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iv] 리뷰 아카이브를 뒤져봤더니, 한희정과 관련된 음반들의 리뷰가 대부분 발견되었다. 더더밴드 3집과 4집, 푸른새벽의 세 장의 음반(EP 포함), 그리고 솔로 1집에 대한 여섯 종의 음반에 대한 리뷰를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2003년에 최민우 편집장이 했던 인터뷰까지 있었다. [weiv]가 기민하게 리뷰를 올리는 곳이 아님을 감안한다면 가히 놀라운 관심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어떤 징후’는 그녀에 대한 관심을 일정하게 차단하는 것 같다. ‘홍대앞의 미녀 혹은 여신’ 담론과 연관된 징후 말이다. 작년(2009년)에 나온 EP [끈]에 대한 리뷰가 없는 것 역시 징후적이다. 지금의 한희정은 예전의 한희정이 아니고, 그래서 [weiv]와의 거리는 멀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말하자면 그녀의 음악과 삶은 언젠가부터 ‘인디’보다는 ‘가요’라는 용어에 가깝다는 생각 혹은 편견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이제 그녀의 인터뷰는 [weiv] 같은 웹진보다는 [엘르]나 [바자]에서 찾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 혹은 편견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현재 대중음악계에서 한희정 같은 뮤지션이 차지하는 자리가 더 궁금했다. 그 이유는 그것이 현재 홍대앞 씬의 전체적 변화를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홍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인터뷰를 요청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빌어 ‘홍보’ 두 가지를 하자면, 한희정은 11월 19일 홍대앞 브이홀(V-Hall)에서 단독공연을 갖고, 12월 2일에는 그녀가 주연을 맡은 영화 <춤추는 동물원>이 정식 개봉된다.

일시: 2010년 10월 20일
장소: 카페 <프리 템포>
질문: 신호미 | 사진: 강길주(파스텔뮤직)
정리: 신호미

1. 더더밴드와 푸른새벽을 회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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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여신’을 뵙네요. 음반 나온 뒤 바쁜가요?

한희정: 홍대 올림푸스 돋네요. (웃음). 예, 정신이 없어요.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나가는 건 아실 테구요. 11월 8일과 9일 EBS공감에 나가게 되었어요. 11월 19일 V-Hall에서 단독공연이 있어요. 11월 11일에는 난생 처음 팬미팅이란 것도 하네요.

[weiv]: 오늘 인터뷰는 한희정의 작품에 관한 것도 있겠지만, 음악인으로서의 삶에 많은 비중을 둘 것 같습니다. 우선 한희정의 디스코그래피를 보면 E&E 엔터테인먼트, 카바레, 파스텔 등의 레이블/기획사를 거쳤네요. 각 시기의 ‘매니지먼트’가 달랐을 것 같은데, 먼저 E&E 의 매니지먼트라든가 활동방식은 어땠나요? 그나저나 지금 들으면 더더밴드 시절의 음악은 어떤 생각이 드나요?
한희정: 최근에 들어본 적은 없네요. 만약 듣는다면 회상에 잠기겠죠. E&E 엔터테인먼트는 작은 회사였고, 저희 외에 노바소닉이나 다른 신인 가수 음반도 제작했어요. 활동은 거의 방송 위주여서 TV, 라디오에 많이 나갔고, 공연은 거의 안 했어요.

[weiv]: ‘기성’ 밴드에서 경력을 시작한 특별한 이유는 있었나요? 다른 선택도 있었을 것 같은데…
한희정: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하는 밴드는 지양했거든요. 스쿨 밴드를 했던 경험도 없었고 밴드활동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에 경력이 있는 팀에서 배우면서 시작하고 싶었어요.

[weiv]: 더더밴드의 4집은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을 수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음반은 ‘한희정이 있는 더더밴드’로는 마지막이 되었네요. 밴드를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 다른 인터뷰에서는 명확히 말해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희정: 그 팀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어요. 온전한 제 팀도 아니었거니와 메이저 지향의 밴드이니만큼 작업방식이나 마인드 등의 차이도 있었고요.

