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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 사랑 – Music Farm/엠넷미디어, 2010

 

 

텅 빈 사랑

이적의 네 번째 음반인 [사랑]이 연상시키는 것은 롤러코스터의 [Sunsick], 마이 앤트 메리의 [Drift]다. 이 세 음반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우선 네 번째 음반이라는 것. 다음으로는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좋은 결과를 거둔, 또는 경력의 절정이라 할 수도 있는 전작이 있다는 것. 셋째로 해당 뮤지션의 디스코그라피에서 가장 맥 빠진 결과물이라는 것.

솔로 뮤지션으로서의 이적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사실상 이적의 솔로작이었던 패닉의 네 번째 음반에 관한 글에서 밝힌 바 있다. 이 음반이 그 생각을 바꿀 것 같지는 않다. 만듦새에 있어 빈틈없는 뮤지션이니만큼 섬세한 편곡과 좋은 녹음이 돋보이며, 깔끔한 로큰롤 “그대랑”과 고즈넉한 피아노 발라드 “빨래” 사이에 일관되면서도 다양한 스타일을 고루 배치하는 감각 역시 훌륭하다. 이적은 이 음반에서 몸에 맞는 옷을 입고 몸에 익은 근육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 이적이 즐겨 만들곤 하는 매카트니 스타일의 “보조개”를 포함하여.

문제는 결과물이 공허하다는 것이다. 다들 어디서 예전에 들어본 것 같은, 그리고 어디서 예전에 들었을 때도 별다른 인상을 받지 않았던 곡들 같다. 이는 ‘얼마나 많은 다툼 뒤에 우린 비로소 뉘우칠 수 있을까'(“다툼”)나 ‘그대라는 오랜 매듭이 가슴속 깊이 남아서'(“매듭”) 같은 상투적인 어휘와 표현 들을 통해 쉴 새 없이 드러내는 감정의 깊이와 비슷하다. 창작자가 사랑이라는 주제와 거기서 파생된 감정들을 지나치게 신중하게, 혹은 너무 안이하게 다루는 건 아닐까 싶은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신중함과 안이함은 결국 같은 것이다. 어쨌든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대상에는 다가가지 못한다.

그래서 이 음반에 대한 다소 과장되었던 초반의 반응은 음반 자체보다는 음반 외부의 요인들이 더 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요인들에는(이적 개인에 대한 호감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가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사랑]이 객관적으로 못 만든 음반도 아닌데, 그런 호의에 대한 근거들도 나름 튼실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음악성 있는 1990년대 가요’, 혹은 우리 시대의 ‘어덜트 컨템퍼러리’라 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한 자부심 넘치는 지지의 연장 선상에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어느 쪽이건 간에 그게 [사랑]의 한가운데에 뚫린 빈 자리를 가리지는 못한다. 20101109 | 최민우 daftsounds@gmail.com

5/10

수록곡
1. 아주 오래전 일
2. 그대랑
3. 다툼
4. 빨래
5. 두통
6. 보조개
7. 매듭
8. 네가 없는
9. 끝내 전하지 못한 말
10.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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