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립의 이력을 소개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모던 록 밴드 스웨터의 리드 싱어로 활동하면서 석 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했고, 그를 통해 대표적인 모던 록 뮤지션으로 각광받았다. 2005년 밴드 활동 중간에 사이드 프로젝트로 솔로 활동을 시작해 자신의 레이블 ‘열두폭병풍’을 통해 음반을 발표했다. 스웨터가 활동을 중단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솔로로서 활동했는데 2010년에는 세 번째 솔로 앨범 [공기로 만든 노래]를 발표했으며 ‘어쿠스틱 테이블’이라는 이름의 자신만의 공연을 열어왔다. 그런데 이런 이력 때문에 이아립은 지금으로 치면 ‘홍대 여신’의 원조로 일언지하에 요약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녀에겐(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떤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없는 다른 틈이 있다. 그 틈에 대한 주목이 이 인터뷰의 시작이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특히 인터뷰어의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싣게 되어 죄송할 따름이다. 뒤늦은 요청에도 꼼꼼한 확인과 성실한 답변을 해주신 데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일시: 2010년 6월 25일 장소: 카페 벨로주 질문: 최지선, 차우진 정리: 최지선, 차우진 “멈추지 말아요”: 시작의 끝, 끝의 시작 [weiv]: 스웨터의 활동이 공식적으로는 끝이 났습니다. 어떤 이유로 스웨터를 정리하게 된 건지 말해줄 수 있나요? – 스웨터가 해체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도 없고, 또 그렇게 말할 마음도 없어요. 다만 공식적인 활동이 없을 뿐이에요. 지금은 스웨터를 통해 도모할 수 있는 게 사라졌을 뿐이니까요. 그 이유는 너무나도 개인적인 것이라서 언급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다시 만나서 공연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weiv]: 스웨터 활동을 하면서 솔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열두폭병풍이라는 개인 레이블을 만들어 발표했습니다. 스웨터가 음반을 냈던 롤리팝 같은 곳이나 다른 레이블을 통해서 발표하지 않고 개인 레이블을 통해 발매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제가 만든 노래들로 앨범을 기획하고 제작해서 홍보 및 유통하는 것까지 혼자서 진행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같은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진행과정을 명확하게 알고 싶었고 그 과정을 통해서 저 혼자만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의 무게를 알고 싶었습니다. [weiv]: 스웨터는 말하자면 당시로서는 인디 씬의 스타급 밴드였습니다. 그렇지만 이후의 개인 활동은 그런 인지도를 소거하면서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인기(?)를 이용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나요? 물론 그런 방식의 활동은, 본인이 하고 싶었던 솔로 형태와 배치되는 것이었겠지만… 가령 김윤아, 조원선 등과 비교하면 당신이 선택한 방향은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 저는 ‘노래도 운명을 타고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곡을 쓰면서 노래가 자신의 운명대로 살아가는 것을 보곤 하는데 그 노래들이 누구의 도움없이 홀로 걸어가야 한다고 제게 일러주더군요.(웃음) [weiv]: 스웨터에서도 작곡을 했었지요. 스웨터의 1, 2집의 경우에는 (작사만 했던 곡을 제외하면) 각각 두 곡씩, 3집 [Highlights]의 경우에는 네 곡을 작곡했지요. 물론 당신의 곡이니 밴드와 솔로 작품들은 비슷한 느낌이 있어요. 예컨대 1집 [Staccato Green]의 “바람”은 밴드 스타일의 편곡을 덜어내면 솔로 음반에 실었어도 무방할 듯합니다. 반면 두 번째 솔로 음반 [누군가 피워놓은 모닥불]의 비트감 있는 “저절로 흐르는 곳, 낮은”이나 “헤드라잇 춤” 같은 곡은 스웨터에서 발표했어도 좋았을 곡 같아요. 