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Achime)이라는 존재는 특이하다. 비트볼 레코드에 어울리지만 붕가붕가 레코드에 소속되어 있고, 나름 똘끼가 있지만 엽기 코드가 어울리지는 않는다. ‘인디’로 분류되고 연주력이나 사운드 퀄리티에 강한 집착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막가파식의 실험적 음악으로 빠지지 않고 ‘가요’스러운 멜로디도 불러댄다. 아침의 얼굴인 권선욱의 용모나 말투는 소속사의 ‘고학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가사에서는 문학적이고 지성적인 향기가 난다. 이들의 정규 1집 [Hunch]에 대한 [weiv]의 리뷰가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았지만, 2010년 국내 앨범 결산에서 이 앨범은 4위에 올랐고, 저 리뷰를 쓴 사람도 자신의 리스트 10위권에 올려놓았다.

그 뒤 그들의 공연을 보면서 이런 미스테리는 하나씩 풀렸지만, 정규 1집을 냈을 때만 해도 이들은 내게 미스테리였다. 그들 노래 가사처럼 ‘딱 중간’에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어쨌든 거의 1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 별다른 준비 없이 인터뷰를 했다. 가끔씩 준비 없이 하는 인터뷰에 소득이 많은데, 이 경우가 그 경우였다. 인터뷰를 이제야 옮기는 것은 순전히 인터뷰어의 게으름, 같은 말이지만 ‘직장 일로 인한 바쁨’ 때문이다. 시간을 내어 인터뷰를 해 준 권선욱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일시: 2010년 7월 16일
장소: 붕가붕가 레코드 사무실
질문: 신현준
정리: 김정윤, 신현준

[Hunch]에 대한 헌취

[weiv]: 안녕하세요. 첫 질문이 조금 다짜고짜로 들릴지 모르겠는데, 1집의 ‘곡 쓴 순서’ 말이에요. 어떤 곡을 먼저 만들고 나중에 만들었는지…?
권선욱: 처음 듣는 질문이네요. 6번 “이 비가 그친 뒤”와 5번 “Signal Flows”를 제일 먼저 만들었어요.

[weiv]: 6번 곡은 기존 스타일하고는 많이 다른데….
권선욱: 네, 그렇죠. 5번 곡도 지금 하는 스타일과는 많이 다른데, 사실 아침은 ‘”이 비가 그친 뒤”와 “Signal flows” 같은 음악을 해볼까?’라고 해서 시작한 밴드였어요. 최근에 쓴 곡은 “맞은편 미래”(1번), “Pathetic Sight”(2번), “매일매일”(10번)이고, “무표정한 발걸음”(3번)과 “파도색 신발”(7번)이 5번과 6번 곡 다음에 만들어진 것이에요. 그리고 맨 마지막에 보너스 트랙을 끼워 넣었고요.

[weiv]: 녹음은 어디서 했나요? 사운드에 조금 아쉬움이 있습니다.
권선욱: 녹음은 신대방동에 침대방이 있는 지하실을 빌려서 장비 가져다 놓고 했어요. 붕가붕가 레코드에서 다 같이 쓰려고 빌렸는데 저희가 실험 대상이 되었죠. 이래저래 여건이 힘들어서, 스튜디오만큼 돈이 들었어요. 차라리 조금 더 비싸게 하고 편하게 하는 것이 나을 것 같고, 이렇게 계속 하면 힘들 것 같아 처분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웃음). 드럼 녹음도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준비가 채 안 돼서 다른 스튜디오에서 받았어요. 1, 2, 10번 곡은 ‘밀어야 하는 곡들’이라 조금 더 힘을 주어 작업하고 싶었는데, 의도대로 잘됐는지 안됐는지는 모르겠어요. 조금 더 ‘팝’적인 사운드를 원했어요.