[weiv]: 그런데 푸른새벽 1집에는 김영준 씨가 음반에 ‘yjroom’ 이라는 이름으로 프로듀서로 참여했네요. 희정 씨가 밴드를 그만 둘 것을 알고도 선뜻 해주던가요? 추가해서 주류 음악계에서는 계약 문제 등으로 밴드를 쉽게 나갈 수 없는 일이 많은데 혹시 그런 어려움은 없었나요?
한희정: 푸른새벽 1집이 먼저 나왔고, (김)영준 오빠 집에서 홈 레코딩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더더밴드를 나갈 생각은 없었을 때였죠. 밴드 나오는 과정에서는 (김)영준 오빠가 신경을 많이 써주었어요.

[weiv]: 그러면 그때부터 파스텔에 올 때까지는 ‘매니지먼트’가 없었던 기간이었겠군요. 당시 저도 빵에서 푸른새벽의 연주를 몇 번 봤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서 메이저의 화려한 세계에서 홍대앞 인디의 지하실의 클럽까지 강림했던 건가요?
한희정: 하하. 그 세계가 과연 화려할까요. 화려한 척해야 하는 점이 제 정서와는 맞지 않았어요. 아무튼 그때 어느 음악 동호회에서 알게 된 한 친구를 통해 빵이라는 곳을 알게 됐고 공연을 보러 갔죠.

[weiv]: 푸른새벽 1집은 [weiv]에도 임팩트가 꽤 강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미 리뷰나 인터뷰가 있으니까 생략하죠. 제 질문은 푸른새벽의 1집은 카바레사운드에서 나왔는데 EP와 2집은 파스텔뮤직에서 나왔네요. 카바레에서 파스텔로 ‘이적’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뒷 이야기지만 이성문(카바레사운드 대표)는 아직도 서운한 감정이 있는 것 같던데요.
한희정: 아니, 왜 그렇게 생각하시지… 가물가물하지만 몇 가지 기억이 나긴 해요.
사소한 일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이)성문씨랑 감정이 조금 틀어졌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합주실 이용시간이 겹친다든가 하는 정도요. 그런데 그때 이후로 우릴 왠지 껄끄러워하는 듯해서 (정)상훈 오빠랑 다음 앨범은 다른 데서 내보기로 했어요. 그러던 중 파스텔을 알게 된 거죠.

[weiv]: 카바레도 파스텔도 저랑 인적 관계가 없지 않아서 저도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두 레이블의 차이가 아티스트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가오던가요?
한희정: 카바레를 운영하는 분이 뮤지션이잖아요? 음악도 해야하고 음악 외적 업무도 봐야하는데 너무 바쁠 것 같아요. 사실 저는 파스텔에 대해서도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라요. 알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그런 차이점 밖에는 잘 모르겠네요.

[weiv]: 푸른새벽은 2000년대 중반의 어떤 우울함을 상징하는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과는 또 다른 시기였던 것 같구요. 그런데 푸른새벽의 가사들은 감정에 대해 적나라하게 표현하면서 그걸 명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시적으로 표현한 것 같네요. “사랑”같은 가사는 듣기에 따라서는 야하지만 직설적이지는 않고, “빵”같은 가사는 그 장소를 표현하기에는 매우 압축적이고… 혹시 예전에 ‘문학소녀’였나요? 학과는 행정학과라고 나와 있던데… (웃음)
한희정: 제가 의도한 대로 들으셨네요. 명확하고 직설적인 표현은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저는 문학을 좋아해요. 요새는 소설을 더 많이 읽지만 20대 중후반에는 한국 시를 많이 읽었어요. 최승자, 황지우, 백석 등등… 그때는 시를 읽으며 감동의 물결에 휩쓸려 다녔어요.

[weiv]: 그런데 푸른새벽 스타일의 음악은 일정 시기에는 좋지만 오래 듣거나 연주하다 보면 점차 재미없어지지 않나요?
한희정: 하하. 나중에는 제가 노래하면서 조는 거에요. 처음에는 ‘졸린 음악을 하자’고 해서 시작한 건데 몇 년 동안 같은 걸 하다 보니… 그래서 공연 때 여러 시도들을 했어요. ‘우리가 재미있어야 보는 사람도 재미있다’라고 하면서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많이 냈어요. 밴드로 하기도 하고. 하지만 록 페스티벌 같은 무대에는 많이 못 섰어요.

