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ack Heart Procession – The Spell – Touch & Go, 2006 빛, 어둠, 빛 처지지 않는 마이너 코드의 견고함, 과유불급의 연주 패턴, 불쾌하지 않을 만큼의 음산함 몇 줌. 블랙 하트 프로세션(The Black Heart Procession, 이하 블랙 하트)을 연상케 하는 수식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다섯 번째 앨범에는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일종의 ‘로맨스’ 같은, 그것도 ‘어두운 로맨스’라기 보단 ‘어둠의 로맨스’로 불러야 할 것 같은, 좀 더 낙관적 기운의 글귀를. 한번쯤 강한 비유로 말해보자면, [The Spell]은 뿌옇게 서린 김을 닦아내고 넘겨다본 차창 밖의 밤 풍경이 묘하게 안정감을 안겨주는 순간, 그 순간을 검정 캔버스에 흰 아크릴로 담아낸 추상 유화 같은 음반이다. 블랙 하트는 팝메탈 그룹 쓰리 마일 파일럿(Three Mile Pilot)의 멤버 폴 젠킨스(Pall A. Jenkins, 리드 싱어)와 토비아스 나다니엘(Tobias Nathaniel, 멀티 연주자)이 주축이 되어 1997년 샌디에고에서 결성된 프로젝트성 밴드다. 1998년부터 해마다 한 장씩 [1], [2], [3]이라는 제목의 ‘숫자 삼부작’을 발표하며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호응을 얻었고, 지난 2002년에는 드러머 조 플러머(Joe Plummer)와 바이올리니스트 맷 리소비치(Matt Resovich)를 영입하여 제작한 정규 4집 [Amore del Tropico]로 밴드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한층 굳힌 바 있다. 더욱이 칼립소와 보사노바 등 라틴 카바레 풍의 질감을 적절히 투과시킨 네 번째 앨범 이후, 블랙 하트는 2004년 네덜란드의 포스트록 밴드 솔바칸(Solbakken)과 함께 실험성 충만한 즉흥 연주 시리즈 [In the Fishtank]의 ‘Vol.11’ 버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한 적극적 행보 속에서 트리스테자(Tristeza)와 앨범 리프(The Album Leaf)의 핵심 인물 지미 라발(Jimmy LaValle)을 베이시스트로 불러들인 것은 블랙 하트 내부의 응집력이 점차 높아져가던 시기에 내려진 결정적 처사였다. [The Spell]은 그렇게 이루어진 최종 5명의 라인업으로, 1년여의 작업 끝에 완성되었다. 이 음반은 낯선 타악기들과 황량한 록 사운드의 배합에 꽤 많은 신경을 썼던 [Amore del Tropico](2002)와 비교해 한층 간결하다. 또 예전의 삼부작마냥 건조하고 침잠하는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것도 아니다. 다르게 말해 칼렉시코(Calexico)와 닉 케이브(Nick Cave) 사이의 어딘가에 있었을 법한 [Amore del Tropico]와도, 스캇 워커(Scott Walker)를 연상시키는 매끈하고도 묵직한 연주의 삼부작과도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The Spell]에서의 바이올린과 피아노, 기타의 모든 현들은 전작들에서보다 더 긴장감 있으며, 동시에 진한 여유를 발한다. 그래서인지 비가(悲歌)보다는 연가(戀歌)에 가깝게 들리는 음반이기도 하다. 첫 트랙 “Tangled”는 살짝 반향된 피아노 루프의 도랑 사이로 기타 리프가 여유롭게 거닐며 맥박수를 높여가는 구성을 취한다. 블랙 하트의 팬이라면 낯설지 않을, 폴 젠킨스의 낮지만 고음조의 톤(tone) 역시 그에 조응한다. 한편 2번 트랙 “The Spell”은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폴 젠킨스의 장기이자 블랙 하트의 특색 중 하나인 연주용 톱(musical saw)이 등장해 2/4박으로 전반의 템포를 이끄는 가운데, 스네어의 림(rim)과 하이햇을 가볍게 연타하는 드럼 스틱의 놀림이 돋보인다. 그리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젠킨스의 비장한 고백은 마치 성령(聖靈)의 주문(spell)을 받듯 엄숙하고 정갈하다. 1집부터 이어온 연작물로서 음악적 일관성을 잃지 않는 “The Waiter #5″는 그랜드 피아노의 음산한 아르페지오와 불길한 보컬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곡이며, 왈츠 리듬의 “The Letter”와 기타의 스타카토 피킹(staccato picking)이 매력적인 “GPS”는 블랙 하트가 여전히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밴드임을 보여준다. 또 “Not Just Words”나 “Places” 같은 멜로디 중심의 트랙들은 최근 몇 년간 영미 인디록계에서 급부상한 신진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나 마이 모닝 재킷(My Morning Jacket)의 히트곡들과도 ‘맞짱 떠볼 만한’ 팝송으로 들린다. [The Spell]은 지난 4집 앨범에 이어 블랙 하트의 발전된 송라이팅 능력과 함께 능수능란한 표현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이들의 홍보 문구에는 언제나 ‘인간의 참혹하고 어두운 내면의 절망과 슬픔’ 따위가 강조되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말들에 현혹될 필욘 없을 것 같다. 이들의 음악을 일종의 장송곡으로 받아들인 사람일지라도, 음울한 암혹 속에서 한줄기 광선처럼 다가오는 긍정의 기운을 감지토록 해줄 ‘친절한’ 음반이 [The Spell]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검은 파도가 출렁일 것 같은 겨울 바다에도 일출이나 일몰은 있다. 시커먼 바닷물이 밝게 반짝이는 시간, 이 음반은 마침 그 즈음을 지나친다. 파도의 물결이 아름답다고 느끼기에도 부족함 없는 시간이다. | 김영진 younggean@gmail.com 8/10 수록곡 1. Tangled 2. The Spell 3. Not Just Words 4. The Letter 5. The Replacement 6. Return To Burn 7. Gps 8. The Waiter 9. Places 10. The Fix 11. To Bring You Back 관련 영상 “GPS” (M/V) 관련 사이트 Black Heart Procession 공식 사이트 http://www.blackheartprocession.com Touch & Go Records 공식 사이트 http://www.tgre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