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ly Allen – Hard Out Here (2013) 내년 발매 예정인 세 번째 정규 앨범을 앞두고 릴리 알렌(Lily Allen)이 4년여 만에 발표한 싱글이다. 특유의 낭랑한 음색은 여전하고, 보코더로 살짝씩 매만진 보컬과 산뜻한 비트가 부드러운 댄스팝의 인상을 만든다. 이전 히트곡들의 수려한 멜로디만큼은 아니지만 적당히 위트 있는 선율도 경쾌한 템포 안에 자연스레 녹아 있다. 한편, 사운드만큼 흥미로운 것은 뮤직비디오다. 릴리 알렌 자신의 생각을 반어적, 자조적으로 담아낸 비디오로 보이는데, 주요 키워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는 여자(bitch)’다. 영상에서 릴리 알렌은 수술대 위에 누워 있다. 복부 지방 흡입술을 받기 위해서다. 매니저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는 그녀가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금보다 더욱 ‘잘 팔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릴리 알렌은 이제 두 아이를 출산한 워킹맘이지만, 그런 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고려의 항목이 아니다. 어쨌거나 여성 뮤지션에게도 외모는 폭력적이리만치 중시되는 요소인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현실이 컴백을 앞둔 릴리 알렌의 심정을 복잡하게 했을 것이다. 비디오는 주류 팝음악 시장에서 여성이 소비되는 기존의 뻔한 방식들을 끌어온다. 번쩍이는 고급 승용차 앞에서 트워킹(twerking, 성행위하듯 엉덩이를 흔드는 춤)을 하고, 액세서리처럼 동원된 여성 댄서들의 몸을 줌업해 보여주며, 부의 상징인 지폐와 골드바(gold bar)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로빈 시크(Robin Thicke)의 올해 초대박 히트곡 “Blurred Lines” 무등급(unrated) 버전 영상을 흉내 낸 장면이다. 릴리 알렌은 이 비디오에 등장하는 ‘Robin Thicke has a big dick’이라는 문구의 풍선들을 패러디하여, ‘Lily Allen has a baggy pussy’라는 문장을 이루는 풍선들을 띄워놓고 그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춘다. 그녀의 문제의식과 직설적인 표현법이 유쾌한 풍자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전반적으로 그녀가 얘기하고자 한 주제가 세련되고 적확하게 구현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중에게 (성적) 대상화가 되길 자처하며 살아가야 하는 여성들의 처지와 그를 둘러싼 상황이 어느 정도는 전해지는 것 같다. ‘이 바닥도 참 팍팍해(hard out here)’ 보인다. | 김영진 younggea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