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은은 스타다. 통상적 의미의 스타와는 거리가 있을지 몰라도, ‘스타’라는 말의 본래 의미처럼 그녀는 어느 자리에서 있어도 반짝반짝 빛난다. 무대 위에 선 그녀는 아무런 수줍음 없이 자신을 보여주고, 뒤풀이에서도 그녀가 앉은 자리 근처는 조용하지 않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의 음악의 팬을 어떻게 대할 줄 아는 것 같다. ‘홍대 마녀’라고 불렸지만, 그녀는 홍대(앞)에서 오래 활동했던 뮤지션들의 수줍고 어눌한 태도와는 뭔가 다른 걸 가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난 연말 ‘오지은과 늑대들’의 앨범이 나온 뒤 인터뷰를 갖자는 약속을 받았지만,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스케쥴과 몸 컨디션이 한번 두번 어긋난 뒤 앨범이 나온 지 두 달 뒤에야 인터뷰가 이루어졌다(정리 작업은 인터뷰어의 스케쥴이 꼬이고 게으름까지 겹쳐 두 달이 더 걸렸다). 그런데 차라리 잘 된 것도 있었다. 그 사이에 오지은과 늑대들(혹은 ‘오늑’)에 대한 흥미로운 평가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밴드다’는 항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늑을 ‘오지은과 그녀의 세션 밴드’ 정도로 생각한 것 같다. 게다가 그녀의 솔로 1집과 2집 때의 우호적인 평가(심지어 그 까다로운 최민우까지 ‘좋은 음반’이라고 말했다)와는 달리 오늑의 앨범에 대한 ‘남성 록 평론가들’의 반응은 매섭거나 미지근하거나 무관심했다. 솔직히 말해서 또 한 명의 ‘남성 록 평론가’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나의 평가도 계속 오락가락했다.

‘이런 집단 싸이콜로지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머리에 두고 그녀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고, 그녀는 역시나 거침없이 말했다. 억울함에 치를 떨면서 분기탱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경쾌하고 사뿐했다. 그래서 소제목들은 일부러 ‘드라이’하게 적었다. 자, 이제 채팅 시작!

일시: 2011년 2월 17일
장소: 이리카페
질문: 신현준
정리: 이재훈|신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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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들을 위한 해명

[weiv]: 너무 늦었지만 오지은과 늑대들 앨범 나온 것 축하드립니다. ‘오지은과 늑대들’이라는 ‘밴드’라는 걸 여러 번 강조한 것 같네요. 솔로를 했을 때 못 했던 것을 밴드로 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건가요?
오지은: 늑대들 멤버들은 제 세션으로 모인 사람들이지만 사실은 세션의 영역을 넘어선 사람들이라 합주 때 재밌는 에너지가 많이 나와서 기왕에 이럴 거면 세상에 한 번 남기는 게 좋다는 생각을 했어요. 프로젝트 밴드죠. 솔로 때는 아시다시피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했잖아요. 그냥 다른 내 얘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야 3집을 좀 더 정제된 기분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weiv]: 세 명이 원래 모여 있던 것은 아닐 테고 어떻게 모였나요?
오지은: 각개적으로 오다가다 소개 받은 거니까 가입 시기가 다 달라요. (정)중엽은 로로스의 제인이랑 서로 아는 사이인데 하루는 중엽이 저한테 “기타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해서 “어, 저 당장 필요한데…” 해가지고. 악몽의 시작이었죠. 농담입니다. (박)순철 씨는 데이브레이크의 베이스인 (김)선일 오빠가 소개해 준 거고…

[weiv]: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밴드를 결성하는데 ‘네트워크 파워’가 중요했던 것 같네요. 다른 말로 하면 ‘인맥’이고…
오지은: 그런가? 저는 반반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인맥이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죠. 왜냐하면 전 1집을 낼 때엔 주변에 이쪽 친구가 없었어요. 그래서 앨범 내고 나서도 에일리언 취급 받은 기분이었고. “회사 못 들어가서 자기가 내는 거야?”라는 말 듣는 느낌? 그 이후에는 자가 제작이 우후죽순 나오기는 했지만 저 때는 되게 미천한 짓으로 하하하. 반반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외롭지 않다는 정도 아닐까요?

[weiv]: 수익 배분은 어떻게 하나요? 솔로 때와 어떻게 달라졌나요? 영업비밀이 아니라면…
오지은: 제가 원래 회사랑 나누던 몫을 1/5로 나눠요. 그러니까 저는 1/5로 줄은 거죠. 대신 솔로 할 때처럼 세션에게 녹음비를 안 줬으니까 제작비는 덜 들었고 하하. 녹음비가 안 드는건 제 앨범이 아니니까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시는데, 이건 제 개인 앨범이 아니에요. 앨범에 반만 내가 쓴 곡이구만. 멤버들 입이 이렇게 튀어나왔거든요. 인터뷰 나가면 오지은 얘기만 계속 하니까. 성토 듣고 살아요.

[weiv]: 곡 작업한 순서는 어떻게 되요? 밴드 전에 써 놓았던 곡이 있었는지, 아니면 밴드 결성하고 쓴 건지…
오지은: 제가 예전에 써놨던 곡들이 시작이었어요. “너에게 그만 빠져들”이랑 “아저씨 미워요”가 어쩌다 ‘뿅’하고 나왔어요. 꽤 옛날에 썼어요. 홋카이도 일주 가기 훨씬 전인데, 아는 친한 동생이 짝사랑을 하고 있어서 그 노래를 썼죠. 만들어 놓고 되게 좋아하던 노래인데, 이런 노래는. 오지은 솔로 1, 2, 3, 4집에는 절대 못 들어갈 텐데 밴드 작업 때문에 덕분에 빛을 봤네요. 그리고 제가 여섯 곡을 먼저 쓰고 나머지 다섯 곡은 “여러분들이 빨리 써라”라고 한 거죠.

