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아카시아밴드에 대한 나의 기억이 있다. 그것은 ‘음악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2000년대 초중반에 묵묵히 자신의 갈 길을 가면서 소중한 음악적 성취를 남긴 존재라는 것이다. 그들의 앨범을 사서 음악을 열심히 찾아 듣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드리미(dreamy)한 “So Good Bye”와 독특한 리듬의 “두꺼비”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뒤 2007-8년 요조와의 공작, 3집 [우리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입니다], 특별 앨범 [일곱 날들]을 만든 뒤 밴드는 잠시 조용해 보였다. 김민홍이 영화 [여기보다 어딘가에]의 음악을 맡고, 다큐멘터리 영화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가 제작된 것도 2008년 이전의 일이다(개봉은 2010년). 내가 이들을 찾아 나선 것은 뒤늦게 이 영화들을 본 다음이고, 그 동안 이들의 일상의 삶 그리고 그 삶을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변화에 신경 쓰지 않고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일 것이라는 추측은 대략 들어맞았다. 아쉽게도 최근 발표된 4집 [Ciasomos]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아래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4집에서 전자음향을 도입한 시도에 대해 ‘달라졌다’고 호들갑떠는 일을 미리 차단해 준다. 어느 평론가가 말했듯 그 방식이 실험적이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가장 실험적인 면이기 때문이다. 김민홍와 송은지의 파트너십이 만들어 낼 음악은 가끔씩 쳐다보는 방안의 벽지처럼 여기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일시: 2010년 10월 6일 장소: 합정동의 카페 ‘프리템포’ 질문: 신현준, 차우진 정리: 김정윤, 신현준 소규모아카시아 밴드의 소규모 전사 [weiv]: 소규모아카시아밴드가 1999년에 시작했다고 말했고 2000년 초에 만났다고 했는데 거의 10년이네요. 그래서 첫 번째 질문은 앨범을 내고 홍대앞(이하 ‘홍대’라고 약함) 씬과 결합하기 전에는 어디서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에 대한 것이에요. 민홍: 저는 앨범 낼 때까지 홍대라는 곳을 몰랐어요. 활동 지역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었어요. 잠깐 아르바이트로 통기타 라이브 카페에서 잠깐 라이브를 한 적은 있었어요. 광화문에 있는 곳이었고 그때 제가 좋아하던 팝 음악을 연주했어요. 흠, 아시잖아요? 그쪽 동네는 노래방 반주기 같은 것이 있어요. 그거 틀어놓고 그냥 기타를 쳤어요. 딱히 어떤 노래를 했는지는 기억 안나고, 라이브라 하기는 좀 어려워요. 음악활동이라고 하기에는 제가 만든 노래도 아니고 그냥 반주기에 나오는 기타코드만 쳤으니까. 그전까지는 그냥 지하실에 처박혀서 음악만 만들었었죠. [weiv]: 은지씨는 어떠셨어요? 은지: 1999년 무렵 스팽글이 없어질 무렵, 거기에 있던 밴드들이 모두 빵으로 옮겨갈 무렵에 이쪽에서 공연을 하거나 보러 다닌다거나 했었죠. 대학교 들어가면서부터 하기 시작했어요. 민홍 오빠와는 많이 달라요. 민홍: 나중에 보니까 (은지가) 홍대에 대해 많이 알고 있더라고요. 저는 몰랐는데.. [weiv]: 그럼 민홍씨가 홍대 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건 은지씨 때문인가요? 민홍: 네 은지를 통해서 알게 된거죠. 은지: 근데 오빠 아직도 썩 관심 없지 않아? 민홍: 지금도 별로… 그런데 1집을 내고 나서, 보통 앨범을 낸 사람들이 하는 일들은 방송국에 가서 PD들에게 앨범을 주고 그런 거더군요. 그래서 저도 실제로. 앨범을 들고 다니면서 방송국가서 방송국 들어가는 방법 알아내서 그런 일을 했어요. 