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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잔디마당의 객석. 피크닉 혹은 소풍 같은 (사진: 최지선)

대중음악 페스티벌은 몇 년 사이 큰 성장을 이룩했다. 여름 휴가철은 대형 록 페스티벌 시즌으로 자리잡았고, 10월에는 주말마다 크고 작은 음악 페스티벌들이 (심지어 한 번에 여러 개가) 열렸다. 몇 년 전의 상황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현상이다. 여기에서 가을의 대표적인 페스티벌로 자리잡은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과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이하 GMF)은 여름 페스티벌과는 성격을 조금 달리 한다. 골수 음악팬들이 주요 타겟이 되는 다른 페스티벌과 달리, (물론 이들을 포함하여) 어느 정도의 적당한 관심만 있다면 이 페스티벌들을 가볍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의 경우 2010년 7회째까지 페스티벌에 16만여 명이 다녀갔다고 하는데, 특화된 장르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여러 기획을 통해 나름의 포지셔닝을 확립했다.

2007년에 시작된 이래 4년째 성공리에 개최된 GMF의 경우도 특별한 지위와 입지를 마련한 페스티벌임에 틀림없다. 이제는 가을 음악 페스티벌의 대명사가 된 GMF는 매해 그 규모가 커져 지난 회에는 3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주최측은 티켓이 조기에 매진되었다고 했다. 다른 대형 페스티벌들이 서울을 벗어나 주로 경기도권에서 개최되는 것과 달리, GMF는 서울 안에서 열린다(서울·경기의 수도권에 집중되는 현상은 언제나 지적되는 문제일 것이다). 지산 페스티벌이 젊은 음악 수용자들이 휴가를 보내는 방식 중에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면, GMF는 이보다는 조금은 일반적인 수용자들(또는 겨냥하는 타켓이 다른 수용층)이 편하게 가을의 한 주말을 즐기는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도시적인 세련됨과 청량함의 여유’, ‘피크닉 같은 음악 페스티벌’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것처럼,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부,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 데이트를 하는 연인,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광경은 GMF에서 흔히 목도할 수 있다. 관객이 직접 싸온 도시락과 간식을 펴놓고 한가로이 휴식하는, 산뜻한 피크닉 같은 분위기는 이 페스티벌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고, 쓰레기를 스스로 정리하는 관객들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여러 가지 악조건 때문에 생겨나는 ‘맨땅에 헤딩’ 식의 거칠고 지저분한 분위기나 ‘육체적인’ 관람 형식 등과는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구매력 있는 여성 관객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각 스테이지에 입장하기 위해 오래도록 줄을 서야 하거나, 패스트푸드나 배달 음식이 규제받거나, 소규모의 특정 구역에서만 흡연을 허용하는 등 ‘공원’과 GMF의 이미지와 부합하는 시도가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졌을 테지만 말이다).

서울 올림픽 공원에서 펼쳐지는 이 페스티벌의 무대는 크게 네 곳이다. 88잔디마당에 마련된 메인스테이지 ‘민트 브리즈 스테이지(Mint Breeze Stage)’, 88호수에 자리잡은 수변 무대 ‘러빙 포레스트 가든(Loving Forest Garden)’, 메인스테이지 뒤편에 위치한 작은 무대 ‘카페 블로썸 하우스(cafe Blossom House)’, 그리고 실내체육관(이번 회는 체조경기장) 무대의 ‘클럽 미드나잇 선셋(Club Midnight Sunset)’ 등이다. 이외에 버스킹 밴드들의 거리 공연 무대 ‘버스킹 인 더 파크(Busking in the Park)’, 디제잉 무대 ‘고스트 댄싱(Ghost Dancing)’ 등이 있다. 이 무대들은 각기 다른 분위기로 구획되었는데, ‘러빙 포레스트 가든’과 ‘카페 블로썸 하우스’는 호숫가에서, 또는 카페를 이용하면서 즐길 수 있는 소규모의 어쿠스틱 공연 중심의 무대인 반면, ‘클럽 미드나잇 선셋’은 주로 록 밴드들을 위한 무대로 위치되었다. ‘민트 브리즈 스테이지’의 경우 때때로 메인 스테이지로서의 역할이 돌출적이었다. 2010년의 헤드라이너였던 이소라의 공연은 물론이고,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양방언이나, 그간 잘 알려지지 못했던 어코디언 연주자 심성락을 거장으로 포지셔닝하는 전략적 배치는 돋보였던 반면, 어쿠스틱 기타 두 대가 반주를 하는 토마스 쿡의 공연, 일본 2인조 퓨전 연주그룹 피아노잭의 공연 등은 큰 무대보다는 소규모 스테이지로 구성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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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10cm 공연 – GMF의 상징, 러빙 포레스트 가든 무대에서 (사진: 최지선)