[weiv]: 최근의 솔로 앨범이나 공연을 보면 희정씨의 기타 연주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 같습니다. 푸른새벽을 거치면서 그렇게 된 건가요?
한희정: 솔로 1집 나오기 전인 2007년에 공연을 한 달에 한 번씩 했는데 저 혼자 공연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부담이 많이 되더라고요. 멤버가 사운드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심적으로 의지가 많이 됐단 걸 깨달았죠. 혼자 무대를 꽉 채워야하니까. 그때 연습 진짜 많이 했어요.

2. 솔로로 독립, 경제적으로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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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iv]: 이제 솔로로 독립하는 이야기로 들어가야겠네요. 우선 솔로로 되면서 달라진 게 있었나요? 파스텔에서 기대감을 가지고 제작이나 홍보에서 특별히 푸쉬했다거나…?
한희정: 홈 레코딩이었으니까 제작비 면에서는 푸른새벽 때와 큰 차이가 없었어요.
회사(파스텔)에서는 기대를 많이 했을 거에요. 하지만 그 기대에는 못 미치는 성적을 내서… 하하. 아무래도 저는 에피톤 프로젝트처럼 많이 팔리는 뮤지션은 못돼요.

[weiv]: 못(Mot)의 이언에게 믹싱을 맡긴 것도 파스텔에서 기대한 증거의 하나일까요? 혹자는 음반에서 이언의 영향이 느껴진다고도 하는데…
한희정: 그런 이야기를 몇 번 들었어요. 평론을 할 땐 믹싱이나 프로듀싱 등 용어들의 정확한 뜻을 알고 거론해야 하는데, 정확한 지식이 아닌 유추하는 식의 리뷰들로 인해 화가 날 때가 있어요. 믹싱은 있는 음원들을 서로 섞는 일이고 프로듀싱이나 편곡과는 다른 개념이에요. 물론 믹싱도 새로운 창조지만, 음악 스타일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사운드에 영향을 주는 거겠죠. 예를 들어 지은씨 2집 타이틀 곡을 이언씨가 편곡했는데 그런 면에서 지은씨의 그 곡은 이언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맞아요. 저는 편곡을 제가 하거든요. 그런데도 ‘그 사람의 입김이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심지어 기타도 당연히 이언이 쳐줬을 거라는 말도 들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사람들이 나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나 싶더라고요. 저는 활동을 하는 데에 있어서 회사의 간섭이나 지시도 없거든요. 모든 것을 제가 알아서 하는 편이죠. 믹스를 이언에게 맡긴 것은, 뮤지션이면서 믹스에도 상당한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대로 표현해낼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죠.

[weiv]: 흥분하지 마시구요 (웃음).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는 생각해 봐야겠네요. 제가 들을 때는 첫 곡 “너의 다큐멘트”가 푸른새벽 때와 현격히 달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코드도 복잡하고 조성도 단조와 장조를 오가고…
한희정: 그것도 이상한 게 “너의 다큐멘트”도 한 26살 때, 그러니까 푸른새벽 2집 나오기 전에 만든 거에요. “잃어버린 날들”은 더더밴드 시절인 25살 무렵에 만든 곡이구요.

[weiv]: 어쨌든 작풍이 바뀐 것은 사실인 거 같네요. 푸른새벽 때 곡들이 머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코러스(후렴), 업계용어로 ‘사비’가 강한 곡들이 많고, “잃어버린 날들”이나 “휴가가 필요해”같은 경우 아예 후렴 먼저 후리면서 시작하니까요.
한희정: 어떤 뮤지션에 대한 이미지를 자신만의 카테고리에 집어넣어버리는 성향 때문인 것 같아요. 작풍이 바뀐 것이 아니라 애초에 한희정이라는 사람에게는 여러 면이 있었던 거죠. 후렴에 대한 의식은 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후렴 먼저 나오는 것은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에요. 그냥 후렴 먼저 했어요.