근데 은지 통해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홍대 쪽에서 공연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 여기 와서 놀랐었어요. 그렇게 많은 밴드들이 클럽에 오디션을 보고 클럽 무대에 서기 위해서 일을 하는 모습은 2005년쯤에 처음 봤죠. [weiv]: 제일 처음 라이브한 클럽이 어디였나요? 민홍: 바다비. 저희 앨범 프로듀서 하던 형의 친구가 그 당시 석호형이랑 함께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첫 처음 공연했죠. 은지: 그때 마침 바다비도 오픈했을 때였어요. 그래서 바다비도 공연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게 아마 2005년 1월쯤이에요. 1집 음반 낸 다음이죠. [weiv]: 어떤 인터뷰에서 어떤날을 좋아한다고 하셨던데. 민홍: 중2땐가? 그때쯤 좋아했을 거예요. 어렸을 때 20살 무렵. 중학교 때였나. [weiv]: 그럼 민홍씨 홍대 앞 뮤지션이라는 아이덴티티는 상대적으로 강하지 않은 편인가요? 젊었을 때부터 음악 들으면서 시작한 사람이 많잖아요. 지금도 그렇고. 민홍: 좀 따로 있는 느낌이 있죠. 제가 그렇게 홍대씬에 대한 애정은 그렇게 많이 없죠. 그냥 활동하다 보니 여러 군데를 알게 되면서 홍대라는 곳에 몸을 담게된 거고. 반복되는 공간(클럽)보다는 새로운 공간에서 공연하고 싶은 것도 있어요. [weiv]: 자의든 타의든 홍대앞 인디밴드라 불릴 때가 있잖아요. 그 호칭에 만족하세요? 민홍: 분명히 우리나라 나름대로의 인디밴드라는 게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뭐라고 불리든 상관 없는 것 같아요. 은지: 어떤 공연을 보는데 진행자가 “아, 아무개씨 최근에 인디 밴드를 만드셨다던데…”(웃음) 이런 걸 물어보는데, 인디 밴드라는 말이 이렇게 좀 이상하게 쓰이니까 짜증이 나는 거죠. [weiv]: 짜증스러운 질문일지 모르지만, ‘인디’라는 이름 자체가 지금 한국에서 의미가 예전만큼 없어졌다고 생각하나요? 민홍: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는 건 듣는 사람이 좋은 것 같아요. 우리가 앨범내고 ‘우리가 사이키델릭 밴드입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잖아요. 장르라는 것이 생겨나는 것도 듣는 사람이 붙이는 거거든요. 그런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게 빠를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은 없어요. 소규모아카시아 밴드 음악의 대규모 반추 [weiv]: 다른 기회가 많지는 않을 것 같아서 1집부터 최근까지 앨범들에 대해 궁금한 점 죽 물어볼게요. 그럼 1집에서 특이한 점은 영어 가사 노래가 몇몇 곡에서 영어 가사가 있었다는 점이에요. 당시 트렌드는 인디 밴드들 대부분이 영어 가사를 쓰지 않고 한국어 가사를 쓰는 게 이미 관행이 되었는데, 영어 가사를 굳이 고집했던 혹은 영어 가사로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이 있었나요? 은지: 평소신념이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 거라서. 이런 건 절대 아니고(웃음) 지금도 마찬가진데 1집에 들어갔던 노래 하나는 호란이 준 거고 [민홍: “So Good Bye”라는 곡의 가사를 (클래지콰이의) 호란이 준 거예요.] 다른 하나는 제가 썼는데 그냥 그때 영어로 써지더라고요. 그래서 영어로 쓴 거지 굳이 한글로 옮기는 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 제작사인 소울샵(주: 참고로 배급은 드림비트)에서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어요. [weiv]: 지금도 그렇지만 영어 가사로 된 한국음반은 ‘가요’ 프로그램에서는 방송하지 않는데 이 곡은 라디오를 통해 알려진 것 같네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민홍: 결정적으로 신해철 씨가 진행하던 <고스트네이션>을 통해 조금 알려졌어요. 앨범 내고 한 번 초대를 받고 갔는데 거기서 틀었죠. 