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3년 8월 21일 수요일 장소: 논현동 크롬엔터테인먼트 사무실 질문: 차우진 nar75@naver.com 정리: 우해미 staycrazynow@naver.com 사진: 이승희(스튜디오103) 그야말로 뜬금없는 걸 그룹. 크레용팝의 “빠빠빠”를 보고난 뒤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밤새 유튜브 ‘직캠’을 훑거나 “Saturday Night”, “댄싱퀸” 같은 이전 싱글을 찾아 들었다. 이들이 빌보드 코리아에 소개되고 소니 뮤직과 계약하고 가요 프로그램 1위를 할 때, 심지어 논란에 휘말릴 때도 흥미로웠다. 정확히는 크롬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가 궁금했다. 그래서 황현창 대표를 만났다. 그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초급자다. 그럼에도 앞으로 ‘걸 그룹 전문 회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딱 1년 후에, 이들은 어떤 회사가 되어 있을까. 크레용팝의 [The Streets Go Disco] 발매에 맞춰 8월에 진행한 인터뷰를 올린다. | [weiv] 차우진: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발을 들인 계기가 궁금했다. 황현창: 충동적이었다. 티아라라는 그룹을 보고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러한 걸 그룹을 기획하고 싶었다. 그 전에는 광고 사진 스튜디오를 하고 있었는데, 직원들에게 이 얘기를 꺼내니 모두 반대했다. 순전히 모험이고 도전인데 왜 하냐고, 걸 그룹은 끝물이라 모두들 망한다고 했다. 사실 현직에 있는 분들로부터도 얘기를 들어봤는데, 다들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말에 자극을 받았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결심한 지 일주일 만에 오디션 공고를 내고 준비를 해나갔다. 그때까지 나는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음악을 해본 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며, 대중가요에 대해 어떠한 관점을 갖고 들었던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한 명의 평범한 대중으로서 음악을 소비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차우진: 그렇다면 그처럼 평범한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판단이 자신을 이끌었을까. 황현창: 하지만 결국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결국 음악을 들어주는 건 대중이고, 많은 사람들은 의미심장한 가사나 곡이 쓰인 과정을 따져보며 귀담아 듣기보단, 일단 자기가 들어서 좋은 노래를 듣는다. 대부분은 어렵게 접근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음악에 대한 정보에 귀를 닫자고 생각했다. 전적으로 내 주관에 따라 만들려고 했다. 나는 곡의 구성, 플롯도 모르고 특정한 음악 성향에 치우치지 않는 편이었으니까. 내가 회사 설립 후 제일 먼저 한 것은, 걸 그룹 음악 중 히트곡들만 모아 출퇴근 시간에 반복해서 미친 듯이 듣는 일이었다. 듣다 보면 왜 이 곡이 히트했는지 알게 되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답은 없더라. 결국 정답은 ‘그냥 좋다’라는 게 정답이었다. 그래서 “빠빠빠”의 경우 작곡가에게 곡을 어렵게 쓰지 말고 단순한 가사와 반복적인 멜로디로 남녀노소 누가 들어도 해석 없이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던 것이다. 차우진: 회사의 조직도, 혹은 구성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가. 황현창: 이사님이 홍보 등을 맡아주시고, 매니저 2명, 사무 직원 2명, 그리고 스타일리스트 팀이 있다. 전체 총괄은 내가 하고 있다. 기획이나 운영팀이 따로 있지는 않다. 영세한 편이다. (웃음) 차우진: 도대체 누가 기획을 한 건지 궁금했다. 몸집이 작아 누구 하나가 이끌고 갈 텐데, 그게 누구일지 궁금했다. 결과적으로 크레용팝이 활동해온 방식을 보면, 틈새시장 혹은 본능적인 감을 노렸다는 느낌이 있었다. 사람들은 항상 좋은 결과가 있으면 그에 준하는 치밀한 전략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으니까. 멤버를 구성해 준비하고, 곡을 받은 후 데뷔를 했을 때 막상 기대와 달랐던 점은? 