스웨터 3집의 첫 곡 “시작은 왈츠로”처럼 왈츠풍 노래가 이후 솔로 음반에 수록된 것만 봐도 그렇게 느껴졌어요.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지금의 곡 스타일은 밴드였던 스웨터와는 다를 수밖에 없겠죠. 곡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솔로와 밴드의 편곡에서 어떤 차이를 두었나요? – 솔로라는 이름 그대로 ‘솔로다워질 것’을 요구하며 작업하는 편입니다. 밴드가 아닌 솔로인 이유를 찾지 못하면 그 또한 ‘솔로’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워지니까요. 혼자서 할 수 있는 가장 저다운 소리를 끌어내는 편곡에 중점을 두고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weiv]: 스웨터 3집의 훵키한 리듬의 “멈추지 말아요”는 최근의 솔로 음반 [공기로 만든 노래]에 실린 “패턴 놀이”의 밝은 버전인 것도 같습니다(“멈추지 말아요 스텝이 엉키어도 계속 움직여”라는 가사처럼). 스웨터 2집 수록곡 “그럴 듯해”는 상큼발랄한, 딱 스웨터의 노래 같고요. – 네. 제 느낌도 다르지 않은데요. “멈추지 말아요”는 솔로에서 쓰려고 했는데, 밴드로 편곡해보니 밴드식 악기 편성이 더 좋게 느껴져서 싣게 된 노래였고, “그럴 듯해”의 경우엔 처음부터 스웨터가 가진 색깔과 비슷하게 나와서 편곡하기가 수월한 곡이었어요. [weiv]: 그런 상큼발랄한 노래들은 참 ‘가식적인’ (웃음) 목소리와 가사를 가지게 됩니다. “토끼보다 빠른 슈퍼카 타고 널 태우러 달려갈거야/우린 … 별들이 아니었을까”라는 가사처럼. – 하하. 저도 좀 낯간지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데요, 아무래도 그것이 스웨터의 색깔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스웨터의 음악이 공들여 예쁘게 화장한 얼굴이라면 이아립의 음악은 오히려 민낯에 가까운 음악이라 할 수 있겠죠. [weiv]: 사실 스웨터는 이아립이라는 프론트우먼이 돋보이는 밴드였어요. 스웨터의 초기 어떤 인터뷰에서 신세철은 당신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할까봐 우려했었다고 했던데요. – 멤버들 중에서 가장 내성적인 편이었던 탓에 멤버들이 저에게 많이 맞추려고 애썼어요. 하지만 프론트우먼에게 있어서 내성적인 성격은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이 됐어요. 제가 솔로로 데뷔하기 전, 그러니까 스웨터 초창기에는 밴드에 맞춰 나를 버리는 것이 미덕이라고 착각했어요. 그래서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무대에 서는 듯한 기분을 느낀 적이 많았어요. 돌아보면 모두 저의 판단 착오였던 거죠. 프론트우먼답게 의견을 내고 서로 조율했어야 하는데 처음엔 그런 부분에서 서툴렀던 점이 많았어요. [weiv]: 스웨터와 이아립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 존속하리라 예상하지 못했을 텐데요. (웃음) – (웃음) (마스터플랜 프로덕션/해피로봇 레코드의) ‘돈마니’ 이종현 씨의 소개로 스웨터를 만났는데, 저도 스웨터를 10년 동안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스웨터는 저에게는 첫 밴드이자 마지막 밴드라고 생각해요. 또 다른 밴드를 한다는 것이 그 만큼 상상이 안 돼요. 스웨터는 저에게 음악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 준 밴드이고 지금의 저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 준 밴드이기도 해요. 첫사랑처럼 서툴렀던 점이 많아서 아쉬움도 큰 밴드이기도 하고요. [weiv]: 개인적으로는 스웨터가 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모던 록 밴드 자우림과 다른 식으로 성장하고,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자우림하면 김윤아를 떠올리는 것처럼, 스웨터하면 이아립으로 관심이 갔으니까요. 그런데 3집의 경우 곧 끝을 맺으려는 듯이 정리하려는 느낌이 있었어요. – 2집과 2.5집 활동을 마치면서 멤버들과 각자 개별적인 음악활동 기간을 가지자고 내부적으로 결정을 했어요. 신세철 씨와 제가 각자의 솔로 음반을 냈을 때가 바로 그 때였고 그 이후 다시 만나서 3집 곡들을 모아 보았는데 그 전의 음악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들이 베어져 나왔어요. 밴드 휴식기가 길어서 그랬을까요. 어쨌든 기름기는 빠지면서 힘이 들어간 음악이었다고 할까요. 