[weiv]: 제게는 “드라마”가 한희정의 오래된 팬들에게는 각별한 것 같습니다. 푸른새벽 때의 “Last Appreggio”나 “친절한 나의 길”의 연장처럼 들리기도 하구요. 본인도 공연에서 여러 다른 버전으로 연주하고, 새 앨범에서도 색다르게 리메이크했네요. 그런데 정작 온라인 음악사이트에서 보면 이 곡의 인기도는 높지 않더군요.
한희정: 제 노래들이 조금 그래요 (쓴 웃음).

[weiv]: 그런 말이 아니라 “우리 처음 만난 날”같은 곡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인기도가 낮았다는 뜻입니다.
한희정: 사실 푸른새벽으로 경제적 독립은 불가능했었어요. 그런데도 저는 1집을 조금 매니악한 음반으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주위의 우려가 있었어요. 저는 그 조언을 받아들여서 “우리 처음 만난 날” 같은 곡으로 경제적 독립을 생각한 거죠. 그렇다고 제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음악을 발표하지는 않아요. 마인드 측면에서 조금 더 적극적이 되었을 뿐. 그 이전까지는 곡을 만들 때 이 점은 덜 생각했어요.

[weiv]: 작년인 2009년에 나온 EP는 밴드곡 두 곡을 제외하면 어쿠스틱 음반이었던 것 같네요. 밴드곡도 두 곡밖에 없고… 특별히 질문하는 건 아니지만, 듣다 보니 처음 세 곡이 모두 A장조더군요.
한희정: A에서 제 목소리가 예쁘게 나와요. 음역대가 잘 맞아요.

[weiv]: 그러면 신보 EP에 대해 몇 개 물어볼께요. 첫번째는 연달아 EP 두 장을 낸 특별한 이유는? 두번째는 전반적으로 템포가 빨라졌네요.
한희정: 이번 음반은 정규 앨범의 느낌은 아니었어요. 어떤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달까요. 템포는 처음 밴드를 하려고 했을 때 하고 싶었던 스타일에 가까워요. 다이나믹하고 역동적이면서 너무 가볍지 않은 스타일. 점차 그런 방향의 사운드를 실현해 낼 생각이에요.

[weiv]: 정규 앨범 느낌이 아니라서 그런지 곡의 스타일들이 다양한 것 같습니다. “입맞춤”은 보싸 노바 기타가 들어가 있지만 드럼 패턴은 그렇지 않고, “우습지만 믿어야 할”은 재즈나 블루스의 느낌이 있고, “반추’는 ‘1980년대 가요’처럼 들리기도 하네요.
한희정: “입맞춤”은 보사노바 주법으로 기타를 치면서 만든 노래였지만 리듬은 전혀 색다르게 가보고 싶었어요. 특정 장르를 염두하고 작업하진 않기 때문에 보사 노바 스타일의 곡으로만 인식되는 것은 싫었어요. “우습지만 믿어야 할”은 재지하고 블루지하다고 보시더라구요.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1980년대 가요’같다는 건 글쎄요…

[weiv]: 이번 음반은 “ 2년째 호흡을 맞춰온 밴드 멤버들과 녹음했다”는 점이 강조되어 있네요. 밴드 멤버들은 각각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인가요? 그런데 이번 밴드에는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는 멤버는 없네요. 지난 봄 <한희정의 스피릿 충전쑈>를 할 때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자가 두 명 있었던 것 같은데… 어디로 사라진(?) 건가요?
한희정: 전작 ‘끈’ 앨범 발매 이후로 공연을 함께 해왔던 친구들이에요. 드러머와 베이시스트는 같이 밴드하던 사이라 합이 잘 맞아요. 그러니 리듬파트가 든든해서 밴드가 안정적이고요. 건반치는 친구는 드러머의 학교 동기에요. 이렇게 멤버쉽도 좋고 연주력도 받쳐 주니 녹음까지 함께 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끈’과 너무 동떨어진 앨범을 만들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일렉트릭 기타는 넣지 않았어요. 봄 공연때 도와줬던 친구들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하하.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음악하고 있답니다.