[weiv]: 다른 멤버들의 작곡도 오지은을 ‘위해서’ 쓴 걸까요?
오지은: 전혀 안 그렇지 않아요? 들어보시면 아시다시피 전혀 안 그래요. 이미 만들어 뒀던 노래 데모를 준 사람도 있구요. 중엽이는 이 밴드의 컨셉에 맞게 곡을 써 왔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하하. 근데 저는 이게 완벽하게 컨셉츄얼하게 갈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 게 이 밴드에 맞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왜냐하면 컨셉츄얼하게 사운드를 만든 팀이 아니라 (상이한) 퍼스널리티가 모인 게 아주 묘한 지점의 사운드를 만드는 그런 팀이라서 그런 퍼스널리티들이 곡에 들어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weiv]: 완전하게 ‘컨셉추얼’하진 않다고 했지만 일정한 내러티브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오지은: 내러티브는 있죠. 완전 있어요. 그러니까 유머스럽게 전체 톤에 유머를 깔고, 나름대로는 아이러니를 깔았죠. 사랑을 현명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을 어떨 때는 즐겁게도 바라봤다가 어떨 때는 슬프게도 바라보는 식으로. 그러니까 만나고 헤어지는 건 의도해서 만든 건 아닌데 만들어 놓고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저 그런 거 되게 많아요. 무의식이 일을 되게 많이 해요. 그래서 잠을 많이 자요. 진심입니다!

[weiv]: 개별 곡들에 대해 제가 궁금한 것들 몇 개 먼저 물어볼께요. “뜨거운 마음”을 들을 때는 민해경이 부른 “그대 모습은 장미”가 떠올랐네요. 지난 공연에서 나미의 “보이네”를 불렀을 때도 그랬고…
오지은: 아 그럴 수 있겠네요. 아, 그럴 수 있어요. 무의식이 많은 일을 한다니까요? 이런 노래들의 ‘간지’ 좋아합니다. 미드 템포의 볼륨감 완전 좋아하구요. 사실은 그 노래가 유일하게 레퍼런스가 있었던 노랜데 노나 리브스(Nona Reeves)였어요. 근데 노나 리브스가 맨 처음 시발점은 되었을 수가 있어도 노나 리브스같은 노래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기 때문에 그 풍으로 쓰고 그 다음에 어디로 뻗어나갈지는 늑대들에게 맡겼어요. 결국 별로 노나 리브스가 아니게 되었고…

[weiv]: 공연에서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의 곡들을 커버한데 그것도 이번 앨범의 곡들의 레퍼런스들의 하나였나요?
오지은: 저 음악의 레퍼런스로 다른 분들이 꼽으시는 게 몇 있는데 의외로 그 중 이름만 들어본 것도 있고 하하.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여자애여서 그러나? 사실 진짜로 인생에 엄청나게 죽도록 따라한 레퍼런스가 딱 둘이 있다면….음 이건 아예 그냥 밝히는게 나을 것 같네요. 쓸 데 없는 소리를 듣느니.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이랑 주얼(Jewel)이에요. 끝입니다. 쏠 때는 앨라니스 모리셋처럼 쏘고, 속삭일 때는 주얼처럼 속닥거리고.

[weiv]: “사실은 뭐”나 “Outdated Love Song”같이 다른 사람이 만든 곡을 부를 때는 또 다른 느낌이었을 같은데…
오지은: “사실은 뭐”는 굉장히 마초적인 노래죠 하하. 이건 가사도 정중엽이 썼어요. 정중엽이가 자기 곡에 완결된 뭔가를 굉장히 추구하는 소년이어서 하하. “Outdated Love Song”은 신동훈이 만든 노래고 은근히 호응이 좋아요. 약간 옛날 록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없었으면 좋았을 걸”은 민수가 쓴 노랜데, 가사가 제가 이번 앨범에 꼭 쓰고 싶었던 얘기를 이 노래의 가사로 담을 수가 있어서 좋아합니다. 그 되게 남자애랑 여자애가 둘 다 되게 예쁘고 착하고 막 순진하고 그런 애들인데 걔네도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해야 되는 순간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근데 그런 게 되게 예뻐 보이는 시기가 있죠. 이렇게 노래의 세계가 제 안에서 출발을 안 하고 다른 사람이 틀을 만들어 가져온 세계인 경우에는 보컬로서 되게 두근거리는 지점이 있어요. 오히려 더 날 확장시킬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재미있었어요. 힘들었지만… 그나저나 “Outdated Love Song”은 오지은 작렬한 노래 아닌가요? 하하.

[weiv]: 가사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밴드로 작업 했던 방식이 대충 어떤 식이었나요? 솔로 때와 비교해서 달라진 점은.
오지은: 잼 형식의 합주로 시작했어요. 멜로디랑 가사의 틀만 가지고 간 상태에서 ‘이런 느낌에서 이렇게 이렇게 가는 거야. 오케이? 한번 가볼까’라고 하면 두세 번째 것이 바로 편곡이 되는 그런 식이었어요. 되게 화학적인 것 같아요. 뭐라고 얘기해야 되나? 즉흥 비슷한 것이기는 한데, 골(goal) 지점이 정해져 있는 즉흥 같은 느낌이랄까… 예를 들어 ‘이 곡은 밝은데 그루브하고…’ 등의 키워드만 던져진 상태에서는 각자의 머릿속에 해석이 다를 것 아니에요? 그게 만나는 지점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밴드가 가능했던 거죠. 한 사람이 생뚱맞은걸 하고 있지 않고. 아무래도 이런 밴드는 기타가 주인공이니까 중엽이가 그거를 기타로 표현을 하면 드럼이 따라붙고, 드럼 따라가면 베이스가 붙고, 그러면 기타가 가는 부분의 다른 걸 건반이 해줄 수 있잖아요? 오르간으로. 기타가 후리고 있으면 건반 라인을 간다든지… 그럼 ‘편곡 끝!’이라는 느낌으로 갔죠. 정교하지 않게 숭텅숭텅 썬 두부 같이 투박하게 가고 있었어요. 나중에 녹음은 한 명 한 명씩 했지만 편곡은 딱 그대로 갔던 것이죠.

 

연애, 연애, 연애

[weiv]: 오지은의 인생에서 연애는 얼마나 중요한가요? 앞으로 연애가 아닌 이야기를 노래로 쓸 생각도 있는 건가요?
오지은: 연애는 몹시 중요합니다. (인생의) 90%? 하하. 그런데 이제까지는 연애라는 주제를 잘 표현하는 거에 상당히 전념 했는데, 아주 조금 아주 조금 넓어질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하네요.