[weiv]: 녹음 과정은 얼마나 걸렸나요? 그리고 어려웠던 점은?
권선욱: 녹음 과정은 2월 말~5월 중순까지. 2개월 반에 걸쳐서 했고, 힘들었던 점은 역시 녹음실이었는데, 거기가 폐허예요. 그곳을 녹음실로 개조하겠다고 벽지 같은 것도 뜯고, 바닥도 다 뜯었죠. 건축 자재들이 널브러져 있는 채로 녹음을 했어요. 공기도 되게 안 좋았고요. 제 컨디션도 잘 안 나왔죠.

[weiv]: 아까 말했던 1, 2, 10번곡을 말하는 건가요? 구체적으로 어떤 걸 원했던 건가요?
권선욱: 회사분이 들으면 안 되는데(웃음), 붕가붕가 레코드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닌 소리를 내고 싶었어요. 현재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어느 정도 성공도 하고 실패도 했다고 자체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weiv]: 사운드를 만드는 노하우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인가요?
권선욱: 예, 음원 제작 부분에 있어서 문제가 있어요. 모든 인디 레이블이 그렇지만, 저희는 그런 부분에서 조금 더 프로페셔널해지고 싶어요. 저는 해외 음반을 많이 듣는데, 해외 음반이랑 우리나라 인디 음반이랑 품질이 너무 차이 나요. 근데 제가 알기로는 해외 인디 음반도 저희랑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작업해요. 그런데도 잘 뽑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점에선 돈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노하우는 배우고 가르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정말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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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타고 있다

[weiv]: 해외음악을 많이 듣는다고 했는데, 아침의 음악에 영향을 준 밴드 6~7개만 말해주세요.
권선욱: 저희가 제일 자주 이야기 하는 밴드가 토우(Toe)이고, 공식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1번과 10번 트랙은 일본 밴드 쿠루리(Quruli)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최근에 보컬이 사망한 후지 화브릭도 좋아하구요. 저는 일본 밴드를 좋아하지만 다른 밴드 멤버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좋아하는 밴드는 너무 많아요. 구미 밴드 중에서는 인큐버스(Incubus), 톨토이즈(tortoise) 등이 있습니다.

[weiv]: “불신자들” 중간에 브릿지 같은 건 핑크 플로이드처럼 들리던데… 그리고 메탈까지는 아니지만 리프가 강하고 베이스가 둥둥거리는 건 오래 전 스매싱 펌킨스 같기도 하고요.
권선욱: 네,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얼터너티브부터 시작해서 그런지, 요즘 유행하는 디스코, 댄스 그리고 또 요즘 유행하는 포스트록이나 프로그레시브 계열, 그리고 로파이 포크 등 최근의 음악들을 많이 추구한 건 사실이에요.

[weiv]: 일본음악을 좋아하게 된 과정을 들어볼까요?
권선욱: 네. 일본음악은 제가 대학교에서 일본어를 전공해서, 일본음악을 어쩔 수 없이 많이 접한 것도 있고요. 제가 음악 처음 시작한 것도 일본음악을 듣고 좋아서 시작한 거였어요. 처음에는 엑스 재팬(X-Japan) 같은 걸 들었죠. 그리고 뒤에는 코넬리우스(Cornelius) 같은 건 진짜 많이 들었어요. 흉내를 많이 내려고 하는데…. (웃음)

[weiv]: 요즘 일본음악 말고 옛날 일본음악도 좋아했나요?
권선욱: 네, 10년 정도 전의 일본음악을 더 좋아하죠. 사실 요새는 새로운 음악을 못 듣는 편이에요. 솔직히 요즘은 일본 록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안 나오고 있어요.