그간 못해본 것도 시도해 보았고. 그렇지만 확실히 밴드의 미래를 그려주는 앨범은 아니었어요. 클럽 오뙤르(auteur) 공연 (사진: 열두폭병풍 제공) “움직이는 동안에”: 열두폭병풍 레이블과 솔로 앨범들 [weiv]: 다른 지면을 통해 여러 차례 언급하셨지만 열두폭병풍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말해주면 좋겠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조금은 동양적인 발상 같기도 해요. – 병풍의 이미지는 확실히 동양적이죠. 이름을 짓는 데 있어 병풍자수가이셨던 할머니의 영향이 제일 컸고 어릴 때 본 열두폭 병풍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도 큰 영향을 줬어요. 제가 만드는 음악이 청자의 공간에 아름다운 뒷배경 같은 음악, 때로는 바람막이가 되는 음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열두폭병풍이라 이름지었어요. [weiv]: 그러면 말 그대로 열두 번째가 끝인 건가요? 아직까지는 혼자 앨범을 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작품을 발표할 계획은 없나요? – 숫자는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것이니까요. 12폭이 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진 않네요. 3폭까지는 혼자서 작업했지만 앞으로는 많이 믹스될 것 같아요. 듀오도 있을 것이고 다른 아티스트의 작업도 선보일 예정이에요. [weiv]: 공식적으로 사업자등록을 했나요? – 주변에서 다 말려서 사업자등록을 하지는 않았어요.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잘 운영해 나가고 있는데 점점 책임감을 느껴요. 혼자 벌어서 혼자 가지는 구조가 굉장히 심플한 것 같아서 매력적인 듯 보이지만 그 밖에 모든 사항이 애로 사항이 되더라구요.(웃음) [weiv]: 음악 이외의 다른 일들은 계속 하고 있나요? 디자이너로서는 어떤가요? – 요즘에는 이미지를 운율이나 가사로 펼치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그러다보니 점차 그래픽 작업에 대한 마음도 시들해지더군요. 예전에는 깔끔하게 디자인되어 있는 것들이 보기 좋았는데 요즘엔 디자인이 없는 것들이 더 좋게 느껴져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하고 있더라구요. [weiv]: 전시회를 열기도 했는데요. – 두 번째 병풍 [누군가 피워놓은 모닥불]을 발표한 뒤에 전시를 열었어요. [누군가 피워놓은 모닥불]은 목마른 캥거루가 옹달샘을 찾으러 가는 과정에서 누군가 피워놓은 모닥불 앞에 앉아 나지막히 부르는 노래랄까요. 여기서 목마른 캥거루는 저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목마른 캥커루는 옹달샘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사방으로 뛰어다녀요. 그 과정의 이미지들을 일러스트 책으로 만들었고, 전시를 보러 오신 분들이 그 책을 찢어 전시해주시면 그 곳이 캥거루에게 옹달샘이 되는 일종의 핑퐁식 전시였어요. [weiv]: 두 번째 솔로 작품은 음반 말고도 메모수첩, 전시회를 위한 사진엽서와 포스터가 비닐지퍼백 안에 들어있었는데, 그런 복합적인 의도를 담은 형식이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포장을 뜯고 음반을 꺼내기조차 너무 어려웠어요. 하하하. – CD를 일일이 실로 다 꿰었었는데 그 반응은 좋지 않았어요. 두 번째 앨범은 목마른 캥거루의 프로필을 알리기 위해 전시, 홍보포스터, 음악, 책 등 복합적인 결과물을 만들고자 시도했어요. 따라서 제작비가 세 배로 뛰었고 소비자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저는 계산기를 두드려 가격을 책정했어요. 제가 판단하기에 음반이 아니었기 때문에 레코스샵에 넘기지 않고 책방에서 판매했고요. 그렇지만 결국 두 번째 병풍을 소비하는 분들도 대부분 음악을 듣는 분들이셨어요. 높은 가격에 까다로운 유통까지 겹쳐 제 음악만을 감상하기 원한 분들께 폐를 끼치는 결과를 가져왔죠. 깨달은 바가 많은 작업이었습니다. [weiv]: 주류 스타들의 경우, 색다른 음반을 만들거나, 아니면 화려한 화보를 넣어 팬서비스용으로 스페셜 패키지 형식의 음반을 만드는 경우가 많이 있기는 하지만요. – 처음에는 [누군가 피워놓은 모닥불]을 mp3, mp4, jpg 데이터로 만들어 USB에 넣어서 판매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USB 단가가 무척 부담스럽더군요. 