황현창: 첫 번째는, 걸 그룹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방송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당연히 잘 안 됐다. 방송 한 번 못하던 찰라에 생각을 다시 했다. 차별화된 아이템으로. 그렇게 “Saturday Night”이 엎어지면서, 다른 걸 그룹들의 선례를 봤으면서도 왜 이런 컨셉으로 했는지 후회했다. 스스로가 바보 같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몰라 흘러가듯이 진행했는데, 그 앨범이 엎어지면서 그룹도 작지 잖은 충격을 받았다. 거기서 깨달은 결론은 딱 하나였다. 포지셔닝을 정확이 해야 한다는 것. 크레용팝이 아니더라도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아닌, 우리만의 어떤 방향이 있어야 한다는 것. 비유를 하자면, 현대인과 직장인들이 정말 매운 음식 찾아 다니며 땀 흘리고 음식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처럼, 때로는 파격적으로 느껴질 만큼 충격적인 뭔가가 없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그다음 앨범부터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차우진: 조언을 받거나 도움 받은 사람이 있는가? 트레이닝, 연습실 구조, 음향기기 등 전반적인 엔터테인먼트와 관련해서. 황현창: 우선 범키가 많이 도와줬다. 보컬 레슨, 트레이닝, 오디션 때도 빠지지 않고 와줬다. 그리고 덤앤더머라는 프로듀싱팀이 있었고, 안무팀이 있었다. 덤앤더머는 예전에 디베이스와 바운스라는 남성 그룹에서 각각 활동했던 송지훈과 강진우의 경험이 뒷받침되어 줬다. 인맥상으로 피디라든지 엔터테인먼트계의 사장들을 안다거나 하는 건 전혀 없었다. 차우진: 외주 형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내부에 안무팀과 프로듀싱팀을 둔 이유는? 황현창: 작은 회사의 경우 대개 버티다가 쓰러지곤 한다. 반면 대형 기획사를 보면 내부에 프로듀싱을 두고 가는데, 나도 안무가와 프로듀서를 두면 시간이 많이 단축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 시스템으로 갈 거면 외주로 시작하다 인하우스로 들이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이렇게 가는 게 낫겠다고 보았다. 역으로 간 셈인데,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차우진: 스튜디오는 얼마나 했나? 황현창: 3년 정도 했다. 광고 쪽으로. 그 전에는 일반 회사를 다녔고, 이것저것 하기도 했다. 차우진: 덤 앤 더머와는 “빠빠빠” 직전까지 함께했나? “빠빠빠”를 하기까지는 어떠한 방식으로 움직였나. 황현창: 서로가 고정적인 방향으로 가다 보니 발전이 없었다. 물론 안 좋게 헤어진 건 아니다. “빠빠빠” 활동이 나에게는 모든 걸 걸어보고 싶었기에 짧은 앨범 경험을 바탕으로 뭔가를 던져보고 싶었다. 멤버들에게 원하는 콘셉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자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멤버들과 대화를 매우 많이 하는 구조다. 준비를 하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나 혼자 뭔가를 결정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사실 나는 엔터테인먼트계의 구조를 잘 모른다. 이러다 망해도 손 털고 서로 악수하면서 헤어지자, 라고 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이고. 흥하고 망하는 건 우리가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는 몫이 아니기 때문에, 잘 안 되더라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구조로 가자, 라는 생각을 했고 지금도 그렇다. 크레용팝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다. 멤버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고, 끈끈하게 움직였다. 차우진: 홈페이지를 보면 크레용팝 TV나 웹툰 등 콘셉트와 방향이 꽤 체계적으로 보였다. 누가 어떻게 주관해서 하는 건지 궁금했다. 황현창: 즉흥적이다. 크레용팝 TV를 하게 된 계기는, 예능에 넣어줄 수 있는 힘이 없어서 우리끼리 이런 거 하나 찍어서 미리 연습이나 하자는 목적이었다. 우리가 꾸준히 찍으면 하나의 발자취로도 남을 것이고, 그돼서 크레용팝이 끝날 때까지 찍자고 했다. 웹툰은 한 만화가분이 크레용팝의 팬이라 시작했다. 팬과 함께 일한다는 점에 반대도 있었지만, 함께하고 열심히 할 수 있는 계기라 생각했다. 