[weiv]: 더 옛날 것도 좋아하나요?
권선욱: 더 옛날 음악은, 곡 이름을 말해 주면 밴드 이름 정도는 알 수 있어요. 제가 어디서든 꼭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데, 아무래도 일본음악에 영향을 받은 1세대는 우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언제나 자의식 과잉이라서 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저희 세대 때 음악 하는 애들이 일본이라고 하면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 식으로 세일즈 포인트를 잡으면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이죠. 아무래도 저희 나이 또래에 지금 음악하는 친구들, 또 시작하는 친구들은 주로 미국이나 영국에서 영향 받은 사람들이죠. 하지만 일본음악에 영향을 받아 음악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계속 생겨날 것이고, 제 생각에 아침이 그 영역에서 선발 주자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weiv]: 지금 붕가붕가 레코드의 ‘직원’으로서도 일본 쪽 담당인 것 같은데….
권선욱: 회사에서 하는 일이 일본 쪽과 관련된 일인 건 맞아요. 현재 붕가붕가 레코드의 밴드들도 일본에 진출하려고 하는 중이에요. 저희 회사의 음악은 가사가 직접적인 것들이 있어서 가사를 이해해야 하잖아요. 번역해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알아들어야 감동이 오는데 그런 걸 전달하기 힘드니까 음원만 들으면 일본 쪽 관계자들의 반응이 썩 좋지는 않아요. 오히려 아폴로 18이나 비둘기 우유류의 음악은 들려주면 어떻게 해볼 수 있다고 하는데….

[weiv]: 정리하자면 토우 영향을 받아서 이른바 포스트록 계열로 만든 게 EP였던 것 같네요. 그리고 1집 앨범의 1, 2, 10번 곡들은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한 것 같고요. 예상했던 스타일이 아니라서 저도 조금은 의외였어요.
권선욱: 그렇게 생각 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새로운 게 어려운 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걸 하고 싶은 거예요. 계속 어려운 것만 할 생각은 없고요. 1, 2, 10번 곡들의 경우 저희 딴에는 새롭게 한다고 한 거예요. 우리들의 새로움을 주장하고 싶은데….

[weiv]: 이런 곡들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정서가 있다면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권선욱: 보도자료에서는 ‘중간인, 주변인들의 젊은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많이 하는데, 저는 꼭 젊은 감성을 담으려고 한 건 아니에요. 꼭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건, 도시와 현대라는 메커니즘에 지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는 그런 정서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weiv]: 몇몇 곡의 가사를 보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이미 노스탤지어의 느낌이 짙게 묻어 있어요. 이게 요즘 홍대앞 같은 서울의 분위기라도 봐도 될까요? 첨단 쇼핑 거리와 두리반 같이 철거되는 건물이 공존하는 홍대앞의 분위기라도 될까요? 붕가붕가 사무실 앞쪽에는 한옥까지 있는데….
권선욱: 그 전체예요. 전체를 다 돌아다니면서 생긴 느낌이죠. 제가 이 지역 안에서 살고 있지는 않아요. 한 번도 서울에 산 적이 없고. 저는 과천이라는 전원적이고 평화로운 곳에서 살았어요. 서울 그리고 홍대앞에 살지는 않았지만 돌아다녀 봤기 때문에, 지켜보는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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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데”

[weiv]: 다른 멤버들에 대해서도 간단하게나마 소개해 줄래요.
권선욱: 저희 멤버 중 드럼 치는 김수열은 학창시절부터 계속 음악을 같이 했던 친구라 거의 음악 취향이 비슷해요. 그리고 저 빼고 나머지 친구들은 다 음악을 전공한 친구들이에요. 실용음악이나 재즈 같은 것을 공부했죠. 베이스 치는 박선영은 1980~90년대 미국 팝을 좋아하고 CD도 많이 들어요. 선영이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게, ‘나는 이런 음악 할 줄 꿈에도 몰랐다’예요. 스틸리 댄(Steely Dan)이라든가 토토(Toto)같이 조금 철 지난 미국 팝들, 그러니까 신쓰 팝 이전의 재즈와 소울 풍으로 실제 악기로 연주한 팝들을 좋아해요. 그런 취향이 베이스 라인에 묻어 있어요. “불신자들” 같은 경우 록적인 어프로치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영의 취향 때문에 알앤비(R&B) 느낌이 묻어나고요. 일반적인 록 베이스와는 달라요. 기타 치는 이상규와 김동현은 다른 멤버들과 나이 차이가 조금 나요. 이상규는 존 메이어(John Clayton Mayer) 등의 기타리스트를 좋아하고, 김동현은 요새 영국에서 유행하는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나 폴스(Foals) 같은 거 좋아하고, 아직 한국에 안 나왔는데 프렌들리 파이어(Friendy Fire) 같은 댄스 록을 좋아해요. 그래서 이상규가 군대 가고 김동현이 들어온 뒤 편곡의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지요.