라인업에 있어 다소 아쉬운 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나름의 포지셔닝이 존재한다는 점이 중요할 것이다. 주최측에 따르면 GMF의 근원적 모티브는 애초부터 민트페이퍼의 1년 간의 기록이자 민트페스타(Mint Festa)의 집대성에 있었다. 총기획자 이종현에 의하면 “1년간 다양한 형태로 민트페이퍼와 협력을 도모해온 아티스트와 레이블들이 총망라된 축제”로 “2개월에 한 번씩 치러지는 모던인들의 작은 축제 ‘민트페스타’와 다양한 인터뷰, 공연, 방송을 통해 형성된 관계들의 집대성”이다. 만일 GMF가 비대해졌다고 우려한다면, 민트페이퍼가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2010년부터 기획된 ‘뷰티플 민트 라이프(BML)’를 보면 될 것이다. 민트페이퍼의 BML 홈페이지에 따르면, GMF가 ‘나뭇잎, 도시, 공원, 청량한 여유, 피크닉, 가족, 민트페이퍼 종합 선물세트’라면 BML은 ‘꽃, 작은 소풍, 환경, 민트페이퍼의 소품집’이라 비유했다. GMF가 말랑말랑하고 조용한 음악만 포괄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이를 위해 GMF에서 ‘소외’된 음악 장르 중 하나인 록 음악을 중심으로, MPMG(마스터플랜+해피로봇)는 물론 사운드홀릭, 루비살롱 같은 다른 레이블들의 연합공연 ‘카운트다운 판타지(CDF)’를 일종의 대안처럼 내놓은 듯하다. 그러니까 자칭 ‘GMF의 봄 버전’인 BML이 GMF 무대 중 소박하고 어쿠스틱한 사운드 위주의 ‘러빙 포레스트 가든’과 ‘카페 블로썸 하우스’ 스테이지를 옮겨온 것이라면, ‘GMF의 겨울 버전’이라 할 CDF는 GMF의 ‘클럽 미드나잇 선셋’ 스테이지를 옮겨온 셈이다.

그런 점에서 대개의 페스티벌이 섭외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지만, 사실 어떻게 기획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민트페이퍼는 보여주고 있다. 어찌되었든 나름의 전략과 마케팅을 통해 그 안에서 여러 그림을 구성해내는 민트페이퍼만의 기획력과 추진력은 분명 높이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 GMF에 대해 페스티벌의 소비가 음악 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아웃도어 여가 문화’의 일환이라거나, 특정 장르나 뮤지션들이 중심이 된다는 비판이 있기도 한데, 이 글은 그런 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특히 GMF라는 페스티벌을 둘러싼 자본과 마케팅을 둘러싼 의미와, 그것이 가지는 음악 또는 문화적 함축 역시 구분하고자 한다.

그래서 궁금해진 것은 이 페스티벌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음악은 어떤 음악일까 하는 것이다. 사실 이 페스티벌은 대중음악 전체 또는 인디나 비주류 음악 전체를 포괄하지 않는다는 점을 표방한다. 말하자면 “감성적이고 모던한 팀이 메인스트림 못지 않게 주목을 받는” 현상을 포착한 것이다. 그렇다면 GMF가 초창기부터 표방했던 ‘감성적’이고 ‘모던한’ 음악이란 무엇일까. GMF의 뿌리인 민트페스타에 출연하는 이들은 또 누구이고 여기서 어떤 음악을 연주하는가. GMF의 라인업을 확인하지도 않고 티겟을 산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로 선택의 기준이 되는 음악적 특징이란 무엇일까.

우선 해외의 라인업이 페스티벌의 핵심으로 위치하는 대형 록 페스티벌과 달리, GMF는 국내 뮤지션의 비중이 높은 페스티벌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해외 뮤지션 역시 ‘거장급’이 아니다. 이번에 틴에이지 팬클럽(Teenage Fanclub)은 ‘밴드형’ 실내 무대였던 ‘클럽 미드나잇 선셋’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했으며 이전 순서를 차지한 언니네 이발관보다도 훨씬 아담한(?) 분위기를 연출했다(사실 언제적 틴에이지 팬클럽인가!). 때문에 “외국 아티스트가 한국 헤드라이너보다 돈을 더 많이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재작년 요 라 텡고(Yo La Tengo)가 토이보다 적게 받았다. 작년에 이적이 크립스(The Cribs)보다 더 받았다. 올해[2010년]도 틴에이지 팬클럽보다 이소라가 더 많이 받았다”는 점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수변에 위치한 ‘러빙 포레스트 가든’ 스테이지는 GMF를 상징하는 무대일 것이다. 1천 명 정도밖에 수용할 수밖에 없는 한정적인 장소의 특성 때문에 티켓 매진을 결정해야 할 정도라지만, 가을의 호수를 이용해 GMF가 원하는 분위기를 주조한다. 이 무대에 작년에는 노리 플라이, 보드카 레인, 언니네 이발관, 요조, 조원선 등이 섰고, 올해에는 10센치, 가을방학, 옥상달빛, 좋아서하는밴드, 뜨거운감자 등이 섰다. 그런 점에서 메인 스테이지보다 이 무대에 서는 뮤지션을 나는 더 주목한다.

