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몬(Emon) – 그리움이 만나는 시간 (EP) – 필로스플래닛/비트볼 찬바람 불어오던 그날의 노래들 2년 전 발표한 디지털 싱글에 이어 발매된 에몬의 데뷔 EP는, ‘포크’와 ‘여성’과 연관된 싱어송라이터군(群)에 묶일 운명이다. 그렇지만 최근 트렌드처럼 사운드의 여백이 많지는 않다. 개인적 견해지만 다행스럽다. 전체적으로 어쿠스틱 기타가 사운드를 이끌어가는데, 그 소리는 ‘통기타 생톤’과는 상이하게 처치되어 짧지 않은 잔향을 만들어 내고, 피아노 등 다른 악기음과 어우러져 풍성한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에몬의 목소리는 굵고 어둡고 무겁다. 그래서 산들산들, 말랑말랑, 샤방샤방한 ‘여신’과도, 벌거벗은 감정을 토해 내는 ‘마녀’와도 다르다. 첫 트랙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네”는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쓸쓸함과 외로움이 몰아닥치는 순간을 유려한 멜로디 라인과 독특한 가창으로 풀어낸다. ‘찬바람 불어오던 그날 / 내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의 부분은 서늘함 면에서는 이번 가을에 나온 신곡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다. 가을의 여행기를 담은 듯한 세 번째 트랙 “하슬라”(강릉의 옛 이름)는 날씨가 차가워진 날, 해가 뉘엿뉘엿 지는 오후 네 시 반쯤에 들으면 ‘짠할’ 곡이다. 일본어로 부르는 “Soyokaze”와 연주곡 “The Movie After Daydreaming”이 ‘여러 번 들어봐야 친숙해지겠네’라는 느낌과 더불어 사라진다면, 그 뒤에 나오는 “당신에게 키스를”은 곡이 끝난 뒤 자동적으로 다시 듣고 싶어지는 곡이다. 평범치 않은 코드 진행과 신비로운 멜로디는 절정부에서 오케스트라 편곡과 결합하며 음반의 하이라이트를 만들어 낸다. 그 뒤로도 음악적 탄탄함은 시들지 않는다. 밴드 편성의 편곡이 추가된 “낯선 도시”나 “그리움이 만나는 시간”은 싱어송라이터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지만, 음반의 주인공은 그 이상의 욕심을 갖고 있다는 암시를 준다. “낯선 도시” 중간부에 터져 나오는 블루지한 기타 솔로를 포함한 밴드의 연주는 음반 레코딩을 위해 평소에 잘 모르는 멤버들을 여기저기서 불러모아 한 것 같지는 않다. 즉, 에몬은 혼자 골방에서 외롭게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존재 이상으로 보인다. 이 EP는 ‘안암동의 붕가붕가’를 꿈꾼다는 필로스 플래닛(Philo’s Planet) 레이블의 첫 작품이다. ‘필로스’라는 단어는 여기서 나올 음악이 사색적이고 성찰적이라는 것을 상징하고, ‘플래닛’이라는 단어는 아마도 홈레코딩 시설을 차려놓은 골방이 하나의 소우주를 형성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 소우주는 감각적 센스보다는 감성적 깊이에 더 많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 그래서 음악을 들을 때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재미가 크지는 않지만, 다 듣고 난 뒤의 감흥은 깊다. 20101026 | 신호미 homey81@gmail.com 7/10 수록곡 1.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네 2. Soyokaze 3. 하슬라 4. The Movie After Daydreaming 5. 당신에게 키스를 6. 낯선 도시 7. 그리움이 만나는 시간 관련 사이트 에몬 싸이월드 클럽 http://club.cyworld.com/emon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