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roit Metal City – Satsugai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デトロイト・メタル・シティ, Detroit Metal City)>는 일본 작가 와카스기 기미노리(若杉公徳)가 2005년부터 5년 동안 잡지 <영 애니멀>에 연재해 커다란 인기를 모은 만화다. 이 만화를 바탕으로 총 12화로 이루어진 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OVA)이 제작됐으며, 같은 시기 리 토시오(李 闘士男) 감독의 연출로 실사영화로도 만들어져 2008년 8월 23일 일본에서 개봉됐다.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만화·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는 기본적으로 같은 내용이지만 주제 면에서 서로 다른 점이 꽤 많다. 여기서는 실사영화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를 중심으로 다룬다.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주인공 네기시 소이치(마츠야마 켄이치, 松山ケンイチ)는 순하고 얌전한 성격의 소유자다. 대학 진학을 위해 농촌인 고향을 떠나 도쿄로 향하며 그는 프로페셔널 팝 가수로 성공하겠다는 야망을 불태운다. 하지만 5년 뒤, 네기시는 본인의 바람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요한 크라우저 2세라는 예명을 쓰며 데스메탈(death metal) 밴드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DMC)의 프론트맨으로 활약 중인 것이다. 네기시는 DMC에서 활동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싫다. 무엇보다 데스메탈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무시무시한 여사장의 등쌀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난폭하고 저속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물론 네기시는 원래 추구하던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틈틈이 길거리에서 통기타를 들고 아기자기한 팝송(구체적으로는 스웨디시 팝)을 노래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반면 얼굴에 새하얀 분칠을 하고 갑옷과 망토를 두른 크라우저 2세와 그의 밴드 DMC는 인디씬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다. 일본에서 DMC를 능가할 밴드는 어디에도 없다. 래퍼도 펑크 밴드도 DMC의 무지막지한 연주와 퍼포먼스에 모두 나가떨어진다. 이런 성공에도 체질에 영 맞지 않아 불만과 갈등에 빠져 있던 네기시를 더욱 절망으로 빠뜨리는 인물이 등장한다. 대학 시절 팝뮤직 동아리에 함께 몸담았던 아이카와 유리(카토 로사, 加藤ローサ)를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음악잡지사에서 일하는 아이카와는 메탈을 쓰레기처럼 여긴다. 학창 시절 남몰래 사랑을 품어온 대상인 아이카와에게 차마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는 네기시는 괴로움에 몸부림친다.

결국 막중한 고뇌로 더 이상 일상을 버틸 수 없게 된 네기시는 고향으로 도망치듯 달아나버린다. 바로 이때, ‘메탈계의 전설’ 잭 일 다크(진 시몬즈, Gene Simmons)가 은퇴를 선언하며 잘난 척하는 메탈 밴드들을 깨부수기 위한 배틀 형식의 월드 투어에 돌입한다. 그는 첫 번째 상대로 DMC를 지명한다. 고향에서 상심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네기시는 어머니와 DMC 멤버들, 팬들의 격려로 잭 일 다크와 무대 위 결투를 감행하기 위해 다시 도쿄로 향한다.

포스터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가 만화·애니메이션·극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높은 인기를 누린 이유는 무엇보다 소재가 기발하고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데스메탈이라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음습한 세계를 무척 코믹하게 그린다. 사실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에 등장하는 노래나 퍼포먼스는 대단히 과격하고 반사회적이다. 그러나 이런 극악무도한 음악 장르는 웃음을 찾기 힘든 ‘19금 유머’로 탈바꿈하면서 비호감적인 요소가 희석되는 묘한 결과가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은 다만 쇼일 뿐’이라는 명제가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아울러 이 영화의 묘미는 록 뮤지션에 대한 고정관념이 산산조각 나는 데 있다. 네기시는 크라우저 2세로 활약할 때는 누구도 두려울 것 없는 악마 같은 존재이지만, 분장을 지우고 의상을 벗으면 징징거리는 게 일상인 소심하고 나약한 청년이다. 로커라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퇴폐적 면모와는 거리가 멀다. 마약은커녕 술도 입에 대지 않으며 심지어 성경험도 없다. 나머지 DMC 멤버도 비슷하다. 베이시스트 알렉산더 쟈기(와다)는 말 많고 촐랑거리는 ‘삐끼’ 스타일의 인물이며, 드러머 카뮤(니시다)는 게임과 팬티 생각만 머릿속에 꽉 찬, 변태 기질 다분한 오타쿠다(만화 및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들 캐릭터에 대해 조금 다르게 묘사된다).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초식남’들은 록 음악을 통해 거침없는 영웅으로 탈바꿈한다. 맨얼굴을 가려버리는 짙은 분장을 주요 무기로, 평소에는 꿈도 못 꾸던 상남자의 화신으로 우뚝 선다. 과연 어떤 면모가 이들의 ‘본질’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를 관통하는 오묘한 요소이기도 하다. 평소 그들이 보여주는 나약한 면모가 본래 성격인지, 아니면 억눌려있던 거친 자아가 특별한 계기로 폭발하는 것인지 영화 텍스트만으로 확실히 알 도리는 없다. 다만 록음악을 이루는 본질 중 하나인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일깨우는 점을 환기할 뿐이다.

