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12024646-epikhigh에픽하이(Epik High) – Remapping the Human Soul – CJ Music, 2007

 

에픽하이 소견록

데뷔작 [Map of The Human Soul](2003)이 발매되기 전, 에픽하이(Epik High)는 한 힙합음악 전문 사이트의 인터넷 방송을 통해 ‘철저히 메이저 시장에서, 주류 힙합팀으로서’ 활동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I Remember”를 포함한 정규 1집 수록곡들은 예상대로 그들이 지향하고자 하는 작법이 샘플링과 루핑(looping) 중심의 비크메이킹과는 조금 다른 선상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전술’은 [High Society](2004)에서 “평화의 날”, [Swan Songs](2005)에선 “Fly”, “Paris”, “Ride” 등의 ‘차트 지향적’ 곡들로 더욱 확고해졌다. 안정적인 화성의 전개, 튀지 않는 리듬 메이킹, 적당한 은유로 짜인 문장들과 어렵지 않은 라임으로 조합된 래핑, 그리고 짧고 강렬한 멜로디 훅(hook). 그것들은 누구나 흡수 가능할 ‘라운지 가요’이면서 동시에 ‘웰-메이드 팝’이었고, 힙합이 아니면서도 엄연한 힙합 곡이었다.

더블 CD로 제작된 네 번째 앨범 [Remapping the Human Soul](2007)은 그런 점에서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이들의 능숙한 프로듀싱은 이번 음반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고, 이는 곧 에픽하이가 디스코그래피상의 일관성을 가진 팀이란 점도 증명해내고 있다. 특히 세 곡을 제외한 모든 트랙을 타블로(Tablo) 혼자 주조해낸 두 번째 CD [The Heart]는, 그가 늘 그래왔듯 마스터 키보드나 신서사이저를 사용해 만든, 보다 기계적이고도 매끈한 일렉트로닉 넘버들을 선보이고 있다. “Fan”, “선곡표”, “Love Love Love” 등은 이들의 이전 히트곡들이 공유하고 있는 일련의 음향성에 무리 없이 기대고 있다.

한편 좀 더 흥미로운 것은 첫 번째 CD [The Brain]이다. 이 파트는 데뷔 후 지금까지 에픽하이가 들려준 느낌들 중 가장 ‘날 것’의 성향을 가진, 진득하고 생경한 성질의 힙합 음반으로 들린다. “白夜(백야)”부터 시작되는 묵직한 비트의 루프들은 디제이 투컷츠(DJ Tukutz)가 주도적으로 신경 써 매만진 흔적이 역력하고, 미쓰라 진(Mithra 眞)과 얀키(Yankie), 페니(Pe2ny), 김범종 등이 각각 한 곡씩 제공한 트랙들도 산뜻함과는 거리가 있다. 버스와 훅의 할당 및 전개 방식은 최근 국내 언더그라운드 힙합계의 주요한 경향 내지 스타일을 염두에 둔, 혹은 그로부터 적잖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보인다(신보와 관련해 자주 언급되었던 ‘어두움’이란 홍보성 단어도 실은 이러한 부분과 관련성을 가진 듯하다). 또한 두 MC, 특히 타블로의 ‘스킬보다는 감성에 의존하는 랩’은, “Still life”에서 마지막 버스를 담당한 MC 메타의 의도적인 정박 랩과 함께 ‘엠씽(MCing)에 있어 기술보다 더 중요한 무엇’을 강조하는 것처럼도 들린다.

방송 데뷔 3년이 지났을 즈음 네 번째 앨범을 발표한 에픽 하이는, 결국 애초의 바람대로 음반 베스트 셀러의 대열에 합류했고, 이것은 그들의 ‘변절’ 때문은 아니다. 주류 방송 활동을 통한 공중파용 캐릭터 구축이라든지 10대 취향의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과 같은 음악 외적인 요소를 들먹이며 ‘음악적 변질’의 이유를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에픽하이의 음악으로부터 연상되는 스눕 독(Snoop Dogg)과 지-훵크(G-Funk) 류의 메인스트림 팝 넘버들이 누린 대중적 인기의 한국적 현상이라는 말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이유다.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에픽하이의 대중적(상업적) 위치를 과도하게 재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음악 자체를 꼼꼼하게 평가함과 동시에 에픽하이의 음악이 어떻게 대중에게 어필하는지를 바라보는 것이어야 할 듯싶다. 어쩌면 이들 정도의 능력이라면, 원초적인 힙합 음악만으로도 ‘힙합이 힙합으로 받아들여지는 시기’를 이 땅에서도 좀 더 앞당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해보게 된다. 물론 이 말은 에픽 하이에게 바라는 점이 아니다. 단지 에픽 하이에게 한국 힙합의 대중화를 기대하고 있는 2007년의 리스너들에게 드리고픈 소견일 뿐. | 김영진 younggean@gmail.com

6/10

수록곡
CD1: The Brain
1. The End Times (Opening)
2. 白夜
3. 알고 보니 (feat. 진보)
4. 실어증 (feat. Paloalto)
5. Mr. Doctor (feat. 양키 of TBNY)
6. Runaway (MIthra’s Word)
7. Exile (Halftime)
8. Still Life (feat. 진보, The Quiett, Kebee, TBNY, MC Meta)
9. 피행망상 Pt.1 (feat. Junggigo)
10. 희생양 (feat. Sweet Sorrow)
11. Nocturne (Tablo’s Word)
12. 혼
13. In Peace (Closing)

CD2: The Heart
1. Slave Song (Overture)
2. Flow (feat. Emi Hinouchi)
3. Love / Crime (Fan Prelude)
4. Fan
5. 거미줄 (feat. Itta)
6. 선곡표 (feat. DJ Zio)
7. 중독 (feat. Wanted)
8. Underground Railroad (Intermission)
9. FAQ
10. Love Love Love (feat. 융진 of Casker)
11. Girl Rock (feat. Jiae)
12. Broken Toys (feat. Infinite Flow)
13. 행복합니다 (feat. JW of Nell)
14. Public Execution (Finale)

관련 영상


“Love Love Love”

관련 사이트
에픽 하이 공식 사이트
http://www.epikhig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