[weiv]: 요즘같은 시대 분위기에서 연애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오지은: 아, 시대요. 시대가 만약 영향이 있다면…저는 노래로 세계 평화를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요. 그건 시대의 영향이 있을 수 있겠죠. 아마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1 90년대 2000년대 전부 사람들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게, 커트 코베인이 죽은 이후에 음악을 듣기 시작한 애들은 어쩔 수 없는 약간 염세주의 같은 게 있을 수밖에 없어요. ‘록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고 개인의 조그마한 행복이 굉장히 소중한 거다’로 변한 거죠. 저 혼자 연애를 안 한다고 해서 세계평화가 지켜질 수 있다면야 안 할 수 있어요.

[weiv]: 그런데 오지은의 연애는 평화로운 연애가 아니잖아요. 때로는 전쟁같기도 하고…
오지은: 연애라는 건 평화로울 수가 없죠. 연애라는 건 절대 평화로울 수가 없죠. 연애라는 건 20대의 성인이 자신이 성인이라고 생각하고 뭔가를 다 안다고 생각하고 다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중에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좌절이 아닐까 싶어요. 상대방을 절대로 내 맘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는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진짜 어른의 세계가 겨우 시작 된다고 생각 하거든요. 그걸 못 깨달으면 아직 어린이 인거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거기에 관심이 많이 꽂혔던 게 아닐까. 근데 20대 여자애가 연애 외에 관심을 뭘 가질 수 있을까요. 효도? 입신양명? 저도 분명 이제 관심사가 옮겨갈 거 아니에요? 어디로 옮겨갈 지 저도 궁금해요.

[weiv]: 그 점에서 이번 ‘밴드’ 앨범도 연애 이야기가 많지만 자기 이야기는 아닌 것 같네요. 일종의 ‘연기’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지은: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제 얘기가 아니예요. 이제까지는 나의 지금 연애를, 연애! 연애! 하고 얘기 하다가 요즘 조금 바뀐 게, 이제 남의 연애를, 상상의 연애를 얘기하게 된 것이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또 3집은 모르겠어요. ‘나는 이거 하는 뮤지션이니까 이것만 해야 된다’는 건 되게 스스로한테 내리는 사형선고 비슷한 거라. 시도는 이것 저것 해보려고요. 물론 결과물로 담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것이든 자기 안에 이야기가 찬 것을 흘러나오는 걸 담아야지 ‘나는 뭔가를 써야겠다’고 쓰면 억지일 수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되게 많이 쌓이고 농익어서 자연스럽게 나오면 그 때 이야기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weiv]: 3집 이야기는 나중에 물어보려고 했는데 이미 말이 나와서 슬쩍 하나만 물어볼까요? 그때는 어떤 연애 이야기가 들어갈까요?
오지은: 근데 3집은 정말 모르겠어요. 결국 연애 얘기가 많이 들어가겠지만 지금보다 좀 덜 직접적이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긴 한데, 1, 2집이 펄펄 끓는 냄비 같다면, 3집은 한소끔 끓고 나서 가스 렌지에 흥건하게 튀어있는 자국들을 기리는 느낌일 수도 있겠고… 갑자기 다른 얘긴데 지금 신현준 님은 연애를 안 하신다고 얘기하셨잖아요? [신현준: 예, 안 합니다!] 그런데 20대 여자가 생각하는 연애하고 20대 남자 30대 남자 또 40대 남자가 생각하는 연애랑은 경중도 다르고 형태도 다르고 많은 게 다르잖아요. 대부분의 평론가는 남성이잖아요. 그래서 20대 여자의 연애만 열나게 다룬 오지은과 늑대들 앨범이 오해를 받은 지점도 있지 않은가 생각하거든요. (오해하지는 않더라도 이해 못하는 경우는 있겠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거 아냐. 그 지점이 난 재밌는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여성 평론가들 파이팅 해줬으면 좋겠어요. 아, 이걸로 차우진 씨가 여성 평론가분이랑 얘기해보라고 했는데 벌써 해를 넘겼네.

[weiv]: 이 시대에서 연애의 ‘정치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지은: 연애라는 것의 정치적 의미요? 연애를 정치적으로 하면 안 되죠. 연애를 현실 도피의 솔루션으로 쓰는 것도 너무 싫구요. 그렇다고 연애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결국 연평도에 포격이 있고, 어떤 인디 뮤지션이 돌연사를 하고, 구제역이 발생을 하는 상황에서도 나의 마음은 누군가를 좋아하고 이는 상태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모든 일은 다 동시에 발생하고 있지만 누가 어떻게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지는 얘기할 수 없는 것이죠.

[weiv]: 알겠습니다. 가사 쓸 때 특별한 노하우같은 게 있나요?
오지은: 가사를 쓸 때 한 곡에 30분 이상 걸린 적이 없고 곡도 가사랑 붙어서 나올 때가 많아요. 곡이 안 나와서 끙끙거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이유가, 곡을 쓰려고 앉은 적이 없으니까. 편법이죠? 하하. 잘 될 때만 쓴답니다! 이제까지는 골 지점이 없이 그냥 발 가는대로 날리는 슛 같았다면 3집은 그런 사람이 골을 한 번 만들어보고자 한 번 노력 하는 그런 작업이 될 거 같네요.

[weiv]: 이번 앨범에 ‘“화”를 들을 때의 느낌이 덜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부당한가요?
오지은: 오늑(오지은과 늑대들)요? 오늑은 오지은 솔로 때의 자아의 발가락도 담구지 않았어요. 하하. 죽자고 만든 음악이 아니라 놀자고 만든 음악이에요. 반면 “화”는 항상 토하는 느낌으로 노래를 부르고, 부르다 가끔 울기도 해요. 그런데 “화”를 만들었으면, 같은 노래를 또 만들 이유가 없잖아요.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도 그렇고, 토하는 노래들이 몇 개나 있으니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하려구요. 그러니까 토하는 듯한 감정이라고 해도 그걸 앞으로 토하는 방법이 있고, 다르게 드러내는 방법이 있다면 후자의 방법으로 도전을 해보고 싶은 게 지금 생각이에요. 그게 저도 다치지 않고 듣는 사람도 다치지 않을 것 같아요. 고어 영화처럼 항상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런 걸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뮤지션이 되고 싶지 않아요. 이런 건 욕심쟁이일 수도 있겠는데, 예 진짜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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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와 일상

[weiv]: 개인적인 일이지만, 요즘 ‘연구주제’가 장소와 일상입니다. 먼저 오지은에게 홍대라는 장소는 무엇인가요?
오지은: 희한하게 제가 오늘 새벽에 쓴 글이 비슷한 글인데. 서울의 어떤 거리를 그 사람의 추억이 담긴 에세이 식으로 푸는 칼럼인데 저는 홍대 얘기가 와가지고, 빵이랑 바다비와 카페들을 썼어요. 제가 처음 오디션 보러 가던 날부터 글을 시작해서… 끝은 홍대에 명동스러운 가게도 많이 생기고 좋은 공간들이 더러 없어지기도 하겠지만 ‘젊음의 에너지는 사라지는 게 아니고 이동하는 거여서 다른 데가 또 생길 것이고 만약 홍대 같은 곳이 세 군데가 더 있으면 훨씬 좋겠다’는 식으로 끝을 맺었네요.