[weiv]: 가끔 재즈 풍이라고 할까, 아무튼 록이나 팝 스타일은 아닌 기타 솔로가 나오던데 그게 이상규의 작품인가요?
권선욱: 네, “불꽃놀이” 같은 경우 군 입대 전 투혼을 발휘해서 솔로 녹음을 했어요. 이 솔로는 개인적으로 자랑하고 싶은데, 싱글 버전은 그냥 투박했지만 이번 솔로는 진짜! 그가 아니면 낼 수 없는 그런 것이었어요!

[weiv]: 음악을 전공한 친구들이라면 실용음악과를 다니거나, 혹은 다녔다는 이야기인가요?
권선욱: 단국대학교와 호원대학교의 실용음악과, 생활음악과에 다녀요. 처음 밴드 조직할 때도 김수열이 학교에서 후배를 데려와서 한 느낌이에요. 저는 한신대학교 일본지역학과를 다녔고요.

[weiv]: 곡의 길이가 길지는 않지만 구성이 복합적이고 이질적이라서 음악적 욕심이 느껴질 때가 있네요. 밴드 멤버들이 어떻게 기여했는지 이야기해줄래요?
권선욱: “Pathetic Sight” 위주로 말씀드릴게요. 이 곡이 앨범 수록곡들 가운데서는 긴 편이에요. 일단 이 노래 자체는 원래 라디오헤드 스타일의 곡이었어요. 후렴에선 징징징 긁고, 그 전에는 아르페지오로 살살 가다가, 터지는 부분에서 터지는 곡이었는데 그게 아무래도 지루한 거예요. 전형적인 형식을 피하려고 노력을 하는 와중에 멤버들의 취향들이 묻어 나왔죠. 훵키한 음악을 워낙 좋아하는 베이시스트가 훵키하게 나와 버려서 ‘뽀개는’ 리듬을 안 주었죠. 간주에서 디스코로 나가는 부분은, 원래는 라디오헤드처럼 템포가 한 번 다운이 되면서 삭 풀어지는 느낌이었는데 그건 지루할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타이트하게 잡자’고 해서 코러스에서는 ‘둥둥둥’ 하게 그대로 살린 거죠. 그 곡 같은 경우는 베이스 라인이 많이 돋보이니까….

[weiv]: 솔직히 말해 저는 “Pathetic Sight”가 “맞은 편 미래”보다 좋았어요. 그런데 조금 길어서 타이틀곡에서 밀린 건가요?
권선욱: 네 그렇습니다. 사실 회사에서도 2번을 하라는 식으로 이야기 했는데. 제가 “맞은편 미래”를 굳이 1번을 타이틀로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2번 곡은 초반이 너무 길어서…. 이 곡을 1번으로 넣고 타이틀곡으로 정한 이유는 가사에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였기도 해요. 제가 일본 사회학에서 이야기하는 이른바 ‘단카이(團塊) 주니어’ 세대거든요. 그때 태어난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상실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 다음 세대들은 지금의 변화 속도에 맞춰가는 내성이 있어요. 저희 전 세대들은 그런 것들에 대해 만연해질 수 있는 여유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세대는 그런 게 없어요. 쫒아는 가야겠는데, 그 전의 것들은 너무나 좋은데 새로운 것들이 계속 유입이 되니까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게 있어요. 그런 것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꼭 하고 싶었고, 이 앨범을 듣는 사람들이 꼭 그런 것을 캐치해줬으면 좋겠는데, 저희 역량 부족인지 그런 부분을 잘 몰라주시는 것 같기도 하구….

