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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Achime) – Hunch – 붕가붕가레코드, 2010

 

 

시차적 관점

한국에서 외국(이라 쓰고 영미권과 일본이라 읽는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두 종류의 시차가 작동한다는 말과 같다. 하나는 시(간)차(時差), 다른 하나는 시(각)차(視差)다.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에서 이 두 시차는 미묘하게 얽힌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누군가 폴스(Foals)나 토(Toe)를 듣다 감동을 먹고 음악을 시작한다. 몇 년 뒤 밴드는 결과물을 내놓는다. 이것이 시(간)차다. 시(간)차는 밴드의 결과물이 그들이 활동하고 있는 음악적 환경에서 ‘항상적’인 것이 아닐 때 두드러진다. 반면 청자들은 몇 년 전에 이미 그런 종류의 음악을 듣고 익숙해진 상태다. 알다시피 유행에는 시(간)차가 거의 없다. 몇몇 ‘힙스터’들이 ‘냉혹한’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걸 시(간)차에 의한 시(각)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시차는 ‘토착화’ 혹은 ‘로컬라이징’, ‘오리지널리티’나 ‘가요 감성’ 등을 통해 좁혀지는 경향이 있다(물론 ‘힙스터’들은 이런 것들 따위 인정 안한다. 그들은 냉혹하다). 이는 일부는 자연스럽게, 일부는 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가요 감성’을 놓고 창작자가 벌이는 줄다리기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저 ‘그쪽’과 ‘이쪽’의 시(간)차를 줄이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하여 ‘팬덤’은 이 모든 것들을 간단히 무력화시킨다는 것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취향의 제국에서 시공간은 종종 ‘탈구되게(out of joint)’ 마련이니까.

이제 막 정규 데뷔작을 낸 아침의 음악을 듣는 동안 이런 생각이(만) 들었다면 밴드에게는 좋은 징조일까 아닐까? 데뷔 EP [거짓말꽃](2009)에서 이들은 두 메이크 세이 씽크(Do Make Say Think)에서 토에 이르는 포스트 록의 흐름에 한 발을, 폴스에서 국카스텐에 이르는 범위의 밴드들을 포괄하는 간결한 댄스 펑크에 다른 한 발을 담그고 있었다. 전자에는 “불신자들”이, 후자에는 국카스텐의 박력에 필적하는 “거짓말꽃”이 있었다. 둘 중 어느 쪽 길을 가도 괜찮을 것처럼 보였고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길을 걸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규작에서도 밴드는 여전히 둘 다를 고집하고 있다. 결과는 그리 좋지 않다. 두 마리 토끼의 꼬리만 잡고 있는 형국이라고 해도 되겠다. 맞다. 나는 지금 아침의 정규 데뷔작에서 자신들이 받은 영향은 뚜렷이 나열되지만 오리지널리티는 분명치 않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중이다. R.E.M.을 연상시키는 컬리지 록(‘캠퍼스 록’이 아니다) 스타일 사운드에 ‘비틀스풍(beatlesque)’ 코러스가 돋보이는 “맞은편 아침”, 카랑카랑한 기타 리프와 느슨하고 여유있는 간주의 대조가 오래 남는 “불꽃놀이”, 후끈하게 몰아붙이는 “거짓말꽃” 같은 곡들이 덜 인상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이 곡들은 여러 면에서 기억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하지만 ‘하다 만 것 같은’ 포스트 록 계열의 곡들(“Signal Flows”, “불신자들”)을 비롯한 음반의 나머지는 뚜렷한 여운 없이 지나간다. 위에서 긍정적으로 언급한 세 곡 중 두 곡(“불꽃놀이”와 “거짓말꽃”)이 EP 수록곡이라는 건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가사는 취향을 좀 탈 것 같다. “믿음이 타고 있다/그곳에 고기를 구워 먹자”(“불신자들”)와 같은 감각은 개인적으로는 ‘드러내놓기에는 설익었다’는 생각이다. 그런 감성이 “지키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데/손은 보다시피 두 개 뿐이라”(“맞은편 미래”) 같은 가사를 만들었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말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불꽃놀이”의 ‘문학적’인 가사에 대해서도 뭔가 할 말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말을 하며 흉을 보기는 했지만 나는 이 음반이 싫지 않다. 몇몇 순간들은 짜릿하며, “맞은편 아침”이 타이틀로 약하다는 일부의 평가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Hunch]는 보너스 트랙을 좀 많이 추가한 EP 같다. 그래서 욕심 많은 신인 밴드가 빠지기 쉬운 함정에 걸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게 아니라면 오랫동안 ‘백화점식 구성’을 고집해 온 한국 대중음악의 습속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문제일수도 있겠다. 하나를 꾸준하게 하면 ‘변화가 없어 재미없다’고 하고 여러 가지를 하면 ‘일관성이 없어 혼란스럽다’고 하니 만드는 입장에서는 난감하겠지만, 그래도 다양함과 산만함은 다른 것이다. 인디 록에 포스트 록만 해도 충분한데 보싸 노바(“커피는 싫어요”)까지 내밀면 듣는 쪽 역시 난감하지 않겠는가. 20100625 | 최민우 daftsounds@gmail.com

6/10

덧. 리뷰 제목은 지젝의 책에서 따 온 것이다.

수록곡
1. 맞은편 미래
2. Pathetic Sight
3. 무표정한 발걸음
4. 불꽃놀이
5. Signal Flow
6. 이 비가 그친 뒤
7. 파도색 신발
8. 불신자들
9. 거짓말꽃
10. 매일매일
11. 커피는 싫어요 (Bonus Track)

관련 사이트
붕가붕가레코드 홈페이지
http://www.bgbg.co.kr
아침 공식 커뮤니티
http://club.cyworld.com/achime