[weiv]: 홍대라는 같은 장소라도 사람마다 일상을 향유하는 방식은 다를 것입니다. 오지은의 삶은 어떤가요? 약 5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서 말해주겠어요?
오지은: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바빠지기 전과 후의 차이 정도가 있겠죠? 저한테 별로 좋지 않은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전 홍대 씬에 대한 아무런 로망도 없는 상태에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게 저희 세대의 다른 뮤지션들이랑 가장 큰 차이에요. 저는 그렇게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2005년인가 2006년에 빵에 간 사람이 지금은 상상마당을 가는 정도의 차이? 물론 공연에 대한 스킬이나 자세 같은 게 발전은 했겠지만, 글쎄요 기본적인 차이는 없어요.

[weiv]: 홍대 근처로 ‘이주’해 온 것 맞죠? 그러면 이사하기 전과 이사한 다음의 삶을 비교해 보면 어떨까요?
오지은: 그 전 살던 데는 역삼동 이었어요. 별로 밝히고 싶지 않은 부분이어서 하하하 [인터뷰 뒤 사담에서 그녀는 자기를 ‘강남 계집애’라고 말했다]. 3년 전 홍대를 이사를 하게 됐죠. 홍대에서 너무 많은 일들을 하게 되니까. 오늘 쓴 글 초입에도 그렇게 썼는데, 저는 회사도 홍대에 있고 회의도 홍대에서 하고 인터뷰도 홍대에서 하고 단골 카페도 홍대에 있고 친구들도 홍대에서 보고 연습도 홍대에서 하고 녹음도 홍대에서 하고 밥도 홍대에서 먹고 또 술자리도 홍대에 있고 저는 정말 여기서 정말 많은 게 해결되죠. 제게 홍대는 ‘일하고 밥 먹고 노는 곳’입니다. 이사 오기 전에는 홍대에 너무 자주 와야 되는데 그러다보면 택시비는 엄청 깨지고 길 막히면 욕먹고, 공연 지각하고, 너무 싫었어요!

[weiv]: 그렇다면 지은 경우는 홍대랑 그리 긴밀하지 않았고 만약 2005년에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면 살던 곳에서 가까운 장소(예: 청담동)으로 갈 수도 있었다는 말로 들어도 될까요?
오지은: 그러니까 예를 들어 예전에는 녹음실이나 사무실 같은 게 대부분 청담동 쪽에 있었잖아요. 플럭서스라든지, T엔터테인먼트라든지. 근데 이제는 홍대에 있는 회사들에 꽤 뮤지션들이 모여서 자체로도 힘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닐까 해요. 제가 종종 친구들이랑 있을 때 종종 하는 말인데 유희열, 이적, 김동률, 유희열 같은 지금의 굵직굵직한 스타들이 지금 음악을 하려고 시작했으면 해피 로봇이나 파스텔에 데모를 보내지 않았을까요? 근데 저같은 경우는 청담동 회사도 홍대 회사도 아니고 자가 제작을 한 케이스잖아요. 저는 실제로 2007년 정도에 T의 부름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까지는 거기서도 이쪽에 조금 관심이 있었던 거죠.

[weiv]: 그렇다면 예를 들어 붕가붕가 레코드처럼 관악에서 홍대로 ‘집단적으로’ 이주한 것은 아닌 것이네요. 그러면서 사회적 관계도 바뀌었을 같은데…
오지은: 매우 개별적이었죠. 저는 이 씬에 들어와서도 한동안 친구가 없었어요. 빵에서 여주할 때도 별로 없었고, 빵에서도 약간 이질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네요. 그때는 그림자궁전, 골든팝스, 굴소년단, 소히, 시와 등과 빵에서 같이 공연했었어요. 옛날부터 친구들도 그대로 친구지만 아무래도 같이 연주하는 사람들이나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쉽게 친구가 되고 서로 좋아하죠.

[weiv]: 일상생활의 변화에 대해 조금 더 캐묻고 싶은데 오지은의 ‘전형적인 1주일’을 비교해 보면 어떨까요?
오지은: 한 주 한 주에 따라 달라요. 앨범을 만드는 기간에는 진짜 밥만 먹고 앨범만 만들고… 아! 빵 시절과 차이점 생각났다. 그 때는 음악으로 100% 생계가 안됐기 때문에 앨범을 만드는 기간, 프로모션을 만드는 기간 이런 구분이 있지 않잖아요. 항상 뭔가 일을 해야 했어요. 통역․번역, 기사도 쓰고. 근데 지금 같은 경우에는 완벽하게 음악 만드는 시간 음악을 홍보하는 시간 라이브를 준비하는 시간 쉬는 시간이 나뉘어져 있다는 게 다르네요. 공연할 때는 그 주는 비워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공연할 수 있게, 프로모션 기간에는 최대한 똑같은 질문에도 다르게 대답하려고 하고.. 근데 저는 회사원으로 사는 거랑 별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타입이에요. 글도 그 때 글 쓰던 것처럼 쓰는데, 그때는 번역이고 지금은 원고, 연재 등이라는 차이 정도가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러니까 생활의 형태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이유는 뭔가 패턴이 비슷하기 때문이에요. 단지 돈 버는 구멍이 달라지다 보니까 무게가 달라지는 거죠. 원고에 대한 입금은 비슷한 것 같은데(하하!), 번역할 때와 분량이 다르네요. 에전에는 기계적으로 번역을 하면 되지만, 이제는 원고지 20매 분량이라고 생각을 많이 해야 되는 거라.