[weiv]: 그렇다면 ‘그런 것들’을 캐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말인가요?
권선욱: 음반이 판매되고 깜짝 놀랐던 사실은 오히려 이 앨범이 제 동년배들보다는 중3에서 고2 정도의 학생들이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었어요. 제가 기뻤던 이유가 그 나이대에 고민이 많잖아요? 시쳇말로 꿈이 있는 아이들이 우리 음악을 듣고 공감해준다는 것이 너무 기뻤어요. 이를테면 저희들이 장기하와 얼굴들같이 ‘루저 정서’로 대변되는 것도 아니고, 해피 로봇 레코드에서 발매하는 ‘전문직 여성 취향’도 아니니까…. (참, 비틀즈 이야기를 했었어야 하는데. 비틀즈가 저희들 취향에서 제일 위에 있어요.) 그런 사람들한테 저희들 음악이 울린다는 것은 판매량을 떠나서 정말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이 들어줬으면 했던 바람도 있고, ‘젊은 애들도 고민을 잘하고 있구나’,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weiv]: 지금 들으니까 조금 ‘필’이 오네요. 무언가 ‘현대 일본문학’의 느낌이 있네요.
권선욱: 저희 가사를 써놓고 보면 웃긴 게, 번역체가 많아요. 예고에서 교육을 받을 때 절대 번역 어투를 쓰지 말라고 배웠는데. 일본 번역체에서 한국말이랑 차이나는 부분이 수동체잖아요. 그런 표현들이 아주 적나라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이건 조금 부끄러워요. 일종의 트라우마일 수도 있는데.

붕가붕가의 외인구단?

[weiv]: 일부겠지만, 아침이 붕가붕가에 소속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붕가붕가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권선욱: 2008년 EP를 만들 무렵 붕가붕가에 데모를 보냈어요. 당시는 저희가 건방진 줄 몰랐는데 사실은 되게 건방진 것이었어요. 여기 있다 보니까 밴드들이 데모를 잘 만들어서 자료를 잔뜩 준비해서 가져오더라고요. 근데 저희는 마이스페이스 페이지를 이메일로 툭 보내서 ‘들어 보라’고 보냈어요. 사실 기대도 안 했지만 회사는 있어야겠고 잘 아는 건 없는데, 붕가붕가 레코드 홈페이지에서 ‘데모를 이메일로 보내달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어요. 데모를 보낸 것도 아니고 바로 이메일을 보냈는데, 어떻게 흘러 흘러 2009년 상반기에 정식으로 가족이 되었어요. 다른 레이블 알아볼 것도 없이 붕가붕가에 시험 삼아 넣었는데 덜컥 붙어버린 거죠.

[weiv]: 모 레이블이 아침을 데려가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붕가붕가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권선욱: 붕가붕가가 없었다면, 아마 루비살롱, GMC, 비트볼 등을 접촉했겠죠. 사실은 붕가붕가가 이 동네에서는 나름 힘이 있는 회사였으니까. 여기에서 연락이 오면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들어와 보니 제작 부분에서 조금 ‘가족적으로’ 한다는 느낌은 있어요. (웃음)

[weiv]: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는데 장기하와 얼굴들이나 불나방스타소세지클럽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잖아요? 붕가붕가에는 ‘복고’, ‘엽기’ 등의 코드가 따라다니고요.
권선욱: 붕가붕가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저희들의 노림수는 저희나 다른 밴드들의 해외 라이센스를 통해서 붕가붕가 레코드의 이미지가 새롭게 환기되는 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알기로는 회사가 그런 방향으로 변하고 있어요. 밖의 몇몇 분들이 보기와는 달리 기존의 정체성과 충돌하는 부분은 없어요.

[weiv]: 붕가붕가에 들어오기 전에 어울렸던 밴드들은 누가 있나요?
권선욱: 어울린 걸로 치면 GMC, 에스텔라 쪽 밴드들이에요. 아침을 하기 전에 저는 이모코어(emocore)를 했어요. 저희 밴드 이름은 FOR였고, 옛날에 와이낫이랑 같이 싱글을 내기도 했어요. 그때 같이 하던 밴드들은 거의 해체되었고 할로우젠 등이 남아 있는 정도죠. 전국비둘기연합은 저희가 그런 헤비한 음악을 하고 있을 때엔 아직 없었어요. 그러고 나서 붕가붕가 레코드 들어오고 난 뒤 국카스텐 등과 친해졌고….

