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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 잔혹한 여행 (EP) – 파스텔뮤직, 2010

 

 

가을이 오면

전작 EP [끈](2009.6.)이 여름의 휴가를 위한 것이었다면, 신작 EP [잔혹한 여행]은 가을의 여행을 위한 것이다. 첫 트랙 “어느 가을”을 제외하곤 단조의 곡들이 계속된다. 가을여행이란 게 실제 지금 그걸 할 수 있든 말든 가슴 시린 무언가로 다가오기 마련이라면, 이 노래들은 가을병이 도지는 사람들(남자들?)에게 보내는 (홍보문구를 인용한다면) ‘치명적인 유혹의 연가’들이다. 그 유혹은, 보도자료를 인용하면 ‘농염한 매력을 가진 보이스’, 평론가 김작가의 예전 리뷰를 인용하자면 ‘팜 파탈의 결기가 비추는’ 목소리로부터 나온다. 생각해 보면 한희정의 목소리는 예전에도 그저 샤방샤방하지는 않았다. 이번 앨범은 전작들보다도 목소리가 가늘어진 것 같은데, 그 가는 목소리가 오히려 성숙하게 들린다.

가을 노래들이 대책 없는 과잉감상으로 치달아 진부해지는 양상은 이 음반과는 거리가 멀다. 음악의 템포는 오히려 이전보다 빨라졌고, (일렉트릭 기타가 없는) 밴드와 함께 편곡한 사운드는 성기지 않다. “어느 가을”과 “잔혹한 여행”에서 어쿠스틱 기타의 핑거링은 바빠졌고, “입맞춤, 입술의 춤”에서는 드럼이 16비트 필인(fill-in)까지 들려주며, “우습지만 믿어야 할”은 바운스 있는 리듬 위에 재즈의 필을 슬쩍 묻혔다. 한편 “반추”는 느리고 다소 처지지만, 푸른새벽의 “푸른자살”이나 “사랑”을 좋아했던 전력이 있다면 불만스러울 수 없다.

정규 앨범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만들어서인지 개별 곡들의 스타일은 다양하다. 연주곡(“연착”)과 리메이크(“드라마”)를 제외한 다섯 곡을 들으면서 포크, 보싸 노바, 재즈, 왈츠, 그리고 ‘가요’ 등의 단어가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머리를 스치는 또 하나는 “이런 변화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한희정의 경우 이러한 변화로 인해 얻는 것도 있었지만, 잃는 것도 컸다”라는 [weiv]의 평자가 2008년에 했던 지적이다. 그런데 홍대씬의 한 명의 여신은 이곳의 ‘성골’들이 보는 이런 저런 눈치로부터 자유롭고 당당한 것 같다. 한 노랫말을 맥락 없이 인용하자면, 그것도 ‘예쁜 모순'(“우습지만 믿어야 할”)이다. 그 모순, 계속 예쁘기를!20101106 | 신호미 homey81@gmail.com

7/10

수록곡
1. 어느 가을
2. 입맞춤, 입술의 춤
3. 우습지만 믿어야 할
4. 반추
5. 잔혹한 여행
6. 드라마
7. 연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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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한희정 공식 사이트
http://dawnybo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