[weiv]: 그런데 홍대에 기반을 둔 레이블들 가운데 오지은이 소속된 해피로봇이나 파스텔의 경우 레이블이나 소속 뮤지션의 지위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무식하게 말하면 ‘인디냐 아니냐’는 식의.
오지은: 음악을 거대한 산업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고, ‘음악을 하다보니 이게 사업이더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큰 차이가 있잖아요. ‘음악을 하다보니 이게 사업이더라’의 극단적인 케이스가 오래된 인디 레이블들이라면, 그것보다는 ‘진짜 사업인데 이게 음악이더라’는 것이죠. 저는 뮤지션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시작한 타입이 아니고 반대로 얼떨결에 시작한 다음에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고 스스로를 의심했던 타입이어서. 음악으로 돈 벌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벌써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21세기는 무서운 시대여서 그러면 안 되요. 그냥 정직하고 솔직하게. 제가 용감한 형제가 아닌 이상. 그런데 용감한 형제도, 아마 저는 돈 벌자고 음악 만드는 사람 아닌 것 같아요. 와 이거 죽이지 않냐? 이러면서 좋은 음악 만들고 있을 것 같은데.

[weiv]: 해피 로봇에서 방송이나 공연 관련된 프로모션을 어떻게 하는지 몇 가지 구체적 묘사를 해줄 수 있을까요?
오지은: 2집 때랑 지금은 또 다른데, 2집 같은 경우에는 인터뷰를 몇 번 했더라? 30번이었나? 그 가운데 7~80%를 한 달 안에 했어요. 방송 횟수를 하자면 라디오를 일주일에 많을 때는 서너 개를 하기도 했고. 오늑은 그렇지는 않네요 하하. 그래도 꾸준하게…이번 주에도 하나가 있고 다음 주에는 고정이 있고. 그런데 아시겠지만 방송 출연료는 굉장히 적어서서 회사마다 방침이 다르지만 저희는 그냥 경비로 생각해요. 공연 경우는 저희 회사에 퍼레이드라는 공연 팀이 있습니다. 이번 공연 경우 예를 들면 해피로봇은 파라솔을 갖다 놓아 준다든지, 예쁜 그림을 만들어서 붙여 준다든지, 망토를 사서 입혀주는 부분을 해피로봇이 담당을 했죠. 저희가 세트 리스트를 다 따서 한번 보여주면 시간 체크하고 ‘여기 좀 많은데 좀 치는 게 어때요’라든지 ‘2부가 약간 걱정이 됩니다’라고 충고를 해준다든지, 우리의 합주 데이터를 조명 감독님에게 전달해 준다든지 등등을 해 주시죠.

[weiv]: 이른바 ‘행사’는 어떤가요?
오지은: 1, 2집 때는 행사 없었구요! 오지은을 누가 행사를 부르겠어요? 우울하게. 오지은과 늑대들은 이제 시작일 때여서 행사 부를 때 쯤 되면 세상에 없는 밴드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프로젝트 밴드잖아요? 이 사실을 왜 많이들 모르지? 12월 16일 날 앨범을 냈는데 1, 2월에는 행사가 없잖아요 3, 4월 되어야 행사가 있을까 말깐데, 그때 까지 과연 관계자의 귀에 들어갈지. 행사를 할 수 있어서 멤버들한테 돈을 줄 수 있으면 좋죠. 하하.

 

도일(渡日), 그 후의 이야기

[weiv]: 작년 초 일본 진출 뉴스가 많았는데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오지은: 결론적으로 얘기를 하면, 일단 제가 바빠요. 으하하. 일본의 몇몇 군데랑 이야기를 했는데 일단 그 쪽도 한국이랑 비슷하게 상황이 어려워서 초기 투자를 많이 하지 않아요.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겠느냐’고 해서 제가 ‘아니오’라고 면전에서 확실하게 거절했어요. 쇼핑몰부터 돌 수는 없는 거니까, 제 인생의 우선순위에 다른 중요한 일들이 있으니까요.

[weiv]: 다이시 댄스(Daish Dance)와 공연을 했다는 뉴스는 들었습니다. 이건 별개인가요?
오지은: 그것과는 별개에요. 다이시 댄스 쪽과는 아마 계속 작업을 할 것 같아요. 작년에 스튜디오 코스트, 즉, 클럽 아게하에서 공연했어요. 한국인 최초 아게하 입성! 헉 아무로 모르나요? 왜 그 재밌는 뉴스를 놓치는 걸까? 하하. 그 외에 제프 사포로랑. 일본의 각 도시의 가장 큰 클럽에서는 한 번 씩 했어요. 오사카, 삿포로, 도쿄, 후쿠오카…또 어디서 했더라. 총 세 번인가 갔어요. 하우스계에서 러브콜이 오고 있다는 게 너무 웃기죠. 그런데 너무 재미있어요. 다른 세계에 놀러가는 것 같고 굉장히 부담 없고 좋아요. 다이시가 다음 앨범이랑 싱글 작업 같이 하고 일본에서 또 다시 라이브 몇 번 하자고 하고 있는데 립 서비스려나…

[weiv]: 일본 음악산업에서는 외국 아티스트가 일본에 ‘체류’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한동안 일본에서 체류했던 건가요?
오지은: 그러니까요. 그래서 그걸 못하겠어요. 일본 활동을 폄하하는 게 아니고 우선순위에서 일단은 제 3집이 더 중요한 거니까. 다이시 댄스가 초청하는 경우에는 공연 때만 가면 되니까 괜찮아요. 다이시 댄스 공연은 체류가 아니고 왔다 갔다하는 거죠. (비행기 값은) 그 쪽에서 저희 회사 직원까지 더블로 내면서. 꽤 부담되는 조건이죠. 하하.

[weiv]: 요즘 분위기에서 일본에 앨범 내는 건 해볼 만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오지은: 그러니까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일본에서 와서 활동을 하지 않는데도 일본 앨범을 내 줄만한 회사가 지금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거기서는 생판 무명인데, 그러면 거기서 뭐라도 해야 할 텐데 사람이 없으면 프로모션도 못할 거니까, 앨범 경우도 한국어 라이센스 앨범을 낸다면 모를까 1, 2집의 몇 곡을 섞어서 내는 형식을 제안하던데, 막상 해 보니까 오히려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는 그런 앨범이 되어버리는 거에요.