그래서 바로 포기하고 여러 가지 모양을 갖춘 세트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어쨌든 손에 잡히는 질감을 가진 무언가로 만들 생각을 하다가 점점 규모가 커진 경우예요. [weiv]: 반면 첫 번째 작품은 아주 심플한 형식이었어요. 검은 봉투에 알판을 넣은 간단한 포장으로…. – 이렇게 저렇게 변화는 계속 될 예정이에요. 언젠가는 정말로 병풍 형식으로도 내보고 싶어요.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 시도해보고 싶어요. 어떤 때는 욕도 먹고 어떤 때는 칭찬도 듣겠죠. 그런 여러 가지 반응 속을 겪으면서 열두폭병풍의 모양을 갖춰나가고 싶어요. [weiv]: 각각 수량을 얼마나 찍었나요? 이전 음반들을 재발매할 계획은 없는지요? – 첫 음반은 2천장, 두 번째 음반은 1천장. 이번 음반은 2천장 찍었어요. 이전 음반들을 재발매할 계획은 전혀 없어요. 새로운 걸 발매하는 건 의미가 있지만 이전의 것들을 재발매하는 것에 의미를 찾지 못하겠어요. [weiv]: 그렇지만 의도와는 반대의 현상이 생겼어요. 인디 씬이 어느 정도 정착하면서 고가에 판매되는 희귀 앨범들이 생겼으니까요. 만드는 사람도 저예산으로 만들고, 듣는 사람도 비싸지 않게 구매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아이템을 구할 수 없는 현상이 생겼다고 할까요. 물론 어디나 희귀 음반이나 컬렉터스 아이템이 있게 마련이고, 인터넷 유료 음악 사이트 같은 다른 통로를 이용해 음악을 들을 수도 있지만… – 어떤 음반을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지금은 품절이고 다시 발매할 예정이 없다고 하면 너무 아쉬울 것 같지만 또 그런 아쉬움들이 일상에 주는 영향들도 꽤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컬렉터스 아이템들이 나오는 것이고… [weiv]: 솔로 3집 [공기로 만든 노래]를 발매한 뒤 음원 유통도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지요? 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하려는 장치 같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사실 수익은 그렇게 많이 나지 않을 텐데요. –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재발매 계획이 없기 때문에 음원으로라도 감상이 가능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두 번째는 홍보 때문이에요. 아무래도 혼자서 일하는 데 있어 한계가 많기 때문에 좀 더 쉽게 저의 음악에 접근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셈이죠. 이아립 솔로 3집 [공기로 만든 노래] “바람의 왈츠”: 솔로 3집 [공기로 만든 노래] [weiv]: 세 번째 음반 [공기로 만든 노래]는 패키지 형식만 보면,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의 중간 정도의 위치로 보입니다. – 첫 번째 음반 [반도의 끝]을 재발매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딱 그런 느낌으로 자주 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해요. [weiv]: 전반적으로 어쿠스틱 포크의 분위기가 주효합니다. 그런데 ‘포크 근본주의’라 할까요. 한국에서 극단적인 인디, 로파이로 가려는 경향이 있는 듯해요. 제작부터 유통까지…. 이아립 씨의 경우에도 정제된 사운드보다는 일상의 소음까지 포함된 소박한 사운드 중심입니다. 1집 [반도의 끝]의 사운드나 커버를 보면 그런 느낌이 강했어요. 말하자면 그건 민낯이 되는 것인데, 사람들이 당신에게 기대하던 건 화장한 얼굴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반응이 극과 극이 될 수 있어 보여요. – 네. 그럴지도 몰라요. 원래 녹음실에서 녹음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작은 소음들 사이에 있을 때 평화로움을 느끼는 편이예요. 저는 언제나 작은 바람소리라도 들으며 녹음하고 싶었고 그런 느낌들이 낯설어 싫어하는 분들도 계셨어요. [weiv]: 소량으로 제작해 공식적인 유통을 거치지 않았다는 측면도 앞서 말한 ‘포크 근본적’ 태도가 엿보입니다. 공연 역시 말하자면 버스킹과 비슷한 형태를 띠기도 했고요. 공연은 주로 어떤 컨셉이었나요? ‘유어마인드’ 같은 서점이나 복합문화 공간을 선호하시는 것도 같네요. – 지금도 ‘어쿠스틱 테이블’이라는 이름을 건 공연을 하고 있는데, 이런 카페(벨로주)에 와서 기타 들고 노래하는 공연이 중심이에요. ‘카페로 온 봄’ ‘엘리엇 스페이스’ 같은 곳에서도 많이 했고요. 