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핀 | 까만 타이거 | 샤 레이블, 2011

 

까만 타이거

요컨대 ‘까만 타이거’는, ‘눈을 뜨면 사라지는’ 대상이자 ‘눈 감으면 떠오르는’ 무엇이다. 이 눈부신 대상은 가질 수도, 버릴 수도 없다. 간절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고 잡을 수도 없지만 미치도록 원하게 된다. 모든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는, 아니 노력 자체가 무용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건,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욕망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순환된다. 세상에 없는, 그러나 어딘지 존재할 것만 같은 무언가가 ‘까만 타이거’란 이름으로 소환될 때, 허클베리 핀이 왜 이 노래를 타이틀로 삼았을지 짐작하게 된다. (이들의 관점에서) 창작은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욕망에 대한 탐구 그 자체다. 다른 곡으로 관심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모든 노래가 모호한 표현으로 가득하다. 말줄임표로 가득한 문장들처럼 막연한 수사와 머뭇거리는 태도로 채워졌다. 이때 비평가는 두 갈래 길 앞에 선다. 이 막연함을 문학적 수사로 볼 것인가, 아니면 그 자체로 불완전한 것으로 볼 것인가. 전자라면 [까만 타이거]는 허클베리 핀이 지향해온 작가주의의 성취일 것이고, 후자라면 보완적인 무언가를 찾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내 선택은 비평가의 상상력이 동원되어야 하는 전자보다는 주어진 단서들을 재배치하는 후자다.

수록곡들이 가리키는 대상 혹은 정서가 모호한 대신, 사운드와 구조는 명확하다. 거의 모든 곡들은 버스-코러스-브릿지-코러스의 보편적 구조를 유지하고, 버스에서 코러스로 이동할 때는 미니멀한 편성에서 대위적인 구조로 바뀌며 극적인 전환을 꾀한다. 키보드와 전기 기타, 드럼이 한꺼번에 출발하는 “빗소리” 정도를 제외한 모든 곡들의 인트로는 어쿠스틱 기타, 전기 기타, 베이스 기타, 무그 같은 단일한 악기로 출발하는데, 비교적 차분하게 시작되다가 브라스와 우드블럭, 신서사이저와 이펙터 같은 여러 사운드가 끼어들며 가파른 내리막길로 질주하는 급박함이야말로 [까만 타이거]의 인상적인 부분이다. 8비트와 16비트의 속도감과 다양한 악기들이 만드는 이질감이 불안과 긴장을 형성하게 된다. 그럼에도 모든 곡들이 댄서블한 그루브와 훅으로 충만하다는 점이야말로 이 앨범의 장점일 것이다. 이때 말줄임표 같은 가사는 전반적인 앨범의 분위기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까만 타이거]의 사운드와 가사는 일체화되어 있다. 그 점에서는 전작들도 마찬가지다. 허클베리 핀은 흔히 작가주의 프레임이 적용되는 단골 밴드인데, 보통 그 초점이 유독 가사에 맞춰졌다는 점에서 나로서는 그 비평적 태도가 미심쩍었던 게 사실이다. 상징과 은유로 점철된 가사는 종종 문학적 성취를 언급하게끔 만들었지만, 음악과 문학이 본질적으로 다르고 그로 인해 비평적 접근 역시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 입장에서 그것은 음악비평을 그저 수사학으로 점철된 말잔치(이를테면 ‘문학비평 워너비’)로 전락시키는 행태일 뿐이었다. 허클베리 핀의 가사는 수록곡의 무드, 나아가 앨범의 무드를 위한 요소에 다름 아니다. 상징과 은유로 점철된 가사는 이기용의 문학적 취향의 발현이자 감각적 음악을 지향할 때 선택된 결과다. 대상이 모호할수록, 논리적 구조가 취약할수록, 무엇보다 훅이 강할수록 그 효과는 배가된다.

무엇인지 모를 불안감, 막연한 채로 휘말리는 긴장감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역설적으로 구체적인 대상을 상상하게 만드는데, ‘세계’ ‘신’ ‘사랑’ ‘영원’ ‘시간’ ‘사람’과 같이 대명사가 중요한 가사는 시험에 대한 압박이나 직장생활의 스트레스 등의 현실적 문제들로 대체되기 쉽다. [까만 타이거]의 성취는 이런 음악적, 문학적 요소들이 앨범 안에서 완벽에 가까울 만큼 통일성과 균형감을 유지하며 미학적 완성도를 이뤄낸다는 데 있다. 한편 신서사이저가 도드라진 이유는 트렌드를 지향한 결과라기보다는 밴드를 2인조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샤 레이블 소속이자 음악적 동료인 루네의 존재감이 부각된 결과로 이해하는 게 적절할 것이다. 사실 이 앨범의 리프와 비트, 질감은 오히려 구식 아닌가. 하지만 그게 앨범의 평가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건 아니다. 결과적으로 [까만 타이거]는 눈뜨고 코베인의 [Murder’s High]와 함께 2011년의 앨범 중 하나로 꼽히기에 충분하다.  | 차우진 nar75@naver.com

rating: 8/10

 

수록곡
1. 숨 쉬러 나가다
2. 쫓기는 너
3. girl stop
4. 까만 타이거
5 도레미파
6. time to say
7. 빗소리
8. 비틀 브라더스
9. 시간은 푸른섬으로
10. too young
11. 폭탄위에 머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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