[weiv]: 1, 2집을 그대로 발매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건지 궁금하네요.
오지은: 근데 이해가 가는 것도 있어요. 제가 리스너 입장에서 보면 예를 들어 밝으면 밝고, 어두우려면 어둡고, 예민하려면 예민하고, 귀여우려면 귀엽고, 간단해야 잘 받아들여지잖아요. 근데 제 1, 2집은 그런 마음으로 만든 게 아니라 ‘전부를 담는 것’에 가치가 있다고 믿고 만든 앨범이라 그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앨범이었다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가요.

[weiv]: 그럼 현재로서는 특별히 일본 진출에 염두를 두고 있는 건 아니라고 들리네요.
오지은: 저는 예. 별로. 몇몇 관계자들이 ‘무대가 너무 좋았다’, ‘무슨 노래가 너무 좋았다’라는 이야기를 해주기는 했는데, 거기서 그들의 성에 안차는 부분을 어떻게 만들어서 거기 가서 어떻게 프로모션을 하기에는 할 게 너무 많아서… 반면 다이시 댄스랑 하는 작업은 제가 가사를 직접 쓰니까 재밌는 거 같아요. 그 정도가 딱이에요. 일본 분들한테 종종 음악 잘 듣고 있다는 얘긴 들어요. 하하.

 

시스템과 개인

[weiv]: 이제 ‘산업’이나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오지은: 저에게는 ‘음악을 하다 보니 돈이 오가더라’는 느낌? 저는 1집부터 음악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게 뭐였냐면, 그냥 혼자 골방 같은데서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남한테 들려줄 때 결국 음악은 돈 받고 팔리니까 상업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어디까지 담을 수가 있는가’, ‘“화”같은 노래가 사람들한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과연 이게 소비로 이어질까’가 스스로 굉장히 궁금해서 시도 해 봤다고 볼 수 있어요 사실. 근데 그렇게 내장을 드러냈는데 굉장히 싫어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굉장히 싫어하다가 굉장히 좋아한 사람들이 있었고, 굉장히 좋아하던 사람들도 있었고… 그래서 저는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라고 생각했어요.

[weiv]: 사운드니에바는 어떤 상태죠? 유일한 ‘소속 아티스트’인 시와는 계속 같이 하고 있나요?
오지은: 사운드니에바는 관념적인 것이고 평생 갈 거에요. 늑대들의 음반은 사운드니에바와는 완전 별개이고 큰 차이가 있어요.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다른 거죠. 오지은과 늑대들과 사운드 니에바는 전혀 접점이 없어요. 하지만 오지은 3집에는 사운드니에바 로고가 다시 들어갈 거예요. 시와에게는 다른 좋은 데 가라고 얘기 했는데 안가네. 하하. 더 좋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데로 가야될텐데…여기는 시작을 도와주는 레이블이지 키우고 밀어주고 그런데는 아니고, 제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조금 써먹는 그런 곳이거든요. 시와는 판권 다 가져 가고, 대신 1,000장 장 팔릴 때 마다 나한테 프로듀싱비로 얼마씩 줘요. 사운드 니에바는 자원봉사 단체?(웃음) 오지은이 해피로봇에서 할 만한 음악이 아닌 음악을 한다면 사운드 니에바 단독으로 내겠죠. 아 이거는 전 세계적으로 500장 팔리겠구나 싶은 거라던가.

[weiv]: 앞서 말한 노하우를 공유하는 차원에서 자가제작의 경우 ‘예산편성’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오지은: 저 같은 경우 가요계의 제작시스템을 십대 때부터 고민을 했던 사람이고 이른바 기획사에도 있어 봤어요.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붕가붕가레코드 경우 동아리로, 유희로 시작한 게 이어진 케이스고, 저는 진짜로 첫 앨범부터 수익을 내서 먹고 살고 싶었어요. 그게 되게 다르죠. 그래서 자기가 얼마를 팔 수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서 예산을 다르게 해야죠. 그러니까 이 사람은 굉장히 실험적이어서 전 세계에 500장 팔릴 앨범이면, 거기에 맞게 200만원 이하로 제작해야 되요. 어떻게든 200만원 이하로 자기가 해 와야 해요. 근데 이 사람은 3000장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면 1000만원 이상 쓸 수 있죠. 계산은 간단해요 향뮤직에 얼마에 팔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하죠.

[weiv]: 사운드니에바는 오지은과 시와 외에 다른 아티스트들을 발굴해서 그런 일을 계속할 건가요?
오지은: 그럴 수 있을까나.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 뮤지션을 소개할 때 저의 아주 작은 인지도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굉장히 좋겠죠. 제가 제 앨범이 나왔을 때 누구한테 주고 다녀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시와 앨범 나왔을 때 주고 다녔어요. 대기실에서 안 친하고 서먹한 루시드폴씨한테도 주고… 시와한테 ‘나는 CD들고 방송국에 들어가는 일은 못한다’고 했는데, 시와가 되게 씩씩한 타입이어 갖고 ‘그건 자기가 한다’고 하더군요. 시와 멋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제가 다른 뮤지션들이랑 예전부터 다른 점이 있었다면 음악이 산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CD라는 건 분명 팔아야 할 물건이라는 것,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한 없이 순수해야겠지만 다 만든 후에 그것을 팔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름다운 행위잖아요? 농부가 농사를 열심히 지었으면 트럭이 싣고 나가서 아파트에서 확성기라도 잡고 내 농산물 좋다고 얘기 해야죠. 그게 다른 뮤지션에게 이상하게 취급받는 지점이 있었죠.

[weiv]: 자신의 음악을 잘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으세요? 아니면 씬을 이끄는 리더가 되고 싶으세요? 아니면 둘 다인가요, 둘 다 아닌가요?
오지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하고 싶긴 한데, 자가 제작을 실제로 해봤던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라는 게 분명히 있고 뮤지션들은 사실 시작이 망하면 정말 힘들어지거든요. 다음 기회는 정말 얻기 힘드니까. 시작에서 약간 탄력을 받아야 다음 앨범을 낼 수 있는 건데. ‘자가 제작 앨범을 어떻게 해야 잘 낼 수 있을까’라는 거에 대해서 남들보다 훨씬 많이 고민을 했으니까 저는 그 노하우를 나누고 싶은 생각은 분명히 있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인력이 있으면 쉽게 음원을 등록하고 유통하는 음원 사이트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남들한테 쌍욕을 먹거나 보이코트를 당해도 되잖아요? 상황이 어떻든 내 음악 내가 내놓을 수 있으면 되지. 그러면 좋은데 그건 말 그대로 총대여서 남에게 사격을 당할 수 있는 총대여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전부 하고 싶긴 해요. 노하우가 있으면 나눠야죠. 리더같은 건 이석원 씨같은 분이 했으면 좋겠는데 하하. 뮤지션의 처우 그런 거에 ‘형님이 말씀을 해주셔야지 형님, 우리는 씨알이 안 먹힙니다. 형님이 강짜 부리셔야 합니다’고 말씀드리긴 했는데 하하.