팬이다 보니까 캐릭터가 잘 녹아 있고, 평소의 자세나 표정을 아주 잘 뽑아낸다. 차우진: 온라인상의 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커뮤니케이션이나 인터렉티브나, 감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 경험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황현창: 2002년부터 SLR 클럽 활동을 했다. 서울예대를 다니던 시절에는 연기 전공이었지만 사진과 영상에 눈을 떴다. 잠을 잘 때도 옆에 끼고 잘 정도로 캠코더와 함께 살았다. 평소에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는 것이 좋았다. 사실 내가 크레용팝 TV를 직접 찍은 이유는, 외주업체에 맡기면 화면은 예쁘게 만들 수 있지만 디테일한 정서 전달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대학 다닐 때 나는 캠코더를 아르바이트로 사고 잠잘 때도 껴안고 잘 정도로 촬영에 탐닉했었기에, 이와 관련해서는 내가 직접 하고 싶었다. 차우진: 크롬이라는 회사명의 의미는? 황현창: 크롬 자체가 ‘반짝이다’라는 의미다. 녹이 슬지 않으려면 항상 문질러주고 가꿔야 한다는 의미다. 그것뿐이다. 차우진: 크레용팝을 보면 그냥 특이한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것 같다. 이를테면 ‘덕후’와 같은, 취향을 깊이 파고드는 사람이 움직인다는 인상이 있다. 황현창: 걸 그룹에 열광해본 적이 없고 특별한 관심도 없는 입장에서, ‘팬심’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팬이 되는지 말이다. 그래서 작정하고 걸 그룹을 파기 시작했다. 그렇게 집중적으로 팬이 된 그룹이 AOA와 헬로비너스였다. 그래서 내가 팬심을 발휘한 그룹의 멤버에게 바라는 점을 크레용팝에 접목했다. 나의 아쉬움을 크레용팝이 충족해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팬심을 느끼면 뭔가 다른 걸 보게 된다. 예전에는 왜 팬이 CD에 사인을 받고 싶은지도 몰랐다. 사인을 받는 순간의 아이 컨택트, 그리고 가까운 거리 등이 팬에게 주는 의미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거리로 나가 팬들과 족발을 뜯기 시작한 거다. 어느 누가 걸 그룹과 국밥을 먹는 걸 상상할 수 있겠나? 그런 원리인 거다. 차우진: 그런 점이 파격적이라기보다는 케이블 예능에서 크레용팝 TV에서 보여준다면 유일무이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황현창: 멤버도 처음에는 걸 그룹에게 길거리에서 춤추라고 하니 얼마나 황당했겠나. 하지만 우리 스스로 직접 알리자, 우리가 직접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길을 뚫자고 강조했다. 욕하고 손가락질 좀 받으면 어떠냐고도 했다. 그래서 신도림역 같은 곳에서, 심지어 지하철 안에서도 했다. 그런데 하면서 정말 재미있었다. 이런 게 대중과 소통을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게릴라 공연을 열심히 하는 모습에 지금의 팬과도 끈끈함이 생겼다. 사실 멤버를 뽑을 때도 섹시나 큐티 등 특정한 틀을 잡고 거기에 맞는 사람을 뽑기보다는, 최대한 노멀한 멤버를 뽑았다. 사진을 찍고 크랍을 하듯 후가공으로 원하는 색감과 앵글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네 동생 같은 그룹이어야 모든 걸 다 소화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있었다. 차우진: 결과에 대한 예상은 했나? 황현창: 처음에는 모 아니면 도, 라고 생각했다. 멤버들도 그랬다. 터지면 대박이고 안되면 쪽박이라는 생각은 모두가 같았다. 사실 다른 기획사들이 이런 콘셉트를 몰라서 안 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지금도 다양한 색깔의 그룹들을 많이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쉽게 특이한 걸 하기가 어려운 거다. 반면 우리는 그에 비해 워낙 밑바닥이라 아쉬울 게 없기에 이런 콘셉트로 갈 수 있었다. 무모함을 감행할 수 있었던 거다. 큰 회사들처럼 딸린 식구가 많았다면 나도 못 했을 것이다. 차우진: “빠빠빠”의 성공 이후 소니와 계약도 했고, 앞으로 회사의 볼륨도 더 커질 텐데, 이 상황에서 앞으로도 현재와 같은 경형 형태 혹은 방식을 유지하고 싶은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황현창: 우선 금전적 여유가 생긴다면 ‘공연 문화’를 바꾸고 싶다. 요즘 고민하는 건, ‘희망’과 ‘행복’을 표방하는 공연에 왜 돈을 꼭 받는 방식이어야 할까, 라는 의문이다. 