[weiv]: 밴드와 함께 한 이번 음반은 [너의 다큐멘트]와 [끈]과 비해서 작업방식에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작사, 작곡을 밴드와 함께 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이지만, 편곡 등은 밴드와 함께 한 부분도 있었던 건가요?
한희정: 편곡하는 과정에서 합주라는 방식을 사용했어요. 그러면서 멤버들의 아이디어를 수용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연주 방향을 제가 지시했어요. 보통 세션들은 녹음실에서 프로듀서나 작곡가의 디렉(트) 하에 그 자리에서 바로 녹음을 하거든요. 심지어 곡을 녹음하러 와서 처음 듣기도 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시간이나 비용 측면에서 한계가 있어요. 그런 부분 때문에도 그렇고, 최대한 밴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녹음 전에 미리 합주를 했어요.

[weiv]: 이번 EP는 밴드의 일관된 색깔을 찾기에는 개별 곡들의 스타일이 (산만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했던 것 같습니다. 향후 정규 앨범에서도 이 밴드를 유지한다면, 음악적 컨셉을 일관되게 설정할 계획인지요? 현재 생각하는 방향이 있다면 힌트를 줄 수 있나요? 정규 2집 작업 계획을 전반적으로 이야기해 주시면 더 좋겠구요…
한희정: 벌써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진 않았어요. 워낙 즉흥적인 사람인지라. 하하. 하지만 2집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구상중이에요. 그게 뭔지 설명하기에는 아직 너무 막연하네요.

[weiv]: 신보 EP의 홍보 영상을 보면 화성 어딘가에 촬영하느라 다리에 풀독이 조금 올랐을 것 같네요. 그리고 기타는 왜 그토록 잔혹하게 부쉈나요?
한희정: 화성 우음도라는 곳인데 모기가 달려 들어서 힘들었어요. 기타 부수는 건 개인적 아픔에 직면하기 위한 퍼포먼스였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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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발연기’로 표현하고 싶었던 젊은 날의 초상

[weiv]: 이제 뮤지션으로서 삶이나 생활에 대한 질문으로 옮겨갈께요. 영화 <춤 추는 동물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네요. 먼저 영화를 촬영하게 되기까지 과정을 이야기해주겠어요?
한희정: 감독님 두 분이 “음악 관련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고 정해놓고, 시나리오를 아직 쓰지 않은 상태에서 캐스팅을 한 거였어요. 몬구씨와 저로 결정을 내리고 나서, 한 달 정도 넷이 담소를 나누는 식의 인터뷰를 진행한 다음 시나리오를 썼어요. 배우의 캐릭터라든가 경험담이라든가를 파악하는 시간이었겠죠.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음악도 함께 만드는 작업 방식이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출연을 결정했어요.

[weiv]: 영화에 삽입된 곡들에는 기존 곡들도 있고 새로 만든 곡들도 있는 것 같네요. 그리고 영화 중의 음악 씬은 현장에서 직접 녹음한 것인가요?
한희정: 반반인 것 같아요. <드라마>, <산책> 등은 이미 있던 곡이고 <복숭아라도 사 갈까>, <멜로디로 남아>는 새로 만든 곡이네요. <어디라도 좋아>, <코스모스>는 몬구씨와 함께 쓴 곡이고요. <멜로디로 남아>는 영화 때문에 작업했다가 EP [끈]에 실었어요. 그리고 현장에서 녹음할 수는 없었어요. 공연하는 것을 녹음하는 일이란 영화촬영 장비 이외의 더 복잡한 무언가를 요하거든요.

[weiv]: 영화를 본 소감은 어땠나요?
한희정: 너무 오글거려서… (웃음) 근데 감독님 말씀이 편집을 다시 했는데 연기 자체가 달라졌대요. 어떻게 편집을 다시 한다고 ‘발연기’가 달라질 수 있지? (웃음). 아무튼 예전에 보셨던 게 최종본은 아닐 거에요. 편집을 다시 했다고 들었어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대요.