[weiv]: 아침에서 포스트록의 성분이 있는데, 정작 로로스, 머머스룸, 프렌지 같은 포스트록 밴드들과는 교류가 없었나요?
권선욱: 저희 음악 안에 포스트록이 확실히 있기는 한데, 그와 더불어 ‘포스트록은 지겹다’는 인식도 강해요. 포스트록을 시도하려고 하는 것은 토우에 대한 동경이 강하기 때문에, 허영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거예요. 그런 이유 말고는 포스트록을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아, 근데 요새 외국에서 진짜 ‘포스트’한 록을 하는 밴드들이 많은 것 같아요. 쿠우론(Kowloon)이라는 3인조 밴드인데, 기타 대신 건반이 있고 베이스랑 드럼이 있는 일본 밴드예요. 여기서 건반 치는 분이 토우에서 건반 세션을 해요. 그래서 엄청 자극을 받고 있는 중이에요. 그 팀은 음악을 해체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박자를 14박, 17박 이러는데, 댄스로 이걸 하고 끝부분의 남는 박자를 필인(fill-in)으로 메운다든지…. 이게 네 박자로 계속 댄서블하게 가는 것 보다 훨씬 더 다이나믹하더라고요.

[weiv]: “이 비가 그친 뒤”는 굳이 표현하자면 ‘노래하는 포스트록’인가요? (웃음) 그리고 1집 앨범은 무척 다양한 것 같아요. 한국 가요의 악습인 백화점식 배열과는 뭐가 다른 걸까요?
권선욱: “이 비가 그친 뒤”는 그냥 가요예요. (웃음) 연주하는 사람들이 [평소에] 가요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뿐이죠. 그리고 이런 질문을 물어볼지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저도 ‘가요 앨범이랑 똑같네’라는 생각을 했어요. ‘가요에서는 다른 작곡가들이 쓴 노래를 하나의 목소리로 부르는데 (1번 댄스, 2번 발라드, 3번 훵크 이런 식), 그것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그것이야 말로 제가 한국에서 음악을 한다는 방증인 것 같아요. 오히려 그런 식으로 음악들을 배치하는 것이 [우리 음악에 대한] 가장 중요한 증거가 아닌가 하는 거죠. 제가 일본 음악을 좋아하고, 한국 음악보다 일본 음악을 더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한국의 음악인이에요’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 같아요. 만약 2집, 3집을 내도 이런 식으로 만들 거고, 특별히 부끄럽지는 않아요.

[weiv]: 자신에게 형성된 무언가가 나온 것이라는 이야기군요. ‘이런 팬한테 이런 정서, 저런 팬한테는 저런 정서’를 의도한 건 아니라는 말이죠?
권선욱: 전혀, 전혀요! 그렇게 할 거면, 그냥 다른 밴드를 몇 개 더 할 거예요. 사실 저는 가사만 바뀌고 곡 스타일은 똑같은 것을 못 참겠어요. 자극을 빨리 받고, 또 빨리 싫증내는 편이라서….

[weiv]: 정서는 일관성이 있다는 말이군요. 그런데 가사에 표현된 정서가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이고 은유적이에요. 엉뚱하겠지만 이런 가사랑 제일 비슷하게 느낀 게 하찌와 TJ의 가사예요. (웃음)
권선욱: 제일 중요한건 역시 제가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 같아요. 그게 제일 큰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는데, 똑바로 눈을 보면서 확실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에는 인간이 너무 쪼달리는 거죠, 제가 가끔 말을 험하게 하기는 하는데, 생각 자체는 좀 평화롭게 하려고 해요. 언제나 사랑과 평화를 생각하면서 사는 남자. 하찌와 TJ의 가사를 보면서 제가 느낀 건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는 것이었어요. 저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어요. 그런데 자신이 없고 늘 모호해요. 그걸 숨기는 과정에서 자기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는 정서가 굳어져 버린 거죠.