그때 저희가 조그만 카페를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방송 끝나고 카페 회원이 확 늘었던 적이 한번 있었어요. [weiv]: 그 무렵 영화에 이 곡이 삽입된 뒤로 ‘매상’(죄송!)이 올랐던 면도 있나요? 민홍: 잘 모르겠어요. 영화에 삽입된 곡이 아니고 티저에 배경음악로 사용되었어요. 보통 광고나 드라마나 작곡한 저한테 “백만원 드릴 게 쓰겠습니다”는 식이었어요. 일종의 사용료이고 그 당시에는 정액 지급이었어요. 그게 <부산영화제>에서 <가을로>가 개막작으로 선정돼서 부산에서 그 곡이 많이 나왔을 거예요. [weiv]: 그러면 2집부터 ‘파스텔로의 이적’과 더불어 전략이라면 전략. 기획이라면 기획, 예를 들어 ‘홍대 씬에서 우리만의 포지셔닝’ 같은 게 있었나요? 민홍: 있었나봐요. 있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어요. ‘(1집과 다른) 새로운 것. 그 새로운 것을 한국에서 찾아보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사실은 1집 때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S”라는 노래가 뽕짝이거든요. 그래서 그걸 강하지 않게, 노래방 같지 않게, 성인가요 같지 않게 해 보다가 송창식씨가 그런 시도를 했던 것을 발견을 했고, 그 다음에 1980년대 초의 한 팀을 발견을 했고, 나머지까지 팠어요. 1950년대 옛날 가요까지 파서 그걸 다 공부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weiv]: 리듬은 트로트인데 멜로디는 트로트가 아니잖아요. 뽕끼 없는 뽕짝이랄까. 민홍: 예, 그런 것을 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그 멜로디, 그 스케일은 싫었어요. [weiv]: 근데 어느 인터뷰에서 원래 믹싱이 이런 게 아니었다. 원래 믹싱에 전자음 들어가고 약간 뽕끼 있는 거였는데 중간에 엎었었다. 믹싱 이전단계에서. 은지: 우리 2집 내기 전에 한번 엎었잖아. 억지로 하는 느낌이 있어서 한번 엎고 쉬다가… 민홍: 오래 쉬었죠. 그게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예를 들어 일렉트로닉적인 게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리고 그때의 보컬은 은지가 아닌 다른 사람이 부른 버전이었어요. 그때 우리는 조금 떨어져 있던 사이였어요. 아무것도 안하고 마냥 놀다가 어느 순간이 되니까 다시 하게 되더라고요. [weiv]: 두 사람이 싸웠다는 이야기인가요? 싸움 이야기라면 언제나 흥미로운데….(웃음) 은지: 싸워서 그런 건 아니에요. 지금도 그런 지점들 때문에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너무 달랐어요. 너무 달라서 같이 뭔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에는 잘 못했어요. 1집 활동 때도 ‘우리는 프로젝트인거 같다’라고 얘기하면서 활동했는데 결국 같이 하게 된 거죠. 2집 작업 때 제가 ‘같이 하자’고 오빠한테 그랬죠. 그 당시 파스텔에서 계속 연락을 해오던 무렵이었고. 2집은 한참 있다가 나왔죠. 그때부터 ‘서로 뭔가를 같이 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민홍: 제 여자친구가 한 말인데 ‘둘이 오랫동안 할 수 있다는 좋은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을 쓰더라구요. 둘이 붙어 있으면서 지지고 볶고 그러지 않고, 서로 떨어져 있으면 떨어져 있고 같이 있을 땐 같이 있고. 그런 기술이 좋다고 그러더군요. 둘이 되게 다른 사람인데 비슷한 부분이 있는 거죠. 서로 떨어져 있어도 그대로 또 각자의 길로 나가는 그런 기술이 있는 것 같아요. 은지: 저는 홍대 씬을 너무 좋아했어요. 빵이 지금 위치로 이사 오기 전 이대 후문 쪽에 있을 때 그쪽에서 공연하던 친구들이랑 알고 지냈는데, 이쪽으로 발을 디뎌야만 들을 수 있는 음악들이 있잖아요? 다른 데 가면 못 듣는 음악들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그 음악을 통해서 제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책 읽는 거나 공부하는 것처럼 저한테 너무 소중했기 때문에. 