원작 만화에서는 점차 평소에도 크라우저 2세의 난폭성을 드러내는 네기시의 변모에 비중을 두고 있지만, 영화는 생활과 무대의 구분이 무너져가는 희비극적인 상황은 크게 다루지 않는다. 대신 영화에서는 ‘음악이 없이는 꿈도 없다(No Music No Dream)’라는 주제가 직접적으로 부각된다. 영화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를 차지하는 화두는 바로 ‘꿈’이다. 여기서 출발은 바로 네기시의 꿈이다. 세련된 스위트팝을 노래해 성공을 거두겠다는 꿈. 그렇지만 혐오스럽기만 한 데스메탈을 연주하고 온갖 기행을 저지르는 신세가 되며 꿈은 짓밟히고 만다.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네기시는 비탄에 빠진다.


<Detroit Metal City> Trailer

그러나 이 영화는 자신의 꿈 못지않게 다른 이가 꿈을 이루도록 돕는 것도 분명 가치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야말로 성숙한 뮤지션이 가야할 길이라고 주장한다. 네기시의 경우 ‘다른 이’란 바로 다른 DMC 멤버와 소속사 사장, 무엇보다 팬들이다. 그들은 DMC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뤄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 꿈이 비록 우스꽝스럽고 보잘 것 없어 보이더라도.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지켜나가고 싶다면, 그것이 바로 이뤄야할 꿈이다. 영화 후반부 크라우저 2세가 배틀을 위해 공연장으로 달려가는 와중에 그의 뒤를 따르는 팬들 수가 점점 늘어나는 장면은 꿈을 강조한 주제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음악을 통해 희망을 품고 고단한 삶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이렇게 남을 돕는 행위는, 나아가 자신의 꿈도 어떤 형태로든 끝내 성취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음악으로 다른 이가 꿈을 이루도록 도울 수 있다면, 세련되고 산뜻한 스웨디시 팝인가 폭력적이며 음란한 데스메탈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음악으로만 맛볼 수 있는 순수한 희열과 몰입, 이것이 가장 소중하다.

영화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가 결론으로 강조하는 것은 록음악이 발휘하는 공익적인 기능이다. 록 뮤지션이란 향락에 찌든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잉여인간이 아니라, 대중이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배려하고 베푸는 사회운동가라는 관점이다. 이 시각에서는 ‘잘하고 싶은 것’보다는 ‘잘할 수 있는 것’이 사회 기여도 및 공리 차원에서 훨씬 큰 가치를 부여받는다. 이에 대해 찬반양론은 있겠지만 우리가 록이 선사하는 황홀경에 파묻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님을 떠올리면,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는 사소하여 자칫 간과하기 쉬운 록의 진정한 존재 이유를 새삼 일깨워준다. | 오공훈 mojo327@naver.com

note. 2001~2004년 동안 [weiv]의 필자로 활동한 오공훈은 현재 번역가로 《디자인 소사》, 《행복을 꿈꾸는 보수주의자》, 《현실주의자의 심리학 산책》 등을 번역했고, 블로그 [this must be the place!]를 통해 대중음악에 관한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영화의 후일담
*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최고 볼거리는 아무래도 잭 일 다크로 등장하는 진 시몬즈가 아닐까.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라는 제목 자체가 진 시몬즈가 리더로 활동한 밴드 키스(Kiss)의 1976년 히트곡 “Detroit Rock City”에서 따온 것이며, DMC 멤버들의 짙은 분장은 전성기 키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진 시몬즈의 출연은 타당해 보이며, 더욱이 키스가 1970년대 미국은 물론 일본의 수많은 록 키드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점을 감안하면 영화 주제인 ‘꿈’과 일맥상통한다.
* 영화에서 DMC가 연주하는 음악 장르는 연주 방식에서 엄밀하게 따지면 데스메탈이 아니라 스래시메탈(thrash metal)이나 하드코어(hardcore)에 가깝다. 특히 데스메탈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낮은 음역대의 그로울링(growling) 보컬인데, 크라우저 2세의 스타일은 이와 상당히 다르다. 또한 카뮤가 연주하는 드럼은 투베이스가 아니다. 더욱이 잭 일 다크가 연주하는 “Fuckingham Palace”는 정통 아메리칸 하드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