이야기 소리, 바람 소리, 발자국 소리 같은 일상의 소음과 내 목소리, 그리고 기타가 함께 빚어지는 공연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마이크 없고 스피커 없는 공연을 했어요. 그런데 제 목소리가 작은 편이라, 공연이라기 보다는 얘기하는 정도로 그치게 되더라구요.(웃음) 그래서 요즘은 지금은 작은 마이크와 스피커를 설치해서 하고 있어요. [weiv]: 흔히 공연의 생생한 현장성을 포착하려는 ‘라이브 음반’이 있는가 하면, 실제 라이브 공연이 아니더라도 라이브‘처럼’ 들리도록 음반을 만드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아립 씨의 경우는 자연스럽게 후자의 경우처럼 들렸어요. – 네 맞아요. 세 번째 음반 [공기로 만든 노래]는 어쿠스틱 라이브의 느낌을 담으려했던 것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날 것 그대로 담으려 하다 보니 기술적인 면에서 애로사항이 많이 생겼죠. 그래서 라이브’처럼’ 들리도록 가공했어요. 물론 노래는 라이브로 받았으니, 그 밖의 소리들에 한해서… 이 음반이 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도 거기에 있었어요. [weiv]: 3집 첫 곡 “흘러가길”부터 목소리가 전면에 들렸습니다. 옆에서 속삭이듯 이야기하는 느낌이 강한데요. – 이번 앨범은 너무 민낯 같은 음반이라 전면에 내세울 게 없어요. 그래서 보컬이 잘 들렸을 거예요. 사실 제 목소리가 힘도 약한 편이라서 더 음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요. [weiv]: “흘러가길”은 무반주로 노래합니다. 말하자면 발자국 소리가 반주인 셈인데 어떻게 녹음했는지요? – 발자국 소리는 걸으면서 아이폰으로 녹음했어요. 한 번에(원테이크로) 녹음했는데 그 또한 여러 번 시도해서 나온 결과예요. “바람의 왈츠”의 피아노 소리도 아이폰 어플로 녹음한 것이고요. 생각해보니 아이폰이 큰 역할을 했네요.(웃음) [weiv]: “가장 듣고 싶은 말”의 아르페지오는? – 그 아르페지에이터는 믹싱을 맡아준 (임)진선 씨가 제안한 것이에요. 믹싱할 때 FM대로 하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실험적인 것을 좋아하는 엔지니어도 있잖아요. 진선 씨가 딱 후자 타입이에요. 꼭 작곡하듯이 믹싱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분의 유니크한 열정에 반하게 돼요. 저의 세 장의 음반을 전부 믹싱해주셨죠. 이번에도 믹싱을 부탁드렸더니, “가장 듣고 싶은 말” 그 곡에 있는 기타 소리로 트랙을 하나 더 만들어 아르페지에이터를 스스로 넣은 거예요. 그가 연주(?)한 것들에 대해 명명하자고 해서 (속지에) 그렇게 쓴 것이고요(주: 음반 가사지에는 ‘brilliant’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벌써 잊었나”도 기타를 이용해서 만든 게 있어요(주: 음반 가사지에는 ‘eternal pad’라고 씌어있다). [weiv]: 그 외에 이 음반에 함께한 세션들은 누구인가요? – 조정치는 기타리스트로도 많이 알려져 있고 곧 본인의 앨범이 나올 거예요(주: 그의 앨범은 현재 이미 발매되어 있는 [미성년연애사]를 말한다). 코러스에서 곤잘레스라는 이름은 베이시스트 한진영 씨이고, 오키나와는 고양이 두 마리(오키, 나와)예요. 멜로디언 연주는 제가 했어요. 녹음할 때 도움을 받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서 멜로디가 좀 민망해요. 피아노 연주는 “물음표를 찍어요”를 연주해주신 배윤진 씨가 도와주셨고요. [weiv]: “패턴놀이”는 카페 라이브 녹음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어느 곳에서 어떻게 녹음했나요? – 사실 카페 라이브를 정말 하고 싶었는데, 카페에 가서 녹음하려면 장비가 많이 필요하니까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카페에서 소리를 먼저 따고, 집에서 라이브로 녹음했어요. 카페의 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맞게 녹음한 것이지요. [weiv]: 그런 점에서 주변의 잡음은 이 음반의 중요한 화두인 셈입니다. “사과”에서 사과 깎는 소리도 외부의 노이즈와 함께 자연스럽게 녹음된 것이죠? 이 효과음 역시 아이폰 어플을 통해서 녹음했나요? – 사과 깎는 소리, 집에서 나는 자연스러운 노이즈는 직접 마이크로 녹음한 거예요. 부엌에서 엄마가 사과를 깎고 저는 제 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느낌으로 녹음하고 싶었어요. [weiv]: “신세계”의 가사에서 “일곱 가지의 바람과 열두 가지의 길을 만날 수 있는”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 신세계는 달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만난 세계를 뜻하는데, 거기서 일곱 가지는 색깔이고 열두 가지는 달(月)을 나타내요. 