왜 무료 공연은 할 수 없는 걸까? 예를 들어 ‘힐링’을 하기 위해 교회나 절을 가는 사람들에게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물론 헌금이라는 게 있지만, 그건 자유다. 우리 역시 큰 수익을 내는 것이 일차적 목표가 아니다. 사실 현재 일본 시장에서 케이팝은 바닥 수준이다. 이건 결국 ‘업자’들이 만든 결과물이다. 큰 계약금에 비해 결과물이 좋지 않으니 일본에서 케이팝을 보는 시선도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업자들이 만들어놓은 케이팝 시장을 다시 재조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같이 즐겁고 같이 즐기는 희망의 코드를 해외에서 만들어보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잘하는 무료 공연을, 왜 유독 해외만 가면 돈을 받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에 대한 도전을 실행할 예정이다. 무료 공연을. 또 하나 바꾸고 싶은 게 있다. 바로 공연 문화다. 우리가 실제로 미니 콘서트를 했을 때 모든 세션이 엉망진창이었지만, 음악관계자들을 포함한 모두가 그 공연이 최고라 말해줬다. 그 상황을 즐기니까, 실수를 해도 당당히 다시 하는 그 코드를 재미있어하는 것이다. 나는 멤버들이 무대에서 안무 같은 걸 틀렸다고 혼낸 적이 없다. 흉내만 내더라도 최대한 즐기라고 말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안무를 최우선시하는 팀이 아니다. 칼 군무? 의미 없다. 몇 옥타브가 올라가야 하는 등 그런 것도 큰 의미가 없고. 결국 우리에게 노래는 즐거움의 표현과 수단이고, 그 즐거움의 코드만 알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른 그룹은 콘셉트를 바꾼다. 섹시로 갔다가, 큐티로 갔다가. 하지만 크레용팝은 아이덴티티 자체를 중시한다. 희망적이고 열심히 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정체성이다. 매사에 열심히 하고 초심을 잃지 않으며 무대를 즐길 줄 알고 당당하게 눈치 보지 않는 것. 크레용팝의 무대 공연도 그렇게 나온 것이다. 차우진: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기획적인 측면이 타 그룹에 비해 크다는 생각이다. 가령 어떤 아이돌 회사는 누군가의 재능에 맞춰 스타로 만들어가는 타입이라면, 크레용팝은 기획자의 그림을 멤버에게 투영하는 경우인 것 같다. 마치 감독처럼 말이다. 황현창: 매력을 찾게끔 하고 싶었다. 키가 몇이고, 얼굴이 어떻고, 몸매가 어떤지 하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다. 매력이라는 것을 대중으로 하여금 찾아가도록 만들고 싶었다. 계속 보다 보면 중독되고 빠져들게 하고 싶었다. 그게 우리가 롱런할 수 있는 길, 달리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무조건 특이하고 달라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지만. 차우진: 기획이나 콘셉트가 좋은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음악이 좋아야 한다. “빠빠빠”와 그 전의 곡들은 다른 지점이 있다. “빠빠빠”를 작업한 사람은 그 전까지의 곡들과는 달리 예전 SM과 작업하던 사람이라 들었다. 그를 섭외하게 된 계기와 이전과의 작업상 차이는 무엇인가? 황현창: 덤앤더머가 나가고 나서 외부 곡을 받기 시작했는데, 작곡가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우연치 않게 폴더 하나를 받았다. 그 폴더에는 남자 보이 그룹의 곡들이 있었고, 자신이 대강 스케치해놓은 곡이 있었다. 근데 그 스케치 곡을 듣자마자 바로 이거다 싶어서 연락했더니 그 곡은 남자 곡이고 또 아직 제대로 된 곡도 아니다, 라고 얘기하더라. 실제로 기타 중심의 록 스타일 트랙이었다. 멤버들에게 들려줬는데 반응이 그리 좋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가 고집했다. 결국 그 작곡가를 불러서 이 스케치를 여자 곡으로 바꿔 달라 요청했다. 총 네 번의 수정을 거쳤다. 곡의 구성 등 순전히 내 마음대로 내 의견을 피력해서 곡을 받았다. 사실 “빠빠빠”는 내가 그동안 얘기해왔던, 단순하고 중독성 있으며 어렵지 않은 노래라는 개념에 딱 들어맞는 케이스다. 내가 원하는 부분을 워낙 흡수를 잘해서 곡을 만들어줬고, 그게 작곡자 본인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빠빠빠” 전의 곡들도 분명 좋았지만, 그것들이 2% 아쉬웠던 부분은 그 곡에 빠지려면 20~30번 이상은 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대중들에게 그런 곡은 어렵다. 