[weiv]: 영화 속에서 음악하는 사람의 모습이 ‘이렇게 그려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나요? 달리 말하면 ‘다른 국내외 음악영화에 비해서 이 영화는 달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있었나요?
한희정: 특별한 바람은 없었고 ‘이렇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있어요. 홍대앞 인디 씬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을 스쿠터를 타고, 컵라면을 하나 사서 멤버들끼리 나눠 먹고, 옥탑방과 지하연습실에서 사는 모습으로만 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뮤지션이기 때문에 [가난하게 그려지는 건] 싫다’, ‘그 사람이 원래 가난한 거라면 이해가 되지만, 음악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 원인과 결과가 지어지는 건 싫다’. ‘그건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음악을 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는 것이에요.

[weiv]: 영화에서 나온 모습은 한희정의 삶에서 언젯적 모습에 가까웠나요? 한 인터뷰를 보면 “20대에 치유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부분을 재연”하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라고 말하던데…. 만약 실제 모습과 가까웠다면 ‘까칠한’ 성격이군요.?
한희정: 그때 홍대앞에 살지는 않았지만 푸른새벽 1집이 나오기 전인 2002-3년 무렵이 비슷했던 것 같네요. 영화에 나오는 모습과 실제 제 모습은 어느 정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요. 성격은 제가 조금 그래요.

[weiv]: 앞으로 ‘까칠한 희정씨’라고 부르도록 하죠(웃음). 그건 그렇고 저는 영화를 통해 홍대앞에서 활동하는 신인 뮤지션들의 동선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영화에서 방에 있는 홈 스튜디오가 요즘 일반적인가요? 말 나온 김에 각 앨범/EP들의 스튜디오는 각각 어디였는지 몰아서 말해주면 감사.
한희정: 영화에 나오는 건 정말 간소한 시스템이고 더 복잡하게 스튜디오처럼 잘 해 놓은 사람들 많아요. 푸른새벽 EP는 작업실을 따로 구해서 녹음했어요. 2집 [보옴이 오면]은 각자 집에서 작업해서 서로 얼굴 볼 일도 없었고요. 웹으로 음원만 주고 받아서… 솔로 1집([너의 다큐멘트])은 제 집에서 홈 레코딩으로 만든 것이고, [끈]은 프로그래밍 등은 집에서 하고 목소리나 어쿠스틱 악기는 녹음실에서 했어요. 그때까지는 파스텔에 녹음실이 없었는데 이번 신보 EP는 기타와 보컬은 파스텔 녹음실에서 녹음하고, 베이스랑 드럼은 큰 스튜디오에 가서 했어요. 건반은 제 작업실에서 녹음했고요.

[weiv]: 영화로 돌아가서 마지막 장면 직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살던 방을 텅 비우고 앉아 있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네요. 하지만 엔딩 씬에서 몽구씨에게 “고마워”라고 말하면서 끝나는데 다소 비약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희정: 엔딩에서 “고마워”라고 한 것은 왜 그럴 때 있잖아요. 많은 타입의 연애를 해보지만 돌이켜 볼 때 그 사람과 함께 했던 날들이나 관계로 인해 생성됐던 나의 감정이나 경험이 고맙게 느껴질 때. 그래서 음악적 언어나 사람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고마웠던 것이죠. 나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래도 소중했던 거죠.

[weiv]: 영화가 정식 개봉되서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무리하면서 영화 출연해서 얻은 게 있다면 뭐였을까요?
한희정: 응급실 갔다 온 거? 하하. 이제껏 제 체력에 대해 의심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영화만드는 사람들은 다 철인인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찬바람 맞으면서 촬영하는거 저는 너무 힘들더라구요. 몇 번의 고비를 넘겼었는데, 결국 응급실까지 갔어요. 목이 너무 부어서 말을 전혀 못하겠고 팔 드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아팠던 것은 처음이었어요. 촬영 때 우스갯소리로 몬구씨랑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음악 열심히 해야겠어요.”