“민트페이퍼 사이트로 소통하기 때문에 매년 ‘올해는 어떤 팀을 이 씬의 어느 정도 위치까지 스타로 만들겠다’라고 정해놓고 간다. 작년[2009년] 12월, 상황을 보고 10센티, 데이브레이크, 옥상달빛을 밀어야겠다고 이미 생각했다”라는 이종현의 언급을 고려한다면 가령 2010년 GMF의 스타는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고단한 악사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그래서 행사 이후 관객의 투표로 이루어지는 이벤트 GMF 어워드에서 ‘최고의 순간’과 ‘최고의 공연’ 부문에 낙점된 노장 심성락이 아니라, ‘러빙 포레스트 가든’ 무대에 선 10센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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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언니네이발관 공연 – 클럽 미드나잇 선셋 무대에서 (사진: 최지선)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궁금해진다. GMF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일반적인 록 페스티벌과 달리 특정 장르의 음악 페스티벌이 아니며, 홍대 씬의 아티스트가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전형적인 인디 페스티벌은 더더욱 아”닌 “민트페이퍼가 늘 관심을 갖는 음악을 필두로 한 다양한 감성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표방하는 페스티벌”(강조는 필자)이고 “일각에선 인디 페스티벌, 된장 페스티벌, 본인들 편의대로 말하는데, 처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민트페이퍼 결산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라고 한다면, 이러한 언급만으로는 GMF의 음악적 정체성은 불명확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묻게 되는 것이다. ‘민트페이퍼가 관심을 갖는 음악’ ‘민트페이퍼가 지향하는 음악’을 결산하는 것이 GMF라면 그 음악은 무엇인가.

우선, 홍대 앞을 중심으로 생산·소비되는 음악이 많아도 이들이 모두 인디가 아니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렇지만 역으로 이 페스티벌을 통해 소통되는 ‘상당한’ 음악(인)이 소위 인디 음악의 이름으로 생산되고 소비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페스티벌의 음악문화적 맥락과 현재 ‘일부’ 인디 음악이 소비되는 현황이 흡사한 것이다. 어쩌면 때로는 상보적이지만 때로는 상충적인 이런 음악(인)들을 통칭해 어떤 새로운 이름으로 불러야하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GMF에서 포괄되는 음악은 이른바 ‘가요’의 맥락에 놓일 수 있다. 이는 한국의 대중음악 중에서도 글로벌한 트렌드를 지향하는 이른바 ‘K-pop’과는 다른 부류의 음악이고, 한국 내에서 국내외의 여러 영향을 포괄하면서 형성된 음악이라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 맥락으로 수렴되는 많은 음악들―가령 유희열, 김동률, 이적, 이소라, 루시드폴 등부터 재주소년, 노리플라이, 10센치, 데이브레이크 등까지 아우르는 음악은 주류 일부의 음악과 인디의 접점에 있는 음악들이다. 공연장이나 라디오를 통해 주로 접할 수 있는 음악(인)들이고 TV에서는 심야의 라이브 공연 프로그램 정도에서만 볼 수 있다. 굳이 도식화한다면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앞의 경우는 ‘한국형 어덜트 컨템포러리화된’ 가요이고, 뒤의 경우는 다소 (흔히 말하는) 인디 팝에 가까운 유형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의 음악은 ‘비슷하게’ 들린다. 이를 두고,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었던 록과 대비적으로 ‘여성화된’ 음악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GMF와 같은 날, 홍대 주변 클럽에서는 ‘We Are Not Modern’이라는 공연이 열렸는데, 이 현상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떠나서 GMF에서 들을/볼 수 있는 음악이 무엇인가에 대해 시사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들은 지금 비평적으로 또는 대중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가요’가 무엇인지를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동시에, 이러한 ‘가요’에 대한 시선과 태도가 변화했음을 상기시켜준다. 1990년대(또는 1980년대까지) ‘가요’를 자양분으로 삼은 음악들도 많은데, 여기에는 어떤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와졌다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 역으로 이런 음악들이 여전히 인디로 통칭되어 구분되고 있다면, 이는 주류/인디라는 이분법이 주효한, 다분화되지 않은 대중음악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GMF는 이러한 ‘가요’에 대한 변화된 태도를 이용하거나 이런 변화를 선도한다. GMF에 대한 호불호는 이런 맥락에서도 작동한다. 20101219 |최지선 soundscape@empal.com

관련 사이트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http://www.grandmintfestival.com/

제19회 상상마당 포럼 (2010년 10월 30일): 페스티벌은 음악의 미래인가, 거품인가
http://www.sangsangmadang.com/forum/periodic/forum.asp?order=1&pn=1&sopt=&sstr=&cmd=V&vmd=complete&seq=29

웹진 ‘보다’의 이종현 인터뷰: 오아시스 좀 모르면 어떻고 콜드플레이 좀 모르면 어떤가
http://bo-da.net/637?category=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