너무 좋다 보니까 처음에 [민홍 오빠와] 더 거리를 뒀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랬어요. [weiv]: 2집 이야기로 돌아와서 혹시 파스텔에서는 트로트라는 걸 마음에 들지 않았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나요? 2006년 즈음이면 파스텔이 홍대를 벗어나 나름의 성가를 올릴 때인데 그 주류를 이룬 음악은 ‘귀엽고 해피한’ 음악이었는데, 반면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음악은 음울한 음악이잖아요? 민홍: 어쿠스틱버전을 응민형에게 들려줬는데 그때 OK했어요. 파스텔과의 관계는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관계가 크게 변함이 없어요. 자율성을 충분히 주니까. 사실 이번 4집 작업이 제가 중간 데모 과정부터 응민 형하고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시작할 건데(4집은 홈레코딩으로 녹음되었음) 이러는 건 처음이에요. 이번에도 제가 음악을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 전의 2집부터 <일곱날들>까지는 전부 다 만들어서 가지고 가면 내 줬어요. 그래서 어떤 음악을 만들어야 하느냐라는 것을 두고 회사와 주고받는 이야기가 많지 않았어요. [weiv]: 인디 밴드가 느끼는 아쉬움이 좋은 기획을 해주지 않는 다는 아쉬움인가요, 아니면 그 반대인가요? 민홍: 기획은 약간 건방지게 이야기 하면, 밴드 자체는 좋은 기획을 많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오히려 훨씬 더 자유롭고, 훨씬 더 그 밴드다운 공연도 할 수 있고, 심지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과정까지도 훨씬 더 재밌는 기획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럴 경우] 금전적인 영향이 없으니까 그럴 때 회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그때 부딪치기는 하죠. (회사는) 아무래도 돈을 내는 입장이고, 이쪽은 기획을 내는 입장이니까. 저희 경험 중에서는 [일곱날들] 앨범을 낼 때 저희가 기획을 갖고 왔어요. 그 장면이 영화[<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에는 너무 매정하게 표현되었어요(모두 웃음). 그렇게 매정하진 않았어요. 그때 저희한테는 확신 같은 게 있었거든요. 재미있었고, 잘 만들었고. 그래서 그때는 각자 돈 모아서 저희 돈으로 갔죠. 그런 것들은 좀 아쉬운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weiv]: 2집은 앨범 자체는 반응이 좋았는데 “So Good Bye”만한 ‘히트곡’은 없었던 것 같아요. 민홍: 평이 좀 좋았죠. 한국적인 그런 것들을 많이 담아냈다는 평들은 많이 받았었는데 히트곡은 없죠. 사실 “So Good Bye” 이후로는 없잖아요. ”My Favorite Song”이나 “너”같은 경우는 여기저기 삽입됐지만, 라디오에는 별로 안 나왔죠. [weiv]: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3집과 요조와의 공작은 비슷한 시기에 나왔는데 작업은 어느 게 먼저인가요? 그리고 요조의 앨범을 제작할 때는 밴드의 앨범과는 다른 기획이 있었을 것 같은데… 민홍: 같은 때 작업했어요. 요조와의 공작 경우는 노래를 만들면서 요조를 생각하면서 만들었던 노래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건 은지와 작업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요조와 은지는 워낙 둘이 다른 사람이기도 했고… 나름대로 재밌었어요. 살아 가기 [weiv]: 밴드로 음악활동을 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게 있나요? 은지: 저는 1년 반 전부터 요가강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거의 주업이죠(웃음). 월드짐 여의도점에서 해요. 피트니스 센터에 프로그램으로 있는 거 있잖아요. 