4. 독립 이후 뮤지션의 생활

[weiv]: 그럼 다시 열심히 하는 음악 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올까요? 인터뷰 처음에 정신 없이 바쁘다고 했는데 과연 얼마나 바쁜가요? 활동하면서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는지 대략이라도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요?
한희정: 그건 뮤지션마다 달라요. 제 경우 다른 일을 하는 게 아니니까 단독공연이 잡히면 그 공연에 대한 구상을 해요. 남들이 보면 노는 거 같지만 그게 오래 걸려요. 마치 가사를 쓰기 직전의 상황 같은 느낌? 에너지가 많이 필요해요. 그렇게 기획 단계가 종료되고 ‘이렇게 해야 되겠다’고 마음 먹으면 합주를 하죠.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그 외로는 이렇게 인터뷰 자리가 잡힌다든가, 사진을 찍는다든가 등 스케줄이 잡히면 그걸 하죠. 공연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책도 읽고, 여행 가고… 그러다가 노래를 만들기도 하고, 노래가 모이면 녹음을 하고.

[weiv]: 실례가 안 된다면, ‘지금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나’라고 물어봐도 될까요? 그리고 비밀이 아니라면 경제적 수입에서 음반, 음원, 공연, 행사, 저작권 등의 수입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요?
한희정: 마돈나 같은 팝 스타도 요즘은 음원을 그냥 뿌리고 공연 수입에 치중하더라구요. 근데 한국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도 한정되어 있거니와 음반을 많이 사는 편도 아니니까 어느 부분이 더 낫다고 말하기는 힘드네요. 어떤 뮤지션 같은 경우 공연을 많이 안하고 음반, 음원 수입이라든가 다른 사람에게 곡을 써 주든가 하니까 비율이 뚜렷하게 보이겠지만. 저는 음반과 공연으로 인한 수입은 대략 반반 정도? 잘 모르겠네요. 행사는 잊을만 하면 들어오는 정도에요.

[weiv]: 음반 판매가 감소한 뒤 모바일이나 인터넷으로 배급되는 ‘디지털 음원’을 통한 저작권료 가 중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파스텔 경우 특히 이런 환경변화에 비교적 잘 적응한 케이스라는 것이 세간의 평입니다. 희정씨 개인의 경우는 어떤가요? 자신의 예술적 노동에 대한 ‘보상’이 적절하다고 느끼는지요. (추가해서 특별히 ‘효자 노릇’을 한 곡이 있다면?)
한희정: 저는 어느 한 곡이 인기가 많다기 보다는 앨범 전체를 듣는 분들이 많아서 어떤 곡이 효자라는 느낌은 못 받았었어요. 부당한 점이라면, 음원 수익의 배분. 조금 바뀌었다고는 하는데 아직도 어이없는 수준이에요. 팬들 중에는 앨범을 온라인에서 유료 다운로드로 듣는 분들도 많거든요. 앞으로는 수익 구조가 점차 그쪽으로 더 기울 텐데 이런 식이라면 대부분의 뮤지션들은 다른 직업을 찾아봐야 될 거에요.

[weiv]: 아직도 소수지만 최근에는 등 TV의 음악 프로그램이 ‘홍대앞 음악’에 조금은 주목하는 것 같습니다. 몇몇 밴드나 뮤지션의 경우 특정 프로그램 출연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기도 하구요.
한희정: 굳이 매체[방송]가 우선은 아닐 거에요. 더더밴드에 있을 때 방송에 그렇게 많이 나가도 도움을 받았다고는 못느꼈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은 부차적이라고 생각해요.

[weiv]: 그렇다면 한희정에게는 아직도 ‘음반 발매와 공연 활동’이라는 고전적 활동방식이 최선의 ‘수익모델’인가요? 그렇다고 과거에 비하면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자주 많이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한희정: 예, 일단 앨범을 최선을 다해서 만들고 그 앨범에 수록된 곡들로 최상의 공연을 이끌어내는 것. 재미도 있어야 되지만 단순히 재미가 아니라 사람들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공연. 그래서 조금 소모적이고 힘들기는 하지만 공연을 구상하는데 이런저런 투자를 많이 해요. 그리고 저는 공연 자주 한다고 생각해요.

[weiv]: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마무리 질문 서너개 드리고 인터뷰를 마칠께요. 먼저 희정 씨의 음악인으로서의 삶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은 부당한 불이익 같은 게 있었나요?
한희정: 선입견. 그런 부분은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남자였다면 제 이미지는 많이 달랐겠죠.

