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제주에 머물렀다. 가기 전부터 맘이 들떴던 건 여행을 앞둔 설레임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주에서 부스뮤직이 부단히 벌이고 있는 일들을 직접 가서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여정이 될 것 같았다.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강정마을의 일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기획된 ‘나의 강정을 지켜줘’ 공연을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잡았다. 공연을 앞두고 잠시 만나본 부스뮤직레코드의 부세현 대표는 단단한 체구 안에 하고 싶은 얘기들이 압축되어 꼭꼭 쌓여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이었다. 그는 제주의 문화적 인프라에 대한 견해나 부스뮤직의 미래 계획에 대해 얘기를 들려주었는데, 모두 오랜 시간 고민해서 나온 결론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제주 음악씬의 ‘비전을 앞서서 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없는 비전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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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배, ‘나의 강정을 지켜줘’, 간드락 소극장, 사진제공: 부스뮤직레코드

지속적으로, 꾸준히
“제주의 뮤지션은 홍대로, 홍대의 뮤지션은 제주로”. 이것이 바로 부스뮤직의 모토다. 그렇지만 이들의 목표가 단순히 홍대와 제주 간의 활발한 교류 정도에 그친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부스뮤직은 먼저 제주의 문화적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제주 기반 뮤지션들의 음악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제주 대중들을 위한 다양한 컨셉의 공연을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있다. 좀 더 멀게는 한국 인디 음악의 중심 중 하나로 제주 지역을 부상시키고 페스티벌을 만드는 비전까지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 인디 음악은 ‘홍대’라는 지역의 카테고리와 거의 동일시되고 있지만, 부스뮤직은 그렇게 규정된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라고 보고 있었다. “장기하를 예로 들자면, 그가 인디 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과, 그가 ‘인디’ 뮤지션이라고 얘기하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라고 생각해요. ‘인디’라는 틀에 갇혀버리면 안 되는 거죠. 제주 음악가들도 마찬가지예요. ‘제주’라는 수식어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곤란하죠”.

부스뮤직이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는 프로젝트는 크게 네 가지 정도다. 소속 아티스트의 음반 발매와 프로모션, ‘부스뮤직과 친구들’ 공연 시리즈, 매월 진행되는 어쿠스틱 공연인 ‘유채꽃다방’, 그리고 주중에 문득 찾아가는 버스킹 공연 등이다.

99anger, Enswer, 피리 등이 현재 소속된 아티스트로, 곧 부스뮤직 컴필레이션 음반이 발매될 거라는 소식이다. 이외에 아폴로18이나 황보령=SmackSoft 등 서울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과도 제휴를 맺고 제주에서의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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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넛, 2010년 ‘부스뮤직과 친구들’ 공연, 사진제공: 부스뮤직레코드

‘부스뮤직과 친구들’은 300명 정도의 관객이 드는 공연을 제주에서 지속적으로 개최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기획되고 있는 공연이다. 작년 5월부터 12월까지 총 8회의 공연이 이어졌고, 장기하와 얼굴들, 크라잉넛, 갤럭시 익스프레스 등이 무대에 섰다. 특기할만한 점은 이 모든 공연이 무료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금이나 기업의 후원도 없었다. 부스뮤직 단독으로 진행했던 이 공연의 목표는 이런 공연을 원하는 관객이 제주에 얼마나 존재하는지를 파악하고, 제주의 음악 인프라를 좀 더 두텁게 다지는 것이었다고 한다. 부세현 대표는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5년 동안은 이런 프로젝트를 만드는 데 매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간드락 소극장, ‘나의 강정을 지켜줘’
‘나의 강정을 지켜줘’ 공연은 제주시 아라동에 위치한 간드락 소극장에서 진행됐다. 이른 장마비를 헤치고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6월 10일 금요일 공연에 선 것은 뚜럼 브라더스, 최고은, 그리고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였다.

뚜럼 브라더스는 무대에 서자 바로 ‘지주도 사름들로부터 나고 커난 지주말’로 말을 걸어왔다. 이들은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지키고자 제주어로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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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들고 갈옷을 입은 뚜럼 브라더스의 박순동씨가 이렇게 제주말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귀를 쫑긋이 세우고 이미 몸을 덩실덩실 움직이기 시작한 나는 무슨 말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어도 뭔가 많은 것을 전달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지역의 말에 그 곳 사람들이 매일 마주치며 사는 사물과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 같은 것들이 들어있다면, 뚜럼 브라더스의 노래는 그걸 꽤나 직접적으로 그리고 유쾌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후에 전해들은 소식
현재까지 총 2주에 걸쳐 6회의 공연이 진행된 “나의 강정을 지켜줘!” 프로젝트가 부득이하게 중단되었다는 소식이 6월 13일에 들려왔다. 티켓 판매 수익으로 초청 뮤지션들의 항공권 및 숙식비를 충당해왔는데, 최초 예상한 주당 200만원을 넘어 현재까지 1천만 원의 적자가 발생, 현재로선 추가적으로 투입할 예산이 남아 있지 못하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7월 7일부터 9일까지 서울의 클럽 오뙤르, 그리고 퀸라이브홀에서 “나의 강정을 지켜줘!”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라고 하니,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을 찾고 또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10613|이수연wei_joui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