[weiv]: ‘이런 정서’를 가진 음악을 어떤 사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권선욱: 조금 웃기는 이야기인데,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꿈이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좋겠어요. 인생에 대한 목표라든가 현실적인 포인트를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요.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제가 그런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으면 좋겠어요.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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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자 혹은 주변자, 그러나 여전히 한국에서 살아가는…

[weiv]: 1집 활동은 어떤 단계인가요?
권선욱: 음반 홍보는 회사에서 잘해주고 있어요. 붕가붕가 레코드가 그런 쪽에서 나름 장점이 있기 때문에 저희가 많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공중파도 지금 몇 개 따서 나가고 있어요. 7월 21일 [음악여행 라라라]에 피아와 함께 나가고, Mnet에서 하는 [A 라이브]도 나가요. 헬로 루키로 선정돼서 [EBS 공감]에도 나가고…. 정말 감사하게도 펜타포트랑 지산 록 페스티벌에도 다 나가요.

[weiv]: 방송 나갔을 때 불편함 같은 건 없었어요? 권선욱이 조금 ‘똘끼’가 있어서…. (웃음)
권선욱: 방송은 새로운 경험이다 보니까 즐겁게 하고는 있어요. 제가 조금 똘끼가 있지만 방송해서는 정제해서 잘 발휘했어요. (웃음) 아쉬운 건 역시 방송 음향이었어요. 제가 요새 방송을 몇 번 나가고 심각하게 생각한 게, ‘건반이 있어야 하나’라는 것이에요. 기타소리가 힘이 없어요. 같은 출연 밴드들 중에 건반이 있는 밴드들은 소리가 꽉 차게 느껴지는데, 저희 같은 구성으로는 말 그대로 ‘엣지(edge)’가 없어요. 내가 시청자 입장이면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한 가지 좋았던 건 [Mnet이 아니고] MTV에서 했던 [락 앰 하드]라는 방송에 나갔는데 거기서는 소리를 되게 잘 잡아줘요. 근데 아무도 안 보는 프로그램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잘 해주는지 모르지만, 다른 방송국 가서 MTV처럼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weiv]: 한국에서 음악 하는 것에 대한 자의식이 있나요? 아울러 붕가붕가 레코드의 다른 아티스트들처럼 한국 대중음악(한국 팝)의 역사에도 관심이 있나요?
권선욱: 한국에서 제가 굉장히 번역투의 가사를 쓰긴 하지만 저는 무조건 가사를 한국말로 쓰거든요. 왜냐하면 한국말의 이 신비한 울림을 포기할 수 없어요. 그런 식의 자의식이 있어요. 한국 옛날 음악도 좋아해요. (장)기하 형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류의 음악들도 좋아해요. 좋아하는 음악들은 옛날 한국 팝들에서 찾는 것 같아요.

[weiv]: 마지막으로 자기가 좋아했던 문학 세 개, 영화 세 개를 골라 줄래요?
권선욱: 문학작품은 단연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이에요. 저희 EP에 실린 “딱 중간”이라는 노래의 가사 같은 경우,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에서 많이 볼 수가 있는 그런 내용들이에요.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 중 제일 좋은 건 [첫사랑 온천], [악인] 그리고 [열대어]. 무라카미 류는 [토파즈], [69], [쿄코]. 무라카미 하루키는 별로 안 좋아해요. 제가 조금 페미니스트적인 성향이 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너무 여성 비하 경향이 있어서…. 저는 그가 바라보는 여성의 관점이 싫어요. 그래도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중에서 [국경의 남쪽]은 재미있게 봤어요. 영화는 미국영화 중에서는 [쉰들러 리스트]. 일본영화 중에서는 [메종 드 히미코], 한국영화 중에서는 [괴물]. [괴물] 같은 건 한국이 아니면 도저히 나올 수 없죠. [괴물] 같은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한국사람 아니면 이해 못할 그런 음악 말예요. 그런 것들을 계속 꿈꾸고 있는 것 같아요.

[weiv]: 재미있는 인터뷰였어요. 좋은 활동 펼치고 계속 좋은 작품 만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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