[weiv]: 오지은의 지금 솔루션은 이석원이 앞장 서야 된다? (웃음)
오지은: 농담이구요, 그분 뵐 때 장난치는 거구요. 근데 그런 존재의 선배가 생겼다는 게 일단 지금의 우리에게 꽤나 강점일지도? 예를 들면 언니네 이발관을 누가 무시해요? 공연이 그렇게 잘되는데. 그런 수많은 선배들이 있잖아요. 그리고 가요계에서 이적, 이소라, 김동률같은 뮤지션의 후계로 꼽히는 사람들이 결국 이쪽(홍대) 씬 뮤지션들이란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몇몇들은 ‘그렇다고 달라지는 게 뭐야?’라고 얘기를 하는데 저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weiv]: 달빛요정의 돌연사로 뮤지션의 복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오지은의 생각은 어떤가요?
오지은: “절룩거리네”가 받았던 반향 같은 정도의 화제가 있는 곡이 일본에 있었다면 그 사람은 그 노래로 3년 정도는 꽤나 많은 라이브, 에어플레이[방송], 많은 초대, 많은 음반수익을 받았을 꺼예요. 근데 이쪽 바닥에서 괜찮다고 꽤 괜찮은 노래라고 했을 때의 알려지는 파이가 너무 작으니까 처음부터 생판 모르는 사람들은 여기 음악 들으려면 붙잡고 공부를 해야 되요. 그러니까 이게 확실히 통로가 막혀있다는 건 확실한데, 방송 쪽도 이해는 가는 것이, 당장 시청률 1%가 아쉬운데 생판 모르는 애들, 것도 방송 무대에서 단련되지 않아서 무대에서 실수도 있는, 언뜻 카리스마도 없어 보이는 애들을 누가 쓰겠어요. 그런데 은근 스타성이 있는 뮤지션 예를 들면 노리플라이, 메이트같은 밴드가 생겼잖아요? 조금씩 저변이 넓어지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되게 의외로 긍정적인 사람이라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weiv]: ‘시스템의 문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어떻게 바꿔야 되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솔직히 정말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합의는 없는 것 같아요.
오지은: 네 맞아요. 오히려 거시적인 얘기들을 하곤 하죠. 어느 한 부분의 부속을 간다고 해서 되는 게 절대 아니고, 우리 뮤지션들이 이쪽 씬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3천명으로 잡았었는데, 3천명만 보고 음악을 하면 정말 태도마저 3천명에 갇혀버리는데 그건 위험하거든요. 예를 들면 장기하가 초반에 빵에서 공연할 때랑 지금 공연할 때는 정말 무대에서의 태도가 너무 다르거든요? 그건 정말 멀리 볼 수 있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태도에요. 처음부터 다들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그냥 나 좋아서 음악 하는 거야’가 아니고 남들 앞에서 음악을 하는 거면 약간 태도의 변화는 있어야 하고. 그래서 저변이 넓어지는 속도에 따라갈 수 있어야 하고. 그리고 네이버 온스테이지, 오늘의 뮤직이라든지, 또 싸이월드에도 그런 게 생겼는데 결국 그런 창구가 생기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결국 이런식으로 한명이 두 명 되고 두 명이 열명 되고 열 명이 백 명 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을 해요.

[weiv]: 그런데 나름 오랜 시간 지켜본 사람으로서, 나아질 것 같다가 안되고 그런 느낌이 있어요.
오지은: 저는 솔직히 말하면 1990년대에는 버프를 받은 시기라고 생각해요. 새롭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관심. 솔직히 그때는 카피곡 연주해도 열광해주던 시대였잖아요. 이젠 그렇지가 않거든요. 되게 빡세요. 이 씬 빡세요. 어쩌면 진입 문턱이 높아진 걸 수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판매량이 기성 가수들 보다 높기도 하고, 오늑 같은 경우도 한 때 한터차트 9위였어요. 저희 빼고 나머지는 전부 아이돌이었고. 이렇게 얘기하면 선배들이 굉장히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시작하는 시기의 특권이란 게 분명히 있었고, 그 씬이 이제 10년이 지났잖아요? 그들은 더 수준이 높은 선배들이, 정말 자랑스러워 할 만 한 뮤지션이 됐단 말이에요. 그리고 약간 더 좋은 환경에서 음악을 시작한 후배들이 생겼단 말이에요. 훨씬 넓고 두터워졌다고 저는 확실하게 생각을 해요. 일단 시작부터 자작곡이 있는 게…하하.

[weiv]: 막연하지만 ‘뮤지션의 이해를 대변하는 무슨 단체나 조직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오지은: 그건 아마 씬이 조금 더 무르익어야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신 자체가 겨우 배고픔이나 면할까 말까 한 상황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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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그리고 전망

[weiv]: 오지은의 늑대들에 대한 평론가들의 반응이 그닥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알고 지내는 평론가들이 꽤 많지 않나요?
오지은: 어떤 곳에서 평점 보니까 장난 아니던데. 머리털 나고 5점 처음 받아본 것 같아요(웃음). 어우 난 처음이야. 어우, 나 부끄러워. 저는 우리나라 평론가 분들이 아이돌에 대해서 쓰는 글을 되게 흥미롭게 읽어요. 아이돌을 보는 눈에는 잣대나 엄숙주의가 없거든요? 근데 이쪽 씬의 음악을 볼 때는 그런 게 확 생겨요. 그거 너무 이상한 것 같아요. 오히려 가장 호의적이고 투명하게 봐 주는 곳이 방송이랑 신문이나 패션잡지같은 일반 언론이에요.