[weiv]: 다행히 최근 홍대앞 씬에서 여성 아티스트가 양적으로 증가한 것은 사실입니다. 여성에 대한 표상도 변하는 것 같네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경쟁자’가 많아진 면도 있는 건가요?
한희정: 아뇨, 오히려 많아진 게 좋아요. 여성에 대한 표상이 증가한 것이라기보다는 여성이라는 특수한 상품이 눈에 띄는 거겠죠. 그 이전에도 여성 뮤지션들은 많았지만 여성이라는 점을 드러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 활동하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그때는 지금보다 더 남성중심적 사회였을 거에요. 지금도 여성싱어송라이터에 ‘여성’을 붙이는 것을 보면 그 연장선상에 있긴 하지만.

[weiv]: 제가 지켜보기에 한희정은 ‘자기관리를 잘 한다’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생활에서의 신조가 있었나요? 예를 들어 대쉬하는 수많은 남자들을 대할 때의 신조 같은 거?
한희정: 그런 이미지가 있다면 다행이네요. 그런데 오히려 남자들이 쉽게 접근을 못 하더라구요 (웃음). 어려워 보인대요. 다가오는 사람이 적었어요. 저는 술을 잘 못 마시고 낯선 자리는 피하는 편이에요. 불편해서 그런 자리에 잘 못 가요. 자기관리 차원에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성격 탓이죠.

[weiv]: 거창한 질문이지만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한희정의 자리’는 어떻게 남고 싶나요? 어떤 바람이 있나요?
한희정: 그건 남들이 붙여주는 것이겠죠. 저는 음악이 정말 좋아요. 음악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무한하다고 생각해요. 노래라는 게 몇 가락, 몇 소절의 단어일 뿐인데 한 사람의, 한 사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잖아요. 제가 흥얼거렸던 수많은 노래들처럼, 당신을 흥얼거리게 하고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뮤지션으로 자리하고 싶어요.

[weiv]: 한 명의 뮤지션의 시각에서 ‘한국 사회’는 어떤 사회라고 보이나요? 또 ‘어떻게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은?
한희정: 지금은 너무 균형을 일었어요. 정도를 벗어났다는 느낌. 균형과 보완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균형과 보완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제 주위 사람들은 다 저랑 비슷하게 생각해요. 요새는 왼쪽으로만 가도 다 빨갱이라고 하니까…(웃음).

[weiv]: 예전에 젊은 여성 뮤지션 한 명을 만났는데 그녀에게 한희정은 하나의 모델이더군요. 그런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한희정: 쑥스럽네요. 제가 예전에는 이런 얘기를 했거든요. 삶의 모든 면에 충실해라. 슬픔이든, 아픔이든. 그런데 그땐 너무 그쪽에 치중했던 것 같아요. 삶의 어두운 면들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기란 그것을 고스란히 담는 일보다 더 힘들거든요. 이왕이면 작품으로 하여금 타인을 웃게 만들고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

[weiv]: 마지막 질문. 사랑이나 연애에 대한 최근의 본인의 생각은? 아직 사랑에 대한 환상이 남아 있나요?
한희정: 제가 조금 시니컬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연애마저 그렇지는 않답니다!

[weiv]: 만의 하나 저한테 궁금한 것은 없나요?
한희정: 옛날에 제가 해외 록에 관한 두 권짜리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근데 그런 이야기를 써서 무엇을 얻으시나요? 저는 제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지만, 객관적인 시선에서 다른 사람의 일대기라든가 커다란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나요?

[weiv]: 평론의 의미를 묻는 것이겠네요. 간단히 말하면 평론가는 실패한 뮤지션이고, 연구자는 실패한 평론가라는 말이 있죠 (웃음). 이런저런 이유로 자기 이야기를 창작할 수는 없으니까 남의 창작물을 빌어서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건 뮤지션이 음악을 창작하고 발표하는 이유랑 별로 다르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한희정: (웃으면서) 아, 슬프네요.

[weiv]: 슬플 것 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요 (웃음). 각자는 각자의 할 일이 있는 것이죠. 아무튼 연이은 공연 잘 하시고, 좋은 음악 오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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