서로 다른 빛깔의 바람과 열두 가지의 달의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weiv]: 두 번째 음반의 화두가 물이었다면, 이번 세 번째 앨범은 바람을 다루었습니다. 첫 번째는 어떤 소재를 선택한 것인가요? – ‘반도의 끝’이니까 굳이 말하자면 흙? 이제 불만 남았나요? (웃음) ‘불’이 소재가 되는 음악이라면 그건 아마 비트가 들어가는 음악이 아닐까요? 댄스 아니면 트로트? [weiv]: 굳이 말하자면 공연에서는 종종 불렀지만 이번 앨범에는 실리지 못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와 같은 절절한 느낌이 아닐까요? ‘꺾는’ 목소리가 의외로 굉장히 잘 어울렸거든요. – 하하. 그 평가를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겠어요. 2009년 3월 6일 V-Hall 튠테이블 연합공연. (사진: 최지선) “이름없는 거리 이름없는 우리”: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부르는 어떤 노래들 [weiv]: 이제 이아립 씨가 낸 최근의 음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사실 당신도 최근 세간에 회자되었던 ‘홍대앞 여성 싱어송라이터’ 바람에 묻어 갈 수도 있었을 텐데요. – 그때는 새 음반이 발매되지 않았으니까 그럴 수는 없겠지만, 음반이 발매되었어도 다른 분들과 함께 묶이기는 애매했을 거예요. [weiv]: 그러고 보면 당신의 음악 분위기에는 약간 폐쇄적인 느낌이 있어요. 의도적으로 ‘고립주의’ 노선을 선택한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요? – 그런 표현이 있나요? 어쨌든 좀 그런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내가 많은 사람을 아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정확히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내 음악을 알았으면 좋겠지만 나 자체를 아는 건 별로 원하지 않아요. 내 음악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이를 위해 굳이 날 알릴 필요가 있을까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노래로 말해줬으면 싶기도 해요. [weiv]: 다른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노래에서 가사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곡과 가사 중에 어떤 것을 먼저 쓰는지, 이 둘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는지 궁금해요. – 곡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요. 어떤 가사에 관련된 심상이 정해지지 않으면 멜로디가 떠오르지 않는 편이라서 굳이 따지자면 가사부터 완성하는 스타일이지요. 그런데 가장 좋은 경우는 가사와 멜로디가 함께 만들어지는 경우인데, “물음표를 찍어요”, “베로니카” 같은 곡들이 대표적으로 가사와 함께 만든 노래이고, 이번 공기로 만든 노래에서는 “바람의 왈츠”, “꿈의 발란스”가 그랬고, “이름없는 거리 이름없는 우리” 같은 경우는 ‘가사를 나중에 써야지’ 하고 가이드로 지어놓았던 가사를 그대로 노랫말로 쓴 경우죠. [weiv]: 어떤 관계 또는 사건에 대해 끊임없이 반추하고 정리한 뒤 가사로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계속 돌아보고, 회환의 감정을 느끼고, 그런 아픈 과정 속에서 태어나는… 그런데 돌아보면 좋은 것보다 아쉬운 것이 많지 않나요? 가사에 그런 게 묻어나는 건가요? – 말씀하신 대로 어떤 사건에 대해 끊임없이 반추하고 나름대로 정리가 된 후에 작업을 시작하는 편이라서요. 이미 결론지어진 느낌들을 가지고 가사를 쓰다 보니 아쉬움이나 회환의 감정들을 더 담백하게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weiv]: 외국산 트렌디한 ‘팝’ 음악이라기보다는 ‘가요’에 가까운 음악들이 인디 음악에서도 꽤 있습니다. 스웨터의 음악도 좀 그런 면이 있었고요. 말하자면 동아기획이나 토이(유희열) 같은 1990년대 (참 이상한 이름이기는 하지만) ‘고급가요’라 불리는 음악 같은… 장필순도 생각납니다. 