[weiv]: 이른바 ‘악평’도 있었던 것 같네요. 이 기회를 빌어 항의한다면?
오지은: “네이버 ‘오늘의 뮤직’에서 2011년 첫 ‘이 주의 발견’에 [오지은과 늑대들]이 뽑히지 않았다면 나는 이 코멘트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은 굳이 쓸 필요가 있나 싶어요. 어떤 분은 오지은과 늑대들 앨범 평에 처음부터 끝까지 이만큼이 내 이름만 나와요. 이건 프로젝트 밴드인데! 설마 3집이 나오면 1, 2집이 아닌 오늑이랑 비교하실까요. 덜덜. 어떤 분은 ‘오지은에게 안 어울린다’는 듯이 얘기하는데 근데 오늑 라이브를 보지도 않았잖아요. 하하. 그러니까 마치 뭐랄까 정말 여자답고 다소곳해서 좋아하던 후배가 쌍욕을 하는 걸 눈앞에서 봤을 때 ‘야! 너 그러지 마!’라고 말하는 남자 선배를 봤을 때의 느낌이랄까. 아니, 어울리고 말고를 왜 자기들이 마음대로 정하죠? 리스너들이 이렇게 좋아하는데.(웃음)

[weiv]: 제가 보기에는 ‘남성 평론가’가 좋아할 음반은 아닌 것 같네요. 게다가 1, 2집의 강한 인상 때문에 비교가 된 거 아닐까요? 그건 오지은의 일종의 ‘업보’ 아닐까요?
오지은: 그래서 1,2집을 좋게 봐 주셔서 그런 거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끝까지 두 번 듣고 크레디트도 전부 읽고 그랬으면 좋겠어요(웃음). 누가 작곡을 했는지 이런 거 있잖아요. 그러니까, 어 저는 사실 진심으로 어떻게 생각하나면, 1집을 내기 전에 가장 친한 사람한테 ‘리뷰 당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앨범을 내면 누군가가 그걸 리뷰를 해주는 그런 뮤지션이 되면 소원이 없겠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사실 이제 바랄 게 없어요. 리뷰가 되었으니까. 근데 사실 모든 사람이 내걸 막 열심히 듣고 열심히 분석해서 열심히 써야 될 의무는 없어요. 그래서 그걸 바랄 수는 없지만 그리고 그분이 그걸 열심히 듣고 쓰신 걸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 바랄 수는 없지만 그냥 오류는 없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내가 평소 글을 즐겨 읽고 음반 선택이라든지 씬의 여러 가지라든지 그런 걸 많이 파악하게 해주는 분들, 그러니까 안면도 있고 길에서 보면 반갑고 ‘잘 지내세요?’ 인사하고 오랜 시간 얘기도 하고 인터뷰를 세 시간씩이나 한 분들이 왜 오류를? 많이 바쁘신가?(웃음)

[weiv]: 3집에서 삼세판 평가가 이루어지겠네요(웃음). 3집의 컨셉에 대해 미리 조금만 말해 줄 수 있을까요?
오지은: 1,2집은 있는 그대로 마음을 미추와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펼쳐 보이는 것에 되게 노력했어요. 그러니까 ‘이건 드러내지 말자, 이건 드러내자’ 이런 류의 것을 없애는 것에 굉장히 노력을 했던 거였다면 3집은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을 거에요. 조금 더 많이, 다섯 번 정도 정제하고 싶어요.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거 두 번이나 했으니까. 그리고 있는 그대로 드러냈을 때 받는 화살은 굉장히 무서운 거여서요, 물론 인정 사정 없이 드러냈으니까 더 진하게 이해해주고 공감해준 사람도 있지만, 3집은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조금 더 푸근하게 가고 싶어요. 오히려 어떤 의미로 듣기 편한 앨범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선. 그러니까 감정을 너무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니까 듣기가 빡셌잖아요 듣기가. 근데, 다른 쪽으로는 빡셀 수 있지만, 그 쪽으로는 빡세지 않을 거예요. 조금은 교묘해지고 싶네요. 처음으로.

[weiv]: 늑대들 곡들이 솔로 3집에 다시 들어갈 수도 있을까요? 느린 템포의 곡들에서 3집에 대한 힌트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지은: “만약에 내가 혹시나” 말씀하신 건가요? 그 곡 좋아해 주면 제일 고마워요. 그것은 3집에 들어갈 수 있는 노랜데, 그냥 여기에 넣은 거죠. 하지만 3집에 그 곡을 넣는다면 편곡과 목소리 톤과 템포 등이 많이 달라질 거예요 템포랑. 근데 어떤 3집이 나올 지는 저도 모르는 거죠.

[weiv]: 마무리 질문. 오지은의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는?
오지은: 책은 [선의 나침반]이요. 숭산 대선사라고 한국에선 별로 안 유명한데 해외에서는 달라이 라마랑 동급으로 4대 생불로 불린 분인데, 현각 스님이 하버드에서 숭산 스님 수업 듣고 한국에 왔어요. 그런데 사실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분의 키워드가 ‘나는 모른다. 오직 모를 뿐’ 이거든요? 근데 20대 초중반에 안다고 깝치다가 크게 깨지기도 하잖아요. 근데 그때 ‘몰라도 된다’라는 사실이 엄청 큰 위로가 됐어요. 그리고 지금도 뭘 잘 모르겠어요. 근데 그게 되게 좋은 삶의 자세 같아요. 인생의 영화라면 “사운드 오브 뮤직”과 “메리 포핀스”? 하하. 한 500번 정도 봤으면 인생의 영화하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집에 테이프가 있어서 매일 학교 다녀오면 한 번 보고 오후 일과를 시작했던 기억이 있네요.

[weiv]: 오지은의 내 인생의 음악은?
오지은: 어렵다, 진짜 어렵네요. 너무 많아요. 테크니컬하게 도움을 크게 준 음악들도 있고, 감정, 가사에 도움을 준 음악들도 있고,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좀 이상향이라고 생각한 음악도 있는데, 그 세계가 정말 딱딱 달라서. 음…그 중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건 카펜터스? 그런 노래를 몇 곡 쓰고 죽을 수 있으면 그 인생 괜찮은 것 같아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줄리 앤드류스의 창법이나 카펜터스의 카렌 카펜터의 창법은 저랑 전혀 상관 없거든요? 근데 그건 제가 지금 하는 노래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하는 창법과 상관이 없는 것이고, 아직 그걸 꺼낼 시기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3집에선 어쩌면 꺼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네요.

[weiv]: 장시간 대화 재밌었네요. 늑대들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3집 준비도 잘 되기 바랍니다.
오지은: 감사합니다! 인터뷰 올라가는게 조금 무섭지만! 하하! 또 뵈어요! 2011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