈퍼볼 버프’를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Black And Yellow”는 그 자체로 2010년 최고의 싱글이며, 의심의 여지없이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다. 스타게이트(Stargate)의 비트는 근래 들어 가장 신선한 비트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본래 트렌디 R&B를 본령으로 삼던 프로듀서답게 캐치함을 간직하고 있다. 여유롭게 늘어놓는 차 자랑(“내 차가 주차장을 나설 때, 그게 바로 ‘쩐다’는 거지” “키는 필요 없어, 그냥 엔진 스타트 버튼만 누르면 되니까”)과 듣는 이의 뇌리에 쉽게 각인될 만한 ‘후크송’다운 코러스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연스럽고도 능글맞게 실어 보내는 위즈 칼리파의 랩 역시 걸작이다. 사실 작사가로서의 위즈 칼리파는 간혹 재치 있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나 평범한 수준에 머문다. 앨범 제목부터 마리화나를 말아 필 때 쓰는 종이(rolling paper)라는 점에서 예측할 수 있듯, 그의 가사는 대략 네 가지 주제, 즉 마리화나, 여자, 돈, 그리고 자신의 크루 테일러 갱(Taylor Gang)에 대한 것으로 한정되어 있다. [Rolling Papers](2011)에서 가장 인상 깊은 버스(verse) 역시, 그가 아니라 “Rooftops”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커런씨(Curren$y)의 몫이다. 대신 그가 강점을 나타내는 부분은 플로우다. 마치 스눕 독(Snoop Dogg)이나 투 쇼트(Too $hort)를 연상시키는 여유롭고 능글능글한 플로우는, 그가 가장 치중하는 주제인 자기 과시(swagger), 즉 자신이 얼마나 ‘간지나고 잘 나가는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최적의 시너지를 발휘한다. 한편 R&B와의 모호한 경계선을 넘나들며 멜로딕하며 미니멀한 공간감을 자아내는 [Rolling Papers]의 사운드는, 근래의 드레이크(Drake)나 키드 커디(Kid Cudi)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포스트-드레이크, 어쩌면 포스트-칸예(Kanye West)라고 부를 만한 이런 크로스오버 사운드는 비교적 새로운 세대에 속하는 이 래퍼들이 커리어 초기부터 꾸준히 추구해 왔던 것이며, 이들과 동세대인 위즈 칼리파 역시 그가 처음 주목을 받게 된 믹스테이프 [Kush And OJ](2010)에서 보여주었듯 그러한 스타일을 가장 잘 소화해내는 아티스트 가운데 한 명이다. [Rolling Papers]는 앞서 언급한 “Rooftops”, 투 쇼트를 대동한 “On My Level”, “Hope And Dreams” 등 기존 스타일의 발전형에 해당하는 곡들과 함께 싱글 차트를 향한 노림수가 확연히 느껴지는 양질의 팝-랩 트랙들(“No Sleep”, “Fly Solo”)을 수록함으로써, 기존의 장점을 가능한 한 살리면서도 메이저 아티스트로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부분을 빠뜨리지 않는 영리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두 가지 목표를 한꺼번에 성취하고 있는 곡이 바로 “Black And Yellow”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곡은 앨범의 하이라이트로서 부족함이 없다. [Kush And OJ]에서 보여준 다양성과 가능성을 100%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 또 비슷한 성향의 다른 아티스트들에 비해 프로듀싱 면에서 다소 단조로운 구성을 취하고 있는 부분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Rolling Papers]는 드레이크의 [Thank Me Later](2010)이후 가장 흥미로운 크로스오버 힙합 앨범이다. 만약 당신이 현재 지구 상 최고의 래퍼(best rapper alive)를 자처하고 싶다면, 랩을 미친 듯이 잘해야만 한다. 하지만 당신이 좋은 힙합 앨범을 만들고 싶다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컨셉과 스타일을 확실히 파악한 후 그것을 충실하게 재현하기 위해 매진하면 된다. 위즈 칼리파는 후자를 잘 알고 있는 듯 보인다. | 글 임승균 obstackle1@gmail.com ratings : 3.5/5 수록곡 1. When I’m Gone 2. On My Level (feat. Too $hort) 3. Black And Yellow 4. Roll Up 5. Hopes And Dreams 6. Wake Up 7. The Race 8. Star Of The Show (feat. Chevy Woods) 9. No Sleep 10. Get Your Shit 11. Top Floor 12. Fly Solo 13. Rooftops (feat. Curren$y) 14. Cameras 2 Responses Soojeong Cho 2012.08.18 그럼 here we go steelers라는 곡도 혹시 공식 응원가였나요? 응답 ㅈㄻ 2012.08.20 임승균입니다. 사실 저도 NFL에 자세하지는 못해서 조금 찾아봤는데, 피츠버그 스틸러스 구단측에서 ‘공식’ 응원가로 지정한 곡은 없는 모양입니다. Here We Go Steelers 같은 곡도 구장에서 자주 불리워지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공식’ 응원가라네요ㅎㅎ 응답 Leave a Reply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CommentName* Email* Website Δ
ㅈㄻ 2012.08.20 임승균입니다. 사실 저도 NFL에 자세하지는 못해서 조금 찾아봤는데, 피츠버그 스틸러스 구단측에서 ‘공식’ 응원가로 지정한 곡은 없는 모양입니다. Here We Go Steelers 같은 곡도 구장에서 자주 불리워지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공식’ 응원가라네요ㅎㅎ 응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