이아립 씨의 최근 음악에 그런 느낌이 있어요. – 몇 년 전에 신현준 씨가 주신 음악들이 있었는데 그걸 듣다가 (손으로 테이블을 탁 치며) 문득 알게 되었어요. 최성원 씨! 그동안은 제 원류가 조동익 씨이나 이병우 씨라고 생각해왔거든요. 그런데 그보다 한참 전에 저의 음악의 원류라고 부를 수 있는 최성원 씨가 있었더라구요. 처음으로 거울을 보면서 엄마 로션 통을 잡고 불렀던 노래가 “이별이란 없는 거야”였거든요. “색깔”, “님을 찾으면” 등등을 불렀는데 모두 1986년 발표된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이에요. 그 때, 그 노래가 제 ‘꿈의 시작’이었던 거죠. [weiv]: 최근 들어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동안 축적되어왔던 것들이 이제 그 결실을 드러내는 것도 같아요. 기술의 힘을 빌려 손쉽게 음악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했고요. 오지은이 차린 사운드니에바에는 다른 여성 뮤지션들이 소속되어 있기도 하죠.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시도해볼 생각은 없는지요? – 있어요.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 그 카테고리가 넓어지면 좋겠어요. 여성 남성 가리지 않고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요. 만나 보니 못 친해질 이유가 없더라고요. 어떤 카테고리에 묶이거나 분류되는 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지만, 스펙트럼을 넓히는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스웨터를 하면서 늘 말했던 건, 다양한 음악의 섹션 속에 스웨터가 위치하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이제 10년을 지나며 지켜보니 과거에 비해 다양한 음악들이, 다양한 자리에서 생겨났어요. [weiv]: 지금 서로 교류하는 또는 도움을 주고받는 뮤지션이 있다면 누가 있나요? 아니면 좋아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나 주목하고 있는 후배가 있다면? – 아서라 이그의 (이)호석 씨와 노래를 주고받으며 공연을 준비하고 있고, 명랑 발랄한 옥상달빛과, 뇌쇄적인 목소리를 가진 계피 씨가 있는 가을방학을 좋아해요 [weiv]: 벨로주에서 랄라스윗과 공연(6월 13일)할 때 보니, 랄라스윗이 깍듯이 선배님이라고 하던데요. 그 장면을 보며 당신이 정말 10년이 넘은 뮤지션이라는 걸 다시 실감했어요. 이제 이아립 씨의 경우도 후배 뮤지션들에게 일종의 역할모델로 자리할 듯합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요? – (이 씬이) 넓어지길 바랐던 기대가 이뤄진 것 같아 좋아요. 서로 무언가 힘을 합칠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럴 일이 있다면 함께 하고 싶어요. [weiv]: 인터뷰를 한 지 오래되어 그 뒤 열린 공연에 대해 여쭤봅니다. (6월 6일 6시 공연 이후 동일한 숫자의 월·일·시에 열린 공연을 포함해) 이아립 씨만의 ‘어쿠스틱 테이블’ 공연이 여러 차례 열렸고, KBS의 음악창고 같은 방송,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열린 라이브열전 무대, 그리고 프린지 페스티벌이나 연말 CDF(Countdown Fantasy) 같은 페스티벌 무대에 초청되셨더군요. 가장 인상 깊거나 소개하고 싶은 공연이 있다면 소개해 줄 수 있나요? – 제가 공연장에서 공연을 즐기게 된 것이 사실 얼마 안됐어요. 그 시기가 2010년 9월 즈음부터 인데요, 그 이후에 공연들 모두가 즐겁고 행복했어요. [weiv]: 새해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 공연을 통해 더 많은 공간에서 더 많은 분들과 만나 소통하고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20110104 | 최지선 soundscape@empal.com 관련 글 스웨터 [Staccato Green] 리뷰 – vol.4/no.18 [20020916] 스웨터(Sweater)와의 인터뷰: 일상잡기(日常雜記)의 우울…그리고 화사한 나들이 – vol.4/no.18 [20020916] 에세이 [그립다, 그녀들의 목소리] – vol.4/no.19 [20021001] 호미 언니의 가요만담: 프론트우먼들의 족보 – vol.4/no.19 [20021001] 이아립 [공기의 노래] 리뷰 – vol.12/no.24 [20101216] 관련 사이트 이아립과 열두폭병풍 레이블 사이트 http://www.sugarpap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