중독성을 두 번 안에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성이 어떻든 간에, 나도 모르게 곡을 흥얼거리게끔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안무와 곡이 모두 완성되었을 때 공개하기 직전에 우려스러웠던 부분은, 사람들이 곡만 먼저 들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만화 주제곡으로 오인할 가능성도 있고, 그런 걱정으로 음원만 먼저 나가면 큰일 날 것 같았다. 결국 이 노래는 무조건 오디오와 비디오가 함께 공개되어야 했다. 그래서 동대문 밀리오레에 가서 국내 쇼케이스를 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때 팬들이 찍었던 영상이 SNS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결국 노래보단 특이한 콘셉트가 먼저 먹힌 거다. 그리고 계속 보다 보니 곡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게 된 거고. 차우진: 뮤직비디오에서 음악으로 넘어간 게 아니라 바로 직행으로 대중에게 퍼졌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황현창: 쇼케이스를 하자, 라고 했을 때 멤버들부터 대부분의 직원들이 반대했다. 티저를 공개하고, 그다음 음원 공개하고, 그렇게 보통의 순서대로 가자는 얘기가 중론이었다. 내 얘기대로 하면 매출도 안 나올 거라고. 그렇게 직원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나는 안무와 노래를 꼭 같이 봐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밀고 나갔다. 차우진: 덤앤더머가 나간 이후 새 곡을 받아야 했을 텐데, 그 폴더를 받았다는, 새로운 음악을 받게 된 경로는 어떤 것이었나? 황현창: 크레용팝의 안무을 맡아온 아빠새라는 친구의 인맥을 통해 주위 작곡가들에게 곡을 받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가 “빠빠빠”를 만든 친구의 폴더였다. “빠빠빠” 전에는 안무도 안무가가 만들어준 틀 그대로 갔었지만, “빠빠빠”부터는 안무가가 기본 틀은 만들어준 다음 그 이후에 멤버들이 자신에 맞게 안무를 변형했다. 차우진: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예정인가? 황현창: 그렇다. 우리는 사실 “빠빠빠”가 이렇게 확 터질지 몰랐다. 일단 “빠빠빠”로 우리를 알리고 후속곡으로 굳히기를 가자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괜찮은 후속곡이 나오지 않으면 크레용팝이 ‘반짝 걸 그룹’이 될 거라고 말하지만, 우린 자신이 있다. 왜냐하면 “빠빠빠”가 우리의 승부수가 아니라, 이미 후속곡 준비를 다 해놓은 상태이고, 그 곡이 정말 좋으니까. (웃음) 차우진: 오히려 멤버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콘텐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황현창: MR 논란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이 별로 개의치 않는 것도, 사실 멤버들 모두 노래를 잘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래를 못하는 걸 그룹으로 낙인찍히는 게 우리로선 한편으로 더 즐겁기도 하다. 나중에 반전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웃음) 차우진: 거리 공연도 도움이 되었겠다. 황현창: 일단 멤버들의 멘탈이 정말 강해졌다. 웬만한 일에는 안 무너진다. (웃음) 지금처럼 어떤 논란이 있더라도 오히려 어려운 일에도 똘똘 뭉치고. 음원 차트 10위에 올랐을 때 불장난하다가 걸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5위까지 올라갔을 때는 공포의 정점이었다. 급하게 먹은 음식은 체하기 마련이니까. 마침내 1위 후보에 올랐을 때는 멤버들 중 그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가 그 정도의 경험치가 없다는 걸 스스로 아니까. 밑바닥은 정말 잘 알지만 말이다. 차우진: 표절이나 특정 커뮤니티 회원 등 논란이 아직도 끊이지 않는데, 해명 논란에 대한 걸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 황현창: 우린 벤치마킹할 만큼 여유가 있고, 치밀한 회사가 아니다. 헬멧은 단순히 두더지 게임에서 착안해 써보자 해서 했고, 트레이닝복도 치마 안에 추리닝 입는 건 “댄싱퀸” 때부터 해오던 것의 연장이다. 일베 논란도 비슷하다. 