요가는 저한테 단순한 운동 이상으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요가를 하니까 공연이 없어지더라구요(웃음). [weiv]: 민홍씨는 요조 외에 다른 가수의 작업을 해주는 일도 있을 것도 같은데… 민홍: 2005년에 슈퍼월드 [브로큰 펄/펄스 데이의 손민정과의 프로젝트] 하나 있는데 스스로 조금 민망해요. 이거 빼곤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하고 싶어요. 근데 또 마땅히 [음악적 영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친구가 아직은 없는 거 같아요. 제가 누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뭔가를 가지고 있을 때 얘기를 하고 싶은데 아직은 그런 친구는 못 봤어요. 은지: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몇 번 왔어요. 몇 명이 가까이 왔었는데 서로 보는 단계에서 멈추고 그랬었죠. [weiv]: 데뷔하면서 지금까지 본인들의 일상에 큰 변화가 있었나요? 바빠졌다던가 일상의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유지되고 있는 편이에요? 은지: 둘 다 옛날이나 생활의 내용이나 패턴이나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바빴던 적은 한 번도 없는 거 같아요. 그런데 좋아진 것 같아요. 민홍: 일상의 시간 배분은 비슷하지만 방향성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음악을 대하는 태도라든지 무엇을 준비하기 위한 행동이라든지. 은지 표현으로는 좋아졌다고 얘기하죠. 그만큼 고민도 하고… 곡을 쓰는 작업도 이제는 일상 쪽에 가까워요. 큰 변화가 있다면 데뷔전에는 아무도 저를 몰랐다는 것이죠. (웃음) [weiv]: 민홍씨 경우에는 작품이 있으니까 디지털 시장이 생기면서 뮤지션으로 활동하는데 나아진 면이 있나요? 민홍: 저희 같은 경우는 인터넷이 저희를 살렸다고 할 수 있어요. “나비”랑 “So Good Bye”를 처음 인터넷에 올린 게 2002년이었어요. 그것이 3년 후에 앨범을 낼 수 있는 큰 밑바탕이 됐어요. 무료로 사람들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저희 활동에 큰 기여를 한 거죠. [weiv]: 요즘 인디 음악 하는 젊은 친구들 일부에서는 ‘우리는 오래 하겠다’는 말을 듣습니다. 전업이 되거나 아니면 그만 두거나가 아니라 직장을 다니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오래 하겠다는 말을 하는데… 민홍: 예전에는 불가능했죠. 지금은 너무나 쉽게 레코딩도 할 수 있으니까 그게 가능해진 거죠. 은지: 저도 요즘에 들어서 느낀 게 있는데 저에게 ‘너 웹사이트에서 노래를 발표했으면 활동은 했니?’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응? 무슨 활동?’이라고 물어보면, ‘활동을 해야 한다’고 해요. 이런 것들도 조금 달라지는 거 같고… [weiv]: 두 사람의 작업방식의 관행은 어떤가요? 곡을 먼저 쓰고 가사를 쓰세요? 아니면 반대의 경우인가요? 연관해서 지금 작업하고 있는 4집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은지: 오빠가 곡을 쓸 때 곡과 함께 가사가 나오는 경우가 많고, 드물게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인터넷 앨범인 동요 앨범에 “개나리 본부”와 “보고 싶은 너”라는 두 곡은 제가 가사를 먼저 쓴 곡이에요. 먼저 만들어놓은 곡에 가사를 쓰는 일은 어려워요. 특히 요즘 작업하는 곡이 제일 어려워요(웃음). 왜냐하면 몇 개는 영어로 써야하는데 영어를 썩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이 부분은 영어가 낫겠냐 한글이 낫겠냐’는 얘기를 하는 과정을 거치죠. [weiv]: 마지막으로 뜬금없는 질문. 은지씨가 그렇게 잔잔한 목소리를 유지하는 비결은?(웃음) 은지: 요가를 하니까(모두 웃음). 근데 저는 제 목소리가 지금도 확립된 거 같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