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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너마저 – 졸업 – 스튜디오 브로콜리, 2010

 

 

어른이 되는 계절

예전의 한 인터뷰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이 차여본 거냐는 질문에 덕원은 이렇게 답했다. “다들 연애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선험적인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할 뿐”이라고. “사람들이 노래를 들으면서 자신의 연애 이야기라고 느끼는 것은 결국 현혹되는 거죠. 발을 내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와서 걸리는 그런 상황이에요.” 나 역시 그 발에 몇 번이고 걸려 넘어져 까진 무릎이 아물기도 전에 또 긁히곤 했던 사람인지라 이 말에 좀 파르르 분하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또 그런 것도 같다.

이 밴드의 노래는, 우린 왜 항상 이렇게 잔인한지, 어떻게 하면 함께 춤을 추는 너의 발에 멍이 들게 하지 않을 수 있는지 너와 나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민했고, 또 지난날과 지금 사이에서 오롯이 지키고 싶은데 잊혀만 가는 것들에 대해 얘기했다. 혼자 감당하기에도 벅차지만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청춘의 세계는 그렇게 너와 나라는 축, 그리고 지난날과 지금이라는 축으로 이뤄져 있었다.

2집이 나온 이 시점에 다시 지도를 그려 보자면, 브로콜리 너마저의 세계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우주가 끝나도록 상처 없이는 손잡을 수 없을 것 같던 ‘나와 너’는 ‘우리’가 되었고, 반대편에는 그들 혹은 (이 미친) 세상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닌 ‘지금’이다.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혼자 울음을 삼켰던 청춘은, 이제 이 미친 세상을 믿지 않겠다고 입술을 잘끈 씹어 문다. 앨범을 관통하는 이런 정서는 의식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정치적인 탈색과 시크함을 가장한 무관심이 가장 ‘쿨’해진 때에, 이런 가사가 전작만큼 ‘먹히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건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졸업”이 KBS 방송 불가 처분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시대 가장 ‘민감한 감수성’ 상은 브로콜리 너마저가 아니라 KBS나 청와대에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다만 “울지마”나 “다섯시 반” 같은 노래에서 ‘너’에게 이러저러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화자의 포지션이나, “열두시 반”에서처럼 ‘거리를 걷는 나의 어깨’가 ‘피곤에 빠진 우리들’로 곧장 치환되는 것은 다소 염려스러운 부분이다. 이를테면 20대의 대변인 같은 뉘앙스가 묻어나는데, 그렇다면 브로콜리 너마저의 미래는 오만과 상투성이라는 덫으로 이어지게 될까 아니면 이런 함정을 피해 공감을 무기로 한 세대를 설득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결국 브로콜리 너마저는 지금 환절기를 지나고 있다. 졸업을 하고 어른이 된다. 이때 방점은 ‘어른’이 아니라 ‘된다’에 찍혀야 한다. 이 환절기를 어떻게 지나느냐가 바로 ‘어떤’ 어른이 될 것이냐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졸업] 앨범이 들려주는 음악 또한 그 치열한 성장 과정의 한 단면이다. 풋풋한 로우-파이 사운드라는 트레이드마크에 조금이라도 연연했다면 2집이 이 정도의 응집력을 보여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보컬 멜로디를 변형한 리프를 한 음씩 이어 치던 향기의 기타는 어느새 다양한 피킹을 구사하고 있고, 곡의 어레인지나 앨범의 일관성도 전작에 비한다면 월등한 수준이다.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면서도 앨범의 통일성을 해치지 않는 법을 깨달았음을 보여주는 “환절기”, 다양한 리듬이 변주되며 능숙한 완급 조절을 보여주는 “변두리 소년 소녀” 등이 도드라진다. 아마추어적이라는 평을 완전히 벗어내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해도, 브로콜리 너마저는 적어도 애초의 방향을 잃지 않았으며 이 점이 이들의 몇 년 후를 판가름하게 될 것이다. 20101116 | 이수연 wei.jouir@gmail.com

7/10

수록곡
1. 열두시 반
2.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3. 변두리 소년, 소녀
4.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5. 울지마
6. 마음의 문제
7. 이젠 안녕
8. 할머니
9. 환절기
10. 졸업
11. 다섯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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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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