우리는 ‘듣보잡’이었고, 정치적인 해석을 담으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 실은 민주화의 뜻조차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걸 그룹 콘텐츠가 올라오는 사이트는 뻔하다. 기획사 대표이고, 인맥도 없으니 사람들이 걸 그룹에 대해 어떻게 생각는지 그런 사이트들에서 모니터링을 안 한다는 건 거짓말이다. 계속 봐야 하지 않겠나. 그럼에도 그냥 ‘너희는 일베충’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공격하는 것에 대해선 억울했다. 차우진: 앞으로 어떤 회사가 되고 싶은가? 황현창: 색다른 공연문화를 만들고, 걸 그룹에 특화된 회사가 되고 싶다. ‘걸 그룹은 역시 크롬!’의 공식처럼 운영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인물사진 잘 찍는, 광고 잘 찍는 회사로 세분화되는 것처럼, 잘하는 걸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잘 된다는 이유로 다른 여러 분야를 건들고 싶지는 않다. 다양한 캐릭터가 나오는 걸 그룹을 양성하는 회사가 되는 게 현재로선 목표다. 차우진: 소니와의 계약은 어떤 계약인가? 황현창: 음반 유통이다. 현재는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로 되어 있고, 그 외에 전략적으로 함께 만들어갈 예정이다. 같이 준비하는 게 몇 가지 있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코드가 잘 맞는다. (웃음) 차우진: 소니의 강점은 음악만이 아닌 영화나 방송 같은 분야에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회사다. 그런 면에서 소니와의 계약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황현창: 제안은 소니에서 먼저 왔고, 계약도 빠르게 체결되었다. 해외 시장이라는 문제를 풀 수 있는 회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소니와 손을 잡게 되었다.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면 계약 조건을 떠나 함께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가치라고 생각했다. 차우진: 마지막 질문을 하나 앞두고 물어보겠다. 일본에서 도쿄돔 5만 명 정도를 모으는 게 목표치라고 봐도 되나? 황현창: 도쿄돔 5만 명을 채우려면 기존 팬덤이 20~30만 명은 있어야 한다. 우리 상황에서 일단 1차적 목표는 무료 콘서트다. 일본 시장이 참 재미있다. 사실 크레용팝 초창기부터 일본은 무조건 염두에 두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본 시장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그렇게 움직였다. 일본은 게릴라 공연이 어렵다. 허가도 받아야 하고. 처음 했던 공연이 지하 공연장 하나 빌려서 관객이 카페 직원과 스텝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무척 재미있었다. 그러면서 일본 시장의 팬덤 문화, 시스템을 하나둘씩 알게 되었다. 솔직히 일본은 가장 욕심나는 시장이다. 그래서 소니와의 계약에서도 일본을 제외했던 이유다. 일본은 좀 더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미루고 있다. 사실 해외 시장에 진입할 땐, 그 나라 밑바닥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그 나라 문화와 그 나라 팬들의 특성을 같이 파악하면서 알아가는 거고. 사람도 마찬가지지 않은가. 오래 보고 오래 만나야 친해지는 건데, 그 과정을 건너뛰어 버리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차우진: 사업적 비전, 이랄까. 그런 건 어디에서 얻는가? 황현창: 나의 성격, 철학인 것 같다. 누가 ‘꼭 이렇게 해야 해’라고 하면 나는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는데?’라고 물어본다. 우리 회사가 투자를 받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힘들어도, 멤버들이 먹을 쌀이 없는 한이 있어도 투자는 안 받는다. 투자를 받으면 내 신념을 관철시키기 어려우니까. 무언가를 정해놓더라도, 반드시 그대로 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최상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전략도 언제든 변경할 수 있는 거다. 나는 그런 타입이다. 관련 글 [아이돌 메이커] 크레용팝 | ‘스위치’로서의 걸 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