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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세션 – 슈퍼세션 – Universal Music

 

 

오래된 지도로 다시 시작해

‘슈퍼세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와 음반은 꽤 국내외에 꽤 있다. 그 점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이 슈퍼세션은 특이하다. 최이철, 엄인호, 주찬권이라는 각각 사랑과평화, 신촌블루스, 들국화라는 전설적인 이름들을 자동호출하지만, 이미 세 밴드는 온전한 형태로 현존할 수 없는 전설이 되었다. 본인 스스로 자신이 만든 밴드를 나왔거나, 더 이상 전성기 시절의 멤버를 모을 수 없는 등등의 사정이 존재한다.

앨범이 1980년대의 어떤 시점에 대한 기억의 재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렇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과거를 팔아먹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앨범 수록곡 대부분이 신곡 내지는 미발표곡이고, 세 명의 멤버가 균등하게 작곡에 참여했다. 엄인호와 주찬권의 곡이 각각 다섯곡, 최이철의 곡이 네 곡으로 모두 열네 트랙이 CD의 물리적 용량을 거의 꽉 채우고 있다.

앨범은 하드 록보다는 포크 록에 가까운 주찬권의 두 곡 “다시 시작해”와 “니가 있으니”로 시작한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한다’는 들국화표 노래들에는 노장들의 자기다짐이라는 추가적 코드가 얹힌다. ‘노장’이나 ‘거장’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멜로디는 쉽게 꽂힌다. 그 뒤를 잇는 최이철의 블루스 “강”은, 끊어서 부르는 절규하는 창법과 울어대는 기타 솔로로 1970~80년대 젊은 시절을 경험한 세대들에게는 말로는 잘 표현하기 힘든 감흥을 던진다.

그 뒤부터 한동안 앨범의 주조를 이루는 것은 엄인호표 블루스다. 그의 ‘녹슨’ 목소리는 재즈바에서 취객이 부르는 것처럼 고(故)김현식 추모곡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에서 가장 절절하다. 그 뒤로 한 명의 주도와 두 명의 협조가 담긴 곡들이 교대되다가 “당신이 떠난 뒤에도” 후반부에서 셔플 리듬 위로 엄인호와 최이철의 상이한 스타일의 연주가 경쟁하는 순간이나 “서로 다른 이유 때문에”에서 엄인호와 주찬권의 보컬이 교대로 반복되는 순간은 이 앨범이 협작을 넘어 공작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앨범에 대한 평은 ‘상찬 아니면 무관심’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전자는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 대한 애착을, 후자는 ‘글로벌 팝/록’의 지리에 대한 관심을 각각 미학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족보’와 ‘지도’를 퍼즐로 잘라서 게임을 할 시간이다.

사족: 앨범은 주찬권의 딸인 자연, 희연이 보컬을 맡은 “비 개인 오후”와 최시내가 보컬을 맡은 마지막 트랙 “날개”로 마무리된다. 음악의 분위기도 ‘사랑과평화/신촌블루스/들국화’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 베테랑 남성들이 신세대 여성들에게 ‘다음은 너네가 알아서 해라’라고 바통을 넘겨주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오버겠지만, 이런 엔딩의 효과는 궁금하다.20101026 | 신호미 homey81@gmail.com

8/10

수록곡

1. 다시 시작해
2. 니가 있으니
3. 강
4. 밤마다
5.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6. LA Blues
7. 상심의 바다
8. 비 개인 오후
9. 당신이 떠난 뒤에도
10. 비, 그대 그리고 블루스
11. 바람 불어
12. 서로 다른 이유 때문에
13. 아주 특
14.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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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그룹 들국화를 사랑하는 팬들의 모임: 전인권, 최성원, 주찬권도 회원으로 있다.
http://cafe.daum.net/march

사랑과 평화 공식 사이트
http://www.grouploveandpeace.com

신촌 블루스, 장사익, 박보 팬 사이트
http://cafe.daum.net/junggam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